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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모,자녀 그리고 형제 (시 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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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관계는 부부간의 관계,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그리고 형제간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이 세 관계를 총칭하면 가족 관계가 됩니다.모든 관계는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감당할 때 유지되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는 부모의 역할과 자녀의 역할 그리고 형제의 역할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부모의 역할입니다.
부부와 부모는 그 의미와 역할이 다릅니다.
부부는 결혼한 남녀이고 부모는 결혼하여 자녀를 낳은 사람입니다.
부부 관계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면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지만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부모는 자식을 낳은 사람이지만 그러나 자식을 낳았다는 것만으로 부모의 역할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에베소서 6:4을 보면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간결한 이 한 구절 속에 부모의 역할이 설명되어 있습니다.본 절이 말하는 부모의 할 일은 두가지 입니다.
첫째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21을 보면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찌니 낙심할까 함이라”고 했습니다.자녀들을 성나게 하는 다섯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① 지나친 요구와 통제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부모들은 자신의 희망이나 기대를 자녀에게 투사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못배웠으니까 너는 가르쳐야겠고,나는 가난하게 살았으니까 너는 고생시키지 않아야겠고,내가 못 다이룬 꿈을 네가 이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자녀에게 거는 기대가 크기 마련이고 요구와 통제가 정도를 넘게 됩니다.여기서 자녀들은 반발하고 저항하게 됩니다.
저항심이 강한 아이나 반대로 소심하고 소극적인 성격의 아이들은 어려서 부모의 심한 간섭이나 통제를 받고 자랐기 때문이라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② 무관심 때문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접촉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합니다.꽃 한송이 풀 한포기 애완동물 그리고 사람도 접촉과 관심을 요구합니다.사람의 손길이 자주 닿는 화초와 방임된 화초는 발육과 향기가 다릅니다.
시립 영아원에서 자라는 영아들의 경우 품에 안고 우유를 먹이는 아이와 침대에 눕혀 놓고 우유를 먹이는 아이 사이에는 현격한 성격의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피부접촉과 관심속에서 우유를 먹고 자라는 아이의 성격이 훨씬 밝고 순하다는 것입니다.
사업때문에 바쁘고 회사때문에 바쁘고 자기 활동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자녀들에게 쏟아야 할 부모의 관심이 소홀해 질 때 그들은 소외감과 분노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그렇다고 해서 24시간 365일을 껴안고 있어야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정당한 관심과 돌봄이 필요한 것입니다.
③ 불건전한 사생활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탈선,어머니의 방종 거기서 비롯되는 가정불화,이것은 자녀를 망가뜨리고 성나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됩니다.6.25 전쟁 직후 가출 청소년의 대부분은 그 원인이 가난 때문이었습니다.그러나 요즈음 가출 청소년의 원인별 분류에 따르면 90프로 이상이 가정불화나 부모의 탈선에 따른 반항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집도 있고 돈도 있고 부모도 있지만 가정이라는 공간이 싫어져 뛰쳐 나왔다는 것입니다.
④ 편애 때문입니다.
편애는 비교에서 출발합니다.무남독녀나 무녀독남은 편애를 모릅니다.그러나 형제가 있을 경우 형과 아우를 비교하는데서 편애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비교하는 행위는 가까운 것일수록 민감한 반응을 일으킵니다.
예를 들면 공부 못하는 큰 아들을 꾸짖으며 “너는 왜 하버드 대학에 다니는 죤만큼 공부를 못하느냐”라고 한다면 별 문제 될 게 없습니다.그러나 “너는 왜 동생만도 못하냐”라고 한다면 그 반응은 심각해 집니다.에서와 야곱의 비극도 이삭과 리브가의 편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⑤ 부당한 가치관 때문입니다.
부모가 생각하는 것이 자식만 못할 때,그래서 지시하고 명령하는 것이 윤리와 바른 가치규범에서 벗어났을 때 자녀들은 성나고 좌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은 교훈합니다.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둘째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어느 날 길거리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제가 서 있는 곳으로부터 3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두 남녀가 마주 보고 서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남자는 175cm 정도의 키에 줄무늬가 굵은 곤색 양복에 까만색 구두를 신은 멋쟁이 신사였고 여자는 167cm 정도의 키에 몸매가 날씬한 숙녀였습니다.화사한 화장에 귀고리 목걸이를 했고 손에는 비싼 핸드백을 들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교양과 지성미가 풍기는 남녀였습니다.그런데 5분쯤 지나자 두사람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습니다.그러더니 욕설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남자가 여자의 따귀를 때렸습니다.그 순간 여자가 남자의 따귀를 때렸습니다.그러면서 두 사람은 소리지르고 엉켜 치고 박고 육박전을 벌였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진짜 교양이나 지성이 무엇인가를 생각했습니다.
본문은 “주의 교양과 훈계로”라고 말씀합니다.길거리에서 추태를 벌였던 두 젊은 남녀의 교양은 겉치레 교양입니다.
어떤 도전이나 자극을 받으면 금새 일그러지고 본색이 드러나는 것은 참된 교양미가 아닙니다.
그러나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받으면 참 인격과 삶을 누리게 됩니다.
1986년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의 총 인구수는 1,450만 명입니다.영토는 강원도 크기 정도입니다.
1991년 현재로 미국에 800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300명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93명이 유태인이고 미국의 70만 명 변호사 가운데 20프로인 14만 명이 유태인입니다.미국 대학 교수의 35프로가 유태인이고 프린스턴대학의 경우는 90프로가 유태인입니다.하바드나 UCLA도 50프로가 유태인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그뿐만이 아닙니다.
공산주의 창시자 칼막스,금융자본가 로스챠일드,심리학자 프로이드,화가 샤갈,상대성 이론의 아인슈타인,국제적 외교가 키신저 등 모두가 유태인입니다.
대부분의 교육학자들은 유태인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천재성보다는 후천적 교육이 그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태인의 교육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그것은 선민 사상교육(The Chosen People Cencept)과 역사 교육(Historical Memory Education)입니다.그리고 이 교육은 철저하게 구약성경에 배경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영토는 빼앗겨도 역사와 민족은 빼앗기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들은 조국 땅을 떠나 살아도 역사와 언어는 잃어버리지 않습니다.그들은 자식을 키울 때 지식보다 지혜를 더 소중히 여기고 가르칩니다.지혜 역시 그 근원은 성경입니다.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네 자녀들에게 정신적이며 신앙적 유산을 물려 주어야 합니다.
7남매에게 많은 유산을 물려준 기업 재벌이 있었습니다.그리고 못다 나눠 준 재산을 남겨둔 채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아버지 장례식 전날부터 재산 싸움을 시작했습니다.그리고 아버지가 세상 떠난지 7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은 싸움과 소송을 거듭하고 있습니다.아버지가 남기고 간 재산은 7남매를 철천지 원수로 만들었습니다.
5남매를 키우고 세상을 떠난 가난한 선비가 있었습니다.운명하는 시간 5남매를 불러 모은후 이렇게 유언했습니다.
“너네들 5남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남들처럼 잘입히지도 잘먹이지도 못했다.그리고 나눠줄 유산도 없는 것이 미안하다.그러나 인생이란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부디 형제끼리 화목하고 우애하고 그리고 신앙생활 잘하고 부끄럽지 않은 사람들이 되어 주기 바란다”라고.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5남매는 모두다 목사,교수,의사,변호사,사업가,장로,권사,집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아버지 추도일이 되면 아버지의 유언 테잎을 들으며 아버지를 기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부모는 자녀를 바로 키워야 합니다.

2.자녀의 역할입니다.
본문은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했습니다.성경은 철저하게 부모에게 순종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0:12을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고 골로새서 3:20을 보면 “자녀들아 모든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21:18-21을 보면 “부모의 말을 순종치 않는 자식,부모의 징책을 듣지 않는 자식이 있으면 성읍 장로들에게로 데리고 가서 자식의 패역과 완악함을 이야기하고 불순종과 방탕한 생활을 이야기하면 성읍 사람들이 돌로 쳐서 죽이고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고 했습니다.
잠언 20:20을 보면 “자기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 등불이 유암중에서 꺼짐을 당하리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9:21-27을 보면 아버지 노아의 허물을 공개하고 떠들어 냈던 함은 저주를 받아 종들의 종이 되었습니다.
출애굽기 21:17을 보면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했습니다.
불효할 원인이 무엇입니까
첫째 부모님의 은혜를 과소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부모님이 능력이 없다고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효도 역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옵니다.
내가 부모님께 효도하면 내 자식이 나한테 효도하고 내가 부모님을 존경하면 내 자식들이 나를 존경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부모님을 잘 받들고 효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받들게 되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부자유친의 윤리가 무너진 시대라고 하더라도 기독교 가정의 자녀들이라면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라면 부모님께 효도해야 합니다.
효도는 ① 마음을 편케 해드리는 것입니다.
② 순종하는 것입니다.
③ 인정 해드리는 것입니다.

3.형제의 역할입니다.
시편 133:103을 보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고 했습니다.
부부는 연합하고 동거하는 것이 당연하고 쉽지만 형제가 연합하고 동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형제는 “피를 나눈 형제와 그리스도안에서 형제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형제가 미워하고 불화하는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① 서로간의 자존심 때문에 ② 이해 관계 때문에 ③ 오해 때문에…
밤새도록 형님과 동생이 쌀가마를 옮겼다는 옛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동생은 식구가 많은데,형님은 연세가 많으신데라고 생각한 형님과 동생이 밤새도록 쌀가마를 날랐다는 것은 형제우애의 극치를 보여 줍니다.
한발 양보합시다.서로를 이해합시다.사랑을 선수칩시다.
기독교 가정은 예수 믿지 않는 옆집보다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합니다.
그 무엇인가가 나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칭찬받고 축복받는 가정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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