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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돌아오라 (호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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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비록 하나님을 떠나 범죄한 백성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돌아오면 용서하시고 은총을 베푸시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그리고 어떻게 돌아올 것인가에 대한 길 안내까지 해 주시는 하나님의 자상하신 섭리를 보게 됩니다.
신명기 7:7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세계 열강들 가운데 가장 작고 가장 약하고 가장 힘이 없었던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신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과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오래전 여흥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어느 장소에서 사회자가 저에게 엿장수가 손애 들고 있는 가위를 몇 번 칩니까라고 물었습니다.저는 그 가위 소리가 리듬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삼삼 칠 박자일테니 세번 세번 그리고 일곱번을 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그래서 그대로 대답했더니 사회자의 대답은 엿장수 맘대로 친다는 것이었습니다.와 하고 함께 웃고 나서 생각해 보았습니다.그것은 옳았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제마음대로 결정하고 행동할 자유를 소유하고 있습니다.하물며 왜 하나님이 하필이면 이스라엘만 선택을 했느냐라는 질문은 지성적인 질문은 못 됩니다.
선택받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하나님만 섬기고 사랑해야 된다는 계명을 어겨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이것을 가리켜 호세아 선지자나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멀리 떠났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본문 14:1을 보면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고 했습니다.이 말씀의 뜻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제멋대로 살다가 걸려 넘어졌다는 것입니다.그리고 넘어졌다는 것은 실패,절망,좌절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누구라도 하나님을 떠나면 걸려 넘어집니다.
본문은 불의 때문에 엎드러졌다고 말합니다.불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것입니다.그리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나를 믿고 세상을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을 욕하고 돌을 던지고 예수님을 팔아 먹는 것은 큰 죄가 되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살지 않고 내 고집대로 사는 것은 죄가 아닌 줄로 생각하는 악습이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 스잔나 웨슬리가 어느 날 말 안듣고 고집 센 딸을 교육하기 위해 불이 꺼진 숯을 한아름 주면서 안아 보라고 했습니다.
그 딸은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이 숯을 안아도 뜨겁지 않으니까 안아보렴”하고 어머니가 말하자 “그렇지만 손이 더러워지잖아요”라고 그 딸은 대답했습니다.그래서 스잔나 웨슬리는 딸에게 “네 말이 옳다.손이 델 염려는 없지만 숯이 손을 더럽히는 것처럼 잘못된 행동은 사람을 더럽힐 수 있단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불의란 커도 불의이고 작아도 불의입니다.죄는 커도 죄고 작아도 죄입니다.맨 처음 이스라엘의 죄는 그다지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그러나 시간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서 그들은 결국 하나님을 등지게 되었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등지는 것도 같습니다.처음에는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교회를 한 번 빠지게 됩니다.그리고 두 번 세 번 빠지면서 변명이 생기고 이유가 많아집니다.그리고는 교회를 등지는 이유는 전부 다른 사람에게 있게 됩니다.예를 들면 누구 꼴보기 싫어서,교회가 귀족화 되어서,교회가 잠잠해서 등 핑계가 다양해 집니다.그러다가 결국은 주님과 등을 돌리고 세상에 깊이 빠져 버리게 됩니다.본문은 “네가 불의 때문에 엎드러졌다”고 말합니다.
불의는 개인을 넘어 뜨립니다.
불의는 가정도 넘어 뜨립니다.
불의는 통치자도 넘어 뜨립니다.
불의는 국가도 넘어 뜨립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불의 때문에 유황불에 멸망했고,헤롯 왕과 아합 왕조도 불의 때문에 넘어졌습니다.
저는 모 일간지 과학 칼럼을 읽다가 깨달은 바가 컸습니다.그 칼럼의 제목은 “물은 흐러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본래 한문의 法字는 원래 물이 흘러가야 한다는 뜻이었다고 합니다.흘러가지 않고 갇혀 있는 물은 언젠가는 썩는다는 것입니다.
팔당호를 예로 들면 갇혀있으면 부영양화(富營養化) 현상이 일어나서 영양 염류인 인산염이나 질소 산화물이 많아지면서 식물성 플랑크톤류가 과잉 증식해 물 속의 산소를 잡아먹기 때문에 결국 물이 썩고 만다는 것입니다.그 현상이 심하면 물이 독성을 나타내고 물고기까지 폐사시키고 물의 침전과 정수도 방해해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그래서 물은 흘러가야 한다는 것입니다.호수에 고여 있는 물의 원리와 인간 사회의 원리는 같다고 봅니다.
장기 집권을 하면 안 된다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고 언로가 막히면 안 된다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너무 많아 오래 고여 있고 흘러가지 않으면 물이 썩듯 사람도 썩습니다.이런 현상을 가리켜 야고보 사도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고 했습니다.하나님은 하나님을 등지고 떠난 이스라엘,그래서 엎드러지고 코가 깨지고 허리가 부러지고 병신이 된 이스라엘을 향하여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절에서 하나님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네 하나님께로”라는 말을 주목해야 합니다.그 뜻은 “너는 비록 하나님을 등지고 우상을 따라 하나님을 떠났지만 그러나 나는 네 하나님이기 때문에 너를 버릴 수 없었다.나는 아직도 네 하나님이다.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의 아내는 고멜이었습니다.고멜은 호세아와 결혼하여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낳게 되었습니다.그런데 그녀가 어느 날 바람이 나서 집을 뛰쳐 나갔습니다.삼남매를 둔 유부녀가 가출을 한 것입니다.호세아는 아내를 찾아가 포주에게 몸값을 지불하고 아내를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설득했습니다.
그의 설득하는 말을 주목해 봅시다.
“나는 당신의 남편이야,집으로 돌아가지구,나도 당신과 함께 근신할테니까…….”
“당신은 나를 버리고 바람나서 도망쳤지만 난 당신을 안 버렸다구.난 당신의 남편이라구”하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호세아는 하나님의 그림자이고 고멜은 이스라엘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둘째 아들의 경우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타락한 아들은 아버지를 버리고 멀리 떠났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아들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돌아온 아들이 “나는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없습니다.일꾼으로 써 주십시오”라고 했을 때 아버지는 “너는 내 아들이다”라고 말하며 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내가 주를 버린다고 해서 함께 버리지 않는 사랑,내가 투정 부린다고 해서 함께 신경질 부리지 않는 사랑,내가 범죄하고 상처투성이가 되었다고 해서 버리지 않는 그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 사랑을 믿고 하나님을 떠났던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회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그러니까 회개라는 것은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행동인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말씀 가운데 “여호와께로”라는 말씀의 뜻을 좀더 깊이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여호와께로”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드 여호와”라는 말입니다.그 뜻은 “여호와에게까지”라는 것입니다.참 회개란 하나님에게까지 돌아와야 합니다.
예를 들면 “내가 이래선 안되지”라고 깨닫는 것도 중요합니다.그리고 “하나님께로 가야지”라고 결심하고 길을 떠나는 것도 중요합니다.그러나 중단해 버리면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나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 품에까지 나와야 합니다.다시 말하면 “아드 여호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나 오랫동안 너무나 많은 죄를 짓고 살았기 때문에 돌아올 염치나 자신이 없다는 것입니다.그래서 본문 2절을 보면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어떤 말씀을 가지고 돌아오라는 것입니까 그것은 돌아오면 용서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의미합니다.하나님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만 하면 용서하겠다는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사야 1:18을 보면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호세아 6:1을 보면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약속을 믿는다면 돌아오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본문 2하반절을 보면 말씀을 가지고 돌아와서 고백해야 될 말이 제시되어 있습니다.그것은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라는 것입니다.우리는 이 고백 속에서 두 가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첫째는,불의는 내가 제하고 없애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내가 지은 죄라고 해도 그 죄를 없애고 사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다시 말하면 죄 사하는 권세는 하나님께만 있는 것입니다.내가 멋대로 죄짓고 내가 멋대로 지워 없애는 것이 불가능한 것입니다.그러니까 “내 죄를 제해 주십시오”라고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선한 바를 받아 주십시오라는 것은 내가 돌아왔다는 그 사실 자체를 기특하게 받아 달라는 것입니다.그렇습니다.죄가운데 빠져서 내 멋대로 살던 죄인이 하나님께로 돌아왔다는 그 사실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선물 꾸러미를 들고 오지 않아도 돌아왔다는 그 행위를 하나님은 받으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가 돌아왔을 때 그 아버지는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23-24절)면서 잔치를 베풀고 기뻐했습니다.
지난 날 죄가운데 살았더라도 돌아오면 됩니다.용서받지 못할 죄인이라도 돌아오면 됩니다.용서하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품까지 돌아오면 됩니다.타락한 아들도 돌아왔을 때 용서했습니다.멸망시키기로 작정하셨던 니느웨 도시도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용서하셨습니다.돌아오면 살고 떠나가면 죽습니다.
우리는 오른손으로 수많은 일을 해내지만 그 손이 우리의 몸을 떠나면 그 순간부터 그 손은 아무런 가치도 쓸모도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우리가 가치 있고 쓸모 있는 존재가 되려면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그리고 하나님을 떠났던 사람은 빨리 돌아와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은 돌아오는 사람을 기다리고 환영하고 계십니다.지금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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