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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리가 무엇이냐? (요 18: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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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처음에는 대제사장의 장인이며 당 시 유대교의 실질적인 실력가였던 안나스와 대 제사장 가야바, 그리고는 로 마 총독 빌라도에게 차례로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이렇게 심문을 받으실 때,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유명한 질문 한가지를 던졌습니다. 그거은 "진리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왔다고 말씀하셨을 때 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얼마나 중요한 질문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빌라도에게 진지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빈정거리듯이 이 질문을 던져 본 데 불 과했습니다. 성경 주석가 로드 베이컨은 "빌라도,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 았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질문을 가 지지만 대답을 진지하게 들으려 하지 않기에 문제입니다. 누구든지 진지하 게 예수님을 알려고 하면 예수님께서 그에게 무엇이 참 진리인지 깨닫게 하 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지하게 예수님께 나아오지 않는 경우는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이시간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진리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물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리에 대해서 증거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크게 두가지 면으로 나뉩니다.

 첫째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폭로하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이 왜 예수님을 이렇게 죽이려고 했을까요 예수 님의 행적을 가만히 보면 예수님이 죽도록 미움을 받으실 일을 하신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무엇이가 그들을 괴롭게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단 표면적인 이유는 신성모독입니다. 예수님께서 감히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만이 아 닌 더 깊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그들을 죄인 취급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가장 경건하고 율법적으로 완전하다는 자부심과 자 존심으로 꽉 차있던 유대교 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로서는 견딜 수 없는 것 이었습니다.

 사실 이번 예수님을 재판하는 과정에서도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하 나님의 아들을 처형하면서도 얼마나 율법을 지키려고 애쓰는지 한편 우스울 정도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그들이 유월절을 깨끗한 채 맞이하기 위해서 이방인인 로마인의 집에 들어 가지 않으려고 빌라도 총독의 집 밖에서 예수 님을 송사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켜 의로와지 는 줄 알았고 자신들이 율법을 잘 지키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도 역시 죄인이라는 사실을 선언하셨습니다. 이 것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번째 일이고 진리입니다. 이것이 유대교 지도자 들을 격분시켰던 것이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단 진짜이유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똑같은 일을 하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죄의 본성을 낱낱이 드러 내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 우 고통스럽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오늘 이자리에서 누가 자신의 마음과 과거 그리고 현재의 생활을 그대로 폭로 시켜도 떳떳이 얼굴들고 앉아 있을 사람있습니 까 없습니다. 분명히 지극히 부끄러운 것이 한 사람 예외없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도 그것을 똑바로 보기를 거부합니다. 너무 괴 롭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로 이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의 진짜 모습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실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 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진리는 우리를 맨 밑바닥까지 내동댕이를 칩니다. 비참할 정도로 우리의 실체를 폭로 시키고 맙니다. 발가벗겨 놓고 맙니다. 위선의 허물을 거짓된 교만을 인간적인 가면을 완전히 벗겨 놓고야 맙니다. 그래서 십자가 앞에 서면 부끄러워 견딜 수 없게 됩니다.

 저도 예수님의 임재를 처음 확신하는 체험을 할 때 얼마나 제 죄문제 로 인하여 애통하였는지 모릅니다. 눈물바다를 이루었읍니다. 저 자신의 교 만과 어리석음과 추하고 더러운 마음을 그때 처음 보았습니다. 우리가 참으 로 예수님을 믿고자 한다면, 이 단계는 누구나 꼭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입니다' 인정하는 일은 고통스럽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죄 인 죄인 하지만 정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아파하는 자가 얼마 되지 않 습니다. 겉으로는 죄인인 것을 인정하는 것 같으나 사실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거부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라는 식으로 일반적으로 말하면 그래도 낫습니다. 그러나 누가 자신을 지목해서 '당신, 죄인이오'하면 얼굴이 찌푸려집니다. 정말 죄인인 줄 알았다면 얼굴이 상기 될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직 마음으로 부터 인정되지 않고 있는 증거입니 다.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스스로 죄인임을 깨달았다면 그에게는 두가지 큰 변화가 오게 됩니다. 첫째는 결코 남을 정죄하지 않게 됩니다.

나의 죄악의 실체를 알았는데 어떻게 남의 죄를 탓할 수가 잇습니까 어떻게 남을 나무랄 수 있습니까 나의 죄를 모르기에 남을 정죄하는 것이 요, 자기 죄의 크기를 모르기에 남이 더 큰 죄인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부부싸움을 해도 처음에는 다 내가 잘한 줄 알았지만 예수님께 나가 기도해 보면 내 잘못이 더 크다는 사실 깨닫게 되고 아이들 잘못해서 야단 치다가도 예수님께 나가 기도해 보면 부모된 내게 더 문제가 많음을 인정하 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네가 잘했다. 네가 옳다. 끝까지 싸워 이겨라"하시지 않습니다. 언제나 "네가 잘못했다.먼저 사과하라"하십니다.

 우리는 남의 죄를 정죄할 자격이 없는 자임을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 셨습니다. 하나님께는 살인죄나 사람을 마음으로 미워하는 죄나 같다고 하 셨습니다. 도둑질이나 마음의 탐심이나 같다고 하셨습니다. 음란죄나 마음 의 음욕을 품는 것이나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 보면 누 가 누구보다 더 나은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남의 죄를 비판하고 정죄 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 죄인임을 깨달은 자는 두번째로 교만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형태이든지 자기를 내세우고 자랑하고 교만한 것은 아직도 자기 자신을 못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죄 많은 창녀와 세리는 오히려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경건하고 존경받는다고 자부하던 ,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알아 주시리라고 여기던 바리새인들은 '독사의 새끼 들'이라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창녀와 세리들은 자 기 죄를 인정하고 겸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죄인이면서 오히려 교만했 기 때문입니다.

 "목사님, 물론 내가 완전하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목사님 도 알다시피 나는 소망없이 사는 술주정뱅이나 창녀나 살인자나 폭력배 범 죄자와 같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인정하셔야 합니다. 모두가 다 똑같다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선하게 살려고 무척 애썼는 사람이나 밤낮으로 지 성을 드리는 사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죄인이라고 하면 오히려 이 사회의 도덕체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이 아무리 항의하고 반발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 가 조금이라도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남을 본다면 우리는 아직 우리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착한 일 하는 단체나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그런데 이것이 그만 자신은 선한 자로 착각하게 만들면 문제입니 다. 그 선한 일이 오히려 그를 더욱 죄인으로 만들기만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싫어 하는 것은 우리의 교만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죄짓는 일 밖에 없다고 우리를 몰아 치고 있습니다. 한가 지 선행을 해 놓고 10가지 죄를 지을 수 잇는 것이 우리 자신의 실체입니 다.

 이것이 에수님이 증거하시는 첫번째 진리입니다. 여기까지 보면 예수 님을 믿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우리의 실체와 죄를 파헤치는 예수를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증거하시는 또 하나의 진리가 더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는 예수님은 우리에게 죄는 미워하시나 사람은 죽도록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진리를 보여 주십니다.

 왜 이토록 죄를 들추어 내시겠습니까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어 조롱하 시려고 하나님께서 그처럼 잔인하신 분이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오신 이 유가 단지 우리의 죄를 폭로하시기 위해서만 이겠습니까 하나만 알지 둘은 모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밝히 드러내셔야 할 진짜 중요한 이유는 사실 하나님의 참 사랑과 구원의 소식을 전하려 하심입니다.

 그러면 죄를 이렇게 밝히지 않고는 안되었습니까 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알지 못하고는 구원받아야 함을 절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힘 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구원의 문제를 아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 주신 구원의 복음을 붙드는 동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병원에 갔더니 온갖 검사를 다 합니다. 속속들이 내부가 다 드러 납 니다. 혈관 속 분비물 속 온갖 내부 장기의 상태가 다 드러납니다. 그러나 내몸인데 나는 모르겠습니다. 검사결과를 지켜 보아야 합니다. 검사에 순종 해야 합니다.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왜 이렇게 합니까 목적이 있습니 다. 혹시 문제가 있으면 밝혀 고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병의 실체를 보고 나면 약을 먹게 됩니다.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막연하게 약을 먹을 수 는 없습니다. 병이 없다고 생각하면 약을 누가 먹겠습니까 그 필요성과 고 마움을 누가 알겠습니까 암에 걸린자는 암을 고칠 약을 얼마나 간절히 찾 고 찾습니까 그러나 암에 걸렷으나 암인 줄 모르는 자는 암을 고치는 약이 나와도 별로 감흥이 없을 것입니다. 이때 병이 있음을 밝혀 내는 것이 잘못 입니까 아닙니다 꼭 필요한 것입니다. 자신이 무슨 병이 있는 지 아는 것 이 병을 고치는 첫단계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죄를 깨닫는 것은 우리가 죄로부터 구원을 받는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죄란 곧 하나님의 진노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우리의 죄를 폭로하시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서 내 실체가 드러났다 생각하면 부끄러워 할 것도 모욕받았다 할 것도 없습니다. 차라리 홀가분합니다. 마음이 시원합니다.

가면을 벗어도 됩니다. 이제 문제는 이 죄를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느 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예수님께서 주시는 진리의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 은 죄인들을 초청하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나는 의인을 위하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위하여 왔다''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 라'

우리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알아 듣 지도 못하고 어리석어서 자신을 구원하실 메시야를 오히려 죽이는 자이지만 그래도 구원하시고자 애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은 스데반집사를 돌로 쳐 죽인 장본인입니 다. 하나님께서 그 스데반을 보는 마음은 어떻겠으며, 그 사울을 보는 마음 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을 죽도록 핍박하던 이 바울이 스데 반을 죽이던 그 자리에서도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고 계셨습니다. 아 이 얼 마나 기가 막힌일 입니까 이것이 십자가 상의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고전 2:8 "만일 그들이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 하였 으리라"

중생받으라고 전할 말씀을 받으셨던 목사님 아직도 참 회개도 모르고 하나님의 참 사랑도 모르는 저들에게 이 사실을 전하라!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의 구속하신 은혜를 정말 믿는 다면 십자가만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자랑할 것 이 없는 사람처럼. 단순히 믿는 자로서 그칠 수가 없습니다.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가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입니다. 이 진리 안에서 우리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내세의 구원 뿐 아니라 바로 이곳에 서의 구원도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죄악의 세력이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참 회개의 유익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증거입니다.

 '내가 죄인입니다' 인정하는 일은 고통스럽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죄 인 죄인 하며 겉으로는 죄인인 것을 인정하는 것 같으나 사실은 자신이 죄 인인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스스로 죄인임을 깨 달았다면 그에게는 두가지 큰 변화가 오게 됩니다.

첫째는 결코 남을 정죄하지 않게 됩니다.

나의 죄악의 실체를 알았는데 어데게 남의 죄를 탓할 수가 잇습니까 어떻게 남을 나무랄 수 있습니까 나의 죄를 모르기에 남을 정죄하는 것이 요, 자기 죄의 크기를 모르기에 남이 더 큰 죄인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부부싸움을 해도 처음에는 다 내가 잘한 줄 알았지만 예수님께 나가 기도해 보면 내 잘못이 더 크다는 사실 깨닫게 되고 아이들 잘못해서 야단 치다가도 예수님께 나가 기도해 보면 부모된 내게 더 문제가 많음을 인정하 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네가 잘했다. 네가 옳다. 끝까지 싸워 이겨라"하시지 않습니다. 언제나 "네가 잘못했다.먼저 사과하라"하십니다.

 하나님께는 살인죄나 사람을 마음으로 미워하는 죄나 같다고 하셨습니 다. 도둑질이나 마음의 탐심이나 같다고 하셨습니다. 음란죄나 마음의 음욕 을 품는 것이나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 보면 누가 누구 보다 더 나은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남의 죄를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번째로 교만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형태이든지 자기를 내세우고 자랑하고 교만한 것은 아직도 자기 자신을 못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죄 많은 창녀와 세리는 오히려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경건하고 존경받는다고 자부하던 ,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알아 주시리라고 여기던 바리새인들은 '독사의 자식 들'이라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창녀와 세리들은 자 기 죄를 인정하고 겸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죄인이면서 오히려 교만했 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물론 내가 완전하다고 주장하 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소망없이 사는 술주정뱅이나 창녀나 살인자나 폭력배 범죄자와 같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인정하셔야 합니다. 모두가 다 똑같다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선하게 살려고 무척 애쓰는 사람이나 교 양있게 살려는 사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죄인이라고 하면 오히 려 이 사회의 도덕체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이 아무리 항의하고 반발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 가 조금이라도 자신을 어던 사람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교만이 고,아직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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