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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나라 잔치와 초청 (마 2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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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말씀은 큰 잔치를 배설하는 중에 손님들을 초청하나 다같이 사양함으로써 또 다른 손님들이 채워지는 이야기입니다.

본문의 내용과 마태22장에 나오는 왕의 잔치비유와는 비슷한 것 같으나 다른 의미의 비유입니다. 왕의 잔치비유=1)종말론적인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나흘 전에 하신 말씀으로 심각하며 심판적이고 종말론적입니다.
또 왕의 잔치비유에서는 초청 받은 사람들이 간단히 사양한 것이 아니라 아주 배반을 하며 초청의 명을 띠고 간 종들을 능욕하고 죽이기까지 초청해 준 왕에 대해 악하게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는 철저하게 초청 받은 사람의 자세를 비판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판적이요 종말적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비유는 주인의 마음에 더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또 초청 받은 사람들의 거절도 그냥 사양했다는 것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오늘 비유를 말씀하신 동기>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바리새인의 한 두령의 집에 초청을 받으셨습니다. 그 집에 손님으로 초청 받으신 주님은 고창병 든 사람을 안식일임에도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잔치와 관계지어 두 가지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눅14:6-11/혼인 잔치에 초대받거든 상좌에 앉지 말고 말석에 앉으라. 눅14:12-14/잔치에 사람을 초대할 때 다시 갚을 것이 없는 사람을 초대하라. 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주님의 말씀이 있자 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 본 비유의 말씀을 하시게 되셨습니다.

본 비유의 주제는 하늘나라 잔치입니다. 이 잔치는 주인의 마음은 단순히 손님을 가득 채워 구로 인해 기뻐하고자 하는 순수한 즐김의 잔치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비유의 주제는 "천국은 마치 잔치와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마치 천국 잔치에 초청 받은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먼저 잔치라고 할 때에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잔치의 의미>

1.잔치는 기쁨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것은 축제를 연상케 합니다. 그러기에 전치에는 슬픔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조금 근심된 일이 있더라도 다 뒤로 미루고 우선 기뻐해야 하는 것이 잔치입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이란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기쁨이란 감사가 그 마음의 바침이 되어야 합니다.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이 참여하는 사람이 초청해 준 자체를 고맙게 생각하고 만족한 마음으로 임할 때에 진정한 기쁨을 맛볼 수 있고 그래야 잔치입니다. 잔치에는 기쁨과 감사와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본래 은혜라는 말은 헬라어로 Karis라고 하는데 이는 기쁨이라는 말과 그 어원을 같이 합니다. 신령한 기쁨! 곧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오는 넘치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곧 잔치요, 우리의 예배는 축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축제인 예배가 눈물겹고 억울하며 한숨짓는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는 항상 기쁨에 넘쳐야 합니다.
교회에 올 때는 어떠한 얼굴로 왔던지간에 하나님의 축제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모습에는 기쁨이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기쁨이라는 것은 돈 안 들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내가 기뻐한다는 것은 먼저는 내 마음의 만족이요 즐거움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도 밝고 편하게 해줍니다. 웃으며 하는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는 모두 좋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한숨짓고 울면서 하는 이야기는 듣는 사람까지 마음을 상하게 하는 나쁜 이야기들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령한 생활을 한다는 것은 곧 감사와 기쁨의 생활로 매일 매일을 축제의 기분과 마음으로 살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2.잔치라는 것은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는 기쁨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초청을 받아 어떠한 잔치에 갔다면 그것은 남의 기쁨에 내가 참여하는 것입니다.
내 아들, 내 잔치가 아니라 저들의 잔치입니다. 그러나 저들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받아들이며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 기쁨의 원인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원칙적으로 기쁨의 원인은 저쪽에 있습니다. 그러나 내 잔치, 우리 집 잔치처럼 기뻐해야 합니다. 남의 아들 장가가는 것을 보고 내 아들 장가가는 것처럼 기뻐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잔치를 나의 잔치로 그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받아들이며 동참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만이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이며 그 사람만이 은혜의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란 내가 못 먹어도 그가 먹는 것을 보면 즐겁고 내가 쓰지 못해도 사랑하는 사람이 쓰는 것을 보며 그가 좋아하면 나도 좋은 것입니다. 이 마음가짐이 천국 가는 마음이요 잔칫집에 있는 마음입니다. 사촌이 논 사면 배를 아파하는 곳은 지옥입니다.

3.잔치의 기쁨은 소유의 기쁨이 아닙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기쁨에 참여하는 기쁨, 곧 존재의 기쁨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잔치에 내가 청함 받았다고 하는 그 사실에 대한 기쁨이지 내가 장가가는 것도 아니오 내가 잔치하는 것도 아니란 말입니다. 초청 받는 기쁨, 인격적인 기쁨, 믿음의 기쁨, 사랑의 기쁨, 이 기쁨이 곧 잔치에 참여하는 자의 기쁨이요 또한 이 기쁨이 곧 천국적인 기쁨입니다. 좀더 나아가 생각하면 개인적인 기쁨이 아니오 공동체의 기쁨입니다.
잔치란 본래 모여서 같이 즐기는 것이지 혼자 하는 잔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공동체적인 기쁨을 즐깁니다.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함께 찬송하며 같이 봉사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우리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잔치가 되도록 함께 기뻐하는 예배가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잔치의 격조>
잔치의 격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은 우선 분위기에서 출발합니다.

1.잔치에는 기쁨과 만족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는 음식이 있어야 합니다.
음식과 풍악과 분위기가 어울리는 격조 높은 잔치는 그 누구도 섭섭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옛날 우리 어른들께서는 잔치를 할 때에는 반드시 한 쪽에 거지들을 위한 장소를 마련하고 푸짐한 대접을 하며 거지들의 잔치가 되게 했던 것입니다. 다같이 배부르고 다같이 기뻐해야 원만한 잔치요 격조 높은 잔치가 되는 것입니다.

2.손님이 많아야 합니다.
잔치에는 우선 사람이 많아야 하고 또한 손님들의 생각이 순수해야 합니다. 모처럼 잔치에 왔다가 빚 받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코 잔치에 합당치 않는 목적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잔치의 주인공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순수한 동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잔치의 격조를 높입니다.

3.오직 주인의 마음에 들어야 합니다.
주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초청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모일 때에 격조 높은 잔치가 됩니다.
더욱이 잔치의 정도는 그 주인이 누구냐 하는 것에 달렸습니다. 그 주인이 왕이면 그 잔치는 왕의 잔치가 되는 것이고 그 주인이 대감이면 대감집잔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늘나라 잔치는 하나님 아버지를 모신 잔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어린양, 우리의 주님을 모신 잔치입니다. 이 이상 격조 높은 잔치가 어디 있습니까 이제 문제는 그 주인을 기쁘시게 하자는 데 있습니다.
나 기뻐지는 것이 아니오, 얻어먹으러 간 것도 아닙니다. 이 잔치의 근본 목적은 주인이 기뻐하기 때문에 우리가 참여하여 더 기쁘게 해 드리자는 것입니다. 혼인 잔치에 갔었으면 신랑 신부를 기쁘게 해주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들이 주인공이기에 그 외에 이 시간에 기쁨을 받아야 할 사람은 누구도 없습니다. 그 분들이 좋고 그 분들이 기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청 받은 사람들은 오직 주인공을 기쁘게 하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이란 무엇입니까 우리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잔치에 초청 받은 사람입니다. 그 때문에 즐겁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 기쁨에 내 마음을 바치는 것이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초청 받은 사람들의 거절>
본문의 잔치는 누구의 잔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모든 것이 다 준비된 큰 잔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풍성한 음식에 좋은 풍악도 갖추어 모든 것을 준비하였으니 함께 기뻐하자는 것입니다. 강권하여 데려다 가도 내 집을 가득 채워 함께 즐기자는 것입니다. 이 주인의 마음은 거기에 있습니다. 단지 함 모여 같이 즐기고, 같이 기뻐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더불어 기뻐하자는 일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사양하며 불응한다는 것입니다. 사양의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밭을 샀으매 가 보아야 겠다고 합니다.
이는 내 사업이 바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 잔치는 당신이나 기뻐할 것이고 나는 내 사업이 먼저이기 때문에 당신의 잔치에는 못 가겠다는 이야기입니다.

2.두번째 사람은 소다섯겨리를 샀으매 시험하여야 겠으니 못 가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지금은 자치에 참석할 때가 아니라 소를 시험할 때이며 나를 위해서 써야 할 시간인데 당신을 위해서 시간을 쓸 수가 없다는 마음입니다.

3.세번째 사람은 나는 장가를 갔으니 못 가겠다는 것입니다.
내 기쁨이 한창인데 남의 기쁨, 남의 잔치는 아랑곳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신명기24:5"사람이 새로이 아내를 취하였거든 그를 군대로 내어 보내지 말 것이요 무슨 직무든지 그에게 맡기지 말 것이며 그는 일년 동안 집에 한가히 거하여 그 취한 아내를 즐겁게 할지니라"

이상의 세 사람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부 자기중심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내 사업이요, 내가 하여야 할 일이 따로 있고, 그리고 내 기쁨이 따로 있기 때문에 당신의 잔치에는 못 가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오기를 거절할 때, 주인은 화가 나서 종에게 명하여 빨리 시내와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가장 불행한 사람들, 오라고 말 한 마디면 고마 와서 감지덕지할 사람들을 데리고 오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장가가서 한창 좋은 그런 사람은 그만두어라. 밭을 샀다는 돈 많은 그 사람은 그만두어라. 출세하여 이름 높은 아무개도 그만두어라. 그저 배고픈 사람, 자기 몸뚱이를 가누기에도 어렵고 힘든 그러한 사람을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는 말씀입니다.
주인의 마음은 기어이 손님을 꽉 채워 놓고 시작한 잔치를 성대하게 끝내야만 되겠다는 것입니다. 주인의 마음은 절대로 실패할 수 없다는 것으로 간절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 진리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준비된 잔치에 부름에 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슬픔도 많고, 내 공통도 많지만, 그러나 이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야 겠습니다. 내 문제, 내 처지, 내 기분을 앞세우려 들지 말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교회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여 그 잔치, 그 주인의 기쁨에 내 마음을 바치게 되면 상상밖의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이러한 약속과 이러한 기쁨이 있는 축제는 마음으로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큰 잔치에 부름 받았다고 하는 유일한 자격을 가지고 부족하기를 말하면 가난한 자요 절름발이요 병신 소경이지만, 그러나 이 초청에 응함으로써 하늘나라 잔치에서 영원한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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