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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가J를십자가에못박았는가 (요 19: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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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고 또 채찍질하 고 모욕하고 십자가 사형을 정하는 모든 장면을 더욱 생생하게 볼 수 있습 니다. 우리는 빌라도와 유대교 지도자들이 얼마나 예수님을 괴롭게 하였는 지를 읽으며 이들에게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 빌라도는 자신 양심을 속이는 재판관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 장 죄질이 나쁜 사람을 꼽으라면 자기 이익 때문에 거짓 판결을 내리는 재 판관과 거짓 증언을 하는 증인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피해자라고 생각해 보 십시오. 얼마나 고통스럽고 억울하겠습니까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죽을 죄 를 짓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자기 입으로 여러번 시인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매질 했습니다. 당시 로마의 매질은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두손을 쇠사슬로 높이 매달고 발은 바닥에 겨우 닿을 정도로 하면 온 몸이 경직되는데 그 위에 끝이 뼈조각을 단 채찍으로 내리치면 숨이 끊 어지는 듯한 고통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씌웠습니 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내어 주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오 직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였습니다. 빌라도는 무엇이 옳은가 하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세상의 이익만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사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석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 었습니다. 그러므로 빌라도의 책임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빌라도는 그 죄 값을 톡톡히 받고 있습니다. 아마 모든 인류 중에 빌 라도 만큼 저주를 많이 받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2000년동안 모든 성도 들은 예배 때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았다고 고백하기 때문입 니다. 저 지옥에서 이 소리를 듣는 빌라도는 어떻겠습니까 그는 고통스럽 게 울부짖을 것입니다.

 한편 유대교 지도자들은 더 나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도:11에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빌라 도는 양심이라도 있어서 예수님을 석방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유대 교 지도자들은 막무가내로 예수님의 처형을 고집했습니다. 교만과 형식적인 경건만 남은 죽은 신앙인들은 이와같이 회개를 모르고 독선만 남게 되는 것 입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또 메시야의 오심에 대한 예언의 말씀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방인이었던 빌라 도와는 입장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 가에 못박는데 더 앞장섰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유대교 지도자들과 유 대인들의 죄를 작다고 말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일 때문에 그 후손들이 얼마나 극심한 죄값을 치루었 는지 모릅니다. 유명한 십자군 원정 때 교황과 유럽의 왕들은 자신들의 목 적을 이루기 위하여 당시 기독교인들을 충동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단 유대인들에게 복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로인해 얼마나 많은 유대인 이 학살당했는 지 모릅니다. 그들은 세계 어디 가서나 멸시와 핍박을 받았 고 결국 독일에 의한 전무후무한 유대인 대학살의 희생물이 되기도 했습니 다.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디에 갔습니까 또 예수님으로부터 병고 침을 받았던 사람들, 죽었다가 다시 산 나사로와 나인 성 과부의 아들, 귀 신들렸다가 고침받은 사람들, 이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이들 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럴 수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 를 받은 사람들이라면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편에 서서 싸워야 하지 않겠습 니까

그러나 저는 본문을 묵상하는 중에 결코 빌라도와 유대교 지도자들 그리고 제자들만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빌라도를 보십시오. 만약 내가 그때 빌라도의 자리에 있었다면 어떠했을까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떠했을 것 같습니까

오늘 우리는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면서 참 당황스럽습니다. 도데체 누구를 뽑아야 합니까 국회의원은 앞으로 이 나라의 법을 만들고 다루어야 할 분들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선거법 대로 하지 않고 있습니다. 법대로 하 면 낙선할 것이 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회의원 후보자들만 그렇습니 까 우리 중에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정말 법대로, 또 옳다고 믿는 대로 사 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우리도 결국 진리보다는 내 이익만 먼저 생각하 는 빌라도와 꼭 같은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또 유대교 지도자들만 비난할 것도 아닙니다. 당시 그들이 형식적인 신앙에 빠져 있었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금 예수님께서 우리 가 운데 오시면 당신은 예수님을 알아 볼 수 있겠습니까 쉽게 자신할 수 없습 니다. 당시 유대교인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했고 또 열심도 대단했던 사람들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겉으로만 그 랬기에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정작 하나님의 아들은 몰라 보았 고 그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도 형 식에만 치우쳤지 생명을 잃고 있는 부분이 얼마나 많습니까 저만 그렇게 느끼는 것입니까

제자들과 예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자들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이 것도 제삼자 입장이니까 그들을 나무랄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그 입 장이 되었다면 로마 병사들의 그 창검 앞에서 얼마나 용감할 수 있었을까 자신이 없습니다. 아무리 은헤를 입었어도 그것은 그것이고 유대교 지도자 들의 그 서슬퍼런 권위 앞에서 말한마디 제대로 했겠습니까 예수님을 세번 부인했던 베드로를 조롱할 자격있는 이가 우리 중에 얼마나 있겠습니까 찬 송가 가사처럼 예수님께서 "나 너를 위하여 피흘려 몸버려 주었건만 넌 날 무엇 주느냐"하실 때 우리는 얼마나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정말 은혜받은 대로 합당하게 살고 있습니까 부끄러울 뿐입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는 사실 빌라도 만도 아니고 우리 모두 곧 저와 여러분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더욱 놀라운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 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정말 십자가에 못박히게 내어준 이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 다.

:10에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다가 예수님께서 아무 소리도 않 고 계시는 것을 보고 하도 답답하니까 "내게 말하지 아니 하느냐 내가 너 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고 말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마지막으로 대답하셨습니다. "위에 서 주지 아니 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라" 이것이 무슨 말씀이 십니까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허락하셨기에 십자가 에 달리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로마병정에게 뺨 을 맞고 채찍에 맞고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신 것이 능력이 없으셔서 그러신 것입니까 제자들은 이 사실이 도무지 이해가 안된 것입니 다. 예수님은 죽은 자도 살리셨던 분입니다. 풍랑도 잔잔케 하셨던 분입니 다. 떡 두덩이와 물고기 다섯으로 5000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를 남기셨던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구원하실 수 없었겠습니까 빌라도의 권세 와 로마 병정들이 두려우셨겠습니까 아닙니다. 얼마든지 예수님을 구출하 고 빌라도와 유대교 지도자들을 멸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 시지 않으셨을 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죄 많은 우리 인간들이 죄 용서받을 길을 여시 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죄악을 아십니다. 알아도 너무나 잘 아십니다. 하나님은 결국 인간들이 예수님에게 이렇게 할 것을 아시고 계셨습니다. 이미 구약성경에서 예수님이 받으실 고 난의 십자가에 대해서 여러군데서 예언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할수 없는 수치와 고난당하실 것을 허락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지지 않으면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는 우 리들의 죄를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로 깨닫고 보면,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느 아리따운 용모를 가진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 의 용모가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불만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어머니의 얼굴이었습니다. 보기에도 흉칙하게 일그러진 얼굴이었습니다. 이 여학생은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오는 일이 없었습니다. 물론 어머니가 학교에 오는 것도 극구 반대했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을 누가 볼까 염려해서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만 도시락을 빠뜨리고 학교에 가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 여학생의 어머니는 딸의 당부를 깜박 잊은 채 도시락을 갖다 주려고 학교에 찾아 갔습니다. 딸의 반을 찾아 물어서 도시락을 전해 줄 때 그 여학생은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습니다. 친구들이 당연히 그얼굴 흉칙한 여자가 누구 냐고 물었습니다. 이 여학생은 당황해서 그만 우리 집 식모라고 대답하고는 도시락을 빼앗듯이 가지고는 교실로 들어 갔습니다. 그 날 방과 후 이 여학 생은 울며 불며 어머니에게 대들었습니다. 왜 학교에 왔느냐고, 이제는 창 피해서 학교 못 다니겠다고. 그때 그 어머니가 딸의 울먹이는 등 뒤에서 말 했습니다. 그것은 그 어머니의 얼굴이 흉칙하게 일그러진 사연이었습니다.

"네가 아주 어렸을 때 란다. 아버지는 회사에 출근하시고 나는 집 바깥에서 빨래를 하고 있을 때, 그만 원인 모를 불이 났었단다. 집안에는 어린아이 인 너 밖에는 아무도 없었고 불이 난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방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단다. 사람들이 소리질러 그 사실을 안 나는 앞뒤를 가릴 겨를 도 없이 집안으로 달려 들어 갔고 안 방에 누워 자지러지게 울고 있는 너를 부둥켜 안고 뛰쳐 나왔단다. 나는 너를 안은 까닭에 뜨거운 불길 앞에서도 내 얼굴을 가릴 수 없었단다. 그후 심한 화상을 얼굴에 입고 입원하여 사경 을 헤매다가 그나마 생명은 건졌지만 얼굴은 이 모양이 되었구나" 이 여학 생은 분이 나서 울먹이다가 어머니의 이 사연을 듣고는 돌아서서 눈에 눈물 이 가득한 채 어머니의 품에 안겼습니다. "엄마, 용서해주세요. 제가 너무 잘못했어요." 그후 이 여학생은 얼굴이 일그러진 어머니를 누구에게나 기쁜 마음으로 자랑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이유입니다. 죄인은 하나 님의 진노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으셨습니다. 예수님도 당신 만 생각하셨다면 얼마든지 고난을 물리칠 수 있었으나 죄인된 우리를 위하 여 견딜 수 없는 모욕과 고통을 참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의 이 참으시는 것을 알아야 할 것 입니다. 죄를 짓고 불신앙적인 생활을 해도 그럭저럭 괜찮다고 하나님을 만 홀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그러나 참으시고 계십니 다. 이 죄 많은 세상 일을 보면 하나님이 안계신 것 아닌가하고 위심이 들 정도입니다. 죄 짓는 자가 벌을 받기는 커녕 잘되는 경우도 얼마나 많습니 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금 참으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참으시는 것입니까 그 목적은 분명합니다. 곧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벧후 3:8-10 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 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 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 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 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더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 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회개하고 정신바짝 차려서 믿음 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은혜받을 때입니다. 회개할 수 있는 기회입 니다. 우리의 죄를 참아 주시는 때입니다. 일할 수 있는 때입니다. 그러나 이제 곧 또다른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는 회개할 기회도 없습니다.

 며칠 전 고속도로에서 고속버스가 굴러 16명이 그 자리에서 죽어 시 체가 널려 있는 끔찍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혹시 그들 중에 예수님을 믿으 라고 하는 주위 사람들의 전도를 받고 있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 이 그 마지막 순간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부를 수 있었을까요 아마 추측컨 데 대부분 거의 그런 겨를도 없이 죽음을 맞이 했을 것입니다. 지금 그들에 겐 이미 하나님의 참으시는 은혜는 끝난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무서운 심판의 자리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미 구원 받았다고 하는 이들에게도 묻습니다. 혹시 자신의 사명을 다 하지 못하고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둔 자가 되어있는 자신을 느끼고 이래 서는 안되는데 하면서도 결단을 자꾸 미루고 있는 분은 안 계십니까 때를 놓치지 말고 회개하고 사명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하나님의 참으시 는 때가 지나면 무서운 책망을 받게 될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 나님께서 나를 참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을 때 바로 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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