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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탕자의 귀환 (눅 1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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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의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권위와 규율 아래 살기가 싫어서 자기 몫의 재산을 요구해 받아 가지고 먼 나라로 가서 술과 여자, 도박등 쾌락을 좇아 살다가 재산을 모두 탕진했습니다. 그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돼지 치는 자가 되어 고생을 하면서 자기 아버지의 규율은 결코 자신에게 고통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참 행복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왔을때 아버지가 따뜻하게 맞아 아들의 자격을 다시 주었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설비를 아름답게 표현해 주고 있는데 이 내용을 통하여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떠한 존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하는 지혜를 얻고자 합니다.

1. 에덴동산과 하나님의 권위와 법
본문 이야기는 인류의 창조와 타락에 관한 것을 비유적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을 돌보아 줍니다. 이 아버지의 권위와 규율하에 있을 때는 아버지가 먹고, 입고, 마시는 것, 사는 방법들을 다 돌보아 주고 자식들의 행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주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귀한 말씀입니다.

원래 하늘과 땅은 아버지가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위해서 진선미의 에덴을 지으시고 직접 다스리시며 첫 사람들인 아담과 하와를 두어 살게 하셨습니다. 에덴동산 한가운데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을 두시고 이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너희들이 이 에덴동산에서 모든 자유와 풍성을 누리되 이곳의 주권자는 아버지인 나다, 내가 좋고 나쁜 것을 결정하는 것이고 사람의 선, 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수많은 주권자가 생겨서 분쟁이 그칠 날이 없다. 너는 아버지의 주권에 절대 순종하고 규율에 복종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는 아버지를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규율을 지켜야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꾀임에 빠져 아버지의 주권에 저항했습니다. 자시도 선악을 판단하며 마음대로 자기 기준대로 살기로 한 것입니다.

그들은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에덴동산의 규율을 어겼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그들의 생애 속에서 쫓아 내버리고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권위와 아버지의 규율이 싫어서, 우리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가 결정해야지 하면서 떠났습니다.

둘째 아들 탕자가 이와 똑같은 것입니다. 아버지의 규율이 미치지 않는 나라로 떠난 탕자는 곧 허랑 방탕하게 지냈습니다. 아버지의 규율과 돌봄이 없는 곳에서 절제 없는 방탕을 계속한 그는 비참하게 되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의 꾐에 빠진 아담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권위와 법을 무시하고 인본주의적 독립을 선포하고 하나님을 저버린 나라, 먼 나라로 떠나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모두 다 지금 먼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권위도, 법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기주의와 탐욕과 정욕의 노예가 되어서 삽니다. 그 결과는 바로 기근의 삶입니다.

여러분, 이 인생 여정에 참으로 만족하고 행복하고 부유함이 있는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가는 곳마다 의의 기근이 있습니다. 죄악이 꽉들어차서 아무리 질서를 지키려고 해도 죄악이 그것을 다 파괴합니다.
의의 기근은 오늘날 온 세계 처처에 있습니다.

또 거룩함의 기근이 있습니다. 더러움이 이 세상에 꽉 들어차서 생각이 더럽고 말이 더럽고 행동과 생활이 더럽습니다. 거룩함의 기근이 이 세상에 꽉 들어차 있습니다.

사랑의 기근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말로써 '사랑, 사랑'하지만 이것은 부패된 이기주의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내게 속한 분깃을 내게 주소서'하고 달라고만 하는 사랑은 탕자의 사랑이지 진실한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시기 까지 한 희생의 사랑,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지 내가 소유하고 내 손에 쥐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가정이 불화합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암투가 그치지 아니하고 부모 자식간의 암투, 부부간의, 형제간의 싸움도 있습니다. 이웃 같의 끊임없는 대결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기근인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믿음의 기근이 있습니다. 서로 속이고 속으니 누가 누구를 신뢰할 수 있나요 소망의 기근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것이 뭣니까 매일같이 먹고 자고 일어나고, 먹고 자고 일어나고, 살아보겠다고 애를 쓰다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보겠다고 애를 쓰다가 40대 이후가 되고 50이 되니 친구들이 한 두사람 순식간에 이 세상을 작별하곤 합니다.

그러면 마음에 찬바람이 붑니다. '사는 것이 무엇인가 그렇게 살겠다고 바득바득 애를 쓰더니 순식간에 사라져서 한 줌의 흙이 되고 마는 것이니 도대체 인생이 무엇인가'그와 같은 소망의 기근이 꽉 들어찹니다.
건강의 기근도 있지요. 스트레스로 몸부림치는 오늘날의 삶의 경쟁 속에 사람들은 마음도 몸도 병들어 갑니다. 물질의 기근도 있습니다. 잘 살아보려고 하는데 그렇게 살기가 힘이 듭니다. 먹고 입고 마시는 그 자체가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 모릅니다.

거기에다가 가장 큰 기근은 영생의 기근인 것입니다.
오늘날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절제 없이 사는 삶속에 다가오는 것은 오직 절망적인 기근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젊은 청년은 기근에 처하자 이제는 올데갈데없어 가장 천한 직업인 돼지를 치는 노동자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받아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권위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릴 때는 우리는 타락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기주의와 탐욕과 세속이 들어오면 육신적으로 방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방종하게 되는 사람치고 기근이 안 다가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지금 기쁨이 있습니까 소망이 있습니까 믿음이 있습니까 사랑이 있습니까

이런 것들이 사라지고 그 대신 고통이 다가오는 생활을 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벌써 타락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의 어느 부분에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고 인본주의와 이기주의와 탐욕과 세속으로 살게 되면 거기에는 기근과 고통이 다가오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은 디모데후서 3장 1절로 5절에서 "네게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면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저버리고 계명을 저버리면 바로 이 고통하는 세계 속에 살게 되고 이 고통이 영혼속에 들어가서 영혼을 뒤흔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2. 회개의 과정
아버지를 떠난 것이 곧 고통의 시작인 것을 알게 된 이 젊은 청년은 어떻게 했을까요 그는 회개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회상하기를 '아, 나는 이제 여기서 굶어 죽는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의 집에는 아버지를 섬기는 날품팔이라도 먹고 입고 마시는 것이 풍족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돌아가야 되겠다.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으니 다시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자격은 없고 날품팔이꾼이라도 아버지의 권세와 계율 밑으로 들어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자아의 중심을 깨뜨리고 회개하고 돌아올 각오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담과 하와 이후로 타락한 인생들이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섭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삶의 고통과 좋으신 하나님에 대한 비교로써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두움 대신에 빛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무질서 대신 질서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추함 대신 아름다움을, 가난 대신에 부요를, 슬픔 대신에 기쁨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이 고통의 세계를 떠나서 하나님의 세계로 돌아가야만 됩니다. 하나님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절대 주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계명을 받아들여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마음의 결단을 내려야 되는데 그 마음의 결단은 먼저 죄를 회개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청년은 말했습니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범하여서 이제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지 못하겠으니 종중이 하나로 보아주시옵소서'돌아가는 마음 자기가 과거에 잘못한 것을 고백하는 마음, 이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그냥 잘못했다고 입술로만 말을 하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돌아가는 것입니다.자기 중심의 삶을 버리고 종의 삶으로 돌아오는 겸손함이 우리에게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아버지께로 돌아와서 아버지 중심으로 아버지의 종으로 살겠습니다'라는 간절한 마음의 회개를 가지고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을 절대로 내버리시지 않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찾습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이라는 찬송을 지은 죤 뉴턴같은 사람을 보십시오. 그는 흉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정말 좋은 신자였고 매일 아들을 위해 기도했지만 그는 돈벌이를 위해서 노예상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총을 들고 아프리카 사람들을 짐승처럼 사냥해서 잡아 화물선에 가득가득 채워가지고서 대서양을 건너서 북미와 남미에 가 팔아먹었습니다. 그는 대서양을 건널 때 술기운이 돌면 노예를 끌어내어 배 뒤에 따라오는 상어떼에 던져서 상어가 산 사람을 물고서 요동치는 것을 보며 잔인하게 웃고 즐겼습니다. 인간 중에서 가장 흉악하고 악마하된 인간이 바로 죤 뉴턴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배가 파선 직전에 놓였습니다. 생명이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사람이 죽음의 위기에 처하면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때 그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나의 어머니의 하나님여, 나는 너무 크게 죄를 지었기 때문에 감히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가 아버지를 너무나 잘 믿고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했으니 우리 어머니 기도를 보셔서 나를 구출하여 주시옵소서. 이번에 나를 살려주시면 내가 아버지를 섬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그 배는 파선을 면하고 불란서 해안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그 노예선에서 나와서 일평생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종이 되었습니다. 그는 평생 자기 집에서 팔았던 노예들처럼 신발을 신지 않고 눈물로써 회개하며 전도자로서 일생을 마쳤습니다. 그래서 그가 지은 시가 지금도 우리에게 노래로 불려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어떠한 흉악한 죄인이라도 용서를 받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3. 환영하시는 하나님
탕자의 비유에서와 같이 우리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를 환영하시는 하나님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이 아들이 돌아오니 기다리던 아버지가 뛰어나가 엎드려 회개하고 자복하는 아들을 끌어안았습니다. 돼지 우리에서 지내 냄새나고 더러운 그 아들을 아버지가 끌어안고 입맞추고 종들에게 말했습니다. "제일 좋은 옷을 갖다 입혀라, 손에 가락지를 끼워라, 신발을 신겨라,살진 송아지를 잡아라, 먹지 즐기자, 내 이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다. 잃었다가 얻었다.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바로 이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버지의 심정을 우리가 알아주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죄지은 우리들에게 보내주신 초청장이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목박아 찢고 피를 흘리고 무자비하게 심판하셔서 우리의 지를 다 청산시키시고 우리가 믿음으로 아버지께 돌아올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 대문 밖에서 밤낮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천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빨리 저 더러운 죄의 누더기를 벗겨라. 그리고 그 아들 예수가 피로 씻어 만든 의의 옷을 입혀라"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로 용서받은 의인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손에 가락지를 끼워라"옛날 중동에서는 가락지에 온 가족의 이름을 다 새겨 놓았습니다. 이 반지를 낀다는 것은 바로 그 가족 중의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로 나오면 주님께서 반지를 끼워주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어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계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가족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을 쳐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옆사람에게 "당신은 하나님의 친자녀입니다"라고 말씀하십시오.우리는 반지를 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신발을 신기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복음의 평안의 예배한 신을 신기겠다고 말했는데 맨발로 인생을 걸어가는 것은 피투성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은혜로 살라, 내가 모든 것을 다 예비해 놓았으니 이제 나를 믿고 평안하게 인생을 살아가도록 하라'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살진 송아지를 잡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풍성하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먹고 즐기자고 말씀하신 것이비다. 하늘나라는 언제나 잔치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과 함께 거하면서 우리는 구원받은 그 기쁨의 잔치 속에 살아야 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절대주권과 권위를 인정해야 되는것입니다.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유일무이한 주인되시는 절대주권자 아버지를 중심으로 모시고 내 중심으로 살지 않고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계명을 지키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법을 지키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아버지의 나라에서 평안하게 살고 아버지의 큰 은총속에 살게 되며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친히 돌보아 주시는 그 세계 속에 들어와서 사십시오. 아버지가 돌보아 주시는 세계는 아버지의 주권의 확실히 성립되고 아버지의 계명이 있는 세계인 것입니다. 그곳이 귀찮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곳을 떠난 곳에는 오직 방탕과 기근밖에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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