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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면 모든자보다 온유한 모세 (민 1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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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위험한 시대라고들 일컫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여러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환경오염으로 인하여 생태 계가 파괴되어 지구온도가 상승하고 있으며, 대기권의 오존층이 파괴되어 태양이 강하게 비추이므로 피부암들이 발생하고 있으며, 모든 자연 질서의 균형이 깨어져 여러가지로 예측할 수 없는 기상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며, 가공할 무기의 대량생산과 생산한 무기를 지구촌에 대치시켜 인류는 그 무 기 앞에 떨고 있으며, 밤거리를 함부로다닐 수 없는 두려움과 대낮에도 로 상에서 빚어지는 인신매매범들의 버젓한 활동과 정권의 타락으로 인한 국 민의 불신과 학생들의 극렬시위로 난무하는 화염병과 최류탄의 난발로 인 하여 생존권이 위협을 받고 있는 이유만이 이 시대의 위험요소라고는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구조적인 모순이나 논리 또는 자연파괴만이 이 시대의 위험요소가 아니라 그 위험요소를 만들어 내고 있는 사람들로 인하여 위험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위험한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위험한 것입니다. 짐승이나 미물들이 이 시대를 어지럽히고 있거나 지구를 혼란의 도가니 속에 집어넣 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 곧 하나님을 불순종한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 방식대로만 쳇바퀴를 돌리고 있기 때문에 이 시대가 어지럽고 이 시대가 한없이 위험해져 가고 있는 것입니 다.

그런데 사람 때문에 이 시대가 위험하다고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문명 의 꽃을 피우게 한 기술력과 그 문명이란 기계를 가지고 있는 인간 때문에 무섭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제일 무섭습니다. 학생 들을 위한 레크레이션에는 <사람-총-호랑이>라는 게임이 있는데 사람은 총 을 만들었으니까 총을 이기고 총은 호랑이를 쏠 수 있으니까 호랑이를 이 기고 호랑이는 사람을 잡아 먹을 수 있으니까 사람을 이길 수 있다는 재미 있는 놀이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이러니칼하게도 사람은 총을 이용 하여 호랑이도 이길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해주는 연상을 얻게 됩니다.

밤길을 다녀도 사람이 무섭고 여행을 다녀도 사람이 무섭고 대문 밖에만 나가도 사람이 무섭습니다. 밤길에 호랑이가 무섭다는 이야기는 정말 호랑 이 담배피는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왜 사람이 무서운 것일까요 바닷물 보 다 더 싼 가격으로 판매되는 간장을 화공 약품으로 만든 업주의 그 인간성 이 무서운 것입니다. 즉 욕심에 욕심을 잉태케 하는 인간 그 마음이 무서 운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문명은 엄청나게 발전했는데도 인간의 마음은 하 나도 발전된 모습이 나타나지 아니했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마음은 더욱 포악해졌고 포악해진 인간의 마음은 온순한 마음으로 길들여질 수 없는 상 태로서 포악해진 자는 더욱 포악해질 뿐이요 잔혹한 자는 더욱 잔혹해지는 쪽으로 발전해왔을 뿐입니다.이러한 역사의 엄연한 현실 앞에 우리는 변명 할 다른 말이 없음을 고백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포악한 짐승은 사람에 의해 유순하게 길들여져 애완동물이 되어 사람의 침상에까지 침범해 들어왔지만 인간만큼은 교육을 시켜도 그 교육이 유순 한인간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다만 문명의 꽃을 피우기 위해 마음들이 모두 병들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언어에서 포악한 마음이 반영되고 행동에서 잔혹함이 노출되고 문명의 이기 속에서 칼날보다 예리한 인간의 병든 마음이 표출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양심이 없어진 인간의 육체, 그것은 고기덩어리요 흙덩어리일 뿐입니다. 아니 차라리 무서운 무기나 흉 기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노아시대의 홍수 심판을 보십시요. 하나님의 신이 사람에게서 영원히 떠나자 그들은(사람) 육체만 남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무런 쓸모도 없는 고기덩어리에 불과해 하나님은 그 육체들을 물로 쓸어버릴 것을 계획하시고 홍수로서 심판해 버린 것입니 다.(창6:3) 이 인간의 무서운마음, 강퍅한 마음이 얼마나 인간에게 무서운 피해를 주는가는 애굽왕이었던 바로 한사람만으로도 이해시키기에 충분합 니다. 강퍅한 마음을 가진 바로왕 한사람 때문에 얼마나 많은 선민 이스라 엘 백성이 고통을 당하였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재앙들이 나타났으며 얼마나 많은 장자와 첫 생명들이 죽어갔습니까 그러나 겸손과 온유의 마 음을 가지신(마11:28-29) 예수 그리스도 한사람 때문에 이 땅의 얼마나 많 은 영혼들이 위로받고 살고있는 줄 아십니까 이 시간 저는 인간 마음의 한 상태인 온유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주님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기 원하 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본론>

우리는 모세라는 인물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출생과 성 장, 하나님의 부르심을통해 그가 민족의 지도자가 되기까지 더 나아가서는 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나안이 훤히 눈에 바라 보이는 지점에서 애처러운 상태로 죽었던 마지막도 알고 있으며 심지어 그가 죽었을 때 공 중권세 잡은 마귀와 하늘의 천사들이 영혼을 차지하기 위하여 쟁탈전이 벌 어졌던 사실도 유다서의 기록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 매우 준수한 아이였습니다. 그는 동족을 사랑했습니다.

그리하여 자기동족을 학대하던 애굽인을 쳐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까닭 에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망명을 해야했으며 광야의 40년 생활을 장인 이 드로와 함께 양을 치며 보내야 했습니다. 그는 달변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민족의 지도자로 삼으셨으며 그를 통해 놀라운 하나님의 능 력을 발휘하게 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어느 날, 그는 호렙 산 가시덤불 불타는 숲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의 길을 선택하였고 그의 정하신 섭리를 따르기로 결정 하였습니다. 그의 앞길은 결코 영웅적인 대접을 받는 길도 아니었으며 명성을 얻거나 부귀영 화를 누리는 선택의 길을 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 수중에 있는 지팡이 하나만을 들고 오로지 자기를 명하신 하나님 만을 의지하고 나아갔 습니다.

그런데 그는 일생을 살아가면서 실수도 많이 저질렀고 흠과 티도 많았으 며 혈기를 내기도 하는가 하면 율법적으로 허물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를 하나님이 들어 쓰셨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했을까요. 누 구라도 사랑의 화살에 맞으면 상대방의 허물과 단점이 보이지 않고 장점만 보여서 그와 함께 하기를 원하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의 포로가 되 어 그는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원했으며 역시 하나님께서는 그의 허물을 보시지 않고 사랑의 눈에 비춰진 모세의 장점이 마음에 들어 그를 사용하 신 것입니다.

우리를 이러한 은혜 가운데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타나는 능력의 한 부분들인 것입니다. 하나님 은 이와같이 모세의 온유한 성품이 마음에 들어 그를 능력의 도구로 사용 하셨습니다. 베드로의 경우는 실망도 안겨준 인물이지만 실망을 극복하려 는 열심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들어썼으며 바울은 자기맡은 일에 최선을 다 하며 열심을 냈기 때문이며 예레미야는 안타까운 일을 보면 마치 자기일인 냥 눈물흘리는 애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며 아브라함은 그의 믿음을 인 정받았기때문입니다. 다윗의 경우는 그가 겸손했기 때문이며 이사야는 그 의 입술은 부정한 자였지만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만들어 내는 마 음이 있었기 때문이며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얻고자 하는 마음 이 있었으며 야곱은 불타는 야망을 가졌기 때문이며 요셉은 불의와 타협치 않는 그리고 낙심치않는 강직함이 하나님의 마음에 든 것입니다.

그렇다고 보면 하나님은 모세를 들어 쓰실 때 애굽의 학문과 무술을 보고 그를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순종심과 온유한 마음으로 인하여 쓰임받 게 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백세가 넘은 모세가 저주받은 함족의 혈통인 구스(에디오피아)여인을 자기 아내로 취하자 그누이 미리암 과 그의 형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요세브 사기의 기 록에 의하면 에디오피아 사람은 기골이 장대하고 얼굴이 매우 아름다웠다 고 전하여 지는데 모세가 어떤 연유에서 구스여인을 취하였는지는 자세히 알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폭로시킨 까닭에 장자였지만 저주 를 받아 흑인으로 태어난 함의 후예인 구스여인을 모세가 취하였다는 사실 은 민족 지도자로서, 선민으로서, 하나님의 종된 자로서 위치와 입장을 헤아려 볼 때에 도무지 용인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는 항변을 누이와 형 이 모세에게 노골적으로 표시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백세도 넘는 그 나이에 그것도 이방여인을 그 가운데서도 저 주받은 피부색 조차 검은 여인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 다는 것입니다. 이 비방은 본문의 기록을 중심하여 볼 때 미리암의 이름이 먼저 등장한 것과 문둥병이 미리암에게만 임한 것을 보면 미리암이 먼저 비방한 것같습니다.그도 그럴 것이 같은 여자로서 시샘과 질투는 훨씬 남 자보다 크기 때문이며 그러한 자극에는 훨씬 민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를 비방한 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모세의 지도력을 인정하 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 지도력도 어떤 지위와 신분에 국한되는 지도력 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지도력을 따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도 본문 2절의 내용이 이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하 고만 이야기하였느냐 우리하고도 이야기 하셨느니라"는 내용을 통해서 보 면 아론과 미리암도 모세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그들을 가나안으로 영 도할 수 있다는 자부심과 대단한 긍지를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때에 하나님께서 세 사람을 회막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름기둥 가운 데로 강림하시며 회막 문에 서셔서 충성스런 모세에 대하여 비방하지 말라 는 것이었습니다. 이로인해 즉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미리암은 문둥병 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제사장으로서 문둥병의 판별자가 되어야 할 아론은 문둥병이 걸려야 할 일을 저지렀던 안타까움을 보게 됩니다. 그 당시 사회제도적 인면에서 보 면 모세는 비방받을 일을 한 것은 아닙니다. 특히 흑인 노예여자를 아내로 취한것은 더욱 그러합니다. 그때의 사회는 일부다처주의 사회였으며 노예 여자를 소실로 맞아들인다는 것은 얼마든지 흔하게 볼 수 있는 일들이었습 니다. 그러기에 하등에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민족 지도자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해 나가는 책 임을 진 거룩한 하나님의 종이요, 백세의 나이가 된 노인으로서 아내를 맞 아들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지론이었습니다. 특별히 미리암의 생애를 통하여 모세를 조명해 본다면 남동생인 모세 자신을 위해 생명내건 모험을 걸었던 미리암입니다. 더 쉽게 이야기한다면 모세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뒤 바꾸어 놓은 인물이 바로 미리암인것입니다. 핏덩어리 모세를 역청을 칠한 갈대 상자에 넣어 애굽인의 눈길을 피해 나일강에 띄운 여인이요, 행여나 그 어린 생명이 죽을세라 끝까지 갈대 숲을 따라 살핀 여인이요, 바로의 딸에게 모세가 발견되자 재빨리 달려가 유모를 필요로 하느냐고 묻고 대답 이 나오기가 무섭게 친어머니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고하고 어머니를 유모 로서 데려다 줌으로 모세는 진짜 어머니의 품에서 기적같이 성장하여 애굽 궁중에서도 히브리 교육을 어머니에게서 배우고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길 을 터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이러한 여인이 동생 모세를 나무라듯이 비 방한다는 것은 능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판단되지만 하나님은 이 일에 대 하여 추호도 용납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모세가 비록 실수와 잘못을 통해 그의 성직과 영적권위를 비방받을수 있는 상태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알 아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이러한 비 방을 받고도 모세는 구차한 변명을 하거나 자기 신분에 대한 권위로 자기 를 합리화하거나 오히려 아론과 누나 미리암의 잘못한 과거의 일을 끄집어 내어 비방하는 공격을 하지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세의 온 유한 성품이었던 것입니다.

온유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바나>라고 하는데 그 뜻은 "마음을 굽힌 다." "뜻을 굽힌다." "굴복한다, 절한다, 구부린다, 낮아진다, 마음으로 허리를굽히다."라는 깊고 다양한 뜻을 가진 고유명사입니다. 이 말은 겸손 ,유순, 경건함이란 낱말들과 거의 같은 뜻을 지닌 낱말이지만 이 말이 쓰 이는 상황은 독특하게 한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낱말은 성경 에 불과 몇번 밖에 기록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먼저 이 온유라는 낱말이 성경에는 어떤 분들에게 씌어지고 있는 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경에는 사실상 어느 누구에게도 이 온유라는 낱말이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겸손이란 낱말과 유순함이란 낱말은 그리 고 경건함이란 낱말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에게 씌어지고 있지만 온유라 는 낱말 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씌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낱말은 오 직 삼위일체 하나님에게만 씌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경건한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겸손한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없으며 경건한 사람이라는 표현은 하 고 있지만 경건한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온유하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나타나고 있음을 시편이나 사무엘하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시편 18:35에서는 "주께서 또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 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나를 크게 하셨나이다."라고 여호와의 구원 을 찬양할 때에 시편기자가 기록하고 있습니다.(사무엘하 22:36 참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 11:28에 서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는 기록의 내용입니 다.

또 한번의 기록은 성령의 역사에 대한 내용으로서 갈라디아서 5:22에 나 타납니다."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는 말씀 입니다. 여기에서 성령님은 온유하신 성품을 가지고 계시므로 성령의 충만 함을 받은 자들은 온유한 성품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성품으로서는 온유한 성품이 나올 수 없으므로 성령의 도우심을 받 아 우리는 온유한 자가 될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한 성품을 배워 서 우리도 온유해질 수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온유라는 낱말이 성경에서 함부로 쓰이지 않고 매우 국한된 상태 에서 그리고 특별한 경우에만 기록되고 있으나 모세는 이러한 온유를 가지 고 있었던 인물입니다. 그러기에 여호와 하나님은 잘못을 저지른 모세를 비방하는 아론과 미리암을 오히려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많은 비 방을 할 수 있는데도 아론과 미리암을 향해 불평하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은 바로 모세의 온유한 성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온유는 강하면서도 스스로 약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자기 스스로에게 놀라운 힘과 능력이 있으면서 도 그렇치 않은 자처럼 허리를 굽히는 자세 바로 그것이 온유입니다. 그렇 습니다. 겨우내 얼어붙은 굳은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그것이 온유의 아 름다운 능력의 비유입니다. 손가락으로 문질러도 뭉개져 버릴 연약한 새싹 이지만 그것은 힘이 있어서 굳어버린 흙덩어리를 재키고 무서운 힘으로 땅 을 뚫고 올라옵니다. 그렇다고 연한 새싹이 뭉개졌다거나 부러진 상태도 없이 연한 새싹 그대로 땅위에 나타난 것입니다. 또한 오늘날 지구촌에 많 이 남아있는 짐승이 있다면 포악한 짐승들이 아니라 매우 온순한 짐승들입 니다. 우리의 이성적 판단으로는 약육 강식의 피라밋 구조를 갖는 것이 짐 승의 세계인데 실상은 약하게 판단되어진 온유한 짐승들이이 땅을 차지하 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 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시 37:11)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 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 에서는 온유한 자는 미련하게 느껴지고 바보스럽게 평가되기도 하고 무 능 력하게 보이기도하지만 그러나 강한 자가 차지할 것같은 땅을 그들이 차지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축복된 기업을 이 어갈 수 있는 자는 곧 온유한 하나님의 백성인 것입니다.

모세의 일생을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온유한 삶을 살았는가를 알 수 있습 니다. 그가 무려 40년동안이나 처가살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온유한 성품때문에 어떤 불화나 불목하는 일 한번없이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어 떤 성경학자는 원래 아내가 매우 거칠고 억세어서 노년에 그가 위로받을 수 있는 그리고 따뜻하고 정감이 넘치는 사랑으로 감싸줄 수 있는 아내를 얻고자 하여 구스여인을 택하게 되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만약에 그렇 다면 모세는 40년간의 처가살이 중에서 정말로 온유하게 살았기 때문에 아 무런 불쌍사도 없이 잘 지내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노년에 얻은 아내 때문에 아론에게 비방을 당하였는데 아론은 시 내산에서 십계명을받기위해 40일 동안 모세가 산에 있을 때 금덩어리를 거 두어 애굽우상의 상징인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며 모세를 대항하던 자입 니다. 그런 일을 생각해보면 모세의 온유한성품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용서 해 줄 수 있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원망과 불평을 한마디도 아니했 을 뿐만아니라 과거의 일을 들추며 나는 형을 우상섬기는 이해했는데도 나 의 노년에 행한 이 일 하나를 이해하지 못하느냐고 대들지도 아니 했습니 다. 그것은 바로 그가 진정한 온유의 소유자인 것을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결론>

성삼위 하나님외에는 지면에 온유한 자가 없었으나 그러나 모세는 온유했 습니다. 물론 지면에 온유한자가 있었다는 추측을 본문을 통해서 엿볼 수 는 있으나 지면의 모든 자 중에 가장 온유한 자는 모세였습니다. 그가 그 렇게 온유할 수 있었던 힘은 남을 중상모략하는데 자기의 귀를 열어놓지 않았기 때문이며 자신의 눈과 귀와 입을 오로지 하나님에게로만 향해 있었 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온유하면서도 자기의 길을 굳굿이 걸 어갈 수 있는 불굴의 투지와, 산처럼 움직이지 않는 믿음의 큰 용기와, 어 떤 비웃음과 조롱을받아도 홀로 서있을 수 있는 강한 의지가 있었고 지면 의 모든 자 중에서 가장 온유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는 민족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고 능력의 종으로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으며 비방을 받을 일을 했을지라도 하나님 께서 변호하시며 비방하는 자를 물리쳐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 리스도에게서 온유를 배우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온유의 열매를 맺는 축복된 삶을 살아갈 수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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