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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수아와 갈렙 (수 1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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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본문개관
갈렙은 히브리인이 아니다. 그는 ‘그니스사람 여분네의 아들’이라고 소개되었다. 창세기 15:19에 의하면 그니스 족속은 아브라함시대 가나안 족속중의 하나였다. 당시 갈렙의 가족은 그니스사람 헤벨과 마찬가지로(삿4:17)모압사람 룻(룻1:1-5), 헷사람 우리아(삼하 11:3,6,24) 등과 같이 이스라엘의 계약과 축복과는 본래관계가 없었다. 출애굽을 하기 전 그니스사람의 일부가 유다 지파와 합류했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들의 믿음은 히브리민족과는 달리 혈통에 의한 것이
아닌 확신의 결과였다. 갈렙의 일생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갈렙에 대한 이러한 배경은 메세지의 방향설정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명령’에 따라 약속받은 땅을 나누는 일을 하고있다. 여호수아 14장의 상황은 갈렙을 포함한 ‘아홉지파와 반 지파’에게 제비뽑기 방식으로 땅을 나누는 날이었다. 제일 먼저 유다지파 부터 시작되었다. 갈렙은 자신이 소속된 유다 지파의 제비뽑기에 앞서서 여호수아에게 한 가지의 제안을 한다. 그의 제안은 모두를 깜짝 놀라게하는 내용이었다. 남은 여생을 어떻게 조용히 보낼수 있을까를 생각할 나이가 갈렙의 실정이었다. 그런데 그는 모두가 정복을 포기한 아낙족 거주지를 요구했다. 아낙족은 거인이었다. 그들은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조건이 좋은 장소를 점하고 있었다.

헤브론이라고 불리우는 기럇아르바는 45년전 이스라엘의 열 두 정탐군에 의해 가장 조건이 좋은 장소로 판명된 곳이었다. 그곳에는 거대한 포도가 재배되고 있었다. 이 땅을 살핀 열두명은 두 종류의 보고를 하였다. 열명은 이 땅을 좋은 곳이라는 점에는 인식이 일치했지만 그곳에는 거인들이 살고 있어서 자신들은 메뚜기 만하다고 스스로를 약소하게 업신여겼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들은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들이 힘도 강하고 모든 면에서 유리한 것만은 사실이지만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자신들이 승리할 수 밖에 없노라고 확신했다. 갈렙은 지난 45년전의 약속을 결코 잊지 않았다.

지금 갈렙의 지도자는 45년전의 동료였던 여호수아다. 그도 역시 두명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갈렙의 요구를 거절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갈렙의 나이다. 그의 나이는 이미 황혼기를 넘겼으니 말이다. 즉, 현실적으로 도저히 실현 가망이 없는 불가능한 요구였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이 믿음이다. 현실을 촉월하는 것이 믿음이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수없는 것을 할수있게 하는 것이 믿음이다. 그러나 믿음과 망상은 다르다. 믿음은 반드시 ‘약속’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망상은 단순히 자신만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갈렙의 믿음은 약속에 의한 것이었다.

갈렙의 믿음은 45년이라는 세월이 가로막을수 없었다. 그의 나이는 피끓는 40세에서 황혼을 바라보는 85세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의 꿈만은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꿈이 믿음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45년은 결코 짧지않은 긴 세월이었다. 한번뿐인 인생의 절반이라는 긴 세월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생이 짧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래서 지나친 욕심과 기대를 키우며 산다. 자신의 일생을 통해 하나님의 기적을 여러번 체험해야 한다고 과욕을 부린다. 그렇기 때문에 실망을 해야한다. 인생은 짧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에서 ‘한 번’의 기적을 체험하면 된다. 갈렙은 묵묵히 45년을 준비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그는 큰 기적을 체험했다. 그는 불가능을 정복했다. 기다린 사람에게는 85세의 나이가 장애물이 될수 없다.

2.본문의 교훈
어떤 세계관을 소유했는가 어떤 사고방식인가 갈렙은 영적인 안목인 탁월했다. 그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는 비록 혈통으로는 아브라함과 상관이 없지만 영적인 믿음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그는 믿음의 능력을 증명한 증인이다. 그는 분명히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은 약속과는 상관이 없는 자였지만 세레요한의 말처럼 ‘천국을 침노하여 소유한 자’가 되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약속대로 약속에 속한 여호수아 한 사람만을 열두지파의 대표로 세우셨음을 생각할 때 갈렙에게 주어진 축복은 대단한 것이다. 하나님은 약속에 속한 자와 믿음에 속한자를 공평하게 1:1로 선발하셨다. 여호수아는 약속을 보장받은 자를 대표하였고 갈렙은 믿음으로 사는 자를 대표하고 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갈렙 두사람이 긍정적이며 확실한 믿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명의 부정적인 사람들 때문에 응답을 45년후로 연기하셨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는 45년후가 정해진 하나님의 시간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진행하신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을 받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은 버림을 받는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참고 인내하는 사람이다. 더 정확한 표현은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시간표를 읽을줄 아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시간표를 읽는 사람은 급한 것이 없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 목표가 없는 인생은 슬기로운 인생이 아니다. 기업에도 목표가 있고 국가에도 목표가 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도 목표가 있다. 어떤 목표는 촉과 달성돼기도 하고 어떤 목표는 미달되기도 한다. 그러나 초과달성했다고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니며 미달했다고 낙심할 것도 없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에 근거한 목표였는가 하는 평가다. 좀더 구체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과연 타당한 목표였는가 부끄러운 목표는 아니었는가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만한 내용의 목표였는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실패는 얼마든지 있다. 불가능도 수없이 많다. 낙심할 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실패는 없으며 불가능도 없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한다면 그는 실패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이용을 당할 때 그의 삶에는 놀라운 풍요가 있다. 갈렙의 나이는 85세 였다. 그런데 그는 20대의 청년과 씨름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 조지 포먼이라는 미국의 권투선수는 50을 바라보는 중년이다. 그는 지금 목회자다. 20대 시절 챔피언 생활을 했었다. 은퇴하고 신학을 공부하여 목회자가 되었다. 그리고 가난한 빈민들을 위한 특수목회를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많은 자금이 필요했다. 그래서 일차족으로 기도하던중 성령의 인도를 받았는데, 그것은 ‘다시 글러브를 껴라’하는 음성이었다. 그래서 그는 40을 넘긴 나이에 다시 링위에 올랐다. 모두가 깜짝 놀랐고 성급한 사람들은 비웃었다. 한마디로 정신이상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포먼은 경기마다 승리했다. 그것도 완벽한 K.O승을 거뒀다. 그는 지금도 그의 신념을 간직하고 있다. 그는 결코 자신을 위한 복싱이 아니라 구제를 위한 복싱을 하고있다.

우리는 무조건 혼동하려 한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신념론의 노예된 자들이 많이 있다. 문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하는 문제다. 갈렙은 그의 나이 40세때 헤브론의 풍요로운 들판을 바라보며 미래의 환상을 보았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들을 위하여 이 땅을 예비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자신들을 결코 그 땅으로 인도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 땅으로 정탐을 보내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실 따지고 보면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은 평범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믿음이 결코 탁월한 믿음이라고 치켜 세울수만은 없다. 그들이 살아온 것에 비하면 가나안의 정복은 기정사실이었으니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으신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것을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믿을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신다. 그런데 문제는도저히 믿지 않으려는 불신의 노예된 자들이다. 열명의 정탐군들은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무조건 안된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결코 이들에게 ‘남자가 여자로 변하는’ 요술을 믿으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 ‘어린이가 몇년 후면 어른이 되는’ 정상적인 사실에 대하여 믿으라고 한 것뿐이다. 그러나 갈렙의 믿음이 그냥 평범하기만 한것은 아니다. 그의 나이 40세때 아낙자손과 싸우겠다면 그냥 평범한 신앙이다. 그러나 지금 85세의 노인이 아낙이라는 청년과 같은 적과 싸우겠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믿음인가 아낙은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아예 이스라엘에서 정복을 포기한 민족들이었다.

참 신앙은 그냥 평범한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갈렙처럼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분’이라고 믿는 믿음이 바로 참 신앙이다. 아니 차라리 40대의 나이에 아낙과 싸우겠다면 그것은 궂이 믿음이 아니라도 사나이로서 한 번 해볼만한 용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45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변함없이 유지됐다는 사실이 우리가 주목해야할 부분이다. 우리는 뜨거울 때는 이렇게 저렇게 나름대로 하나님과 약속을 한다. 하나님이 나에게 무슨 약속을 주시는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하나님과 약속을 정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서 나 자신이 일방적으로 정했던 하나님과의 약속은 까마득히 잊혀지고 만다. 그냥 그럭저럭 살아가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그것이 갈렙과의 차이점이다.

갈렙은 결코 자신이 일방적으로 하나님에게 무엇을 요구하거나 통보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을 뿐이다. 사실 믿음이란 하나님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그는 비록 자신의 나이는 늙었어도 하나님의 능력은 늙지 않았음을 알았다. 변하는 것은 인간이지 하나님이 아니다. 믿음은 알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실천이다. 갈렙은 그냥 마음에 담고 끝낸 것이 아니라 믿음을 사용했다. 기적은 믿음을 사용할 때 이뤄진다. ‘네가 밟는 땅을 네게 주리라’했으므로 그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땅을 선택했다. 그 땅은 저절로 차지하게 되는 것도 아니며 남이 선물하는 것도 더욱 아니다. 자신이 차지해야 한다.

무조건 목표를 정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다. 먼저 환상을 봐야 한다. 갈렙은 먼저 가나안 땅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본 사실을 믿었다. 그것을 그는 45년이라는 테스트 기간을 거쳐서 변함없는 신앙으로 실천에 옮겼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가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둔하다. 그리고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냥 일방적으로 하나님을 이용하려고만 한다. 자신의 욕심이 하나님의 뜻이고 자신의 희망사항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착각을 일으킨다. 그러다 보니 참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쉽게 낙심하고 쉽게 상처받고 쉽게 하나님을 배반한다. 과연 나의 목표는 45년을 기다릴만 한가 지금 나의 목표가 45년후에 이뤄진다 하여도 견딜만한가 제일 중요한 것은 일단 하나님으로 부터 듣는 것이다. 비젼을 제시받아야 한다. 그리고 기다려야 한다.

비젼을 제시받고 기다리는데 언제까지 기다리는가의 문제도 중요하다. 갈렙은 그 시기를 알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하나님의 시간표를 읽는 남다른 안목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시간표를 읽는 안목을
주신다. 갈렙은 주어진 기회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38년간의 광야 방랑이 끝난 후 7년간 계속된 정복기간을 끝까지 기다렸다. 결코 성급하게 미리 나서지 않았다. 그는 믿음이 없는 연합군들과의 동맹을 원치 않았다. 왜냐하면 가나안의 대부분은 열두지파 연합군이 정복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 갈렙이 원하는 헤브론은 미정복 상태였다. 그는 믿음으로 정복했다. 불가능은 정복해야 한다. 인간의 의지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정복해야 한다.

약속을 받고, 기다리고, 때가 왔을 때 망설이지 말고 실천하는 것이 바로 불가능을 정복하는 비결이다. 갈렙의 신앙도 아브라함과 유사한 점이 많이 있다. 아브라함의 신앙이 특별하지 않았던 것처럼 갈렙의 신앙도 결코 특별하지 않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우리들도 갈렙처럼 살수있다. 우리들도 갈렙처럼 불가능을 정복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분명히 믿는자는 기적을 체험한다.
믿음의 눈을 갖자.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시간표를 읽자.
인간은 늙고 변하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늙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느 시대나 믿음의 사람을 사용하신다.
순종하는 자는 기적을 이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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