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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느혜미아서의 개론 (느 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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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느혜미아”서를 공부하고자 합니다..
1절에 보면, “하가랴의 아들 느혜미아의 말이라”고 하였습니다.
느혜미아란 “여호와의 위로”라는 뜻입니다.
사실 에스라서와 느혜미아서는 원래 한권의 책이였는데 라틴어성경으로 번역되면서 두권으로 나누어졌었습니다. 그리고 영어성경으로 번역되면서 “느혜미야”라는 저자의 이름으로 붙여 부르게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제 2에스라서였습니다.
느혜미아의 성장배경과 그의 가문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단지 그의 부친이 “하가랴”(1:1)라는 것과 그의 친형제 이름이 “하나니”라는 사실만이 밝혔졌을뿐입니다.

1절 중반절부터 보면 “아닥사스다왕 제 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궁에 있더니”라고 합니다.
여기 기록된 아닥사스다왕은 에스더를 왕비로 삼았던 아하스에로왕의 아들입니다.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있은지 20년이 되었으니 그 연대는 BC445년이고 , 기슬르월( 11월 12)월 즉 겨울철입니다. 수산궁은 바로 아닥사스다왕의 겨울궁전이었습니다.
느혜미아의 신분이 술관원이었으므로 왕궁에서 왕과 함께 생활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 술관원의 직책은 왕위 마시는 술을 관할하며 술잔을 가지고 왕 앞에 나아가 따르는 고위 관직이었습니다. 또한 술관원은 왕의 음식과 왕의 술에독이 들어 있는가 먼저 맛을 보기도 하고 또한 왕의 침실을 맡아 보는 일과 더불어 경호하는 일을 같이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직분상 왕에게 가장 가까운 관계를 가졌었고, 왕의 행정에 큰 영향력을 미쳤던 자리입니다. 술관원은 군대의 총사령관보다 더욱 큰 영향력을 발 휘할 수 있는 직책이었음을 볼때 느혜미아가 누렸던 직책은 어머어마한 것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중에 그해 겨울에 수산궁에 있을때 2절에 비보를 듣습니다.
“나의 한 형제중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 잡힘을 면하고 남아 잇는 유다사람과 예루 살렘 형편을 물은즉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은 훼파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 울고 수일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라고 했습니다.

느혜미아가 통곡할 수 밖에 없었던 그 비보를 듣게 된 역사적배경을 잠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BC 586년 바벨론의 느브갓네살과 그의 군대가 공격해 들어와서 남쪽 유다의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시키고 예루살렘도시의 집들을 불태우고 성벽을 붕괴시켜서 예루살렘을 완전히 페허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전후 4차걸쳐서 좀 쓸만한 사람과 모든 보물을 몽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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