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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피조물의 탄식소리 (롬 08: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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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방송의 모 기상캐스터는 계속된 가뭄을 가리켜 “과거의 기상기록을 휴지로 만들어 버렸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기상이변이라는 것입니다.
전같으면 일본 큐슈지방에서 이동 중인 태풍이 동해안으로 이동 중 앞으로 3일이면 제주도와 동해안을 강타할 것이라는 기상예보가 있게 되면 제발 태풍이 멀리 달아나 주기를 바라는 것이 예사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는 태풍을 학수고대 했습니다. 6천여개의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냈고, 선풍기 에어컨은 3년전 재고까지 다 팔렸다고 합니다.
대청호에서는 수십만 마리의 빙어떼가 떼죽음을 당했고, 농작물은 선 채로 메말라 죽어 버렸습니다. 닭장에선 닭들이 늘어진 채 죽었고, 길바닥엔 더위를 견디지 못한 자들이 수십 대씩 시동이 꺼진 채 서있었습니다.
금년 여름 더위는 한국만의 경우는 아니었습니다.
뉴욕은 50년만에 찾아온 더위로 찜통을 이뤘고 네바다 주는 섭씨 52도를 기록하는가 하면 캘리포니아 남부지역에서는 얼음공장에 얼음이 떨어질 정도였습니다.
중국의 북경, 상해, 연변, 도문 역시 불볕 더위로 찜통을 이뤘고, 홍콩이나 일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현상들을 바라보면서 피조물의 탄식이라는 본문이 생각났습니다. 사람도 신음하고, 짐승도 신음하고, 초목도 신음하고 있는 것 바로 이것이 피조물의 탄식소리인 것입니다.

1. 왜 피조물이 탄식하게 되었을까요.
22절을 보면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함께 다 탄삭하며 고통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21절을 보면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노릇 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즉 죄와 육체의 종노릇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피조물인 인간이 죄를 범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기사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목할 것은 하루하루 창조사역이 끝날 때마다 “여호와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2장을 보면 에덴동산을 만드신 후 아담과 하와의 주거지로 주신 기사가 나옵니다.
2:9을 보면 “보시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셨다”고 했고 2:10을 보면 강이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 발원한 비손강, 하윌라강, 기혼강, 핫데겔강이 굽이쳐 흘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각종 지하자원이 풍성하게 매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3:18을 보면 “땅이 네게 가시덤불이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1장의 아름다운 자연이 3장으로 넘어오면서 박토로 변해 버립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창세기 3:19입니다.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긴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자연이 파괴되기 시작했고, 인간 자신도 죽음을 겪는 비극적 존재로 전락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피조물의 탄식소리는 인간의 탄식소리이며, 인간의 탄식소리는 그가 저지른 죄값이라는 것입니다.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이 썩어 악취가 나고, 깊은 산 개울가 할 것 없이 쓰레기로 가득차 돗자리 펴고 앉을 자리가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강이 저절로 썩고 개울이 저혼자 더러워집니까 아닙니다. 사람이 먼저 썩고 그들이 버린 썩은 것들이 산과 강과 개천과 땅을 썩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7월 21일 중국 도문시를 방문했습니다. 도문시는 두만강을 경계로 함경도와 인접한 국경도시입니다. 도문시 직원들의 안내로 국경 초소에 올라가 북녁땅과 두만강을 바라보았습니다. 걸어서 10분 정도면 건너갈 수 있는 다리가 있었습니다만 아무나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다리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두만강물 역시 탁류였습니다. 그리고 김 정구씨가 노래한 노젓는 뱃사공도 거기엔 없었습니다.
두만강물이 오염되는 것은 아오지 탄광에서 쏟아져 내리는 폐기물과 폐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곳 그리고 그 심성이 타락한 사람들이 사는 곳일수록 자연이 탄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버리는 라면 비닐봉지는 땅속에서 500년 동안 썩지 않는 다고 합니다. 나무 젓가락은 250년이 되어도 썩지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무렇게나 버리는 건전지들은 이땅을 수은중독증에 걸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기상이변도 따져보면 자업자득입니다.
겨울이면 시베리아에서 형성된 차고 건조한 공기가 찾아오고 가을이면 동북쪽의 오호츠크해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때문에 청명한 가을이 이뤄집니다.
봄이면 중국 양자강에서 훈풍이 불어오고,
여름이면 북태평양으로부터 무더운 바람이 불어옴으로 4계절의 순환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게절의 순환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원인 역시 사람입니다.
열대림 남벌로 인한 사막화 현상, 오존층의 파괴, 대기오염, 바닷물 온도의 상승 등이 주원인인데 그 원인 제공자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린 흔히 선진국을 GNP로 측정합니다. GNP가 높은 나라를 선진국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선진국은 대부분 자연보존이 잘된 나라들입니다. 그 나라들은 강이나 개천에서 비누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습니다. 물고기도 싹쓸이 해서 잡지 않습니다. 살인적 매연을 내뿜는 차를 몰고 다니지 않습니다.
본문 22절 말씀대로 피조물이 함께 고통하고 탄식하는 것은 피조물 가운데 으뜸으로 창조한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요즈음은 오존병이 유행한다고 합니다. 오존병이란 자동차 매연에서 다량배출되는 질소화합물이 강한 햇볕이 내려쬐면 자외선 반응해 새로운 오염물질을 생성시킨다는 것입니다.
오존병은 식물을 말라 죽게하고 눈병, 피부병,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며 플랑크톤도 소멸시킨다고 합니다.
미국의 [샌드라 포스텔 월드워치 연구소]의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70년대 세계가 오일쇼크로 흔들렸던 것처럼 90년대에는 물부족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물부족 현상은 중동평화를 깨뜨릴 것이며, 세계식량 안보를 위협할 것이며, 산업시설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물부족 현상은 자연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활동에 의해서 초래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원인은 사람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그렇게 만든 것이 죄와 타락입니다. 그 문제가 해결될 때 탄식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2. 해결방법은 무엇입니까
23절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가 되어 몸이 구속받는 것이라”고 했고, 24절을 보면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라고 했습니다. 해결의 방법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선진국은 자연환경 보존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만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는 나라들은 대부분이 기독교 국가들입니다. 미국, 영국, 스코틀랜드, 스웨덴, 스위스, 독일, 덴마크, 노르웨이, 호주, 뉴질랜드 등.
사람이 살면서도 자연보존이 가능한 나라들은 대부분 기독교 정신을 가진 나라들입니다.
왜 기독교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을 사랑하고 보존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선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8을 보면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과 피조물들을 제대로 관리하고 다스리라고 하셨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함부로 관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연이 바뀌려면 사람이 바뀌어야 합니다.
담배 꽁초나, 씹던 껌, 코를 훔친 휴지를 길바닥에 함부로 버리지 않는 시민정신이 확립됐을 때 민주주의나 민주화는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 저 개인의 소신입니다.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덴마크는 바이킹들이 지배하던 나라들입니다. 바이킹은 해적들입니다. 바다를 주름잡고 약탈을 일삼으며 폭력과 야만적 행동을 일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주후 1080년 기독교의 복음을 받아 들였습니다. 그독교의 복음은 저들의 마음을 순화시켰고 문화민족으로 거듭나게 했습니다. 그 결과 저들은 행동과 가치와 삶이 변했습니다. 그리고 일등국가가 되었고 일등국민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해봅시다.
유교나 불교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민족계몽이나 선진도약에 끼친 영향이 무엇입니까
기독교는 전래된 역사는 짧습니다만 이 민족역사와 국가발전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습니다.
앞으로 더욱 기독교의 할 일은 많고 무겁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묻은 십자가는 모든 피조물의 탄식소리를 그치게 합니다. 그리고 찬송소리로 바꾸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탄식소리를 그치게 해주십니다.
첫째, 개인의 탄식소리를 그치게 해주십니다.
성경을 보면 신음하던 사람들과 슬피울던 사람들과 가슴에 맺힌 응어리 때문에 고통받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고침받고 문제를 해결한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죄로 죽어가던 영혼들이 죄사함받고 새사람된 이야기가 수도 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둘째, 가정의 탄식소리를 그치게 해주십니다.
부부관계 때문에, 자녀문제 때문에, 동기간의 갈등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탄식하는 가정들이 있습니다. 그 탄식소리가 그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 모신 가정은 탄식소리가 노랫소리로 바뀝니다.
셋째, 자연의 탄식소리를 그치게 해주십니다.
제아무리 최첨단 과학의 힘이 위대하다고 해도 그 힘만으로 자연을 정복하거나 통치하진 못합니다. 인간의 심령이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나고 새롭게 되기만 한다면 그래서 우리 모두가 자연의 청지기 들이 된다고 병들고 죽어가는 자연을 다시 살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넷째, 역사의 탄식소리를 그치게 해줍니다.
찬송가 79장 가사가 생각납니다.
[이방이 떠들고 나라들 모여서 진동하나 우리 주 목소리 한번 발하시면 천하에 모든 것 망하겠네 만유 주 여호와 우리를 도우니 피난처요 세상에 난리를 그치게 하시니 세상의 창검이 쓸데 없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역사는 탄식하는 역사가 아닙니다.
러시아는 70년 동안 하나님 몰아내고 공산주의만으로 잘 살아 본다며 버티다가 망했습니다.
북한의 김 일성도 하나님 없애고 자기가 신노릇하며 지상낙원 만든다고 떵떵거리다가 북한을 저모양으로 만들어 놓고 자신은 죽었습니다.
역사의 신음소리는 하나님없는 신음소리입니다. 그러나 그 민족, 그 역사가 하나님을 영접하면 탄식소리가 그치게 됩니다.
지금도 탄식하는 사람들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크신 이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리고 탄식소리가 기도와 찬송과 감사소리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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