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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벽에 도우시리로다 (시 46:1-5)

첨부 1


새해 첫날 첫새벽 첫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시인은 시편 46편에서 하나님을 도우시는 하나님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도움이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돕는 사람의 양자관계에서 성립됩니다.
그리고 도움이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물질적인 도움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적인 도움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겐 빵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빵보다 더 필요한 것은 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물질적인 도움도 필요하지만 정신적인 도움이 더 소중한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새벽에 나를 도우신다고 노래했습니다.
시인이 노래하고 있는 도우심은 영적인 것입니다. 이유는 영적인 것, 신령한 것이 물질이나 정신적인 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건강한 것, 돈많은 것, 오래사는 것, 편안한 것을 축복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다음과 같은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변수가 있습니다.
마치 수학에서 0하나 더하고-1을 했을 때 그리고 더하거나 곱했을 때 계산이 달라지고 변하는 것처럼 건강도 돈도 행복도 변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가난이 찾아오고 질병이 찾아옵니다. 재난이 덮이고 불행이 쳐들어 옵니다. 예견도 못했고 예측도 못했던 일들이 찾아옵니다.
둘째 유한합니다.
3대나 4대를 물려가는 부자는 많지 않습니다. 당대는 가난했지만 자식대는 잘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당대는 잘 살다가 자식이나 3대에 이르러서는 가난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젊었을 땐 건강하다가 늙으면서 병만 남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릴 때는 병치레로 자랐지만 어른이 된 뒤에는 건강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행복도 들쑥날쑥한 것이어서 꾸준하게 일생동안 행복이 곁에 머물러 있진 못합니다. 세상 조건은 영원성이 없습니다.
셋째 일관성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은 좋은데 돈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은 많은데 건강이 나쁜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을 잘 되는데 자식들이 속을 썩입니다.
한 사람이 모든 행복의 조건을 골고루 그리고 일관되게 누리거나 소유할 수 없는 것이 세상 행복입니다.
흔히 장수를 복이라 부릅니다만 도대체 얼마를 살아야 장수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100살 아니면 200살입니까
돈많은 것을 복되다고 말합니다만 얼마 정도를 가져야 부자입니까 사람의 욕망은 끝도 없고 한도 없어서 더 살고 싶고 더 가지고 싶고 더 누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들 신령한 축복은 만족과 감사와 감격으로 시작됩니다. 우리는 시인의 고백 속에서 간과해선 안될 것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힘센 장사를 보내시거나 다른 사람을 보내서 도우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시며 힘이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보내신 그 어떤 사람(Helper)을 만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우리의 결정적 고백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사람들은 죽고 사는 것, 흥하고 망하는 것, 잘 살고 못 사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 입니다.
비유하면 혼수감과 같은 것입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사람이 중요하지 혼수감이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배우자의 사람됨보다는 혼수감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부분적인 것 때문에 본질적인 것이 소홀히 취급되거나 과소평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새해 첫아침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사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 삶의 태도를 재점검하고 확인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금년 한해를 살아 나갑시다.

1 감사하며 삽시다.
내가 받은 도움을 일일이 셈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수천만 가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큰 도우심은 내 영혼이 구원받은 사건입니다. 하나 하나 감사한 사건들을 생각합시다.
제 아무리 어둡고 깜깜한 밤중이라도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느라면 한두 개의 별을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겪고있는 불행이나 절망이 칠흙같이 어둡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사랑을 생각한다면 감사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외양간에 소가 없고 무화과 나무에 과실이 없어도 여호와로 인하여 찬송하리라던 하박국처럼 감사하며 삽시다.
“주님 감사합니다”

2 서로 격려하며 삽시다.
격려란 상대방의 존재나 수고를 인정할 때 가능합니다. 그리고 격려의 인사말은 그 공동체를 훈훈하고 정겹게 해줍니다. 격려야말로 그 사람의 따뜻한 마음씨의 표현인 것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잘 하셨습니다라는 이 한마디 표현때문에 자신도 흐뭇하고 상대방도 기분이 기분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회사의 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회사의 직원들의 업무에 대해 조언이나 격려 그리고 칭찬을 전혀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경영하고 있는 회사의 경리부장이 자살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자살 소식을 듣는 순간 사장은 먼저 부정이 떠올랐습니다. 혹시 경리부정을 저지른 것은 아닐까...라고.
그러나 회계장부는 완벽했고 빈틈이 없었고 정확했습니다. 그는 미혼남이었습니다. 며칠 뒤 사장 앞으로 자살하기전 보낸 경리부장의 편지가 우송되었습니다. 그 편지에는 “나는 30년 동안 당신에게 단 한번도 따뜻한 격려의 말 한마디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이제 지칠대로 지쳤습니다. 더이상 버틸 힘이 없습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와 반대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일본의 한 작은 마을에 교회를 개척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안내장을 찍어 부부가 집집마다 찾아 다니며 돌렸습니다. 그러나 주일이 되었지만 교회로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기를 한 달이 지났습니다. 목사님은 낙심에 빠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보낸 사람은 주일하교 2학년 어린이였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이 바람불고 추운 날 집집마다 편지를 돌리고 있는 것을 여러번 보았습니다. 감기나 안드셨는지요.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 이야기를 들으면 참 좋을텐데요. 저는 잠자리에 들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드려요”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목사님은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용기가 솟아 났습니다. 그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교회 간판을 떼고 교회개척을 포기하려던 목사님은 2학년 어린이의 편지에 백만 대군을 얻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는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철없는 어린이의 격려 편지 한 장이 없어질뻔한 교회를 존립시켰던 것입니다.
서로 격려하며 삽시다.
“수고하셨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잘해 봅시다”라고 말합시다.
오늘부터 단점을 보려고 애쓰지 맙시다.
칭찬합사다.

3 좋은 점을 보며 삽시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기사가 나옵니다. 그런데 매일 창조사역이 끝날 때마다 “여호와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와 하나님이 계시는 세계는 모든 것이 좋은 것입니다.
심지어 비극도 절망도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점, 좋은 쪽, 좋은 것들을 보도록 눈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마귀 유혹을 받은뒤 부터 사람들은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떠나면 나쁜 점이 보이는 것입니다.
좋은 점을 보며 삽시다.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 좋은 점을 보는 것입니다. 장점은 제쳐놓고 단점만 찾는다면 함께 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이쁜 며느리, 이쁜 사위, 멋진 친구, 이 모두다 좋은 점을 볼 때 가능합니다. 단점이나 허물이나 약점을 보고 그것을 찾고 밝히고 산다면 얼마나 인생이 고달프고 피곤하겠습니까 좋은 점을 보고 삽시다. 서로 좋은 점을 찾고 그것을 칭찬해 줍시다.
미국의 클라라 존스 스캇 여사가 지은 찬송 가운데 다음과 같은 찬송이 있습니다.
“어두운 내 눈 밝히사 진리를 보게 하소서
진리의 열쇠 내게주사 참빛을 찾게 하소서
깊으신 뜻을 알고자 엎드려 기다리오니
내 눈을 뜨게 하소서 성령이여”
좋은 점을 보고 좋은 것을 듣고 좋은 것을 말하며 삽시다.

4 긍정적으로 삽시다.
됩니다, 하겠습니다, 해봅시다, 합시다를 말하는 사람과 안됩니다, 못합니다, 안합니다, 싫습니다를 말하는 사람은 그 삶의 결말이 다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믿음과 하나님이 나를 도우신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쉽게 포기하거나 부정하지 않습니다.
사소한 언어 표현부터 고칩시다.
“아이고 죽겠네(배고파, 피곤해...), 힘들어 못해 먹겠네, 다 틀렸네, 싫어요, 안해요, 몰라요,”등 부정적인 언어 표현을 하지 맙시다.
반대로
“됩니다, 하겠습니다, 합시다, 좋습니다, 노력합시다, 해봅시다, 가능합니다”라는 표현으로 바꿉시다.
사업도, 교회봉사도, 가정생활도, 장사도, 긍정적 인생관과 마음가짐으로 합시다. 긍정적 신앙으로 근정적 인생을 살기 바랍니다.

5 영원한 도우심을 요청합시다.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도우심은 부산 내려가는 기차표 값이나 어느 날 점심 식사값이 아닙니다.
영원한 나라에까지 나를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영혼을 굶주리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금년 한해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과 함께 삽시다.
우리에겐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주여, 금년 한해
그리고 영원히 함께 하여 주소서.
하나님이여 도우시고 함께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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