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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요 14: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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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가진 최후의 만찬석에서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었다가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의 부활이 없는 예수님의 부활은 생각할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만찬석에 참예하였던 제자들 가운데 가룟유다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다 순교의 제물로 죽었습니다. 그러면 그 제자들이 주님을 위해서 죽기까지 충성을 다했던 그 이유와 원동력은 어디 있습니까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고 희망적인 말씀을 듣고 믿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백세나 되어서 얻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릴 수 있었던 그 용기와 믿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부활의 믿음과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순교의 정신으로 자기의 독자를 번제로 드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을 연관시켜 주는 말씀 가운데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고 하는 말씀으로 확실한 말씀이 없습니다.

"내가 살았으니 너희도 살겠음이라" 아주 간단 명료하면서도 뜻이 정확한 이 말씀이 우리에게 큰 소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성경 말씀 그대로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고 하신 말씀으로 제목을 삼아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너희도 살겠음이라"고 하셨습니까

1. 예수님이 다시 사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살았다"는 말씀은 예수님은 죽음과는 상관없으신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심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이요 하나님과 동등하시기 때문에 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살았다"고 하는 말씀은 앞으로 살겠다는 예언이 아니고 영원한 생명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까닭은 포도나무 뿌리나 원줄기나 가지가 다 포도나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이라 하면 하나님 아버지 따로, 아들되신 예수님 따로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한복음 10:30에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사실상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미움받아서 죽으신 그 이유도 하나님과 자기 자신이 하나라는 주장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가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극형을 받아 죽으면서까지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또 빌립보서 2:6에서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그 본질이 여원한 생명체로서 죽음과는 상관이 없는 분이시리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영원한 생명의 본체시라고 믿어야 합니다.

 시편102:12에서는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의 기념 명칭은 대대에 이르리이다"고 했습니다. 주는 영원히 계신다고 할 때에는 모든 것은 다 멸망한다는 의미가 있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있는 동물이나 식물은 멸망한 것도 있고 또 다 멸망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생명이시요,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죽음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죽음은 죄의 대가로 오는 형벌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는 죽음이라는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시편 102:26-27에서는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주의 년대는 무궁하리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으신 피조물들은 다 멸망당하고 없어지는 날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주되시는 하나님은 영존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사신다 해서 사람처럼 늙거나, 쇠퇴하거나, 죽지 않는 영원하신 능력자이십니다. 히브리서 7:25에서 "예수는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생명의 원인자로서 영원히 사시고 항상 살아계십니다.

이사야 40:28에는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니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는 자는 예수와 함께 다시 살아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내가 살았고'하는 말씀은 예수는 죽었다가도 다시 사실 몸이라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15:4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 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여러번 예언해 주셨고 또 구약성경에도 여러 곳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성전을 헐고 삼일만에 다시 세우시겠다고 장담하셨을 때에 모든 사람은 다 비웃었습니다. 왜냐하면 헤롯왕이 국고를 털어서 46년간이나 지었던 웅장한 성장을 삼일만에 짓겠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억측은 순전히 오해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의 몸을 성전으로 비유하여 가르쳐 주심을 저들이 몰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예수께서는 자기가 죽었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실 사건을 요나의 표적으로 비유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삼키웠다가 삼일만에 살아났던 것처럼 예수게서 무덤 속에 묻히겠지만 삼일만에 부활하실 것은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시편 16:10에서 예언하기를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3:34에서는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죽었다가도 생명을 다시 취하여 살아날 수 있는 하나님이라고 증거하기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17-18에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을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내가 살았고' 하는 말씀에서 배울 수 있는 진리는 우리의 믿는 소망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의 원천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이라야 이미 죽은 자도 다시 살리시고, 그리고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 이라야 이미 죽은 자도 다시 살리시고, 죽을 자도 죽지 않게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사로는 죽어서 이미 나흘이나 되고, 또 썩어져 냄새가 나는 시체로 변했지만 새 생명을 주어서 다시 살리셨던 것입니다.

 또 에스겔에게 계시하던 대로 이미 죽은지 오래 되고 또 살은 썩어서 산화해 버리고, 마른 뼈들만 굴러 다니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새 생명을 주어서 부활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그러기에 생명이 되신 그리스도를 믿은 자 마다 죽어도 다시 살게 되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2. 우리도 부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근거는 그리스도가 살아 나셨기 때문 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목적은 우리의 부활을 위함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살았으니 너희도 살겠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가 살았으니 너희도 살겠다고 하셨는가를 성경에서 찾아봅시다.

 첫째,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기 때문에 부활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20절에서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고 하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와 철저한 연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우리의 부활이 된다는 말씀은 몇 가지 비유적인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부활의 첫 열매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5:23에서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라고 하였습니다.

 첫 열매란 말씀은 부활의 첫 번째란 뜻입니다. 모든 곡식들이 이삭이 나올 때에 한꺼번에 똑같이 올라오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첫 이삭이 올라오면 나머지 이삭도 따라 올라올 것을 믿게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을 보니 나머지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도 다 부활하게 될 것을 믿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을 포도나무와 그의 가지로 비유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5장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살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해 있는 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 하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몸과 지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몸으로 비유하여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살아 있으면 몸은 따라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머리가 죽으면 몸의 지체도 다 죽게 됩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살으셨으면 그의 지체가 되는 우리 성도는 틀림없이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와 우리 성도와는 한 몸으로 연합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죽으면 우리도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살면 우리도 다시 산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그리스도와 함께"라고 누누히 증거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14에서는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6:8-9에서는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2:20에서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8:32에서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연합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나의 죽음이요, 그리스도의 부활은 곧 나의 부활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것을 알 수 있습니까 본문 21절에서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요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인가를 알 수 있는 증거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을 보고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충성하는 것이 별로 없다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예수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또 예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부족 하지만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헌금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요한복음 21:15에서 보면 예수께서 부활하신 줄도 모르고 베드로는 자기의 옛 동료들을 데리고 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부활하신 에수께서는 베드로의 고기 잡는 디베랴 바닷가에까지 찾아가셔서 떡과 고기를 주시면서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사랑하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때에 베드로는 "그러합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위해서 충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약하여 자기의 사명을 감당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분명히 있었습 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도 약하고, 충성도 못하고, 결심이 약하여 늘 넘어지고 범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숨길 수 없고 결코 거짓없는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기도할 마음이 생기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고, 누가 교회를 비방하면 기분이 상하고,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마음이 아프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것은 그리스도와 신비로운 연합때문입니 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할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8-9에서 말씀하기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했습니다. 생각하면 오느랄 우리도 신기하고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보지 못하였는데, 예수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예수님을 위해서 시간 바치고 재물을 바치는 것이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까 어떤이는 예수를 위해서 매를 맞고 옥에 갇히고 심지어 목숨 바치는 것까지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본받아 우리도 부활할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의 부활이 없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있을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5:13에서는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또 15:16에서는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 하셨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연합한 자에게는 그리스도의 죽음은 곧 나의 죽음이요, 그리스도의 부활은 곧 나의 부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주님께서는 "내가 살았은지 너희도 살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짧은 생애를 살아가면서 이 말씀처럼 희망과 용기와 위로가 되는 말씀 이 어디 있습니까 만물이 소생하는 이 계절에 "너희도 살겠고"하는 말씀은 우리가 만물의 영장이 됨을 확증해 주고 있습니다.

학이나 거북이 같은 짐승도 천 년을 살고 쉐콰이어 나무같은 식목도 칠 천 년을 산다는데 하물며 그리스도와 연합된 하나님의 자녀가 단 백년도 못살고 끝난다면 될 말입니까 세상의 곤충들도 알이 되었다, 애벌레가 되었다, 나비가 되었다, 번데기가 되었다 하면서 생명이 연장되어 가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단회적인 삶으로 끝난다면 될 말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부활하신 예수께서 "내가 살았으니 너희도 살겠고"라고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시고 부활을 희망하는 자마다 주님의 계명을 지켜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계명을 지키는 것을 보니 그리스도를 사랑함을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과 연합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보니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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