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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교의 잔치를 베풀라 (눅 05:2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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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옳다고 자기 스스로를 의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시대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이런 경우가 더욱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처럼 자신이 추악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파스칼은 “자신은 의롭게 여기는 그가 진정한 죄인이다”라고 역설을 했습니다.

1.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미국 할리우드에 가면 ‘할리우드 크리스쳔 그룹’이 있습니다 이 집회를 시작한 텔레비젼과 영화계의 유명한 3인조 가수 중의 한 사람인 팀 스펜서입니다. 그는 명성도 있고 돈도 가지고 있었으나 권태롭고 불만족스러운 생활 때문에 수많은 날들을 술로 보냈습니다. 그는 영적인 만족을 얻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자살하려고 어느 호텔에 들어갔습니다. 권총을 꺼내 머리에 대고 죽으려 하는 순간에 갑자기 ‘죽는 것이야 아무 때라도 죽을 수 있으니 기도나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 교회학교 아동부에서 진실하게 기도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무릎을 끊고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술을 끊게 해 주소서. 앞길을 인도하여 주소서’라고 생각나는 대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날 저녁 평안히 잤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정말 신기한 일이 벌어 졌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기쁨과 평화가 넘쳐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전 생활을 다 잊게 되었습니다. 술도 끊었습니다. 전혀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동료들에게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80여 명이나 되는 회원이 생겼습니다. 그는 그때부터 과거의 배우 생활을 청산하고 기독교 영화 제작에만 힘을 썼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바울을 새 사람으로 변화시키셨던 하나님은 영화배우 스펜서를 회개시키셨고 또한 우리들도 새사람으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제자들 가운데 예수님의 부름을 받는 장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제자는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와 마태입니다. 특히 마태가 부름 받았던 사건은 복음서들마다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그 이름이 마태복음에서는 마태로 기록되어 있는데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에서는 레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세리였습니다. 그는 아주멸시받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세리라는 직업은 그 당시 죄인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복음서를 보게 되면 세리와 죄인이라는 단어는 꼭 짝이 되어 같이 쓰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가 세계를 제패할 당시 그들은 다른 강대국들이 하는 것과는 다른 식민 정책을 썼습니다. 그들은 피정복자들을 자기 지방에 살게 하면서 그들에게 막중한 세금을 부과시켰습니다. 그리고는 백성들의 돈을 착취햇습니다. 결국 백성들의 생활을 점점 얽매여 들게 해서 로마인들에게 꼼짝못하는 신세가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때에 로마를 도와서 백성들의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새로운 직업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세리입니다. 그들은 자기 민족의 피를 빨아서 원수의 나라를 이롭게 하고 자기들도 풍요로운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세리였던 마태가 세관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받는 장면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름에 어찌나 놀라고 감격했던지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 대접을 받아본 것만 같아 마태의 마음은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우리는 마태의 부름받은 잔치를 일반적인 축제로 생각하기 보다는 선교적인 차원의 눈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마태는 잔치를 베풀고 많은 세리 친구들을 초청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알리고 싶은 정열 때문이었습니다.

2. 교회는 구원의 잔칫집입니다.
인생은 잔치입니다. 교회에서 베푸는 잔치는 세상의 잔치와 다릅니다. 교회의 잔치는 구원의 잔치입니다. 구원의 잔칫집입니다. 영혼이 구원받고 다시 살아난 이 놀라운 감격을 어떻게 혼자서만 간직할 수 있겠습니까 잔칫집은 흥청대고 떠들썩하고 즐거워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손님들이 많아야 합니다. 손님이 없는 잔칫집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4:15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잔칫집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어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잔치할 시간이 되었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다급해진 주인은 종들을 보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밭을 샀기 때문에 올 수 없다고 했고, 또 다른 사람은 소를 다섯 겨리 샀기 때문에 올 수 없다고 했고 또 다른 사람은 장가를 들었기 때문에 올 수 없다고 했습니다. 화가난 주인은 종들을 시내 거리와 골목으로 내어 보내어 가난한 자들과 병든자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와 잔치 자리를 채우게 했습니다.
이 속에는 굉장한 복음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먼저 하나님나라에 초청을 받고 택함을 받았던 이스라엘 민족이 메시야를 거부함으로 인해 그 천국의 잔치 자리에 참예하는 영광이 다른 이방 사람들에게 넘어갔다는 말입니다.
교회는 잔칫집이 되어야 합니다. 손님이 몰려오고 흥청대고 떠들고 북적대고 열기가 있어야 합니다.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예배 분위기가 썰렁하고 허전해서는 안됩니다. 가정에서 드리는 사랑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속적인 즐거움이 선행되어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바로 이 일의 전초기지입니다. 교회의 잔칫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게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그들을 초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권유해야 합니다. 그래도 오지 않는다면 강권해서라도 잔치 자리를 채워야 합니다. 저들의 영혼이 정복되도록 해야 하고 구원받도록 해야 합니다.
구약에 나오는 에스더의 경우를 봅시다. 그녀는 왕비가 된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자기 민족이 멸절당하게 되는 절망적인 상황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녀는 이 상황에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을 하였습니다. 그녀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였는지 주의깊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자기의 원수를 정복하기 위해서 도리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녀는 잔치를 베풀고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그래서 원수를 정복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민족도 구했습니다. 얼마나 멋진 지혜입니까
이것이 우리의 방법이 되어야 합니다. 참으로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은 잔치를 베풉니다. 예수님께서도 가시는 곳곳마다 잔치를 베푸셨습니다. 당시의 경건한 종교가들은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마11:19). 그러나 주님은 이런 방법으로 잃은 영혼을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어 나가셨습니다.
스코틀렌드에 그랜이라는 부족이 있었습니다. 그 부족의 추장은 술자리를 자주 만들어 온 부족민들이 만취가 되도록 마시게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기회를 통해 부족민의 평화와 우애를 다지게 하였습니다.
이런 풍습이 잉글렌드족에게도 전해져 런던 지역에서는 파티가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이제까지 가장 규모가 컸던 파티는 1799년 10월 25일 에드워드 러셀 후작이라는 사람이 6천 명이나 되는 손님을 초대하여 열었던 파티라고 합니다.
조상이 건축가로도 유명한 이 러셀 후작은 영국 내에서 꽤 알려진 귀족이었습니다. 그는 정원의 분수대를 깨끗이 치운 뒤 부랜디를 큰 통으로 25통 붓고 거기에다 수백 킬로그램의 설탕을 부운 뒤 다시 2만 5천 개의 레몬을 잘게 썰어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분수를 가동시켜 분수에서 나오는 브랜디를 손님들로 하여금 마음껏 마시게 했습니다. 계속 쏟아져 나오는 분수가 모두 브랜디인 것입니다. 6천 명이나 되는 손님이 모두 곤드레만드레가 될 정도로 취했다고 합니다. 당시의 광경은 상상만으로도 입이 딱 벌어질 지경입니다.
다시 마태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가 베푼 큰 잔치 그것은 자신만이 구원받고 제자 된 데서 오는 그런 단순한 기쁨의 잔치는 아니었습니다. 마태의 가슴에는 정열이 있었습니다. 뜨거운 정열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만난 그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그들도 예수님을 통하여 영혼의 구원을 받게 해야겠다는 간절한 기대와 소원이 그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치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릴 수 있을까 그러한 선교적 정열에서 잔치를 베푼 것입니다. 그것은 순수한 선교적인 잔치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라고 불러도 오지 않던 사람들이 마태의 잔칫집에는 왜 이렇게 많이 몰려온 것일까요 손님이 오지 않아 고민하는 잔칫집과 비교해 보면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마태는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초대하고 잔치를 베풀고 주인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는 일입니다. 구원의 성령님이 하실 것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라고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3. 잔치의 기쁨은 많은 이들과 함께 누려야 합니다.
이러한 마태의 정열은 마침내 복음서를 기록하는 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이 복음서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고 그들의 영혼이 그리스도에게 정복되며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구원 얻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잔칫집입니다. 그는 주님과 더불어 언제나 잔치의 기쁨을 누리는 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마태의 선교적 열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정열로 잔치를 베풀고 지옥에 떨어져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앞장을 서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그냥 보고만 있는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사탄보다 더 열심을 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교회는 일년 내내 영혼이 정복되는 구원의 잔치를 베풀어야 합니다. 찾아오는 영혼마다 즐거움과 기쁨을 안고 돌아가도록 감격의 잔칫집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런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개인의 심령을 주님과 함께하는 잔칫집으로 만들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가정이 영혼 구원받는 감격의 잔칫집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제단이 영혼 구원받고 기쁨으로 충만한 제단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민족이 세계 만방에 죽어가는 저 많은 영혼들에게 구원의 잔치를 베푸는 선교의 민족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날마다 잔칫집이 되게 합시다. 주일마다 잔칫집이 되게 합시다. 모일 때 마다 잔칫집이 되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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