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예수의 갈릴리 설교(1) (막 01:14-15)

첨부 1


I. 본문확정(원문비평)

이 짧은 토막에서 다룰만한 원문비평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제 14절의 [유앙겔리온]을 지지하는 사본들과 [유앙겔리온 데스바실레이아]를 지지하는 사본들로 갈라진다.

II. 석 의

< 14절 > 주후 70년까지의 기독교회는 많은 환난 중에서도 예수를 믿으며 힘차게 성 장하였다. 그러나 지도자 베드로도 죽고 바울도 사라진 마당에, 그리고 유다전쟁(Jewish War)으로 인해서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인식이 더욱 나빠진 상황에 처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구 전이나 단편적 기록만으로는 그들의 신앙생활을 지탱하기가 어려웠을 것이 다. 여기에 마가복음 저자의 공이 큰 것이다. 그는 이러한 위기에 자기 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예수를 나름대로 해석하고 설명하 여 계통 있게 하나의 연결된 이야기를 꾸민 것이다. 그가 대상으로 한 사 람들은 주로 그 당시의 민중에 해당하는 농촌사람들로서 소외되고 가난한 신도들인 것 같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기 위해서 예수의 능 력 있는 그리고 마침내 승리하신 삶을 극적으로 그리고 간단 간단히 묘사 해 나갔다.

오늘의 본문은 유세비우스(Eusebius, Nestle-Aland 27판 Pp.85-89)의 구분 에 의하면 여덟 째와 아홉 째 토막에 속한다. 그리고 알란트(Aland, Synopsis of the Four Gospels)의 구분에 의하면 여섯째와 일곱째 토막에 해당한다.

예수가 세례를 받은 사건은 그의 메시아 취임식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다른 차원에서는 사탄과 그의 악마적 세력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사탄은 신경질적으로 예수를 유혹하여 넘어뜨리려는 공작을 노골적 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수는 홀로가 아니었고 천사들의 시중을 받 으며 당당히 메시아로서의 과업을 수행해나가신다(막1:9-13). 예수가 갈 릴리로 돌아가시기 전에 이미 예수에게는 제자들이 생겼고(베드로, 안드레, 빌립, 나다나엘) 요한의 회개 운동에 가담하여, 아니 요한 혼자서는 감당 할 수 없는 일, 즉 계속 몰려드는 군중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푸는 일을 요 단강 다른 장소에서 거들고 있었던 것 같다(요 3:22-30).

세례 요한의 출현과 그의 선지자적 선포와 선언들은 그 당시 집권층의 간 담을 서늘하게 할만한 것이었고, 유대인들에게 새 시대가 도래한 것이 아 닌가 하는 희망적 판단도 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그를 추종하는 세력이 형성되고 무시 못할 하나의 운동으로 발전되고 있었다. 반면에 요한의 책망과 비판의 대상이었던 종교지도자층과 로마정부의 앞잡 이로 치부와 영화를 누리던 사람들, 그리고 치안 책임을 맡고 있던 군정당 국자들과 로마의 하수인이었던 헤롯 안티파스 등은 요한 운동을 위험시 할 수 밖에 없었다.

사회의 모든 부정과 부패를 개탄하며 통박하는 세례 요한에게는 지위와 신 분의 고하가 문제되지 않았다. 이복 동생 빌립의 아내를 빼앗아 자기 아 내로 삼은 헤롯 안티파스의 만행과 불륜을 요한이 어찌 방치했겠는가! 대 중 앞에서 요한은 서슴지 않고 안티파스를 비난하고 책망했을 것이다. 아 마도 그런 일로 인해서 요한은 안티파스에게 불려갔을 것이고 그 권력자 앞에서도 당당히 면전에서 그를 책망했을 것이다. 그 일로 인해서 요한은 마침내 체포되어 안티파스의 영토인 요단강 동쪽 베레아 Peraea 에 있는 마케루스 Machaerus 감옥에 감금되기에 이르렀다. 요한이 체포되고 감금 된 사건은 요한 운동에 찬물을 끼얹음과 같았을 것이고 그 운동에 가담했 던 사람들이 자연히 흩어졌을 것은 틀림 없다.

그러나 요한 운동은 결코 우연한 것이거나 단독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요한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예언자로서, 그리고 '주의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 로서,구속사의 엄연한 한 부분을 제 때에 수행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왕 국 건설'이라는 하나님의 숙원의 사업을 위하여 태어났고 그 일을 본격적 으로 직접 이루실 예수의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비록 요한은 체포되고 감금되어 더 이상 활동을 할 수 없었지만 선구자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성취했으며, 예수는 순조로이 메시아로서의 본무에 착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는 요한이 감금되는 사건을 계기로 해서 이제 그의 선구자가 없는 국 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요한이 활동하던 시대를 제 1 국면이라고 한다 면 이제 요한이 갇힌 후에는 제 2의 국면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예수 는 그의 활동 무대를 우선은 갈릴리로 잡았다. 그가 30년이나 살면서 경 험한 가난, 병, 소외됨, 압박,착취, 탄압 등으로 극도로 비인간화된 갈릴 리 지방과 그러한 갈릴리적 상황을 그의 활동 무대로 우선 정한 것이다. 역사적 예수가 갈릴리에서만 활약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요한복음을 통 해서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예수는 갈릴리적인 처참한 인간들의 친구로 서 활동하신 것이 사실이다.

세례 요한이 헤롯 안티파스에 의해서 체포되고 감금되었지만 예수는 오히 려 그헤롯의 영토인 갈릴리로 들어가셨다. 악과 부정을 피하여 달아나신 것이 아니라 그 소굴로 들어가셨고, 그 악의 희생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 려고 갈릴리를 택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갈릴리에 오셨다는 표현은 여 러 가지 역사적 문제를 안고 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는 제자들을 거느리시고 먼저 가나라는 마을에 가셨던 것으로 되어 있다. 그 후에 제 자들은 정식으로 부름을 받기까지(막1:16-20) 각각 자기들의 가정과 일터 로 돌아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베드로와 안드레를 통해서 예수에 대한 소 문은 그들의 고향 동네에서 이미 자자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다. 갈릴리로 오신 예수가 하신 일을 요약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고 전하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토 유앙겔리온 투 테우)가 무엇일까 인간은 누구나 세상에서 만족한 생 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예수 시대 팔레스틴의 유대인들, 그 중에도 갈릴리 사람들은 하로도 평안할 날이 없이 고통 속에서 살고 있었다. 오 매불망 기다리는 것은 무언가 좋은 소식이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때때로 들려오는 좋다는 소식은 물거품과 같은 것이었고 번번이 속기만 한 것이다. 사람들이 전해주는 기쁜 소식이란 결코 믿을만한 것이 못되었다. 그런데 예수는 그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믿을 만하고 알맹이가 있 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다. 가는 곳마다 예수가 전한 것은 복된 소 식이었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소식이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이 15절에 요 약되어 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