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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히 09: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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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적으로 보기에는 수치와 패배와 참혹한 모습입니다. 더러는 십자가를 목에 건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렇게 번쩍번쩍 빛나는 십자가가 아닙니다. 머리에는 관을 쓰셨는데 영광의 면류관이 아니라 가시 면류관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두 강도가 좌우에 달렸습니다. 전해지는 설에 의하면 이 두 사람은 다이스마스와 가이스마스라고 합니다. 그들은 친척인데 아주 성질이 포악하고 그리고 둘이 나쁜 강도짓을 하다가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이 두 사람도 사형 선고를 받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왔습니다. 마 27: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고 말합니다. 이 두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조롱하고 욕하였습니다.
사실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도 예수님을 회롱해서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머리를 흔들면서 예수님을 모욕하며 “아!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소를 던졌습니다.
두 강도는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우리로 믿게할지니라”고 예수에게 야유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강도 중에 한 강도는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변화가 되었습니다. 처음에 그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무능하다고 실패자라고 비난하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눈 앞에 두고 그는 마음에 변화를 일으켰고, 조금전까지는 예수를 비방하고 조롱했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비방하는 한 강도를 향하여 책망을 하였습니다. “네가 당연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 그 다음에 그는 입술을 열어 회개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실 앞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 마땅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실은 하나도 옳지 않은 것이 없도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영혼을 구원해 달라고 “주 예수여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 십자가를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떤 느낌을 받으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요 패배의 십자가로 부끄럽게 느껴지는지요 아니면 무감각한지요 그렇지 않으면 십자가가 자랑이요, 기쁨이요, 감사인지요
이 십자가는 멸망 받는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고 부끄럽게 보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지혜요 능력이요 사랑이요 자랑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갈 6:14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예수의 십자가를 바로 깨닫고 바울과 같은 귀한 믿음의 고백이 넘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십자가의 고난
① 최고의 형벌
십자가는 죄인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고통을 조금이라도 더 주기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 당시 사회에서 십자가형은 추악한 살인범이나, 독재자에게 내란을 일으킨 정치범, 그리고 노예들에게만 행한 형벌입니다. 당시에 자유 시민인 로마시민은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여기에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는 가장 무섭고 수치스러운 죽음을 의미합니다. 세네카는 십자가를 불행한 나무라고 불렀으며, 가장 참혹하고 비열한 형벌이라고 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십자가 형벌은 노예형벌입니다.
② 최대의 고통
사람을 순식간에 죽이는 것도 고통인데, 오래 오래 고통을 주면서 죽이는 것은 정말 말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우슬초라는 마취제를 주었다고 합니다. 말할 수 없는 괴로움과 함께 온 몸이 찢기움을 당하고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차마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③ 최고의 수치
십자가는 고통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서 공개 처형을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형제도는 예수님 이후 300년이나 지속되다가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서 중지되었습니다. 최고의 형벌, 최고의 고통, 최고의 수치가 오늘 우리에게 평화의 상징, 구속의 상징, 영광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2.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
① 예수님의 세상에 오신 목적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철저히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치욕을 당하는 일을 감당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만일 십자가에 죽지 않으셨다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물론 역설적이지만 십자가 없는 기독교는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마 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② 예언을 성취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실 일에 대한 예언은 성경에 많이 있으며, 이 예언에 따라 일이 성취된 것입니다. 성경은 몇 천년 동안 쓰였졌는데 줄 곳 예수의 죽음에 대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 53:1-6에 있는 십자가에 대한 예언은 신약시대 갈보리 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성경이 십자가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눅 24:26-27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③ 죄인을 구원하는 유일한 방편으로 죽으셨다.
죄인을 구원하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대신해서 죽는 길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가급적이면 이 십자가의 고통을 피해보려고 노력을 하였습니다. 할수만 있다면 이 잔을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이 예수가 죽어야하는 길이면 그대로 해 달라고 맡기셨습니다. 예수는 죄인들을 구원하는 길은 당신이 죽으셔야 하는 길임을 알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그로 인해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으며 우리의 죄는 사해졌습니다.
④ 하나님의 공의의 만족시키기 위해 죽이셨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죄의 삯은 사망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다.

3. 십자가를 통한 깨달음
① 자원하여 지신 십자가
요 18: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십자가 형틀은 죄인 자신이 지고 가는 것입니다. 죽을 곳에 가는 것도 힘든 일인데 그 죽을 곳을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무거운 저주의 십자가를 친히 자원해서 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나(예수)를 믿고 따른다면 십자가를 지고 좇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에서 십자가를 안질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십자가가 얼마나 무거운 것입니까 얼마나 힘든 것입니까 자신을 희생해야 합니다. 고통이 따릅니다. 자신의 뜻과 정과 욕심을 못박아야 합니다. 인내해야 합니다. 때로는 모욕과 비방을 받아도 참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어려운 십자가를 지지 않고 오히려 남에게 지우려고 합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예수께 “내가 예수님이 죽으시는데까지 가겠습니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주를 버리지 않겠습니다.” 호언장담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재판장에 끌려갈 때 멀찍히 비겁하게 따라갔으며, 한 비자에게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억지로 진 십자가
마지못해 십자가를 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에 그 십자가는 너무나 무거운 십자가였습니다. 이 나무 십자가는 무게가 쌀 한가마니 무게가 더 되는 무거운 십자가 입니다. 몇일 씩을 주리시고 또 밤을 새우시면서 심문을 받으신 예수님은 너무나 지쳐있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고 가다 쓰러지고 또 쓰러집니다. 이 때 구레네 시몬이 구경하러 왔다가 억지로 붙들려서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되었습니다. 시몬이 십자가를 질 때 그 의미를 바로 알았겠습니까 전혀 몰랐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이 아니라 억지로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러나 후일 시몬은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고 감사하면서 일평생 십자가의 사랑에 대한 감격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 후에 시몬의 부인은 사도 바울의 믿음의 어머니가 되었고, 그의 자녀인 알렉산더와 루퍼는 훌륭한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억지로라도 져야 합니다. 내가 왜 십자가를 져야 하는지, 왜 무거운 십자가가 나에게 있는지 알지 못해도 지나고 나면, 억지로라도 져야 합니다.
예화)
교회봉사는 물론 자원해서 해야되지만 솔직히 자원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원하는 마음이 생기기까지 기다리다가는 좋은 세월은 다 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까지나 건강한 것이 아닙니다. 언제가 우리가 일하지 못할만큼 건강이 없을 때가 옵니다. 오늘 물질이 우리에게 있다고해서 그것이 언제까지 내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그 물질이 내 것이 아닐때가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다리지 말고 열심히 충성해야 합니다.
구레네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졌지만 본인은 물론 그의 아내와 그의 아들 온 가족이 큰 복을 받았습니다.

억지로 하는 일은 너무나 힘이 듭니다. 억지로 하는 일은 나도 모르게 원망하기 쉽습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는 것은 죄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내 몫의 십자가를 자원하는 마음으로 지고 감사하며, 기뻐하며, 즐겁게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② 속죄의 십자가
히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예수님은 대속의 제물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내 모든 죄를 담당한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앞에 나온 어떤 죄도 용서 받지 못할 죄가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용서받는 죄도 있고, 용서받지 못하는 죄도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을 훼방하는 죄 외에 모든 죄가 사하심을 받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강도가 마지막 죽음을 눈앞에 두고 회개할 때 그의 죄를 사하신 것입니다. 바로 십자가는 사죄의 은총이 있는 곳입니다.
예화)
마틴 루터가 어거스틴 수도원에 있을 때에 한 번은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어떤 시험하는 사람이 와서 한 책을 펴 보이는데 루터의 어린 시절에서 젊은 시절의 죄까지 모든 죄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 이 책을 가진 사탄이 루터에게 물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냐”루터는 할 수 없이 죄를 인정했습니다. 이 때 사탄이 루터를 꾸짖었습니다. “네가 이 더러운 죄를 가지고 구원을 얻을 수가 있느냐 이 수도원에서 수도를 해서 무엇하느냐” 루터는 그 말을 듣고 기가 막혀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 위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모든 죄를 씻었느니라”
이 때 루터는 요일 1:7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 때 사탄은 물러갔습니다.
이제 예수의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는 사하심을 입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심판에서 구원으로 옮겨진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③ 사랑의 십자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이며, 그곳이 바로 사랑의 현장입니다.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 이미 인류를 사랑하는 주님의 희생이며, 십자가에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성동에게 사랑을 가르치며 사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예수와 같은 사랑을 지녀야 합니다.
바울은 고전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믿음으로 천국의 영광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 소망은 우리를 승리하게 하며, 우리의 확실한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과 소망과 함께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사랑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생각하고 고백할 때 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사랑을 행하며 사랑의 빚을 갚는 성도가 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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