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말씀과 기도에 전념해야 하는 이유 (행 06:1-6)

첨부 1


우리는 낯선 거리를 찾아갈 때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가기위해 몇번씩 지도를 보고 사람들에게 물으면서 찾아갈 것입니다.
길을 모르니까 묻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가기는 가야하는데 길은 모르고 또 잘 아는 사람이 없으면 길만큼 의견도 많을 것입니다. 그때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너무도 당연 할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잡한 우리의 생각과 감정!
그래서 평안과 기쁨보다는 답답하고, 짜증나고,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순간들! 이럴때 여러분은 어떻게 자신의 문제를 풀어 나갑니까
우리는 자신의 영적 상태가 혼란스러워질때면 문제의 원인을 찾기위해 분주해 질 것입니다. 아마도 내 인격이 혹은 신앙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혹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인가 또는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 다른 긴장들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인가 등등
우리의 생각은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 혼란스러워질 것입니다. 이럴때 우리에게는 우리의 생각을 인도해 줄 그 누군가가 필요할 것입니다. 바로 그 위기를 해결해 주는 영적인 경험을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족하다고 말하는 실제는, 생각과 판단이 부족하다는 말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상황과 사람에 대해서 잘못 판단하거나 오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근거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구체적인 신앙생활을 찾아봐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들이 집사를 세우는 이유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내용을 자세히 음미해보면 우리를 설득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에 전무” 하겠다고 말하면서 형제를 돌보고 운영하는 역할을 맡기고자 집사를 세운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말씀과 기도는 사도들만의 특권이며 의무일까요 오늘날에와서 사도의 역할을 하고 있는 목사만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고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인 제사장 직분을 강조한 베드로 사도의 논리는 모순으로 남을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면 본문에서 말하는 말씀과 기도에 전무한다는 말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의미를 찾아봐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그의 약속대로 성령님이 오셨을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놀라운 체험을 갖습니다. 그들은 죽음과 고난앞에 무력했던 삶이 담대함과 의욕적인 생활로 바뀌었으며 환경과 사람들에게 위기를 느끼던 현실이 복음에 대한 열망과 감격으로 환경과 사람들로부터 자유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강력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으며 많은 무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는가운데 무리는 많아지고, 공동체는 커져가면서 공동체안에 여러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도 그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사도들은 현실적으로 분주해졌으며 순간순간 판단하고 결단해야 할 일도 그만큼 많아졌습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의 경험적 삶을 통하여 스스로가 얼마나 무력한 인간인가를 뼈져리게 느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신앙적인 치욕을 생각할 때마다 스스로에 대한 아픔이 컸을 것입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의 판단과 생각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 도움으로 더욱 지혜로울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강력하게 역사할 수 있는 준비와 조건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과정을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라는 사실로 제안하며 스스로 순종하는 본을 보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는 실제적 결단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말씀과 기도가 왜 절대적으로 신앙인에게 필요한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1.말씀
여기서 말씀은 성경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계시며 절대 진리인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거부하게 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하나님의 간섭이기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뜻을 가시화 시키셨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인 것입니다.
요한사도는 복음서에서 증거하기를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하였으며 창세기 저자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의 생각과 느낌보다 우선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사도들의 주장이며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모든 것에 우선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점점 인간적인 것들로 분주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도들은 점점 영적 긴장을 느꼈으며 새로운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현실 역시 중요한 문제였기에 그들은 사역의 사역의 분담을 결단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오늘날의 집사직분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신앙인들의 생각과 판단 그리고 느낌에 근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권위와 믿음을 얼마나 순종을 통하여 나타내야 하는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지식으로 경험되지 않기 때문이며 중요한 것은 믿음을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진정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신다면 우리는 말씀앞에 순종하는 믿음의 증거가 필요할 것입니다.

2.기도
사도들은 성령의 역사의 통로로 말씀과 병행하여 기도를 제시합니다.
기도는 말씀과 병행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신앙의 상식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턴지 말씀과 기도를 따로따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분적인 만족으로 우리의 신앙을 설명합니다.
예를들어 말씀은 충분하지만 기도가 부족하다고 말하든지 아니면 기도는 충분한데 말씀이 부족하다고 말한다든지! 이러한 현실은 성경적일 수 없습니다. 기도없이 말씀은 능력이 될 수 없으며 말씀없이 기도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말씀이 하나님의 계시며 뜻이라면 기도는 그 말씀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인 갓입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겸손과 순종을 준비시켜 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게 하며 우리의 심령이 말씀에 지배받을 수 있는 현실을 체험시켜 줍니다. 결코 기도없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도없는 말씀은 영적교만을 세우는 또 하나의 비극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하는 사역에 오해를 합니다. 그것은 기도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오해입니다. 만약 그런 오해가 여러분에게도 혹시 있다면 그 오해를 풀어 드리고 싶습니다.
기도를 하시되 쉬지말고 기도하십시요. 이것이 성경적입니다.
기도는 어느 한 순간에 행위가 아닙니다. 기도는 말씀과 항상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배하는 신앙의 권위인 것입니다. 문제는 성경이 말하는 기도의 삶을 우리의 신앙속에 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신앙의 부족을 지적하고 평가하기 이전에 내게 부족한 것을 채우고자 하는 겸손한 순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나로부터 말씀을 배우고 순종하기 위한 결단이 있어야 할 것이며 기도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나부터 무릎꿇고 순종하는 겸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왜 우리는 옳은 것을 결단하는데 많은 이유가 있어야 합니까
우리는 깨달은 신앙이 있을 때 거기서부터 순종하는 나의 모습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뛰어난 지식과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와 겸손일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이러한 결단에 방해가 되는 요인이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성장의 동기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를 발견하며 해결하기 위한 도전을 우리는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형제며 자매입니다. 넓은 생각과 이해를 하나님께 구하면서 자신의 문제와 삶속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