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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평안을 주노라 (요 14: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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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과 신앙에 가장 기초가 되는 축복이 평안입니다. 성공도 평안이 있을 때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평안이 없으면 쌓여진 명예도,재물도,성공도 제대로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평안은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전제적인 것 이어야 합니다. 즉,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평안, 나와 내 양심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평안,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평안, 경제와 삶의 환경속에서의 평안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평안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 평안이 너무 절실하기에 우리는 늘 이렇게 인사합니다. "안녕하셨습니까", "평안하셨습니까" 인사나 편지의 서두에는 늘 평안을 묻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 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우선 무엇보다도 평안을 주시겠다고 하는 주님의 처지를 생각해 보 면 아주 재미가 있습니다. 곧 십자가를 져야 할 운명에 있습니다. 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주제에 제자들에게 평안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조금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마치 감옥속에 있는 바울이 밖의 성도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 하는 것과 똑 같습니다.

깊히 생각해 보면,우리 주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한 이 평안은 환란 과 고난이 면제된 평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환난의 비바람이 몰아치고, 고난의 물결이 출렁이고, 전개될 미래 는 암울한 폭풍우가 예상되는 가운데서도 가질 수 있는 평안을 말 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눈앞에 두고 있는 평안이야말로, 모든 근심과 고난을 소화해 내는 평안이요, 모든 환란을 초월해서 절대적으로 가질 수 있는 참된 평안을 말하는 것입니다.

(극명한 한 예를 들어보면)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과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실 때 큰 폭풍이 일 었습니다. 제자들은 무서워 떨었으나,그 가운데서 주님은 깊은 잠 을 주무실 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 깊은 잠은 평안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자굴에서 다니엘이 하룻밤을 잘 수 있었던 평안이요,천사 가 옆구리를 처야 일어날 수 있었던 감옥속에서의 베드로의 단잠과 같은 평안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말씀하고 있는 평안의 큰 특징을 먼저 말하라고 하면 이것은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평안을 말하는 것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이것은 내가 세상에서 획득하는 것과는 다른 평안을 말하는 것입니 다. 수도를 통해서,훈련을 통해서,마음을 조절해서 얻은 평안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셔야 받는,즉 오직 주님과의 관계에서만 얻을 수 있는 평안 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29:1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 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평강의 복은 오직 여호와께로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평강의 복은 오직 여호와를 의뢰하고 항상 그를 의지하 는 자가 받은 평안인 것입니다.

사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 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평강에서 평강으로 지켜지는 놀라운 축복은 어떠한 상황가운데서든 지 주를 의뢰하고 주님안에 있는 자가 받은 것입니다.

(예)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 신사가 가정 불화로 인 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자살을 하려고 한강으로 나갔습 니다. 오래 전의 일이라 그 때만 해도 동부이촌동 모래더미 사이 사이에는 누더기 천막을 치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 다. 이 신사가 무거운 마음으로 죽음을 향해 가고 있을 때 어 디 선가 찬송가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그는 이 찬송가 소리가 나오는 천막을 향해 발길을 돌렸습 니다. 그곳에서는 한 가족이 모여 앉아 가정예배를 드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하루 종일 채소를 팔고 돌아왔는지 모릅니다. 아버지는 고물 장수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은 하루의 일과를 마친 늦은 밤, 감사와 기쁨의 예배를 드리 는 것이었습니다. 이 신사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천막에서 살면서도 그들의 삶에는 감사가 있는데, 나 에겐 감사도 없구나. 이 가난 속에서도 평안이 넘치는데, 나의 마음은 근심과 허무뿐이구나.' 그는 발길을 돌렸습니다. 죽음으로 향하던 그의 마음은 그리스도를 찾앗습니다. 그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하게, 그리고 평화를 누리도록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그 어떤 상황도 인간에게 진실한 평안을 줄 수는 없는 것입니 다.

두번째로 생각할 것은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같지 않은 평안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주는 것같지 않는 평안이라고 하는 뜻은 무엇입니까

1.죄사함가운데 주시는 구원의 평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평안입니다. 여러분! 죄가 있는 곳에는 참 평안이 없습니다. 사람에게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근본적인 구원의 문제가 해결되기 까지는 진정한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기기 전에 이 평안을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다음에 맨 처음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바로, "평강이 있을지어다!"는 선언이요, 인사였습니다.

십자가로 죄사함을 주었고,구원을 이루었으니,세상이 줄 수 없는 이 진정한 평안을 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2.세상이 주는 것같지 아니하는 이 평안은 성령의 평안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령이 오시게 되면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 다는 말은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모르니까 어디까지나 불안한 것입니다. 잘 모르니까 두렵고 겁이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섭리를 바로 알게 되면 두려울 것도 없고 무 서울 것도 없는 것입니다. 성령이 이것을 알게 하고 성령이 평안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성령은 보혜사라고 했지요 그 뜻은 우리들 옆에서 돕고 말씀 하심으로 위로하고 격려하며,하나님의 뜻을 해석해 준다고 했습니 다. 그 성령이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 때문에 평안한 것입니다.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3.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궁극적인 결과를 알게 됨으로 가지는 평안 이기 때문에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다른 것입니다.

요14: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 보다 크심이니라

내가 간다는 말은,십자가를 지고 죽은 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온다는 말은 결과적인 것으로서 부활할 것이고,하늘에 오르 셨다가 다시 심판주로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였으리라는 것입 니다.

과정은 좀 복잡하고,고난스러우나, 그 결과가 확실하기 때문에 기 쁨과 평안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예) 요한 웨슬리-대서양을 건너서 미국가는 길에 큰 풍랑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 중에 요한 웨슬리는 찬송가441장/'비바람이 칠때와 물결높이 일 때에 사랑하는 우리 주 나를 품어 주소서" 선장이 짜증을 부리면서 기도나 하시요. "선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 갈 것입니다. 천당을 가든 미국을 가든 둘 중에 한 곳에는 갈 것입니다." 빠지면 천국갈 것이고,무사하면 미국갈 것이니 무엇을 걱정할 것이 있느냐는 것이지요.

사실 순탄한 생애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고생하고 있어도 우리는 마지막 약속들이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세 상이 주는 것같지 아니하는 평안을 가지며 사는 것입니다.

(예) 이성주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평북선천에서 신앙을 지키다고 공산당에게 순교를 당하신 분입니다. 그 분에게 한 번은 공산당 정치 부위부원이 여러가지로 자신들에게 협조할 것을 회유하였습니다. 끝까지 거부하니까,그가 하는 말이,"끝까지 그렇게 고집을 부리면 소망이 없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이성주 목사님이 아주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들의 소망은 당신들의 소망과는 비교가 않됩니다.당신네 소망 은 보습끝 소망이요,우리의 소망은 나팔통 소망입니다."

이 말은 소학교 중학교,대학나오면,결혼하고 출세하고 40대 50대 살 다가 은퇴하면 늙고 죽어 지옥에 가니 점점 적어지다고 마지막에는 비참해 지지 보습끝 소망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러나 우리 신자들은 소학교 중학교 대학교를 지나면서 잘 배우나 못배우나 그 다음은 직장에 가도 주님을 위해서 일합니다.그리고 하 나라에 상급을 쌓습니다, 그리고 죽습니다.부활합니다.주님을 만납 니다.면류관받고 천국에서 영광누리면서, 영원히 영원히 더 좋고,더 높고,더 크게,더 넓게 살게 될 것이니 나팔통 소망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나팔통 소망,나팔통 믿음을 불어대면 거기서 평안의 소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주님으로 말미암는 세상이 주는 것같지 않은 평안을 한마디 로 종합하라면 이것은 젖먹이가 그 어미의 품안에서 얻는 것같은 평 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원초적인 평안이요,절대적인 평안입니다. 시131:2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1.오직 주님으로 부터만 받는 평안을 주시옵소서 십자가가 있고,환란이 있다할 지라도 주님의 날개 아래 품어서 받는 그 평안을 받게 하옵소서! 죄사함얻고 구원받은 평안을 새롭게 하게 하옵시고, 늘 함께 하시는 성령의 평안을 주옵시고, 궁극적인 주님의 선을 믿으면서 평안을 가지며 살게 하옵소서!

<참고> 롬2: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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