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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월을 아껴라 (엡 05: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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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끝나가는 시간이 되면 우리는 평소에 경험하기 힘든 정서를 경험하게 됩니다. 누가 요구하지 않아도 진지해지고 자신이 살아온 시간들을 한번 쯤은 돌아보면서 후회와 자책과 아픔을 가집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좀 더 잘살아야 되겠다고 다짐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한 해를 돌아보게 될 때 어떠한 정서를 경험하게 됩니까 우리는 진정 지난 한 해를 내가 고백하는 신앙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한 해를 주님께 진정으로 감사할 수 없는 정서라면 우리는 우리의 삶의 방식을 새롭게 하기 위한 결단이 96년도에는 필요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갖기 어려운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감사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원망과 분노와 서글픔은 쉽게 경험하면서도 감사를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을 감사하며 살아가는데 익숙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고백이 아닙니다. 감사는 감사의 조건을 찾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감사의 조건을 외적인 넉넉함에서 찾으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환경적인 것들에 민감하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느냐에 많은 관심을 갖고 삽니다. 그리고 자신도 최소한 그보다 나은 생활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들과 비슷한 생활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감사보다 좌절과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결코 우리의 기준이 나보다 부족한 사람에게 맞춰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감사의 조건을 외부적인 비교에서 찾지 않는다는데 그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외적인 것들에는 자족하는 마음을 추구하는 자세가 그리스도인의 마음일 것입니다. 진정한 감사의 시작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공개된 비밀일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의 시작입니다. 어떤 사람이 중병으로 장기간의 입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했습니다. 때는 4월 초순, 나무마다 새 움이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나무 밑에서 걸음을 멈추고 잠깐 쉬는데 머리와 나무 사이에도 생명력이 가득차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병상에서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들던 일을 생각하면서 이 사람은 자기가 생명을 지니고 이렇게 생명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이 더할 나위 없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이 사람은 이것을 생명의 감사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부터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더라도 생명에의 감사를 상기하며 극복해 나가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생명에 대한 감사는 모든 인생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경험한 사건은 바로 이러한 생명에 대한 새로운 경험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일것입니다. 그리고 누려지는 완전한 소망은 하나님 나라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두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소망을 소유한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며 이들을 우리는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우리의 감사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제 본문을 통하여 한 해를 마감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지혜있는 자같이 살라(엡5:15)
성경은 우리에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를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성경이 우리에게 지혜를 요구하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이 세대가 악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이 세대가 하나님의 뜻과는 점점 멀어지는 생활에 매력을 갖게 되는 유혹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행동을 분별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도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같은 행동을 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결코 그렇게 살아서는 안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현실만을 보지 않으며 그래서 현실에 지배받을 수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미래를 볼 수있는 안목이 있으며 다가올 미래를 통해 슬픔과 기쁨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결코 현실적인 만족으로 자신의 인생을 결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래위에 집을 짓는자와 반석위에 집을 짓는 자에 대한 비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래위에 세운 사람보다 반석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 훨씬 지혜로운 사람이라는데 동의할 것입니다. 물론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때는 모래위에 지은 집도 안전한 것처럼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반석위에 집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집을 지을 때 반석위에 집을 짓는 수고를 기쁨으로 감당하는 사람이 없다는 데 우리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지혜있는 사람은 반석위에 집을 짓는 수고가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는 특징이 있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2. 지혜로운 사람의 특징(엡5:17-21)
성경은 지혜로운 사람의 첫번쩨 특징은 주의 뜻을 이해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다시말해 주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는 어리석은 자라는 말로도 해석이 가능하다는 말일 것입니다. 무엇에 대한 주의 뜻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말은 바로 오늘 이라는 현실을 살아가는 생활의 방식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망이 있다는 신앙의 도덕성을 잘못 적용하여 이 땅으로부터 도피적이고 냉소적인 생활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비극이 될 것입니다. 소망이 있다는 말은 이 세상의 현실을 가장 가치있게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결코 소망이 있는 사람들은 현실에 잘못된 욕망에 노예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주의 뜻을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18절에 보면 이렇게 설명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여기서 성경은 주의 뜻을 이해하고 사는 사람의 두번째 특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충만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인생의 주제권에 대한 권면입니다. 술은 감각적이고 충동적이며 무책임적인 우리의 인격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성령충만은 바로 우리의 인격을 주님께 지배받으라는 권고인 것입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신앙교육의 왜곡중 하나는 이 성령충만에 대한 권면을 방법에 충실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목적이 변질된 방법은 우리의 신앙을 모순속으로 몰고 갔습니다. 성령충만을 위해 우리는 기도를 강조했습니다. 성령충만을 위해 우리는 성경말씀과 경건을 강조했습니다. 성령충만을 위해 어떤 문화생활보다 교회 중심의 예배 생활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에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령충만의 분명한 목적을 이렇게 밝힙니다. 갈5:22절에서 열매를 맺기 위한 것이며 그 열매는 우리의 삶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그렇게 아름답게 되려면 성령의 도움이 절대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의 고백인 것입니다. 문제는 그동안 우리의 신앙교육은 잘못된 감각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혜롭게 인생을 살지 못하며 자신의 인생을 주님과 동행하며 누리는데 익숙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어서 성령충만한 사람들의 현실적인 특징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주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는 즐거움이 생활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드리는 특별한 시간의 찬양이나 주일날 드려지는 예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활속에 주님이 나를 지배함으로 나타나는 기쁨의 생활을 설명해 주고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 생활의 클라이막스가 주일예배며 찬양예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에배는 축제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여기에 보면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우리의 생활에 예수님이 우리의 인격을 지배할 때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할 능력이 있을 것입니다. 이유는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롭게 하셨으며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소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하면 어떠한 조건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끝으로 성경은 피차 복종하는 특징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우리의 유교적인 계급의식은 복종이라는 단어에 반항감을 무의식적으로 갖게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을 다른 단어를 빌어 설명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서로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사랑을 동시에 나누라는 것입니다. 서로라는 말은 시간적으로 동시적인 상황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네가 나에게 복종하면 나도 하겠다라는 식의 적용은 위험한 적용입니다. 이 복종의 특징은 동시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제 한 해가 끝났습니다. 나라적으로는 많은 사건과 슬픔과 아픔이 있었던 해이기도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는 해이기도 했습니다. 교회적으로는 교회 이전이 결정된 해이며 셀 모임이 시작된 해이기도 합니다. 흩어진 여러마음이 하나가 되어가는 해이기도 했습니다. 나의 부족함이 그 어떤 때보다 많이 나타나서 여러분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항상 용서와 새로운 시작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지금까지 한번도 여러분이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분노해 본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여러분과 어떤 형태로든 헤어짐이 생길까 두려워했습니다. 진정으로 여러분이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으며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95년도의 모든 것들을 주님의 용서와 사랑에 맡기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다가오는 96년도에 저와 하나가 되어서 주님의 일에 우리의 모든 것을 맡겨보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은 결코 이 땅에서 영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이 이 땅에 질서인 것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이 땅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주님의 심판의 때와 우리가 세상을 떠나는 때는 인간에게 비밀로 정해 두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 생명에 충실하라는 하나님의 뜻이기도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지난 한해 동안 잘 사셨습니다. 죽지않고 떠나지 않고 함께 95년의 마지막날을 함께 예배 드릴 수 있다는 사실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주님의 위로로 이 한해를 끝내시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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