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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 예수 그리스도 (빌 0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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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의 제목이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신구약 성경에 주님에 대하여  예수에 대하여  그리스도에 대하여 여기만큼 자세하게 말씀하신 곳도 없는  것 같다.

오늘 본문은 빌립보서의 절정이라고 말할수 있을 것 같다.

우리들은 오늘까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면 서도 이 땅에 오셔야했고 또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일들에 관하 여 생각해 왔다.

1,지극히 높은 이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어서 인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상에서 죽으신 그 죽음으로 그의 모든 생을 마감하시었다면 우리는 지금 이렇게 모여 예배같은 것을 드리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는 어두움으로 꽉차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역사의 명맥을 이어 오고 있는 것은 빤짝이는 작은 살아 있는 빛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목숨을 나라를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던지신 분들 이 우리들 주위에 있다.

유관순처럼 이준열사나 안중근 의사처럼 ... 그러나 이런 일들은 기념의 대상은 될 수 있어도 섬김의 대상 즉 종교는 될 수 없는 것이다.

만약에 예수가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것으로 그의 모든 생애를 마감하고 말았다면 사람들의 기념의 대상은 될 수 있어도 섬김의 대상은 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들이 아니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찬송하고 경배를 드리고 있는 것은 예수께서 죽으신 것으로 끝을 낸 것이 아니고 다시 사신 것과 또 승천하신 것과 지금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것과 장차 재림의 주로 오실 분이시기에 그분의 이름이 찬양과 경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공자도 석가도 다 위대한 삶을 사신 분들임에는 틀림 없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살다가 그대로 가신 것 그것이 전부이다.

지난 3일에 개천절이라면서 대종교와 한얼교 등 여러 단체들이 단군 오신 4324년의 행사를 가지는 것을 우리들은 보았다.

그러나 단군의 이야기를 실제라고 믿는 사람도 지극히 드물다. 설사 단군이란 분이 있었다고 가정을 하더라도 이미 흙으로 돌아가고 다 끝난 이야기일 뿐이다.

차라리 단군을 섬기느니 인류의 시조 아담을 섬김이 더 낳을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섬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실은 존재자체 는 물론이거니와 생애자체가 저들과 비교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또 하나님 자신이시면도 신이시면서도 마땅히 누려야할 신적인 권리 일부를 포기하시고 하나님의 뜻인 인간 구원을 위하여 인간의 모습으로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취하 신 것과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 예수 그 리스도를 세상의 모든 이름 위에 지극히 높히신 것이다.

9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구약성경에 보면 애굽의 바로 왕이 요셉의 영특함에 반하여 그에게 자기 다음가는 지위를 주어 애굽을 다스리게 했던 일이 있다.

바벨론 때에 다니엘도 그런 영광을 얻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그들의 죽음과 동시에 영광도 사라진 것이고 또 모든 이름 위에 이름은 더더욱 아닌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란 이름은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이다.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모든 이름 위에 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 이름에는 생명이 있다.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됨  능력이 있다. 예수의 이름으로 병마가 물어간다.  사랑이 있다. 예수의 이름으로 구속함을 받은 것임  위로가 있다.

<< 부시의 이름으로 고르비의 이름으로 생명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나라도 상속함을 받는 것이다.

이렇게 위대한 이름은 이 세상엔 없다. 이런 이름을 가지신 분은 단 한 분박에 없다.

그 이름이 우리들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2,모든 무릎을 꿇게 하신 이름

10절에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여기서 하늘에 있는 자들은 천군천사를 비릇한 하늘에 있는 모든 것들이며 또 땅에 있는 자들은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들을 말하고 땅아래 있는 자들은 마귀와 사탄을 비롯하여 지옥의 자식들을 총 망라한 것들이다.

이 말은 우주에 있는 모든 생명이나 사물이나를 가릴 것 없이 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아래 있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 엄격하게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다스리시고 내 가정을 다스리시고 우리들의 산업 을 다스리시고 계신 다는 것 얼마나 축복된 일인가

또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무릎들로부터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심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힘찬 찬송으로 하나님께 연광을 돌려야 한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감사를 드려야 한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3,주 예수 그리스도

11절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 11 절의 말씀은 신약성경을 대표할 수 있는 구절 중 하나이다.

이 구절 속에는 하나님의 목적과 꿈과 뜻이 다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을 하고 있는가 시인하고 있으시다면 어떤 주로 시인하고 있는가

초대 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했던 배경을 오늘 우리 도 이해해야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주라는 말은 "퀴리오스"란 말이다.

당시 주라고 호칭이 되었던 대상은 단 한 사람인 로마의 황제 씨져 뿐이 었다.

또 헬라 사람들이 자기들의 섬기는 신을 호칭할 때 주 즉 "퀴리오스 " 라고 불렀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10 계명 중 3 계명에 "여호와 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아니하리라" 라는 계명 때문에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을 하지 않았다.

성경을 읽어가다가 여호와라는 단어가 나오면 그때도 여호와라고 읽지 않고 "아도나이"라고 읽어 내려 갔다.

바로 이 아도나이가 퀴리오스 즉 주인 것이다. 퀴리오스는 바로 하나님을 호칭함이었다.

그래서 이 퀴리오스란 호칭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11절을 다시 본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 리게 하셨느니라"

모든 입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한다는 것은 퀴리오스가 곧 하나님 과 본체이심을 증명하는 것이다. (6절)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만주의 주가 되시고, 만왕의 왕이 되시고, 전 생명체의 경배의 대상이 되시는 것이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라고 시인을 하시는가 하신다면 "아멘" !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주라는 칭호 속에는 또 한 가지의 놀라운 사실이 내포되어 있다. 주 = 통치자 통치는 주님의 재림으로 완성이 된다는 사실을 아셔야 한다.

사도 바울의 서신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가 되신다는 사실과 함께 늘 재림과 결부를 시켰던 것을 잊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을 하시는 분이라면 그와 동시에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셔야 한다.

초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가 되신 다는 것을 시인함과 아울러 재림의 신앙을 가졌기에 저들이 당하는 모든 역경을 또 순교까지도 능히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 재림의 신앙은 소망과 승리의 표상인 것이다. 그래서 초대 교회 성도들은 아에 인사할 때도 "마라나다"(고전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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