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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는 (마 09: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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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했다.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은 그리하지 않았다. 그때 금식하는 이들은 물었다. 이들이 왜 하지 안흔 각, 예수께서는 금식이나 기타 신앙적인 행위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 지 않을 것을 가르치셨다. 그 보다는 더 중요한 신앙의 원리에 따라서 행위들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왜 우리는 새벽기도 안하는가 왜 우리는 철야도 안하는가 왜 우리는 이것 안하고 저것 안하는가" 나는 차라리 사라 들이 이렇게 물었으면 좋겠다. "왜 우리는 예수를 그렇게 모르는가 애 신랑을 모시고 살면서 초상집처럼 사는가 왜 예수를 믿는다고 하 면서도 사랑도 없고 아직도 못된 성질이 변하지 않았는가"

예수는 분명히 말씀하신다. "신랑과 함께 있는 이들은 슬퍼하지 않는 다. 신랑과 함께 있는 이들은 언제나 잔치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신랑을 빼앗긴다. 그는 금식하면서 울어야 한다."우리가 신랑을 모셨 기에 기쁜가아니면 금식하고 철야하기에 기쁜가 왜 신링이 없는 사 람처럼 확신이 없는가. 신랑은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

그리고 계속하신다. "생베 조각과 헌 옷과 붙이지 않고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넣지 않는다."무슨 말인가 율법과 복음의 의미인가 아 니다. 세상의 형식은 그때 그때 필요에 의해서 만든 것이다. 어떤 사 람들의 생활양식이나 예배 양식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강요할 수 없다 는 말이다. 한 사람에게 특효약도 다른 사람에게는 아닐 수 있다.

어떤 교회에서는 사도신경을 가톨릭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가하 면 다른 교회에서는 사도신경을 하지 않으면 이단이라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예배 형식도 한국에서는 모두 거의 같다. 그러나 형식이 이단 과 정통을 구분하지 않는다. 형식은 사람들에 따라서 믿음을 가장 잘 이해하고 소유하도록 돕는 외적인 수단으로서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정도이상으로 기성 관십에 관심을 쏟지 않아야한다. 바리새인들도, 회교도들도 예배나 신앙의 형식은 생 명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이 가리키는 그리 스도에 관심을 가진다.그리고 그리스도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예배나 신앙의 형식을 가지는 것이다. 신랑은 그 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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