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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표적을 보여주소서 (마 12:3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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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 기독교2000년의 역사에 변함없이 오늘도 기적은 일어나고 있다.
기적은 옛날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2. 한국교회에도 그 어느 나라 못지 않게 수많은 기적의 간증이 있다.
지금 이 시대에도 특별한 기적의 사역을 행하는 목회자와 교회, 그리고 기도원이 있다.

3. 사람 치고 호기심 없는 사람은 없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호기심이 많다. 그래서 교인들 역시 호기심에 관심이 쏠려 있다.
기왕이면 신비한 경험을 해보고 싶고, 그런 일이 자주 행해지는 교회를 선호하게 된다.

4. 그래서 어떤 교회는 병자 치유로 대교회가 되었고, 어떤 교회는 귀신추방운동으로
대교회를 이루기도 했다.

5. 그러나 이런 기적체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목회자나 교인들이 있다.
성경의 관점에서 볼 때 과연 바람직한 현상은 어떤 것일까

I.사람들은 표적을 보고 싶어한다(38-40).

A.바리새파 사람들이 표적을 요구하였다.

1. 대체적으로 신비주의 운동이 강한 교회가 그렇지 못한 교회에 비하여 부흥의 속도가 빠르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생동감도 넘친다.

2. 교회가 인원이 많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의 원인이 있다. 하나는 ‘강력한 전도운동’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 들은 최선의 방법을 동원하여 전도에 힘쓰고 있다.

3. 교회부흥의 두번째 원인은 ‘스스로 들어 온 교인들’의 숫자다. 누가 전도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신앙을 가졌던 사람들이 이 교회 저 교회 옮겨 다니는 근래의 현상들이다. 이들은 왜 교회를 옮겨 다니는가 만족이 없기 때문이다.

4. 만족하지 못하는 교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은 설교를 잘하는 것보다 얼마나 호기심을 채워 주는가에 있다. 그래서 호기심을 채워 주는 교회는 사람이 몰린다. 병자 치유, 방언기도, 귀신추방은 모두 그런 맥락이다.

5. 표적은 기독교 신앙의 진수가 아니다. 그것은 공부에 취미를 유도하는 유치원생의 칼라 그림책 교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표적을 추구한다는 것은 아직 참된 신앙의 단계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B. 지금 내가 원하는 신앙의 기준은 무엇인가

1. 바리새인들이 표적을 요구한 것은 그들이 예수를 믿기 위함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예수를 곤경에 빠뜨릴까 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2. 참 신앙인 이라면 결코 표적이 필요치 않다. 신앙의 기준은 표적이 아니다.

3. 근본적으로 신앙은 성령의 도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스스로 신앙을 고백할 수는 없다. 성령께서 마음을 열어 주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믿음을 고백하게 하는 성령의 역사와 표적을 보고 싶어하는 호기심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것은 절대로 혼동해서는 안된다.

II.표적을 구함은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41-42).

A. 예수는 요나보다 위대하다.

1. 니느웨의 사람들은 불신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생활은 소망이 없는 악한 생활이었다. 그들이 얼마나 방탕했으면 요나가 그들에게 가는 것조차 싫어했겠는가 짐작이 갈 만한 일이다.

2.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까지도 요나를 통해 들려진 복음의 메시지에 그들은 회개했다. 그래서 성 전체가 금식을 선포할 정도였다. 이들이 어떤 특별한 기적을 체험했기 때문이 아니다. 요나의 입을 통하여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했을 뿐이다.

3. 기적이 없어서 회개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부흥하지 못함은 결코 기적 때문이 아니다. 기적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필요에 의할 뿐이다.

4. 근래에 미국에서 들어온 방법중에 양쪽 팔을 앞으로 쭉 뻗게해 놓고 한쪽 팔이 자라게 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을 ‘능력전도’라고도 한다. 한쪽 팔이 길어지는 것하고 구원하고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한쪽 발이 자란다고 구원받는 것 아니다.

B. 믿음은 자신의 문제다.

1.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기적 구경을 많이 해도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있을 수 없다. 그것은 그냥 구경으로 그칠 뿐이다. 믿음은 구경해서 자라는 것이 아니다.

2. 믿음은 고백함으로 주어지는 것이고 자라나는 것이다. 그래도 기적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신앙안에 있다는 반가운 현상일 수는 있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속히 어린아이의 일을 벗고 성장하는 것이다. 성장해야 한다.

3. 사람들은 책임을 전가하는 나쁜 습성이 있다. 자신이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기적을 보여주시지 않아서 믿음이 자라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III.표적보다 믿음이 중요하다(43-45).

A. 귀신에 대한 예화

1. 귀신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를 먼저 정리해야 한다. 신자들 중에도 귀신이 없다는 사람과 있다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귀신이 있다고 말씀하였다.

2. 이 귀신이 가끔 사람의 정신 속에 들어온다는 사실이다. 귀신이 사람의 속으로 들어오면 그는 자신의 이성을 상실하고 만다. 그래서 귀신이 시키는 대로 행동을 하는 것이다.

3. 흔히들 정신이상이라고 하는 증세 중에는 귀신들린 경우도 허다하다. 뇌에 충격을 받아서 착란 증세를 보이는 경우는 귀신의 작용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지만 이해못할 헛소리를 한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귀신의 장난이다.

4.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도저히 이해 못할 악한 사람들이 있다. 다시 말해서 정상적인 인간이기를 포기한 듯한 사람들이 있다. 왜 그들은 그렇게 되었을까 그것도 귀신의 역사와 무관치 않다.

5. 동생을 죽인 가인에게 미움의 귀신이 들어갔고 그는 결국 동생을 죽이게 되었다. 이렇게 귀신의 역사는 인류를 괴롭혀 왔다.6. 예수님이 복음전도를 시작하시면서 함께 병행한 사역이 바로 귀신추방이었다.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귀신을 이기는 역사가 일어났다. 어느 곳에서는 귀신이 먼저 예수님을 알아보고 아내지 말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님은 만나는 귀신마다 모두 추방하셨다.

7.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귀신들이 쫓겨났다가 이곳 저곳 떠돌아야 했다. 그러다가 한번 자신들이 과거에 머물던 곳을 찾아가 보았다. 그곳은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 귀신은 자신의 일곱 친구들을 동무해서 옛집으로 들어갔다.

8. 이 사람의 경우 그는 잠시 동안 귀신으로부터 해방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후속 조치를 안한 까닭에 전보다 더 악한 일곱마리의 귀신에게 추가로 시달림을 당해야만 하는 것이다.

B. 무엇이 정말 중요한가

1. 왜 주님께서 귀신의 이야기를 하셨는가 바리새인들이 표적을 구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표적을 구한 것과 귀신에 대한 이야기는 무슨 상관이 있는가

2. 귀신이 추방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의 시작이다. 인류역사가 귀신의 장난에 의하여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신이 추방되었다는 것은 새로운 질서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러니 이것이야말로 기적 중의 기적이다. 더 이상의 표적이 필요치 않다.

3. 그러나 귀신추방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제아무리 귀신을 추방했어도 후속조치가 없으면 오히려 아니한 것만 못하다. 그 후속 조치란 무엇인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귀신을 추방한 자리에 귀신을 능가할 만한 새로운 힘을 공급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안한 것이다.

4. 왜 주님을 모셔들이지 않았는가 믿음은 돈으로도, 힘으로도 그 어떤 방법으로도 인간이 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5.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기적을 체험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체험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제아무리 귀신을 추방했다 할지라도 주님을 영접하지 않으면 또다시 귀신에게 지배를 당하기 때문이다.6. 그러므로 표적을 구하기 이전에 먼저 필요한 것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확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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