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령의 열매-화평 (요 14:27)

첨부 1


우리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바라는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평안일것입 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바로 평안하지 못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안하지 못한 세상속에 살아가는 인간들이기에 늘 마음속에 평안을 갈구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각 나라의 인사말에서 그 실정을 잘 알수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 "굿모닝"이라는 인사는 영국이란 나라가 아침나절에 안개가 많이 끼이므 로 사람들이 좋은 아침이 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좋은 아침 굿모닝이라는 인삿말을 하게 된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진지 잡수셨습니까 "라는 말 역시 옛날에 사람들이 가난해서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했기에 나온말이요 "안녕하십니까 "라는 말 역시도 안녕하지 못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에 밤새 무사히 지냈느냐는 의미에서 안녕하십니까 라는 인삿말을 쓰게 된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히브리어로 샬롬 헬라어로 에이레네라고하는 인삿말은 이스라엘이 역사적으로 지리적 으로 전쟁이 많고 그로인해 사람들이 늘 불안했기에 이런 마음을 반영한 인삿말이 샬롬 에이레네라는 인삿말이 된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의 제목이 되는 화평이라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삿말로 쓰고 있는 샬롬이라는 에이레네라고 하는 말입니다.

바로 이런 화평의 삶이 우리 기독교인들이 가져야되는 성령의 열매의 한 요소인 화평 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화평은 어떤 뜻을 가지고 있습니까 세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1) 갈등이 없고 문제가 없는것 2) 바른 관계를 맺는것 3) 영원한 평화와 안전을 두고 말하기를 화평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 이런 화평을 누리고 있습니까 간직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보면 이런 화평은 우리가 사는 현실에 있어서 도저히 이루어질수 없는 추상적 인 내용들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것은 세상이 주는 것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성도 여러분 ! 평안이 없는 우리에게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근심할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그 이유는 평화라고 하는것이 어떤 경우에 우리의 마음속에 찾아오는지를 추적해보면 우리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평화는 어떤 경우에 생깁니까

1. 자기가 가지고 있는 죄가 용서함을 받았을때 마음에 평화가 옵니다.

 빌리그래함 목사님은 [하나님과의 화평]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불편한 관계,하나님과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화평하 지 못하고 화목하지 못했던 관계였다.그러나 믿음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 게 여기실때에 진정한 화평이 찾아온다" 옳습니다. 사실 우리의 삶속에서 진정한 화평은 죄문제가 해결되어져야만 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협회의 회장이었던 호바트 모우어라는 박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땅위에도 지옥이 있다. 그 지옥은 속죄되지 않은 죄와 죄의식으로 인해 가는 지옥 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엄청난 말입니까 원죄로 인한 죄 ! 자범죄로 인한 죄 !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그것은 곧 지옥이 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죄악 우리 인간들의 마음속에 있다면 어떤 경우가 되더라도 진정한 화평 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오 ! 하나님 우리가 당신 품에 돌아와 쉴때까지는 결코 평안함이 없었습니다." 옳습니다.

진정한 화평은 평화는 한 영혼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 으로 모실때 그때에야 비로소 이루어지는것입니다.

누가복음 1:14에 보면 우리의 죄를 해결해 주신 예수님께서 이땅위에 오실때 천사들이 노래하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천사들이 우리 인간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주님을 두고 어떻게 찬양합니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 화로다" 할렐루야 ! 평화의 구세주로 우리 예수님께서는 오신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왜 예수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것은 세상이 주는 것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했 는지 아시겠습니까 바로 주님이 평안의 주관자요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그리스도의 은총속에 들어갈때 우리들에게는 참된 평화가 주어지는것입니 다.

 2. 우리에게 찾아오는 화평은 외부적인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입니다.

 이 말은 외부적으로는 전쟁이 있고 사회가 불안하고 혼란속에 있더라도 우리들 마음속 에는 화평이 있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화평은 풍랑속에서도 배안에서 주무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나타났고 수많은 신앙의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어떤 암 환자가 너무나도 평화스러운 모습으로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옆에 있던 간호사가 신기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어떻게 당신에게 그런 평화가 있습니까 " "내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내가 불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하나 님을 하나님되게 해 드려야 합니다. 내가 만약 불안해하면 내 마음속에 하나님을 모실 수가 없습니다.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함께 계신것을 믿습니다.그리고 하나님은 내게 필요한 것을 언제고 준비해 주십니다.내가 죽으면 하늘나라를 준비해 주실 것이 고 살아서도 하나님이 나의 필요한 모든것을 준비해 주실 터이니 내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그 간호사는 감동하여 예수를 영접하고 믿었다고 합니다.

화평은 외부적으로 먼저 우리에게 찾아오는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먼저 찾아오는것입니 다.

오늘 우리 교회 제 3,4 여전도회서는 대청동에 있는 실로암 맹인 교회에 탐방을 갔습 니다. 우리는 탐방을갔고 저들은 수요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는 우리가 공통적으로 느낀것은 그런 육신적인 악조건속에서도 저들은 예배를 드리면서 마음속에 큰 평화가 있었다는것입니다.

눈도 멀고 청각까지 가는 한 청년이 찬송가 반주를 하고 눈먼 자매가 찬양 인도를 하고 눈먼 목사님이 사회를 보시는데 특히 헌금기도를 할때 예배전에 그 목사님의 사모님이 누가 헌금을 했는지 잔깐 일러주었는데 그 이름을 다 기억하고 축복의 기도를 해 주셨 습니다.

어떻게 앞을 보지도 못하면서 반주도하고 찬양 인도도하고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가면 서까지 기도를 할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저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넘쳐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여러분 ! 그런데 저는 그런 광경을 보면서 그기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 우리 성도님들의 표정 도 설교를 하면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제 3,4여전도회의 회원들의 표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사실 눈만뜨면 세상의 모든 만물을 다 볼수 있는 그런 행복한 우리가 아닙니까 그러나 어떤때는 그런 행복때문에 오히려 못볼것을 보고 못들을것을 들어서 짜증이 나고 그로인해 마음의 평화가 찢어져 버리는 경우가 허다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오늘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는 우리 성도님들의 얼굴에는 제가 보기에는 짜증도 고통도 근심도 없었습니다. 오직 평화스러운 얼굴만이 우리 성도님들이 앉아있었던 성가대석을 가득채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저들이 그 평화의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간직한채 예배 를 드리기에 그 영적인 화평이 우리 성도들에게도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화평은 내적인 마음으로부터 시작이 되어지는것입니다.

이에 우리 예수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것은 세상이 주는 것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했 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 에 깊이 간직할수 있는 내부적인 것입니다.

 3. 평화는 에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의지가 수반되어질때 우리의 마음속에 찾아옵 니다.

 이 말은 우리는 평화를 위해 그냥 그대로 수동적으로 앉아 있어서는 안된다는것입니 다. 다시 말하자면 평화의 객체가 아니라 평화의 주체가 되어야 된다는것입니다.

롬 10:15에 보면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본래 이사야 선지자의 메시지에서 인용한 말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이부분에 대한 메시지를 보면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내 하나님의 통치하신다는 자의 산을 넘는 그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복음이 전파되는곳에는 평화가 확장되어지고 더 나아가서는 그 자체가 아름다운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된 신분으로서 평화를 위해 그저 수동적으로 따라가는것이 아니 라 피동적으로 끌려가는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앞장서 나아가야 됩니다.

교회사를 공부하다보면 우리 기독교인들이 범죄한 역사의 한 사건이 있음을 알수 있습 니다. 십자군 전쟁입니다.

저들은 이슬람교에 의해 점령되어 있던 예루살렘 성지를 탈환하기 위해 일어섰습니다.

좋은 목적으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잘못된 방법 증오나 폭력을 사용했고 그 결과 유럽의 수많은 성도들의 가정에 도저히 지울수 없는 상처들을 남겠습니다.

수만의 어린아이들이 고아가 되었습니다.

수천의 여인들이 과부가되고 가정은 파괴되었습니다.

참으로 암담한 시절이었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의 정신이 성경의 핵심에서 가장 멀리 떠나있었던 시대였습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흥분하여 소리를 높이고 있었습니다.

이때 사랑의 등불을 켜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시스의 성자 프란체스코였습니다.

"주여 !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고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며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주여 !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능동적으로 평화를 만들어가는 한 성자의 아름다운 모습입니 다.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옛날보다 더 나은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그런데 왜 더 화평하지가 못합니까 우리는 옛날보다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더 평안하지가 못합니 까 우리는 옛날보다 더 풍성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왜 평화스럽지가 않습니까 그 이유는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3가지의 평화를 찾는 작업에서 실패를 했기 때문입니 다.

 1. 근본적으로는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 외부적인 상황속에서만 평화를 찾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3. 수동적으로 평화가 나에게 찾아올것을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 우리는 오늘 저녁 이 시간 이 세가지의 실패의 장면에서 벗어나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진정한 평화의 삶을 누릴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평화의 삶을 누리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물론 앞에서 부분적으로 평화로운 삶을 살기위한 방법들을 제시했습니다만 다시 한번 더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평화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1. 예수님을 찾는것입니다.

 마 11;28에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우리 예수님은 자기에게 오는자들을 결단코 버리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는 예수님의 그 평안을 얻기 위해 세상의 명예,지위,권세를 모두 분토와 같이 여기고 예수님앞에 나아왔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평안을 얻었습니다.

여리고성의 세리장 삭개오 그도 역시 예수님의 평안을 얻기 위해 세상의 지위와 권세 에 아랑곳 하지 않고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역시 평안을 얻었습니다.

이런 일은 오늘날에도 계속됩니다.

실로암맹인교회 교인들 역시 어려운 현실속에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저들에게 그리스도의 평안이 주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더 이상 내 재간으로 무엇을 할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납시다 이제 더 이상 우리의 지혜와 지식에만 의존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납시다.

이제 더 이상 세상의 무익한 문제나 쓸데없는 요구로 괴로워하지 맙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평안을 얻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이렇게 해서 예수앞에 나왔다면 이제 기도를 해야 됩니다.

 기도하면은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안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마음 과 생각을 지키시는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지중해에서 십여일 표류를 하고 뱃사람들이 식음을 전폐하고 불안해 할 때 바울은 풍랑중에 기도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불안해 할때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기도한 바울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바울아 두려워말라 네가 무사하리라" 기도의 결과 평안이 사도 바울에게 주어졌던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 짖겠습니다.

조수아 립브맨이라는 사람의 저서중에 피스 오브 마인드(마음의 평화)라는 책에 이런 내용의 글이 있습니다.

어떤 신앙의 사람이 어느 젊은이에게 가장 원하는것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이 질문에 젊은이는 대답을 합니다.

첫째는 건강 , 둘째는 사랑 , 셋째는 재물 , 넷째는 아름다움 , 다섯번째는 재능 여섯번째는 권력 , 일곱번째는 명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지혜로운 신앙인은 그 젊은이에게 충고를 합니다.

'친구여 마음의 평화가 없이는 그 모든 것들을 하나도 즐길수가 없다네' 아무리 건강이 주어져도 아무리 사랑이 주어져도--------평안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의 평안이 이루어졌을때 건강한 삶을 누리수 있는것입니다.

 평안이 이루어졌을때 그 사랑은 아름다운것입니다.

 평안이 이루어졌을때 그 재능은 빛이나는 것입니다.

결단코 건강으로 인해 평안이 이루어지고 사랑으로 인해 화평이 이루어지고 명예로 인해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법입니다.

성도 여러분 ! 평안하십니까 마음의 평화가 있습니까 가정에 화평이 있습니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것은 세상이 주는 것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런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오지 않습니까 우리 청년들이 늘 부르는 복음송중에 들을때마다 심금을 울리는 복음송이 있습니다.

불안과 초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그 복음송은 더욱더 애절하게 깊이 저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이제 그 복음송을 저와 우리 청년들이 부르겠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들어주시고 듣는중에 오늘의 말씀을 마음속에 정리하면서 진정한 평화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수도 없는 평안 평안 평안 너에게 평안을 주노라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