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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용기 (빌 01: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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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간은 골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골프이야기로 마 음이 들떴던 한 주간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대한 의 딸 21살 박세리가 이렇게 최연 소자로 '98년 LPGA 챔피언 쉽'이 라는 세계적인 경기에서 일등을 했 다고 하는 것, 아주 자랑스럽고 우 리가 함께 기뻐해야 될 일이었습니 다. 모든 것이 다 침체되어 있지만 이런 일로 인해서 우리가 다같이 기뻐했던 일들을 지금도 여러분이 생각하고 계실 겁니다. 이 '골프에 이겼다'고 하는 그 얘기를 우리가 이렇게 화제(話題)로 돌려서 즐겁 게 얘기하고 있었더니 저희 교회 집사님 한 분이 제게 얘기해주었어 요. 저는 골프를 모르거든요. 그런 데 그분은 골프를 잘 아시는가 본 데
"목사님 골프에는 필수요소, '3C'가 있습니다."
아 그거 뭐냐고 그랬더니
Confidence, Concentration, Courage. 이 셋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 내가 그랬습 니다.
"뭐 골프만 아니지 모든 일 이 그렇지"
라고 대답했습니다. 모든 일에 Confidence, 안정이 필 요합니다. 자신감이 있어야 됩니다. 마음이 안정되고야 무엇이 되지요. 마음이 술렁술렁하면 안돼요. 정 력으로 부글부글 끓으면 안되고요 흔히 말하는 데로 한에 맺힌 사람, 그것은 몸도 마음도 썩어 버리고 말아요. 안됩니다. 마음이 평안하 고 안정된 가운데 있어야 된다 운 동하는데 기본적인 거죠. 그리고 Concentration 집중력이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공부할 때도 시끄럽던 말던 나는 집중하는 거예 요. 공부하는데도 worming-hour 라는 게 있는 겁니다. 그래서 공 부를 쉬면 안되는 거예요. 며칠 동안 쉬고 나서 책을 보려고 그러 면은 집중이 안되거든요. 계속 공 부를 해야 아무리 시끄러운 가운데 도 책만 들면 집중이 되는 거예요. 모든 일에 집중이 필요합니다. 어 떤 때 보면 예배드리는 데서도 어 디 가려운 데가 많은지 그냥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까 지 혼란하게 만들어요. 집중력이 없어요. 총 집중을 해야됩니다. 집중력! 그래서 운동하는 사람 옆 에서 누가 뭐 어떤 옷을 입었든지 누가 카메라를 들여대든지 뭐 잘한 다 못한다 흉을 보던지 말든지 상 관없어요. 난 나대로 집중해야 됩 니다. 세 번째가 용기입니다. 용 기는 힘의 뿌리입니다. 용기가 없 으면 안됩니다. 생각은 많고 뭐 그저 복잡한데 밀어 부치는 용기가 없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습니 다. 그래 마지막 모든 것은 용기 로 결판을 내는 것이올시다. 그 21살의 아가씨가 아 그 용기가 대 단해요. 훌륭했어요. Rollo May라 고 하는 미국의 저명한 정신분석 학자가 '창조와 용기'라고 하는 책 에서 용기가 무엇인가를 나름대로 설명을 하는데 용기란, 영어로 Courage라고 하는 말의 어원을 불 어 Coeur 라고 하는데서 찾는다고 그럽니다. 그 심장이라는 뜻이에 요. Courage 거든요. 심장이에요. 심장 그게 용기란 말이에요. 이 무슨 말입니까. 사람의 온몸의 지 체가 있어요. 눈도 있고, 귀도 있 고, 코도 있고, 손도 발도 있는데 모든 기능이 다 제대로 되어 있지 만 심장에서 피를 펌프질 해주지 않으면 소용없는 거예요. 안 그렇 습니까 요새 그래서 심근경색이라 고 하는 병이 과거보다 2배나 많 다는데 그것은 뭐냐하면 심장이 나 이제 그만 뛰겠소 그 소리에요. 그러니까 이게 문제란 말이에요. 심장이 펑펑, 아 이거 펌프질을 제 대로 해줘야 이 기능이 살아나는 거예요. 눈도 밝고 귀도 밝고 손, 발도 움직이고 그런 거 아닙니까 아무리 좋은 손, 발이 있더라도 펌 프가 고장나면 끝나는 거예요. 이 게 용기야 용기가 없으면 그 모든 지식이 다 무산됩니다. 용기가 없 으면 모든 덕은 단순한 덕의 이것 은 복제현상에 불과합니다. 요새 말로 팩스밀리밖에는 되지 않는 거 예요. 창작! 용기요, 발명! 용기요, 과학! 용기와 함께 이루어지는 것 이에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용기라는 것은 학자의 말에 의하면 '신체적 용기, 도덕적 용기, 사회적 용기' 이렇게 말합니다. 우선은 건 강해야 용기가 있지 않습니까. 건 강을 잃어버리고 나면 그만 용기가 없어져요. 또 도덕적 용기! 죄인 은 용기가 없어요.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가는 게 용기가 없는 거에요. 비겁해질 수밖에 없는 것 이에요. 그게 죄인이에요. 용기가 없어요. 또 사회적으로 지지를 받 지 못하면 사회적인 성원을 받지 못하면 용기가 없다. 일반적인 겁 니다마는 좀더 심리학적으로 깊이 연구를 하면 그게 아닙니다. 문제 는 이것들이 용기를 주는 거냐 자 건강하면 용기가 있느냐 도덕 적으로 결함이 없으면 스스로 용기 가 있느냐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 이 그를 지지할 때 얻는 용기, 그 게 용기냐! 그건 아닙니다. 쉽게 예를 들면 건강해서 용기가 생기는 겁니까, 용기가 있어서 건강한 겁 니까 여러분이 가진 용기는 어디 서부터 온 겁니까 또 도덕적 의 에서 용기가 오는 겁니까 아니면 용기가 있기에 불의를 물리치고 도 덕적으로 건강할 수 있는 겁니까 사회적으로 나를 지지해주고 사회 가 나에게 용기를 주는 겁니까, 아 니면 용기가 있어서 사회개혁을 하 며 밀어 부치면서 사회의 질서를 개혁해 나갈 수 있는 겁니까 무 엇이 먼저입니까 옛날에는 덕목 을 특별히 동양에서는 '인의예지'를 많이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하나 더 부쳐서 '인의예지신' 이렇 게 말했습니다만 서양사람들은 대 체로 '지인용'을 말합니다. 용기를 덕목으로 생각합니다. 깊이 생각 해야할 문제올시다. 신학자 폴-틸 릭은 그의 'Courage to be'라고 하 는 소위 '존재의 용기'라고 하는 그 런 책에서 신앙을 정의할 때 이렇 게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 하는 진 리를 받아들이면서 용기가 있는 것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evertheless! 거기에 생명적 용 기가 있는 거예요. 그것이 신앙적 용기입니다. 자 병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가 있어 요. 사업은 무너졌어요.
"그럼에 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런고로 역시 용기는 생명력이요 생명력은 역설적인 것이에요. 환경 에 매이는 것이 아니에요. 어디에 끌리는 것도 아니에요. 어떤 의미 에서 스스로 존재합니다. 이야말 로 독보적인 생명력입니다. 여러 분 다 아시지 않습니까 어떤 때 는 돈이 있어서 용기가 있지마는 어떤 때는 아무 것도 없어도 용기 가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그 신앙적 메시지를 받아들이 고 그 다음에는 다시
"그럼에도 불 구하고"
라고 하는 세계로 자기를 밀고 나가는 것이에요. 그것이 용 기예요. 없으나 용기가 있어요 넘어졌으나 일어나요. 낙심하지 않아요. 세계가 아무리 혼돈해도 그는 빛을 바라보고 있어요. 이게 용기예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 만히 역사를 더듬어 보면 그들이 전쟁에 나갈 때 무슨 힘으로 나가 나요. 이스라엘의 전쟁사라는 것 은 간단합니다. 적이 얼마냐 그 거 상관없어요. 전략이 어떠냐 환경이 어떠냐 아무 상관도 없어 요. 심지어는 아군의 전력이 어떠 냐 그것도 전혀 관계가 없습니 다. 오로지 저들의 용기는 딱 두 가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 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면 no problem! 그러면 그저 이 긴 거예요. 그거는 충천하는 용기 가 있는 것이고요. 거기서 힘이 솟아오르는 것이에요. 또 하나는 현실적으로
"저들을 네 손에 붙였 다. 저 원수를, 저 미디안을 네 손 에 붙였다."

"네 손에 붙였다"라 고 하는 하나님의 약속 이것만 떨 어지면 이젠 전쟁은 이겨 놓은 겁 니다. 용기가 충천하고 이 용기로 밀어 붙였어요. 그들은 승리를 누 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이스 라엘의 용기의 뿌리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보면 사 도 바울이 절대적 용기를 말합니 다. 그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 러나 그는 한평생 평안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그가 지지를 받은 것 도 아닙니다. 당시에 많은 비난을 받아가며 살았습니다. 그가 괴로 웠던 것은 환경이나 혹은 예수 믿 지 않는 이방사람들로 인해 괴로워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그를 핍 박했습니다. 이 속에서 그는 갈등 도 있었고 고통도 있었습니다마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용기의 사 람으로 살아갑니다. 그 용기가 어디서 온 것이냐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자세히, 자세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신앙적 용 기, 그 뿌리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구속 받은 믿음이요, 죄 사함 받은 믿음 이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지혜 를 믿는 믿음이지만 뭐 그런 이야 기가 아닙니다. 일반적인 이야기 가 아니고 바울만 가졌던 특수한 용기의 뿌리가 되는 믿음은 뭐냐하 면 이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 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 에 내가 고용되고 있다고 하는 믿 음입니다. 이 점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섣불리 생각하지 마세요. 내가 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 이 하시는 거예요. 내가 만백성에 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게 아니에 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그 높은 경륜이 있어요. 만백성을 구 원하고 이방인을 구원하시려고 하 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그 큰 하 나님의 역사 속에 내가 고용되어 있어요.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그리스도께 잡흰 바 된 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경륜 을 따라 내가 사도가 되었노라"
내 게 주신 경륜을 알고 있어요. 그 런고로 용기가 있어요. 왜 나는 무너져도 하나님은 무너지지 않아 요. 나는 실패가 있어도 하나님께 는 실패가 없어요.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내가 감옥에 있 든지 감옥밖에 있든지, 일이 잘 되 던 안 되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는 많은 생활 속에서 경험했습니 다. 특별히 빌립보서 1장 12절에 서 말합니다.
"나의 당한 일이 복 음의 진보가 된 것을 너희가 알기 를 바란다."
그가 3년 동안이나 그대로 감옥에 쳐 박혀서 재판도 없이 고생을 합니다. 답답하고 괴 로웠습니다. 로마로 오면서 배가 파손되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 다. 그 많은 환난과 고통과 비난 속에서 오묘하게도 나의 당한 일이 복음의 진보가 되었어요. 여기서 그는 조금씩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역사와 그 능력의 경륜 속에 내가 있구나.' 그런고로 그는 용기의 사람이 되었 습니다. 이것은 너무너무 죄송한 이야기입니다마는 제가 자주 북한 에 들어가는데요 옛날에 갔다 온 사람들은 가끔 그런 얘기를 해요.
"목사님, 그거 한 번 갔다오시지 또 갑니까 어려운 데를... 아 그 거 많은 문제가 있는 곳을. 그거 무섭지 않아요"그래서 제가
"아니 요. 제가 가는 용기는 다른 데 있 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는 길 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쓰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역사한다고 믿기 때문에 그것 이 나로 하여금 일을 가능하게 하 는 겁니다."
여러분, 누구나 마찬가 지입니다. 하나님의 큰 구원의 사 역 속에 그 속에서 내가 지금 쓰여 지고 있어요. 그런고로 그는 용기 의 사람이 되었더란 말입니다.
둘째는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은 확고한 목적입니다. 실패는 죄 가 아닙니다. 목적이 잘못된 것이 죄입니다. 우리가 지난 날에 경제 고 정치고 간에 모든 사람들이 반 성해야 될 것은 바로 목적에 대한 재조명입니다. 돈을 누구를 위해 벌었습니까 사업을 누구를 위해 했습니까 내가 하고 있는 이 일 이 도대체 목적이 무엇이냐고요. 생각하고 보면 너무나 처절하고 너 무나 유치하고 너무나 비겁했었어 요. 목적이 한심했어요. 아니 그 렇습니까 스스로 물어보세요. 공부하는 아이들보고 물어보세요.
"너 왜 공부하느냐"고요. 제대로 대답하는 놈 있나 한심합니다. 그러니 공부가 되겠어요
"너 왜 이렇게 아침부터 밤까지 뛰느냐"
아니에요. 잘못된 거죠. 어느 어 머니가 딸이 좀 피아노 소질이 좀 있다고 그래가지고
"피아노를 쳐 라. 피아노를 쳐라. 피아노를 쳐 라."
그래 일류 대학을 나오고 줄 리아드 대학에 갔어요. 줄리아드 를 마쳤답니다. 졸업장을 딱 갖다 가 어머니 앞에 딱 갖다가 놓고 하 는 말이
"어머니 소원을 이루어 드 렸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절대로 피아노를 안 칩니다. 피아 노 소리 듣기도 싫다고 합니다.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린 겁니까 이게 얼마나 비참한 겁니까 도대 체 목적의식이 어디에 있습니까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좋은 목적 이 가치관을 형성합니다. 그것이 용기의 뿌리입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사 도 바울은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 다. 나아가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만은 하나님께 맡겨 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의 뜻에 순리적으로 순종하기로 생 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잘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면 그리하게 해주시고 일이 안돼서 하나님께 영 광이 된다면 그리 하십시오. 내가 감옥에 있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된 다면 그리하시고 감옥에서 나가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면 언제든지 그저 그리 하십시오. 목적이 뚜렷 하기 때문에 아무 일에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용기가 있었 고요. 또 오늘 본문에 더 감격스 러운 말씀은
"소망과 기대에 따라 나는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않 다."라는 말을 합니다. 많은 사람 들이 소망과 기대는 있어요. 뭐 되겠다, 뭘 하겠다. 꿈은 있는데 거기에 합당한 현실이 없어요. 여 기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가령 학자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공부해 야지죠. 공부도 안 하면서 학자만 되겠다고 하고.... 자, 사업가가 되 겠다고 하면서 게으르고, 건강을 바라면서 절제하지 않고.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는 어느 답답한 고 등학교 3학년 학생을 상담해 본 일 이 있습니다. 몸이 약해요. 그런 데 의사는 병이 없데요. 그런데 본인은 병들어 죽겠데요. 아주 심 리적으로 복잡한데 이 아이가 아침 식사를 새벽 2시에 합니다. 밤에 는 그저 이거하고 저거 영화보고 뭘 하다가 늦게 자고는 도대체가 점심시간에 아침을 먹어요. 그래 제가 얘기했어요.
"너 정말 병 낫 기를 바라느냐"하고 물었더니
"목 사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 까"

"병 낫기를 바라는 놈이 그 모양이냐 이놈아! 일찍 일어나."
생각해 보세요. 건강하기를 바라 는 사람이 늦잠을 자요 이게 말 이 안되잖아요. 소망과 기대가 있 다면 그 기대에 합당한 오늘이 있 어야 될 것 아니에요. 우리는 현 실을 극복하겠다고 하면서 여전히 게을러요. 여전히 불성실해요. 여 전히 잘못해요. 무엇을 바라고 있 습니까 소망과 기대는 꿈이 아니 에요. 기대에 합당한 오늘이 있어 야지요. 그 기대에 비추어서 부끄 러움이 없어야지요. 자, 보세요 무지해도 안되고 무능해도 안되고 게으른 것, 할 수 있는 것 안 했으 면 안되지 않습니까 소망과 기대 를 바라보며 부끄러움 없는 현실, 부끄러움 없는 나 자신이 되었는가 말입니다.
여러분, 사업에 실패해서 지금 내가 이렇게 괴로운 게 아닙니다. 문제는 부끄러운 일이 너무 많아 요. 내가 어느 책을 보구요. 교회 나가 보라 했어요. 그 온 집안 식 구가 다 믿는데 본인 하나만 안 믿 어요. 사면초가입니다.
"이제 죄 송하지만 회장님 돌아가시면 내가 장례하게 되었는데 나와야 될 거 아닙니까"
뭐라고 한 줄 아십니 까
"제가 교회 안 나가는 게 소 망교회를 위해서 좋을 겁니다."

"왜요"
"영감탱이 못된 짓 많이 하다가 천당은 가고 싶은 가보지"
부끄러운 일이 많아서 교회 가기에 는 부끄러운 일이 많아서... 여기 에 문제가 있는 것이에요. 소망과 기대를 따라 부끄러움이 없다. 그 래야 용기가 있는 거지 고개를 들 수 없는데 무슨 용기로 버티겠어 요 또한 오늘 본문에 보니 죽음 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사람이 뭐니뭐니해도 죽는다는 문제를 딱 해결하고 살아야 명랑합니다. 그 거 죽을까 해서 벌벌 떠는 거 그거 꼴 못 봅니다. 여러분 병원에 가 서 진찰하고 그럴 때 너무 그렇게 벌벌 떨지 마세요. 그거 유치해서 못 봅니다. 옆에서 보는 사람이 딱해요. 좀 당당하세요. 아무 때 라도 갈 건데 뭐 그러노 그렇지 않습니까 좀 더 명랑하게 죽음을 맞이합시다. 아주 중요한 것이에 요. 그런데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 고 살았어요. 사도 바울은 살던지 죽던지 상관없어요. 전 늘 우리 교인들과 같이 새벽기도회 때 가끔 기도합니다마는
"하나님, 좀 죄송 스럽지만은 하나의 소원이 있다면 오래 사는 거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는 아침 그날까지도 새벽 기도회 나오게 해주세요. 새벽기 도회 나오고 그 리고 그날 죽게 해주세요. 그 오 랫동안 누워 가지고 뭉개고 여러 사람 신세지고 더구나 식물인간 되 가지고 몇 년 가면 큰일입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그저 깨끗하게 아무 때라도 좋으니까 하나만 소원 을 이루어주세요. 새벽기도 인도 하고 새벽기도회 한 그 날 요단강 건너가게 해주세요. 간절한 소망 입니다. 하나님 들어 줄 걸로 믿 습니다."
죽음 문제를 딱 결론을 짖고 사세요. 유언도 써놓고 그러 고 사세요. 그래야 용기가 있지... 벌벌벌 떨고 그거 되겠습니까 어 떤 사람 비행기 타 가지고 물도 안 마시고 식사도 안하고 꼬박 눈뜨고 있더랍니다. 자지도 않고 눈 동그 랗게 뜨고... 죽을까봐 죽을까봐 걱정이 돼서 그래 내가
"죄가 많군 요"그랬더니 죄가 많다고 그러더라 구요. 여러분 죽음의 문제의 해결 이 얼마나 멋진지 아십니까! 그리 고 나면 자유하게 됩니다. 죽음과 미래 종말을 주께 맡기고 삽니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죽어서 주님 앞에 가면 좋고, 좀더 있어도 좋고.
"To live is Christ to die is gain. 사는 것이 그리스도요, 죽는 것도 유익하다."
죽음의 문제를 딱 끊어 놓고 주님 원하시는 데로 며칠을 살든지 필요한 만큼 살게 해주세 요. 그리고 갑니다. 용기가 있는 것이에요. 현대에 있어서는 세 가 지가 필요하다고 하는데요. Signigicant, Security, Belongingness. 이 세 가지를 말 하는 데요. 의미가 없어요. 허무 에 빠지죠. 안보가 없어요. 하나 님 믿고 살면 걱정할 것 없구요, 소속이 없어서 방황하는데 우리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에요. 그리할 때에 용기가 있는 것이요. 또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케한 다. 몸이라는 말은 '소마티, 소마 타' 그런 말입니다. 이것은 'body' 를 말하는 것인데 사도 바울의 신 학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용어입니 다. 구체적인 생활이지요. 그래서 로마서 12장에 보면은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
그럽니다. 구체적 이고 현실적인 생활을 말합니다. 내가 사는 구체적인 생활, 내 생각 만이 아니고 구체적인 육체적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 를 바랍니다. 그런고로 나는 용기 가 있다 그 말입니다. 이런 얘기 가 있어요. 재미있는 얘기입니다 만 콘스탄틴 대제의 아버지 콘스 탄티뉴스가 있습니다. 콘스탄티뉴 스라는 왕이 있는데 그가 왕이 된 다음에 좀 점검해 보니까 자기의 신하 가운데, 가까이에서 일하는 중요한 인물들 중에 기독교인들이 많은 걸 알았어요. '아, 우리는 전 쟁도 하고 다 이렇게 해야겠는데 기독교인들은 사랑을 외치기 때문 에 안 되겠다' 생각을 해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예수를 택하든지 내 신하 가 되든지, 둘 중의 하나를 하라. 예수 믿는 사람으로 내 신하가 있 는 것은 내 못 마땅하다."했더니 많은 사람이 사표를 냈어요. 나가 버렸어요. 그런데 분명히 기독교 인으로 자기가 알고 있는데 아 이 거 안 나가고 그대로 이 자리에 앉 아있는 분들이 있어요.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며칠을 생각한 다 음에 콘스탄티뉴스가 이렇게 얘기 했다고 그럽니다.
"자기가 믿던 신조와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배 신하는 사람은 나의 신하가 될 수 도 없어. 그런고로 예수 믿는 사 람으로 여기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다 면직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사람들은 나에게 충성할 거요. 그 사람들을 도로 데려 오 라."
사표 낸 사람은 들어가서 일 하고 안 내고 뭉기적거리던 사람은 다 내쫓겼다고 그럽니다. 역사적 얘깁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께 충성하고 담대할 때에 모든 일 에 용기가 있고 창의력이 있습니 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오순절이 라는게 무엇입니까. 오순절 성령 강림 충만했는데 달라진 게 없습니 다. 세상 상황은 어렵고 핍박은 많고, 경제·정치·문화,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 지식도 달라 진 게 없습니다. 오직 하나, 제자 들의 마음속에 용기가 생겼습니다. 신앙적 용기! 이것이 성령 충만한 결과입니다. 이로써 크고 놀라운 역사를 창조하게 된 것입니다. 절 대적 용기 그것이 길이 되고, 지혜 가 되고, 그리고 삶의 역사가 된다 는 걸 잊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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