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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벧엘의 젊은 아이들 (왕하 02:23-25)

첨부 1


I. 역사의 현장 벧엘

열왕기하 2장 23절에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란 뜻을 가진 유서 깊은 역사의 고장이었습니다. 원래의 이름은 루스(Luz)였는데, 야곱이 이곳에 야숙하면서 돌 베개하고 잠자던 중 하나님을 만난 후, 그곳에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벧엘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이 죽은 다음 이스라엘 왕국이 남북으로 분열되었습니다. 이때 솔로몬을 반역한 여로보암은 열지파를 데리고 북쪽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남쪽 유다에 있는 성지 예루살렘과 맞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으로 향한 예배의 길을 돌려 벧엘과 단에 세운 금송아지 우상예배를 시작하게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 아니라 우상숭배의 중심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여리고에서 벧엘로 올라왔습니다. 그곳에는 금송아지 숭배와 대결하는 선지학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는 그의 스승 엘리야가 불수레와 불말들을 타고 산채로 하늘로 올라가신 후(왕하2:11), 그 스승의 영감을 갑절이나 받은 이후였습니다(왕하2:14-15).
그는 그 스승 엘리야가 경영하던 벧엘의 선지학교를 순방하던 길인것 같습니다. 정말 벧엘이 받은 축복이요, 영광이었습니다. 아마 그곳에 있던 선지생도들은 열과 성을 다하여 영능(靈能)의 새 지도자 엘리사를 열열히 환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금송아지 숭배로 전락해 버린 벧엘에 선지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사는 금송아지 숭배자들의 죄를 지적하고, 하나님 경외의 신앙을 갖도록 섭리하였습니다.
엘리사의 벧엘 방문은 이런 의미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생도들을 격려하고, 고무시키며, 새 지도자로 세움을 받은 자신이 엘리야를 대신하여 벧엘에 있는 선지학교를 계승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II. 배교의 죄를 범한 벧엘의 젊은이들

벧엘에 들어선 엘리사는 그곳에 살고 있던 젊은 아이들로부터 뜻밖에 큰 변을 당하게 됩니다. 열왕기하 2장 23절에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길에 행할 때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저를 조롱하여 가로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젊은 아이들이란 말 나아드()는 어린 아이에서부터 청년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단어였습니다. 애굽에 총리대신이 되었던 요셉에게 이 말이 사용되었는데, 그때 그의 나이는 30세였을 때입니다(창41:12, 15). 솔로몬이 젊어서 왕이 된 이후에 자신을 가리켜 아이라고 한 경우에도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왕상3:7). 그리고 히브리말에 미숙한 아이에 대한 단어는 따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벧엘의 젊은 아이들’이란 보통 선악을 분별하는 자의식을 가진 청소년의 경우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메튜헨리(M. Henry)나 루터(M. Luther)는 본문의 아이들을 길거리에 떼를 지어 놀고 있던 남녀 청소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이 엘리사를 조롱하여 말하기를 ①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일찍이 머리털이 빠져 대머리였던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머리가 벧엘의 젊은 아이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② 올라가라, 올라가라고 하였습니다. 아마 이 말은 너희 선생인 엘리야는 불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떠들어대는데, 너도 함께 올라가지 무엇 하러 여기에 왔느냐는 조롱입니다. 물론 그때 엘리야의 승천 사건은 그 근동에 큰 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벧엘의 젊은 아이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을 불신앙하고, 심지어 비꼬면서 조롱거리로 삼았습니다.
이러한 벧엘의 젊은 아이들의 소행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고, 경시하고, 배은(背恩)하고, 배신하는 배교행위에 해당됩니다. 저들의 배교행위를 분석해 보면,
첫째, 저들이 하나님의 사람을 조롱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사를 엘리야의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영감의 갑절을 허락하셨습니다. 그 증거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엘리야의 겉옷을 받은 엘리사가 요단강을 다시 쳤을 때, 그 강물이 갈라져 버린 사실에서 입증이 되었습니다(왕하2:14).
그후 하나님은 그를 여리고에 보내서 수원(水原)을 고치는 이적을 행하게 하였습니다(왕하2:15-22). 그리고 지금 벧엘로 보내신 것입니다. 벧엘의 젊은이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조롱한 것입니다. 그것은 곧 그를 보내신 하나님 자신을 조롱한 배교행위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거나, 그가 외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거나, 그 선지자를 욕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죄라고 하였습니다(대하36:16).

둘째, 저들의 배교행위는 계획적이었습니다.
저들의 배교행위가 계획적이었다는 사실은 본문에서 명백합니다.
그 하나의 증거는 합심 단합된 행동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저들이 .....이 성에서 나와서 저를 조롱했다(왕하2:23)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전에 계획된 집단적인 행동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그 두 번째 증거는 많은 사람들을 동원했다는 사실입니다. 저들은 42명 이상이나 되는 사람들을 동원했습니다(왕하2:24).
그 세 번째 증거는 조롱의 방법이었습니다. 그것은 일제히 대머리여 올라가라 올라가라는 것인데 일제히 함께 소리를 질렀습니다(왕하2:23) 결코 이러한 소행은 단순한 그리고 우발적인 소행은 절대 아닙니다.
그 네 번째 증거는 그 조롱의 내용이 가히 불신앙적인 도전이었습니다.
올라가라 올라가라고 하였습니다(왕하2:23).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권능으로 엘리야를 불수레와 불말들에 태워서 하늘로 올라가게 한 사실을 부인하고, 조롱하며, 멸시하며, 웃음거리로 여기는 사상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의 능력의 행사를 조롱거리로 삼고 말았습니다.

III. 저주받은 벧엘의 젊은이들

열왕기하 2장 24절에 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사십이명을 찢었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에 나타난 엘리사의 저주에서 중대한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첫째 결코 엘리사 자신의 사적인 보복심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본문 2장 24절에 .....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라고 한 말에 유의해야 합니다. 그것은 벧엘 젊은이들의 집단적인 배교행위를 예의주시했다는 뜻입니다. 저들의 실상을 꿰뚫어 보았다는 뜻입니다. 저들의 집단적인 말과 행동 속에는 오직 불의와 불신앙과 어둠으로만 가득차 있음을 보았다는 말입니다. 철두철미하고도 완전하게 하나님을 배역하는 사상과 행동으로 가득차버린 모습들을 본 것입니다.
둘째로, 여호와의 이름을 저주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거룩한 충동’을 받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하나님의 이름과 거룩이 모독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습니다. 결코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과 영광이 모독을 당하시지 않으시는 분임을 엘리사는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그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들을 저주하는 거룩한 의의 충동을 받은 것입니다.
셋째로, 그 저주의 결과는 하나님께서 즉각 암콤 두마리를 명하사 저들을 찢어 죽여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 못하는 저 미련한 짐승들을 수풀에서 불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저들로 하여금 그 본래 기질을 발휘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 저 젊은 벧엘의 배교자들이 즉석에서 그 소행이 끝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두렵습니다. 심판에 능하신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든지, 이세상에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을 동원하여 악인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심에 능하신 분입니다.
바로 애굽의 바로를 심판하실 때 하나님은 개구리를 동원하고, 이를 동원하고, 파리떼를 동원하고, 악질을, 독종을, 우박을, 메뚜기를, 흑암을 동원하였습니다. 홍해 바다를 동원하여 애굽의 바로를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마지막 날 종말의 심판에도 천지의 모든 피조물들을 다 동원하여 악인을 심판하는 도구로 삼을 것입니다.(계6:12-1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벧엘의 젊은이들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하는 두려운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저들 속에 있던 무서운 배교(背敎)사상과 반신(反神)사상과 불신앙의 사상과 말과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저들이 ‘벧엘’에 살았다는 사실에 큰 이유가 됩니다. ‘벧엘’은 본래 ‘하나님의 집’이었습니다. 저들은 본래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집에서 태어났고, 하나님의 집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저들은 그 벧엘이 뜻하고 있는 의미와 정반대의 사상과 말과 행동을 하고 자랐습니다. 그것이 바로 ‘금송아지 우상숭배 중심지’에서 태어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저들의 배교적 소행을 볼 때, 그것은 바로 저들의 부모들이 금송아지 우상숭배 신앙으로 자녀들을 키웠다는 명백한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는 법입니다.
아마 저들 부모들이 오늘의 이 불상사를 뒤에서 조종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저들 부모들은 벧엘에 있던 선지학교와 생도들을 멸시하였을 것입니다. 아마 벧엘에 있던 선지생도들은 그 곳 금송아지 우상숭배자들을 정죄하고, 회개를 재촉했을런지 모릅니다. 이 일로 인하여 저들은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며, 대치 상태에 있었는지 모릅니다.
저 주민들은 엘리야가 불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자랑하고 전하는 벧엘의 선지생도들에게 적개심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더욱이 그 엘리야가 제자로 다시 부임한다는 소식에 그 부모들은 저들의 자식들로 하여금 이러한 배교운동을 선동했는지 모릅니다.
불행스럽게도, 벧엘의 젊은이들은 하나님의 집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알거나, 섬길 줄 모르고, 금송아지를 섬기고, 따르고, 살았습니다. 저들의 마을 이름인 ‘벧엘’, 곧 ‘하나님의 집’과는 참으로 상거가 멀었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를 향한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집, 교회 안에 있는 무신론자, 회의론자, 반신론자를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자라면서도 현대적인 황금우상(바알) 곧 물질제일주의, 지식우상, 자기우상(이기주의)을 섬기는 자들을 향한 경고의 음성입니다.
아니 전 지구촌은 바로 ‘벧엘’ 곧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하였습니다. 그런데도 현대인들은, 현대 젊은이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창조와 통치와 섭리를 부인하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자기 사랑인 예수 구원을 거절하고, 반항하고, 불신하고, 도전하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전도자들을 멸시하고, 조롱하고,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부모들은 자녀들의 신앙교육에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홀(Hall)은 말하기를 ‘부모가 교육을 소홀히 한 자녀들에게 선을 기대한다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 돌보았더라면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을 불행을 당하여 탄식하는 것은 쓸데없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집’ 벧엘에서 배교자가 나오면 천벌을 받고 마는 것입니다.
쥴리아누스(F. C. Julianus, 332-363) 황제는 기독교에서 이교도들을 향한 대표적인 배교자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페르샤와의 전쟁 중에 거기서 기독교인 장교 한 분을 만났습니다. 황제는 그 기독교 장교에게 자네가 따르는 그 목수 양반, 요새는 무얼하지 라고 빈정댓습니다.
그때 기독교 장교는 웃으면서 답하기를 ‘저도 전해들은 이야기인데, 요즘, 우리 목수님께서는 황제를 위하여 관(棺)을 만들고 계신다고 하던데요’라고 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며칠 후 황제는 한 밤중에 습격을 받아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죽어 가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갈릴리 사람이여, 그대가 나를 이겼소!’라고 하였습니다. 배교자는 이렇게 천벌을 받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은 넓은 의미에서 ‘벧엘’ 곧 ‘하나님의 집’입니다. 바로 역사의 현장입니다. 그것은 바로 금송아지 숭배의 장소가 아니라 구속사의 현장입니다. 우리는 금송아지 숭배의 젊은이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황금 바알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도전하는 무리들을 경계해야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젊은이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사랑하고, 섬기고,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영광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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