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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경 바디메오의 믿음 (막 10: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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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인간은 누구나 종교적 신앙을 같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심리학자 뉴턴 멜론은 인간이 신앙을 필요로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생존을 위한 것입니다. 생존을 위해서 먹고 입고 운동하는 것처럼 인간은 믿음 없이는 생존할 수가 없읍니다. 죄와 죽음의 문제 영적인 갈급함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삶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마음놓고 부모님을 의지할 때 생존할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품속에서만이 생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만족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옷을 입고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봐도우리 인간은 만족하지 못합니다. 1억원을 벌면 10억원을 갖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믿음과 삶의 철학을 가지고 스스로 영적인 만족을 갖기 전에는 이세상의 무엇으로도 만족을 얻지 못하고 비극으로 끝나는 인생임을 볼 수가 있읍니다.

3.안전을 위한 것입니다. 인간은 죽음과 질병등 하룻밤 사이에도 어떤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기속에 놓여잇읍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고서는 참 안전을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4.자기 발견에 대한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 삶의 목적과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문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과 기도와 말씀과 은혜를 통해 깨달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신앙을 정의하기를 "신앙이란,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이다"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이나, 예배하는 시간 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실적인 가정 생활, 사회 생활 등 복잡한 현실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하나님과 나와의 바른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라 표현했습니다. 그는 다시 이것을 상징적으로 비유(비사)를 써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의 그릇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그릇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릇이란 우선 비어 있어야지 가득 채워있는 그릇은 쓸모가 없습니다. 다시 무엇을 담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릇 구실을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깨끗하고 빈 그릇이어야 합니다. 독약이 묻었든지 오물이 묻었어도 다시 무엇을 담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깨끗하게 씻겨져야하는 마음이 믿음입니다. 또한 큰 그릇이어야 합니다. 너무 작은 종지잔은 좀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큰 그릇, 큰 믿음을 필요로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15:28에서 가나안 여인에게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크다는 말은 헬라 원문으로 '메가스피스치스'라고 합니다. 메가스는 아주 크다는 뜻으로 적어도 메가톤급의 큰 그릇이 필요합니다. 그릇이 커야만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믿음이란 또 다른 언어로 묘사하여 본다면 ‘라디오나 텔리비젼의 수상기 혹은 수신기의 채널’과 같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테레비젼, 라디오 등은 송신기가 아니고 수신기입니다. 받아들이는 기계이며 여기에는 채널이 여러개가 있습니다. 이 우주에는 여러 가지 전파가 오고가고 있지만 수신기가 없으면 아무 것도 들을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 흘러 나오고 있어도 수신기의 스위치가 꺼져있으면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습니다. 수신기가 있고 또 그것이 제 구실을 해야만 좋은 음악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물론 채널도 맞아야지 이것이 빗나가면 소용이 없습니다. 고장이 나 있으면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신기 채널 이것이 바로 신앙이라고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주님의 마음에 맞는 것 이라야 합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솔로몬 왕이 21살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그러고 보니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일은 중첩되고 답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밤새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게 구하라.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까" 솔로몬은 준비된 대답을 했습니다. "주여, 내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옵소서." 이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오래 살게 해달라고 장수를 구할수도 있고, 부귀를 구할 수도 있고, 원수의 성(성)을 구할 수도 있고, 안정을 구할 수도 있고,이렇게 구할 것이 많은데, 왜 하필이면 지혜를 구하느냐"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은지라." 정말 하나님의 마음에 꼭 알맞는 기도,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시고자 하는데 채널이 맞지 않고 그릇이 틀렸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주시겠습니까 주시고자 하는 분과 받고자 하는자의 사이에 마음이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바디매오라고 하는 눈먼 소경이 예수님 앞에 나아와 자기의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말로만 고백한 것이 아니고 그의 행동 자체가 하나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이 때에 주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라는 말은 얼마나 좋은 얘기입니까 아주 꼭 맞았다는 것입니다. 소경 바디매오의 훌륭한 믿음은 예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병 고치실 때 가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믿음 대로 되리라, 네 소원 대로 되리라." 어느 순간, 어느 믿음 즉 어떤 과정에 도달했을 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내용입니다.
바른 믿음, 바른 관계 이것이 우리가 찾아야 할 과제라고 생각 합니다.
오늘 이 시간 본문에 나타난 소경 바디매오의 믿음이란 어떤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1.소경 바디매오의 믿음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믿음입니다.
47절에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를 질렀다"고 했는데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 사람은 기회를 잘 포착한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자세히 보면 46절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라고 했습니다. 여리고 성을 들어오시는 것이 아니라 성 밖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나가시는데 그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소란한 소리 중에 예수님이 나가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때에 소리를 질렀는데 이 기회야말로 일생에 단 한 번 있는 귀한 기회였습니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기회를 놓칠 때가 많으며 뒤로 미루기도 합니다. 오늘 기도할 것을 내일로 미루고, 오늘 해야 할 선한 일을 다음에 하자고 미루다가 기회를 놓치고 있습니다. 기회를 놓치는 것은 대단히 불행한 일입니다.
일본의 아우키 시게루라는 사람은 제 2차 세계대전중 폭탄 파편에 맞아 두눈을 잃고 소경이 되었읍니다. 그가 절망 가운데 지날 때에 우연히 복음를 듣고 예수를 믿기 시작 했읍니다. 두 눈을 다 빼앗긴 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무 소망이 없던 사람이 그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소망 가운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얼마후에 그는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되어야하겠다고 결심을 했읍니다. 그러나 영문 점자성경을 구할 수가 없었읍니다. 가까운 친구와 의논을 하다가 헬렌 켈러가 영문 점자 성경을 가지고 있을 것이니 편지를 띄우면 어떻겠느냐고 말했읍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헬렌 켈러는 하루에도 수백통의 편지를 받는 사람인데 당신의 편지에 무슨 회답이 있겠느냐."고 포기하라고 했읍니다. 그래도 그는 헬렌 켈러가 자기의 소원을 이루어줄 것이라고 믿고서 편지를 썼읍니다. 얼마후에 헤렌켈러가 그 편지를 받아 보고서 한달만에 30 권의 영문 점자 성경을 그에게 보냈읍니다. 마침내 그는 그 책을 읽으면서 휼륭한 목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리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려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 7:7)


2.소경 바디매오의 믿음은 최선을 다하는 믿음입니다.
소경으로 보지는 못했으나 들을 수는 있었습니다.
그는 들을 수 있는 그것을 최대한으로 활용했습니다.
우리는 없는 것만 생각하여 불평하는 일이 많습니다.
바디매오는 장님이므로 돈도 없고, 지식도 없고, 명예도 없고, 친구도 없고, 가정도 없습니다.
그러나 귀가 있고, 입이 있었습니다.
들을 수도 있고, 말할 수 있는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주님 앞에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있는 그대로를 가지고 나오는 것을 기뻐 하십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많은 것을 가지고도 불평을 말 합니다. 그리고 많은 이유와 조건을 내 겁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없는 것을 탓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가지고 최선을 다합니다.
이것이 소경 바디매오의 믿음 이었습니다.

3.소경 바디매오의 믿음은 난관을 극복하는 믿음입니다.
그가 주님 앞에 나아오는 데는 방해가 많았습니다.
군중들이 꾸짖었습니다. 군중들은 예수님이 눈먼 소경을 고쳤고, 문둥병도 깨끗이 낫게 하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거지 한 사람이 주님께 간청할 때 좀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인간애가 전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예수님에 대한 이해의 부족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군중들은 메시야요, 그리스도요, 유대의 왕이 되실 분이 행차하시는데 거지가 왜 이렇게 시끄럽게 하느냐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날도 이러한 방해군 들은 교회 밖이나 교회 안에서도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을 잘 섬기고 은혜 가운데 살려고 하는 사람들을 방해하는 도전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율법주의자들, 혹은 형식주의자들, 그리고 많은 사이비 이단들 이 바로 그런 방해꾼들 입니다. 아울러서 성경을 왜곡되게 이해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방해자들 입니다.
아마도 소경 바디매오는 군중들과 제자들의 방해로 인하여 스스로 실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행차 하시는데 나 같은 것이 방해를 해서 되겠 느냐고 자포자기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모든 것을 물리치고 오히려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바디매오는 잠잠하라고 꾸중했을 때 더 큰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적극적인 믿음입니다.
여러분의 믿음도 이래야 합니다.
조그마한 핍박이 있다고 넘어지고 낙심하는 믿음은 안됩니다.
핍박이 있을수록 더 크게 소리지르고 열심히 나갈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4.소경 바디매오의 믿음은 적극적인 결단의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소경 바디매오가 그렇게 열심히 부르짖는 장면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저를 부르라’고 명령 하셨습니다. 주께서 너를 부르신다는 한 마디에 그는 본문 막10:50에 겉옷을 버려두고 뛰어나왔다고 했습니다. 주께서 부르신다는 한 마디에 겉옷을 팽개치고 뛰어나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그대로 달음질쳤던 것입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도 바디매오처럼 좀더 적극적 이어야 합니다.
좀더 적극적으로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는 곳으로 달려 가야 합니다.
옛 생활을 깨끗이 청산하고 주저없이 달려가야 합니다.
바디메오는 만일에 눈을뜨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을 그는 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에는 만약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이 소경 바디매오는 겉옷을 던질 때는 뒤에 일을 생각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디모데 전후서를 통해서 디모데에게 믿음을 위한 권면한 세가지 V가 있습니다.
그것은 ①박력(Vitality) ②모험심 (Venture) ③꿈 (Vision) 때로는 우리에게도 이러한 믿음이 필요 할 때가 있습니다.

5.소경 바디매오의 믿음은 새 삶의 확신이 있는 믿음입니다.
이제 에수님께서 그를 불러 그에게 물으십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네, 보기를 원하나이다."
이 사람은 평생 얻어 먹은 사람입니다.
그래서"돈 한푼 주세요"라는 말에 익숙해졌고 그것이 습관이 되었고 이 말이 체질화된 사람입니다. "돈 한푼 주세요, 적선하세요." 이 한마디로 언어생활이 끝난 사람입니다.
이것 밖에는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생 처음 주님 앞에서 다른 말을 하게 됩니다.
"보기를 원하나이다,"
여러분, 이 대답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떠한 기도를 해야 합니까
"하나님! 좀 진실하게 살게 해 주세요." 이래야 합니다.
"하나님, 며칠을 살아도 부끄럽지 않게 살기를 원합니다"라고 할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중요한 신앙고백이 있게 됩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비상한 믿음을 가진 자의 고백입니다.
예수님만은 나를 보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이 그에게 있었습니다.다
다른 사람에게 이런 소원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평생 얻어먹는 것이 생활화된 타성적 삶을 살아 왔는데 이제 이 타성에서 벗어나서 전혀 새로운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차원의 소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여 보기를 원 하나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얼마나 중요한 말씀입니까
이제 그는 눈을 뜨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을 한 번 살펴 보십시다.
무엇을 믿으며, 어떻게 믿었습니까 이대로 괜찮겠습니까
좀더 진실한 믿음, 좀더 적극적인 믿음, 좀더 결단이 있는 믿음, 그리고 행동적인 믿음, 거룩한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볼 때 부정적인 요소 가운데 첫째가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한 답니다.
이 소경 바디매오의 신앙을 다시 생각 해 보십시다. 그의 신앙고백은 단순한 말에 있지 아니합니다.
그 결과 그는 주님의 관심을 끌어 냈고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주님의 관심을 끌어 낼 만한 믿음과 문제 해결을 받고 승리로운 인생을 살아 갑시다.
하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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