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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요 13: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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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의식이 커져가면서 나타난 질문들 가운데 이런 질문들이 있습니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또 남자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런 질문을 함께 묶어보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질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질문에 답은 여러가지로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질문을 받을 때 무엇으로 산다고 대답할려는지 궁금하군요. 만약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사람은 인생을 낭비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식 때문에 산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며 어떤 사람은 꿈 때문에 산다고 말할 것이며 또 대부분의 사람은 그냥 산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간혹 죽지 못해 산다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예수님은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우리는 우리의 삶의 이유와 신앙의 권면이 과연 모순 되는지 아니면 신앙의 권면이 우리의 인생의 풍요로움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서로 사랑하라(요13:34)
주님은 우리에게 살아가는 이유를 사랑에 있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너무 당연한 말씀이라 그렇게 충격적으로 들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사는 이 세대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너무도 많이 말해지는 생활이라 사랑 무감증에 걸려 있는지도 모릅니다.우리는 사랑의 언어 홍수속에 살고 있습니다. 어느 영화를 봐도, 드라마를 봐도, 하다못해 노래를 들어봐도 이 사랑이라는 단어는 쉽게 들을 수 있는 언어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을 경험했느냐 하는 질문을 해보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다고 말하지는 않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일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혼자하는데 익숙합니다. 혼자서 생각으로 사랑하고 생각으로 헌신하고 생각으로 고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러한 자신의 마음을 알아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사랑을 몰라주는 사람은 모두 믿음이 부족해서 자신의 생각속에 있는 사랑을 못보기 때문이라고 인정해 버립니다. 자신을 몰라주는 사람은 모두 교만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끔 갖는 착각은 자신만이 유일하게 사랑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 믿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랑을 하되 서로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랑은 생각속에 머무르는 관념이 아니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은 나타나게 되어있으며 경험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이 사랑을 말한다는 것은 그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는 말인 것입니다. 우리의 문화를 표현이 부족한 문화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말이 많은 사랑은 진실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 모두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에 동의 될 수 있는 불구적인 사랑의 이해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주님이 제시한 사랑의 방법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2.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요13:34)
성경은 명쾌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즉, 주님이 나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을 보여주라는 말인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을까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한 배경을 보면 결코 충동적이거나 일회적인 과시적인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그리고 그 사랑에 책임을 지시기 위해 심각한 곰민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사랑을 표현할 때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합니까 나의 사랑이라는 말이 상대에게 기쁨과 위로를 줄수 있을까 아니면 그 사랑에 표현에 대해 무책임하지는 않을까 그러면서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염려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사랑의 시작이라는 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까요 주님의 사랑도고민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기 위한 사랑을 위해 얼마나 고민하셨는지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상대의 짊을 나누는 고민을 허락합니다. 성경은 이것을 십자가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방법은 우리가 닮아갈 수 있는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고민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문제를 위한 고민이 아닌 상대를 위한 고민으로부터 우리의 사랑은 시작된 것입니다. 결코 포기해서도 포기될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자신의 문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고민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고 쓸데없는 고생이라고 생각하느데 익숙한 곳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쓸데 없는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누군가가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쓸데없는 생각때문에 산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를 위해 아파하며 잠못이루는 시간을 갖는 것.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 그 영혼을 도와 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생활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닮아 갈 때 십자가의 완성된 사랑은 감당하지 못해도 겟세마네에서 땀흘리던 고민은 닮아갈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사랑은 우리의 의지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사랑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은 완벽한 사랑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그 자체가 완전한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서로를 사랑하되 네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라고 권하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의 사랑은 아름답고 위대합니다. 그러나 그 위대함과 아름다움도 누군가를 위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에 초보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랑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야 할 것입니다. 이제 무릎을 꿇되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가 아닌 바로 누군가를 위한 고민으로부터 시작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기도의 비밀이기도 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제 이러한 인생에 대해 결론을 내려줍니다.

3. 증거되는 삶(요13:36)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주님은 이렇게 우리의 꿈을 이루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닮아가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고 싶다는 것이 우리의 인생에 목표일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의 가치는 여기에 있으며 이 가치를 수행하기 위해 역사가 주어진 것입니다. 역사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은 바로 이러한 목적에 맞추어 사용되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단지 사랑하라고 말하시며 그러한 인생에 나의 제자가 되는 비밀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우리의 인생에 중요하며 위대한 시기에 와 있다는 사실을 받아 들여야 할 것입니다. 내가 변하는 순간 우리의 교회는 변할 것이며 우리의 세계는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멧세지가 여러분에게 새로운 부담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에 대한 성경의 요구가 얼마나 아름다운 축복인가를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크고 화려한 사랑을 꿈꾸기 보다 작고 아픈 그러면서 우리에게 새로운 기대와 기쁨을 주는 그런 사랑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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