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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계산법 (요 06: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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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수를 믿고나면 참으로 많은 부분들이 변하게됩니다. 행동도 변하게되고 말도 변하게 되고 사는 방식도 변하며 삶의 방향도 바뀌게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의 사고를 하여야 합니다.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으면서도 우리의 생각이 옛날 방식으로 생각하고 옛날에 하던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면 예수안에서의 진정한 축복의 삶을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 신앙인들이 가져야할 사고의 한 단면을 배우게 됩니다.

특별히 인간이 행하는 계산법과 하나님이 행하시는 하늘의 계산법이 다르다는 사실을 믿고 그것에 따라 생각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사람의 계산법은 1+1=2라는 계산입니다. 그 계산은 철저한 수치의 산술이며,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정당한 계산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산법은 다릅니다. 씨 하나를 심으면 하나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30,60,100배 그 이상의 결실이 나옵니다. 어쩌면 그것을 자연의 법칙이라고 흘려버릴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게산법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본문에 보면 이 세상의 계산법에 철저히 젖어있는 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 사람은 빌립이라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요한복음에 여러번 기록이 되어 있는데 요1:44-‘와보라’고 말하므로서 아주 실제적이고 자신이 느끼고 경험한 것으로 나다나엘을 부릅니다.

요14:8-에보면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말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아주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모습을 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빌립의 그러한 사고를 잘 아시는 예수님이 그 빌립을 시험하시고자 묻습니다. 그때 그는 “가가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고 대답합니다. 그는 대단히 산술적이고 이 세상의 계산방법에 익숙해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의 능력이나 그 축복의 풍성함을 알지 못하는 불신앙적인 태도로 인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위에도 이러한 사고로서 계산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체로 이런 사람들은 정확하고, 합리적이며, 이성적입니다. 신앙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를 바라고, 세상적으로도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누리지 못하며 그 축복을 얻어 살지 못합니다.

 예)민11장에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이 만나만을 먹으면서 불평하고 원망하자 모세가 하나님께 하소연을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고기를 코에서 냄새가 나도록 수십일동안 먹이겠다고 말하자 모세의 말인즉 이 백성이 60만명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대답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믿어야 합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세상적인 계산에 빠져 신앙의 생활을 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어떠한 힘도 나타내지 못하며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한 축복의 삶으로 만들어 가지 못할 것입니다.

 예)왕하 7장-아람군에 의하여 이스라엘이 포위되어있을 때에 엘리사의 예언이 있자. “그 때에 한 장관 곧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엘리사가 가로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 못하리라.”(2절)

우리가 예수 믿고 정말로 은혜있고 축복된 생활로 날마다 나아가는 삶을 살려면 바로 이러한 인간적인 세상적 계산법인 사고를 버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하나님의 계산법 즉, 하늘의 계산법으로 사고하는 생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예)오래전에 예산편성을 하는 제직회석상에서의 사건.

-예수 믿고 구원받는 역사도 그렇습니다. 인간적인 계산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어 모든 인류가 그를 믿기만 하면 죄를 사함받고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받아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산법으로는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으로 인하여 그의 죽음이 우리의 죽음이 되며 그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계산으로는 안됩니다. 그러나 사람으로는 할 수없으되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있느니라고 하신 말씀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게산으로 우리의 생각을 바꾸면 그것이 믿어지고 의심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하고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시고도 남았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계산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뻥친다고 합니다. 꾸며낸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불트만 같은 신학자는 이런 이야기는 성경에서 빼버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늘의 계산법에 따라서 바라보면 그것은 조금도 이상한 것이 아니며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신앙에 도전을 주며 이러한 축복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누릴 수가 있음을 고백하며 신앙의 도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대구 서문교회의 건축시의 에피소드-

진정 우리의 사고를 바꾸는 것이 급 선무입니다.

세상적인 인간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에 붙잡혀 국민학교식 계산법에 멈추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계산법으로 우리의 사고를 바꾸어야 합니다.

 예)어떤 수에다가 0을 곱하면 그 수는 무조건 0입니다. 그러나 무슨수이든지 거기에다가 무한대를 곱하면 무한대가 나옵니다. 무한대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0은 믿음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세상의 지식이나 부귀영화가 있어도 믿음이 없으면 항상 0인 인생일 뿐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으면 나에게 있는 것이 지극히 작고 보잘것 없다 하여도 믿음이 있으면 얼마든지 무한한 축복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오병이어라는 보잘것 없는 작은 것이었지만 무한대의 예수님의 능력의 손에 들려졌을 때에 오천명을 먹이고도 남음이 있는 풍성한 축복의 기적을 경헌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계산법을 가지고 도전하여 우리의 생애가 날마다 더하는 축복의 역사를 맛보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이러한 믿음으로 인한 하나님의 계산법으로 어떤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할까요

1.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9절에 보면 그 보리떡 다섯덩이와 물고기 두마리는 한 아이의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아무런 욕심이 없이 그것을 예수님에게 드렸습니다. 자신이 먹어야 할 일용할 양식이었는데 그것을 바친 것입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은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역사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 분은 돌로도 떡을 만드실 수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분은 불쌍한 한 아이의 오병이어를 요구하셨고 그것을 시점으로하여 축복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의 풍성하신 축복의 역사를 경험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받으시고 그것을 기초로 하여 여러분에게 축복의 문을 열어 복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예)하늘의 비가 그냥 옵니까 땅에서 물이 증발되어 올라가야 그것이 비가되어 이 땅에 내려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것을 하나님께 정성으로 드릴 때에 하나님은 그것을 기반으로 복을 주십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수증기는 보이지 않지만 이 땅에 쏟아지는 소낙비는 큽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보잘 것 없지만 하니님의 축복의 소낙비는 엄청난 것입니다.

 2.감사하여야 합니다.

11절에 보면 예수님은 그 떡을 가지시고 축사하시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였다는 것입니다.

보잘것 없는 보리떡이지만 물고기 두마리이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가지시고 하나님께 감사하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께 감사할 때에 하나님의 더욱 크신 축복의 역사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스펄젼목사-춧불을 보고 감사하라 하나님은 별빛을 주신다. 별빛을 보고 감사하라 그러면 달빛을 주신다. 달빛은 햋빛. 햋빛은 영원한 천국의 빛.

 여러분의 가정이 복 받을 가정인가 아니가는 이것으로 알아볼 수가 있다. 서로서로 감사하는 가정인가. 아니면 매사에 불만과 원망과 불평이 있는가

3.서로 서로 나누어야 합니다.

11절에 보면 나눠주십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제자들이 나누어 줍니다.

제자들이 음식을 쌓아놓고 나눠준것이 아니지요 작은 덩어리를 들고 나누어 주니 그것이 한 없이 나누어 주어도 줄지않고 그저 풍성하게 모든 자들이 먹고도 남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과 은혜를 나눌 때에 그 은혜와 축복이 더욱 풍성해 집니다.

예)슬픔은 나눌 수록 작아지고 기쁨은 나눌 수록 커진다.

 예)복음성가-‘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버리는 것, 이상하다 동전 한잎 움켜 잡으면 없어지고 쓰고 빌려주면 풍성해져 땅위에 가득하네-‘

하나님께 받은 은혜도 서로 서로 간증하고 나눌 때에 더욱 감사하게 되고 내 마음에 그 은혜가 오래동안 새겨져서 기쁨이 됩니다. 그러나 가만히 마음에 혼자 두고 있으면 그 은혜가 금방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지금 나에게 있는 것은 나누어야 합니다. 나보다 못한 이웃을 살피며 도와주고 같이 나누어 사는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눅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사고를 하늘나라의 사고로 바꿉시다. 이 세상의 셈법으로 살지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의 하늘나라 셈법으로 인생을 살아 더욱 놀라운 축복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사업도 하나님의 셈법으로 하시고, 가정일도 교회일도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셈법을 따라 행동하므로서 우리 안양서부교회 모든 성도들은 날마다의 삶에 오병이어의 축복같은 축복을 풍성히 받으며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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