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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과 성전 (눅 19: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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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예수님은 “성전을 헐라 그러면 내가 사흘만에 다시 짓겠다”라고 하여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셨다. 예루살렘의 성전은 30여년이나 걸려서 건축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2.성전은 바로 이 땅에 초림하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상징이었다. 성전은 결코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금도 일부 목회자와 성도들이 단순한 건물에 지나지 않는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우상시 하고있는 것을 보게 된다. “성전”과 “예배당”은 개념부터가 다르다.

3.과연 예수님은 성전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I.성전은 없어질 건물이다(41-44).
A.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으리라.

1.장차 예루살렘의 운명에 대한 예언이었다. 실제로 이 예언대로 로마의 디도장군은 병력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정복했는데, 모든 것을 파괴했다.

2.성전은 예루살렘 시민들의 자존심이었다. 그들의 생명과 같은 존재였다.
1)성전은 3번째 건축된 것이었다. 솔로몬의 성전과 스룹바벨 성전, 그리고 헤롯에 의해 세번째 건축되어 졌다.
2)이스라엘의 방종과 타락은 바벨론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파괴하도록 하였다. 그들은 포로가 되었고 성전도 파괴 되었다.
3)하나님은 이들을 70년 만에 귀환시켜 주셨다. 그리고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성전을 재건하게 하셨다.
4)그러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헤롯시대에 성전은 다시 한 번 재건축 되었다.

3.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성전을 건축하도록 독려 하셨다. 그러나 막상 성전의 실제 모습인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을 때, 성전은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어졌다. 그래서 이방인을 통하여 네번째로 성전을 파괴하셨다.

4.로마에 의해 무너진 반쪽 성전은 지금도 복구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성전터에는 마호멧의 후예들이 자기들의 신전을 지어 예배하는 장소가 되었다. 이 얼마나 기가막힌 사연인가

B.성도는 하늘의 성전을 바라봐야 한다.

1.이 땅의 성전은 예수님의 모형이었다. 그리고 영원한 하늘의 예루살렘성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2.그러나 사람들은 영적인 의미보다 보이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성전의 주인되시는 에수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직 건물을 우상시 하기에 급급했다.

3.주님은 이 땅에 교회를 허락하셨다. 그리고 교회는 건물을 필요로하여 예배당을 지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교회당을 “성전”이라고 생각하는가 보다. 물론 예배드리는 장소라는 의미에서 “성전”이 될 수는 있겠지만 성도에게 궂이 특별한 장소가 필요치 않다는 영적인 의미에서는 합당치 않은 표현이다.

4.많은 교회들이 건물을 우상시 하고 있다. 그래서 더 호화롭고, 더 웅장하게 건물을 짓고, 꾸미려고 애를 쓰고 있다.

5.성도는 자신의 몸이 바로 성령이 거하시는 성령의 전이라는 개념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자신을 성결케 하는데 힘써야 한다.

II.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다(45-46).

A.만민이 기도하는 곳이다.

1.구약의 성전에는 까다롭고 복잡한 규정이 있었다. 그래서 아무나 함부로 드나들 수가 없었다.

2.절기 때마다 사람들은 모여서 자신의 죄를 속하는 제물을 드려야 했다. 세월이 흘러 예루살렘이 대도시가 되었어도 율법의 규정은 준수해야 했다. 그래서 목축을 하지 않고 시내에 거주하는 자들을 위해 제물을 공급해주는 장사꾼들이 있었다.

3.언제나 성전 입구에는 장사꾼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기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인지, 아니면 가축시장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장소가 되었다.

4.성전은 죄인들을 위한 장소다. 그곳은 결코 실업자를 구제하는 장소가 아니다. 그리고 돈벌이 하는 장소도 아니다. 죄인이 찾아와 자비하신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장소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전의 본래적인 의미를 잃어버리고 제물을 드리는 일에만 매달리게 되었다.

5.제물은 장차올 예수님에 대한 상징이었다. 세상의 그 어떠한 제물도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능가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물되신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 갔으나 사람들은 예수 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주님은 채찍으로 장사꾼들을 내어쫒으셨다.

B.하나님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1.기도로 회개하고, 기도로 능력을 받는다. 그래서 성도는 기도로 사는 사람이다. 기도하지 않는 자는 성도가 아니다.

2.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단 한번에 드려진 완성의 제물이 되셨다. 이 사실은 배우는 것 만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기도하여 능력받는 자만이 믿어지는 진리다.

3.구약의 성전은 자격있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누구든지 기도의 집에 들어오라고 초청하신다. 교회가 성전으로 머문다면 기도하는 집이 될 수 없다. 은혜의 장소가 될 수 없다. 그러나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기 때문에 장애자도 들어가고 흉악범도 들어갈 수 있다.

III.성전은 하나님을 배우는 곳이다(47-48).
A.예수님은 열심히 가르치셨다.

1.유대인들에게 성전은 율법의 요구를 따라 형식을 행하는 장소였다. 그리고 이들은 회당이라는 곳에서 공부를 하였다. 평소에는 회당에 모여서 성경을 공부했고, 성전에서는 의식을 행하였다.

2.예수님도 때로는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랍비”라고 명칭하였다.

3.그러나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날 까지 날마다 성전에서 사람들에게 가르치셨다. 그들의 고정관념을 바꾸는 종교혁명이었다.

B.교회는 하나님을 배우는 곳이다.

1.어떤 교회는 교회의 기능을 지나치게 “제사”쪽에 집중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지나치게 높은 강단, 최대한 위엄있게 꾸며진 분위기로 회중을 압도하려 한다. 이것은 성경의 내용과 어긋난 교회다.

2.교회는 다양한 기능을 필요로 한다. 회중에게 예수님을 만나게 할수있는 길이 있다면 교회는 그러한 기능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요즘에는 공연장을 마련하는 교회도 있다. 식당도 훌륭하게 만들고 있다. 다 필요한 시설들이다.

3.그러나 중요한 것은 에수님이 성전에서 사람들을 열심히 가르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예수님의 사역 말기에 그러한 조치를 취하셨음에 유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교회에서 열심히 성경을 배워야 한다.

4.요즈음 사람들은 얽메이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다 보니 궂이 성경을 배우려 들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번 주일날 찾아와서 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열심히 말씀을 배워야 한다. 말씀은 성도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5.영적인 양식이 메마른 현대인은 불신자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공직자 교인들에 대하여 관심이 많다. 그들도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그들도 똑같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결론

1.의식적이며 형식적인 제도에 얽메인 성전은 필요치 않다. 그래서 성전은 무너져야 한다.

2.인본주의가 무너져야 성령이 역사하는 하나님의 전이 세워진다. 우리는 보이는 건물에 집착하지 말고 주의 성령이 거하시는 마음의 성전을 건축해야 한다.

3.주님은 성도의 교제와 예배를 위해 교회를 주셨다. 교회는 구약의 성전을 흉내내는 곳이 아니다. 그곳은 기도하는 집이요, 하나님을 배우는 집이어야 한다.

4.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힘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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