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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착하고 신실한 청지기 (눅 19: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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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말씀은 마태복음(25:14-30)절에 있는 달란트의 비유와 대조가 되는 말씀이며
누가복음 17:7절에 있는 무익한 종의 비유와
마태복음 20:1-16에 있는 포도원 일꾼의 비유로 서로 대조되는 말씀입니다. 이 몇 곳에 있는 말씀은 모두 하나님의 일꾼 또는 종 또는 재물 맡은 자 즉 청지기라는 명칭으로 나타난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첫째 눅17:7-10을 보면 종이 수고하였을지라도 그 공로와 성과에 대하여 그 대가를 요구할 수 없다는 뜻의 말씀이 나타나 있습니다.
즉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들에서 돌아오면 주인이 그에게 앉아쉬게하지 않고 도리어 주인의 먹을 것을 준비하고 그리고 그후에야 먹고마시라 하지 않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은 한 것 뿐입니다. 해야 옳다고 했습니다.
종은 주인이 보아 3가지를 겸비해야 합니다.
(1) 믿음직해야 합니다.
(2) 겸손해야 합니다
(3) 순종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충성스러운 종이 수고하고 공을 세운 후에도 가져야 할 겸손이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요 바로 청지기의 자세인 것입니다. 종은 충성심이 있어야 하는데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하고 적은 일에 충성해야 하고 죽도록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둘째 마태복음 20장에 나타난 포도원 일꾼에 대한 그 주인의 대우에 불평을 품는 비유가 오늘 우리들의 마음을 살리는 데 유익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천국을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진실로 그리스도를 위한 품꾼을 구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만난 품꾼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고 낮에 만난 품꾼도 해질 무렵에 들여보낸 품꾼도 해질 무렵에 들여보낸 품꾼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약속 하였는데 삯을 주려할 때 먼저 온자들 중에서 원망 불평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아침부터 온종일 수고하고 시달렸는데 해질 무렵에 한 시간 일한 저사람과 같은 대우를 한단 말입니까하고 항의 소동이 납니다. 이것은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이 남이 받는 보수나 대우에 대해 시기나 질투로 자기에 대해 우대가 없음을 원망 불평하는 마치 장사치와 같은 정신을 가진자들은 천국에서 용납되지 않는다는 경계의 말씀인 것입니다. 삯을 위해 주를 섬기고 남의 직책과 대우에 시기와 질투로 불평하는 자들을 주님께서는 결코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천국의 소망으로 그리스도께서 구속해주신 사랑의 은총을 힘입어 감사와 찬양과 영광으로 맡은자의 일꾼으로 사명을 갈망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우리가 주의 일에 어떤 댓가를 받고자 하는 자세가 아니고 봉사자의 자세로 주님의 무한하신 은총과 공의의 사랑에 빚진자의 심령으로 값겠다는 은혜의 보답의 신실함이 나타나야 하겠습니다.
약속의 말씀의 상급을 확신하여 믿어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타난 달란트의 비유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있어서 기회와 능력의 분야는 다를지라도 충성스러운자는 같은 상급을 받을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하여 각가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나누어 맡겼습니다. 다섯 달란트 맡았던 자나 두 달란트 맡았던자나 다같은 칭찬과 상급을 받았습니다.

넷째 그러나 오늘 읽은 본문에는 열무나의 은을 가지고 열 사람에게게 꼭같이 분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돌아오실 때 맞겼던 것을 도로 찾을 때 그 충성의 정도에 따라 상급과 칭찬의 정도가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주님의 인간을 쓰시는 원칙과 그에 대한 대우와 처리는 과학적이고도 불평할 수 없는 철저한 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1. 우리의 수고는 자발적 봉사이며 또한 하나님의 종된 인간의 마땅한 본분으로 이 수고에 대한 치하와 공로에 댓가를 요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 우리는 내게 맡기신 일에 충성하고 내게 약속한 것을 주님에 대한 감사한 것 뿐이고 남에게 대한 우대와 강급에 대한 원망과 시비가 없어야하겠다는 것입니다.

3. 같은 분량의 직책을 맡겼을 때에는 그 충성의 정도에 따라 상급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이 세가지의 진리를 우리 모두가 깨닫고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 하라고 하시며 우리에게 당신의 므나를 나누어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장사 하는 말씀은 현대어 영어 성경대로 번역한다면 맡아서 관리하라는 말입니다.
Occupy Till I, come 이라고 했습니다. 옛날 번역에는 Occupy 대신에 trade란 말을 썼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을 우리가 우리의 왕으로 오실분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맡아서 관리하라는 청지기란 사실입니다.
그가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나라로 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백성이 피를 미워하여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됨을 원치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가 오시는 날 우리가 그를 위하여 우리에게 맡기신 것을 그의 뜻대로 보관하고 관리하여 그에게 충성하게 하고 그의 영광을 위하여 그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져서 그의 나라가 임하도록 예비하여야 그에게 한므나를 맡은 자로 당연할 것입니다.
그가 우리의 왕됨을 거절하고 내가 스스로 그의 맡기신 것에 대하여 왕노릇 한다면 그 결과가 주께서 왕권을 가지고 오실 때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 므나로 열므라를 만든 자는 다섯 고을을 맡는데 한 므나를 받아 자기 마음대로 악한데 더러운데 헛된 사욕에 맡기신 것을 허비함을 보고 나의 왕됨을 원치 아니하더니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사랑의 여러분 예수는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는 평강의 왕이요 사랑의 왕이요 의의 왕이십니다. 세상의 왕은 죽은 후에 그를 따라 죽는자의 없고 죽은 후에 그를 따라 죽는 자도 없습니다.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은 살아서 세계를 정복하는 큰 권세와 충성하는 군대를 가지고 있었고 나폴레옹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죽은 후에 그를 위해서 죽은 사람도 없고 그를 위해 재물을 바친 자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와 허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때에 홀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여 승천하시고 재림해오신 예수는 그가 죽은 후 지금까지 온 세계 수억의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살고 또한 그를 위하여 바치고 그를 위하여 죽습니다.
주님 재림이 임박한 현실에 지난날의 일년을 주님의 주신 은사와 재능들을 주님을 위해 많은 이익을 남기지 못했다면 주신 므나를 빼앗듯이 주신 것도 회수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부탁은 충성입니다. 작은 일에도 충성이요 남이보든 말든 맡은일에 충성하라는 것이요 댓가를 생각지 말고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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