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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형상을 따른 인간 (창 01: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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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천지를 엿새동안에 창조하셨습니다. 마지막 날에 온갖 짐승과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지막에 인간을 만드시기 전에 잠시 멈추시고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인간을 과연 만드는것이 좋을가를 재고(再考)하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창조하는데따르는 위험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창조가 창조의 면류관이 될것인가, 아니면 창조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는 창조의 십자가 사건이 될 것인가 하나님은 자유와 힘을 가진 `인간'이란 존재를 창조하실 때 그들이 하나님과 과대망상적(誇大妄想的)인 경쟁자가 되어질 가능성의 위험을 아셨을 것입니다. 인간 속에 자기의 형상을 줄 때 저들이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대신에 "나는 신의 형상(形像)이다" 라고 일어서서 외치면서 자신을 하나님과 똑같이 여기는 때가 올것을 아시면서도 인간을 창조하시기로 결단을 내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인간에게 멸시당하고, 거부당하고, 무시당하고, 욕을당할 것을 각오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탕자(蕩子)가 먼 나라로 가고자했을 때 아버지가 느꼈던 그러한 아픔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선언하신 것입니다. 그 아버지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긴 했지만, 그러나 그래도 자기 아들을 결코 포기(抛棄)하지는 않았던 것처럼, 하나님도 그러하셨던 것입니다. 배반할 줄 알면서도 그 인간을 자기의 형상을 따라 만드신 그 일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읽을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가 창조하신 인간때문에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지 않으면 안될 것을 아시면서도 인간 창조를 포기하지 아니하셨던 것입니다. 인간 창조 속에 담긴 하나님의 이 놀라운 사랑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의 면류관(冕旒冠)이라고 말하는것은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물을 오염시키는 장본인이 되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인간을 만드셨을까요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면서 무엇을 기대하셨을까요
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만드실 것인가를 계획하시던 그 순간이 묘사(描寫)되어 있습니다. 26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기의형상대로 지으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인간이 자기의 친구가 되길 바라셨습니다. 자기의 대리자(代理者)가 되어 그분이 지으신 생물들을 다스리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신실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와 더불어 이 세계를 아름답게 가꾸어 가기를 희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가능성을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며 그 뜻을 따라 살 수 있도록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 이것이 원래의 인간의 모습입니다. 비록 타락(墮落)으로 인하여 그 모습이 흐려지기는 했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들 속에서 이 형상을 보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못된 소문을 퍼치고 다니는 사람이나 노상 강도나 파렴치범이라 할지라도 그들 역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존재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사람을 대할 때 타락한 악의 존재로 볼 것이 아니라 본래 창조되었을 때의 인간의 모습의 빛에서 보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리들과 창녀들, 율법과는 상관없이 살아가는 무지한 백성들을 사랑하실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생각과 허망한 꿈을 안고 예수님을 따라다닌 제자들, 그들은 연발 실수만 저지르는 자들이었지만 예수님은 저들 속에 숨어있는 가능성을 신뢰(信賴)하시고 결코 저들을 버리려 하시지 않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마침내 변화되어 위대한 사도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위에 실현시켜 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이 형상을 새롭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가주신 새 계명인 사랑은 우리 속의 형상이 새롭게 되면 실천할 수 있는 계명입니다. 사랑이란 우리의 이웃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새롭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흐려졌던 형상을 깨끗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새롭게 된 우리의 형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알 수 있게 되었으며, 이웃을 새로운 눈으로 보면서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샘터> 1990년 10월호에 베데스다 선교회의 한 여전도사가 청송감호소에 갇힌 한 죄수를 변화시킨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절도죄로 징역 3년에 감호조치 10년을 선고받은 김수영씨는 포악해질대로 포악해진 죄수여서독방에 감금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마음은 얼어 붙을대로 얼어, 누구도그를 감화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심장판막증으로 고통을 당하면서도 남은 생애를 남을 위해 살기로 한 김혜순 전도사가 감호소를 찾아왔다가 김수영씨 이야기를 듣고 그를 만났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오히려 욕을 퍼붓고 면회를 거절하던 그가 찾아 다닌지 4년만에 마음이 변하여 김 전도사에게 용서를 빌면서 헤어진 어린 아들을 찾아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김 전도사는 여러 주일 수소문해서 그 아들을 찾아내어 그에게 데려가 면회를 시켰던 것입니다. 김수영씨의 완악했던 마음이 녹아지고, 아들을 위해서 빨리 나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1990년 1월 30일 김 전도사의 보증으로 6년만에 출소를 하게되었고, 그해 2월 7일 기독교 방송의 "새롭게 하소서"에 나가 간증을하였고, 이를 들은 사람들이 여러 모양으로 그를 도왔습니다. 그는 지금 결혼을 하여 새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사람들 속에 있는 이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되며, 사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으며, 이사회를 희망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동물들과 함께 지음받은 인간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인간은 자연을 다스리도록 지음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그러나 이 말들 속에 인간이 만물의 영장(靈長) 다시 말해 자연이나 동물 그리고 모든 피조물 위에 뛰어난 존재임을 암시해 주는 어떤 말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다고 해서 모든 피조물과 구별된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동물, 인간, 고래, 참새 등은 모두 같은 날 즉 여섯째 날에 함께 창조되었습니다. 그 모두는 한통속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고 해서 동물성이 전혀 없는 신적인 존재가 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들도 들짐승이나 새들과 마찬가지로 본능과 충동(衝動), 결핍(缺乏), 욕망(慾望) 등에 의해 움직여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우리를 고등 동물에 속한 자임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우리는 위안을 받습니다. 우리 인간이 육체의 본능을 완전히 떠난 신적 존재로 지음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를 드려야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동물적 본능을 가진 자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우리 속에 들어있는 동물적 생각들을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동물적 본능을 억제하고 신적인 존재가 될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만 우리에게 동물적인 속성을 올바로 사용할 것을 요청하실 뿐입니다.
기독교가 육체는 경멸하도록 가르치며 또한 하나님만큼 영적인 존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친다면, 거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의 동물성을 감추고 영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신앙심이 깊은 표지(標識)로 본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동물성을 문제 삼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감추고 마치 성자인양 행동하는 외식(外飾)하는 바리새인들을 문제 삼으셨습니다. 동물적 욕구를 숨기지 않고 살아가는 밑바닥 사람들을 예수님은 오히려 더 사랑하셨고, 그들이야말로 천국에 가깝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만을 간구하지 아니하고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동물들이 먹어야 하는 것처럼 인간도 먹어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동물로 지음받았음을 인식하므로 창조주 하나님과 구별된 존재이며, 다른 피조물과 연대(連帶)를 가진 책임적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만물의 영장임을 내세우면서 다른 피조물들을 멸시하고 지배하며 학대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먹거리는 오직 식물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듯 그가 지으신 모든 동물도 사랑하심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 마굿간에 태어나셨다는 사실은 그의 구원의 역사가 사람에게뿐 아니라 모든 동물에게도 미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제까지는 우리가 "동물적"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나쁜의미로 사용 되었습니다. 우리가 새롭게 깨달아야 할 것은 모든 동물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여 주신 원리 안에서만 행동하는데 반해 인간은 그것을 벗어나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간이 동물로 창조되었음을 분명히 인식하므로 다른 동물들과 같이 하나님의 질서 속으로 돌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한가지 더 이 말씀에서 생각할 것은, 인간은 자연을 관리하고 다스릴뿐이지 결코 인간을 지배하거나 착취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남자와 여자가 같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 말은 인은 모두가 다같이 하나님의 같은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 사이에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사람을 지배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사람을 통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종속관계(從屬關係)에두어서는 안됩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인간관계가 종속적인 관계가 아닌 평등한 관계임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통치밑에서 자유롭게 살도록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인간을 통치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다스리려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독재자가 생겨나고 온갖 불의와 착취와 폭력이 난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통치 밑에서 희생자가 발생하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특히 전쟁을 일으켜 침략하여 다른 사람들을 노예로 삼고 억압하고 착취하는 일은 큰 죄악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평등하게 만드신 것은 서로 돕고 서로 사랑하며 서로 봉사하게 하시므로 다함께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그의 자비로운 통치 밑에서 그만을 경배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이해하고 이것을 실현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 운동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된다는 것은 이 땅의 모든 통치자, 지배자들이 없어지고 모두가 하나님의 통치 밑에서 평등하게 살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이상은 바로 이런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시키는것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을 섬기는 종이 되어야지 결코 지배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항상 이런 민주주의 제도를 실현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입니다. 이것은 빈익빈 부익부의 편중 현상을 초래하기 때문에 인간의 평등이 파괴되고 가난한 자들이 가진 자들에 의해 지배되고 종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희년(禧年)제도를 두어 이스라엘로 실현케 하셨던 것입니다. 땅을 누구도 독점하지 못하게 하시고 50년마다 원주인에게로 돌려주도록 하신 것입니다.
오늘 로마서 말씀을 보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땅에서 착취당하고 억눌려 온 모든 사람들을 자유케 하시고 그들을 영화로운 자리에까지 이끌어 올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억눌린 자, 지배당하는 자가 없는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의로운 백성으로 그 나라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를 사랑할 수 있으며, 우리의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는 자로 지음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이웃들속에 있는 이 형상을 보기를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악하다 할지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 불신의 사회를 서로 신뢰하며 사랑할 수 있는 사회로 바꾸어 놓을 수가 있게 됩니다. 특히 우리는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형상을 회복시켜 주신 사실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계를 결코 비관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변화의 가능성을 믿기 때문에 어떤 상황 아래서도 낙심하지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다른 피조물들과 같이 하나님께 지음받은 제한적인 존재임을 기억하면서 지배하고 파괴하며 억압하는 자로서가 아니라 같이 나누며 서로 돕는 관계로 돌보고 관리(管理)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결단코 남을 지배하고 다른 사람 위에 올라서서 그를 다스리거나 억압하는 자로 지음받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독재자들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우리 자신의 존재의 본질을 분명히 파악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늘의은총을 누리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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