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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갈곳이 없는 사람들 (히 11: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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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피라미트를 지날려면 그 앞을 지키는 스핑크스를 지나가야 하는데 스핑크 스 앞을 지날때 수수께기를 낸다. 그 수수께끼를 맞추면 통과하고 맞추지 못하면 앞발로 죽인다. 그 수수께끼는 "아침에는 네발 점심에는 두발 저녁에는 세발로 다니는 동물이 무엇이냐"라는 수수께끼이다.
여러분 뭐라고 생각 됩니까
사람입니다. 사람은 어릴때는 네발로 기어다니고 젊을 때는 두발로 걸어 다니고 늙어서는 지팡이를 짚으니까 세발로 걸어 다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단순한 수수께끼에 불과 한것이 아니라 인생에 대하여 묻는 질문입니다.
인생에는 3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1.나는 어디서 왔는가
내 본향이 어디인가라는 질문입니다. 고향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들 돌아갈 고향이있습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것은 본능적으로 고향을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회귀본능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타잔이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코끼리가 죽을때가 되니까 자기가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코끼리는 죽을때 자기가 태어 난곳을 찾아가 거기서 죽느다고 합니다. 자기가 태어난 곳이 어디인지 본능적으로 알아 차리고 가서 거기서 죽기 때문에 코끼리의 무덤은 대부분 공동묘지와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강원도의 남대천에서는 연어치어를 방류를 합니다. 그러면 연어는 남대천 물을 따라 내려가 동해바다로 나가 저 북태평양 그 넓은 바다를 돌아 다니며 일생을 살아가다가 산란기가 되면 자기 태어난 남대천 개울로 다시 돌아와 거기서 알을 낳고는 일생을 마치게 됩니다. 그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하기 짝이 없습니다.
여우도 죽을때는 고향을 향하여 운다고 합니다. 짐승들은 죽을때에 자기 고향을 향하여 머리를 두고 죽는다고 합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을 때에 고향을 생각하게 되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입니다. 죽음이 가까와 오면 더욱 고향을 그리워 합니다. 저 임진각에 가보며 이북에 고향을 두고온 분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망향의 아픔을 달래는 탑이 세워진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교통사고로 입원하여 회복되다가 나중에 상태가 다시 악화되었다가 결국은 세상을 뜨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의 침대에서 발견된 그의 글이 있는데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집으로 가지 않겠다. 그곳은 고독과 외로움 뿐이다 차라리 여기서 죽고싶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고향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을 따뜻하게 맞아줄 고향이 있으십니까 고향이 있고 또 따뜻하게 맞아줄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 복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보다더 중요한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짜 고향이 어디며 그곳을 갈수 있으며 그 곳에 언제고 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입니다. 우리의 진짜 고향, 그곳은 하늘나라 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장막을 벗는날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곁으로 돌아 갑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히브리 기자는 항상 돌아갈 본향을 생각하고 그 곳에 돌아가 준비를 하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2.두번째 질문은-인생은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를 그의 글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땅을 소유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고 날마다 많은 땅을 얻기를 원했습니다. 어떤 큰부자가 하루는 그 에게 "네가 오늘 마음껏 걸어 다니라 걸어 다니며 네가 밟은 땅은 다 너에게 주겠다. 다만 꼭 기억해야 할것은 해가 지기전에 돌아와야 한다 해가 져서 돌아오면 무효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되도록이면 많은 땅을 얻을려고 밥도 먹지 않고 쉬지도 않고 걷기 시작 했습니다. 왜냐하면 걷는만큼 자기 땅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종일 토록 걸었습니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욕심을 너무 부려 멀리 왔기때문에 해지기 전에는 돌아가기가 힘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는 더욱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이윽고 해가 져가기 시작하는데 아직 출발점에 도착하지 못하였으므로 숨가쁘게 달리기 시작 했습니다. 죽기로 달려가서 출발점에 도착했는데 그순간에 해가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 무리해서 달려 왔기 때문에 그만 죽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그가 얻은 땅은 그가 뭍힌 반평의 땅뿐이었습니다.
톨스토이는 사람이 사는 이유가 결코 땅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말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생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1993년도에 부지런히 뛰셨습니까 사도 바울은 살던지 죽든지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기를 원하며 먹던지 마시던지 주를 위해 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구할것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적이 바르지 않으면 우리의 삶이 바를수가 없습니다. 가치관이 바르지 않으면 삶이 바꿔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3. 세번째 인생의 질문은 인생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아주 복잡하게 된다고 합니다. 제일 잘된 사람은 극락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히 드문일입니다. 대부분은 다시 사람으로 환생 합니다. 그리고 그보다 못하면 짐승으로 그리고 제일 못하면 미물로 태어 납니다. 그리고 구천을 떠도는 귀신도 있는데 그 영혼을 위해서는 49제라는 것을 드려 환생토록 한다고 하여 수백만원을 들여 49제를 지닙니다. 구천을 떠도는 사람은 대부분 객사 하거나 교통사고로 죽거나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 그렇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상은 석가가 만들어 낸 사상이 아니라 나중에 불교의 교리에 추가 된것들입니다.
그리고 공자는 사후세계에 대하여 답이 없습니다. 제자가 와서 사후 세계에 대하여 묻자 공자가 대답하길 "내가 살아서 일도 모르는데 어찌 죽은 다음의 일을알겠느냐"면서 사후 세계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사후세계에 대하여 가장 확실하고 분명하게 말해주는 것이 기독교 입니다. 기독교는 사후에 지옥과 천국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활에 대하여서도 확실하 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느 종교에서도 이처럼 사후세계에 대하여 확실하게 말하는 종교는 없습니다.
여러분! 이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갈곳이 없는 사람들 입니다.
월남이 패망후에 대대적으로 숙청작업이 살인만행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거기 남아있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살기위하여 자유의 땅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로 몰려 들어왔는데 한가지 기억에 남는 뉴스의 장면은 비행기에 더이상 탈 자리가 없어 비행기 바퀴를 붙들고라도 월남을 탈출하고자 하다가 비행기가 떠자 공중에서 떨어져 죽는 그 안타까운 모습이 기억 납니다. 또 조그마한 동력선에 수십명 또는 수백명이 목숨을 걸고 탈출은 했지만 인근 국가에서 받아 주지를 않아 식량도 없이 심지어는 서로 잡아 먹으면서 바다에 떠도는 비참한 모습을 우리는 얼마전 까지도 보았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제일 불쌍한 사람이 바로 갈곳이 없는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더군다나 죽음이 임박하여 갈곳이 없는 사람은 더욱 불쌍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육신이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도 불쌍한 사람들인데 그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영혼이 돌아갈곳이 없는 사람이며, 돌아가도 반겨줄 사람없는 사람은 더욱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동네에 모여서 구슬치기를 하고 딱지치기를 하고 땅 따먹기를 합니다. 많이 딴 아이는 좋아서 어쩔줄을 몰라하고 잃은 아이는 시큰둥 해 있습니다. 딱지도 구슬도 다 잃어 버린아이는 아예 울고 앉아 있습니다. 많이 딴 아이에게 딴것 중에 조금만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그래도 다 딴 어린이는 욕심많게 하나도 주지를 않습니다.그리고 땅 따먹기를 하면서 한뼘이라도 더 차지할려고 아우성치며 싸움니다.
이윽고 해가 서산으로 뉘엇뉘엇 넘어갑니다. 땅거미가 깔리면서 점점 어두워 집니다. 놀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자기 집으로 돌아 갑니다. 어머니들이 나와서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데려 갑니다. 울던 아이들도 어머니의 부르는 소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얼굴이 환해지면서 어머니의 품으로 달려가서 안깁니다.
모두들 즐겁고 기쁘고 행복한 표정으로 집을 향해 돌아 갑니다. 그런데 딱지와 구슬을 다 따고 땅도 다 따먹은 아이는 날이 어두워 졌는데도 그 자리에 서있습니다. 그 아이의 얼굴에는 슬픈기색이 연연 합니다. 손에는 구슬과 딱지가 한아름 입니다만 그는 조금도 기쁨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무데도 갈곳이 없는 아이 였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집도 없었습니다. 누가 불러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낮에는 딱지를 많이 따 모으고 구슬을 다 따서 모아도 땅따먹기에서 모든 땅을 다 땄어도 해가 지자 그는 갈곳이 없는 비참한 아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세상에서 아무리 땅을 많이 가지려고 아우성을 치고 돈을 많이 벌려고 발버둥을 치며 바쁘고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그러나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옵니다. 인생의 밤이 찾아 옵니다. 죽음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그 때 갈곳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생의 황혼이 되어 주님 부르실 때에 다들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행복한 표정으로 주님의 품으로 가는데 아무도 불러 주는이 없어 캄캄한 곳에 갈곳없어 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보다 더 불 쌍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1993년의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물론 우리에게는 다음주가 있고 새해가 틀림없이 오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93년이라는 시간이 이제 거의 다 져가는 이 시점입니다. 주님이 금년을 결산해 보자고 한다면 우리는 부끄러움 없이 주님 앞에 설수가 있는가 해가 저물어 가는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헛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앗는가 영원의 재료로 바꾸라고 이런 저런 복을 주셨는데 우리는 지혜롭게 바꾸면서 살았는가
그래서 주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그나라 우리의 본향을 향하여 언제고 갈수 있는 가 해가 저므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자신을 살펴 보아야 하리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주님 내가 주의 일을 했습니다. 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노릇도 했습니다. 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권능도 행했습니다. 내가 주님을 압니다. 내가 주님의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 나는 너희를 모르노라 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오늘의 현대인을 가르쳐 "고향잃은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영영 고향을 잃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갈곳을 잃어 버린채 방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히브리 기자의 말처럼 돌아갈 고향을 생각하며 세상것에 집착하여 그것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돌아갈 본향를 생각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애들 놀이처럼 아 주 많은것을 모아 즐거워 하여도 해가져서 다들 자기 갈곳으로 가는데 갈곳없어 쓸쓸히 눈물짓는 사람이 되지 않는 저와 여러분, 그리고 93년도에 참으로 수고가 많았다 하면서 주님의 위로를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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