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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 사람 (요 19: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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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부르는 음악소리를 희미하게 들어왔다. 그것은 높은데서 살라고 외치고 있었다. 천사의 날개 소리도 들은 것 같다. 하지만 곧 길 잃은 나그네란 막연한 생각속에 세상에 머물게 된다. 모두가 낯설 게 느껴진다. 내 속에 영혼이란 것이 있어서 내가 떠나온 동산으로 돌 아가라고 괴롭히지만 동산은 기억조차 남아있지 않다. 도대체 그것이 있다하더라도 나를 그곳으로 인도할 이가 누구이며 도대체 그 길이나 존재하는가

인생은 무엇인가 열심히 먹어대지만 고통으로 시작해 고통으로 마치 는 불행한 존재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 여기 저기 색깔은 있지만 질서 없이 그려져 아무것도 남지 않는 미친 놈의 그림 아닌가. 이렇게 나는 하나의 비석 아래서 끝나고 말아야 하는가 나는 누구인가그리고 무 엇이 되어야 하는가" 아마 니체의 글일께다. 단 한번밖에 없는 내 생 을 두고 고민도 많았찌만 예수를 믿는 지금도 가장 후회없는 생은 최 대의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그 해답은 간단하다. 예수를 보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는 지상 생 활을 순전히 인간으로 살았다. 그야말로 참된 사람이었다. 그는 참으 로 후회없는 삶을 멋지게 살았다. 그는 니체처럼 철학자들처럼 자기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체 고민하며 뒹글지 않았다.그는 능력을 가지고 자랑하지도 않았고 그것으로 돈을 많이 벌지도 않았다.

그는 권세가 충만했찌만 한 번도 그것을 휘두른적도 없었따.그는 참으 로 자유한 사람이었다.

 그는 가난하지만 부요하였고 다른 인간처럼 약하고 한계속에 있었지 만 너무다 자유했다. 그를 괴롭힌 사람도 억울하게 한 사건도 배신한 인간도 많았지만 그는 언제나 사랑이 넘쳤으며 인간의 모습을 한 하나 님으로 살았다.군대가 에워싸고 바다에서 풍랑이 일고 온 우주가 덤벼 들고 마귀가 덮쳐도 그는 하나님처럼 평안했다.그의 무덤도 없고 위대 한 비석도 없지만 그는 지금 우리 속에 살아있다.그는 참으로 우리의 주이시다.

 그의 삶이 보통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어느 새예수의 삶을 그대로 전수받아 살고 있었다.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 처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맞음과 갇힘과 요란 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 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염아다고 한다. 그는 죽으 은 자를 살리고 삼층천을 보았다.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아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 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 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4-10) 이미 예수와 다름이 없 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과 택한 백성들 앞에서 아름다운 이 름을 가지고 모든 것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삶을 즐기 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바울을 이렇게 만들었던 예수의 삶은 어떠한 것이었던가 그 것은 두면으로 나누어진다. 한 면은 스스로 하나님 아들의 삶을 살아 나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만이 살 수 있는 삶이었다. 그는 보통 사 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요 죄없는 인간이었기에 완벽한 삶을 살 아낼 수 있었다.그러기에 그는 죽음의 순간에 만족한 마음으로 "다 이 루었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참으로 완벽하게 다 이루어진 이상적이 며 영웅적인 삶이었다.

 사실상 그는 전혀 행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태어났다.그는 로마 제국 의 2등 국민이었고 그중에서도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었다. 그의 인물 이 훌륭하지도 않았고 교육을 잘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완전히 이행한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악 한 상황에서 자유한 사람이었다.가난과 역경과 사기와 배신 억울함등 모든 저주도 그를 어찌할 수 없었다. 그는 한번도 평안과 기쁨을 잃은 적이 없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하나님 같았다. 그의 속에서 인류를 향한 사 랑이 식은 적은 없었다. 그는 버려진 사람들의 친구였고 가난한 자들 의 이웃이었고 병든자들의 의사였다. 그는 모든 사람들의 도움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으나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의 근본이 하나님과 연결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였 다. 자기를 못박고 모용하는 원수들을 용서하였고 미움과 슬픔과 억울 함에서 자유하였다.

 그는 죽음으로부터도 자유하였다. 그를 막을 존재는 세상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권능과 기쁨과 평안 그리고 그의 왕성함을 막을 것은 그 어느 것도 없었다. 그는 스스로 신이 되어 부활하였다. 그의 속에는 하나님 자신이 계셔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공급하였기에 그는 하나님 처럼 살았고 하나님처럼 되었다. 세상의 명예나 재물에 눈이 어두운 인간들이 상상이나 할수 있는 수준의 삶이던가그는 지금 부활체로 영 원히 존재하지 않는가

그에게는 사랑 그 자체가 바로 기쁨이었다.우리도 만약 이러한 사랑 을 이해한다면 그 기쁨은 절대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남에게 봉사하 고 남에게 희생되면서 어찌 기쁠 수 있으리요.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주어버릴 수로고 더욱 많아지는 것이니 이것이 예수가 경험하던 사랑 의 실천이었다. 이러한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절대로 예수 수준의 기쁨은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예수는 모든 사람을 자기 자신처럼 사 랑하였다.

 다음으로 또 다른 한 면은 그러한 삶을 자기를 따르는 이들이 살수 있도록 도와주는 삶이었다. 이것은 본을 보이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았 따. 실제로 그들의 죄와 저주를 짊어지고 그들에게 권능을 제공함으로 그 삶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는 중풍병자를 향해 죄를 용서하였다.

그리고는 일어나서 상들과 가라고 명령하여 그가 나음과 새 삶을 경험 하도록 만들었다. 지금도 예수는 자기를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처 럼 살 수 있는 권능을 제공한다.

 예수는 자신을 위해서 그러한 삶을 산 것이 아니었다. 우리를 위해서 다. 그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그 삶을 살았다.이제 그는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도록 돕고 싶어한다. 우리는 그의 발자취를 한뼘도 흉내낼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돕는다면 우리도 그와 똑같은 삶을 살아낼 수 있다 (요 14:12) 사도 바울이 그러하였고 많은 제자들과 종들이 그러하였 다. 얼마나 많은 순교자들이 그러한 삶이 사실이란 것을 확실하게 증 명해 주었던가!

예수가 그러한 삶을 산 방법은 단 한가지 믿음이었다.하나님이 자신 속에 계시기에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그것이었다.하나님은 믿음의 하나님이요 예수는 믿음의 예수이다. 우리도 믿음의 사람이어 야 한다. 하나님은 신자 속에 이미 들어와 계시며 그러한 위대한 삶을 시작하고 싶어한다.우리가 할 일은 단지 믿고 행동하는 것이다. 이 사 실을 믿고 그대로 생각하고 이 사실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그것을 예 수는 돕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충만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다. 성령 충만하면 겁 도 많고 하늘의 비밀을 보고 기적을 행하고 예언을 하는 것이 저절로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아무 것도 안해도 하나님이 인간을 기계처럼 사용한다고 생각한다. 예수가 성령충만해서 하나님의 로봇트였던가 그는 자기의 생각과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시키고 하나님의 자녀로 행동하면서 성령충만의 열매를 스스로 만들고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서 자신의 뜻을 두시고 우리로 행하게 하신다. 그 분은 절대로 강권적으로 역사하지 않는다. 그에게 복종하는 것은 우리 이다. 그분은 절대로 강권적으로 역사하지 않는다. 그에게 복종하는 것은 우리이다. 그에게 복종한다는 것은 우리의 감각적인 경험보다 그 의 말씀을 더 믿고 순종함을 말한다. 예수는 언제나 말씀대로 살았다.

그의 입에서는 언제나 말씀이 나왔고 그는 말씀을 행동하였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 속에 자신의 말씀을 통해서 뜻을 두시고 우리로 행하게 하신다.

 그의 말씀이 무엇을 말하던가. 이미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를 새 롭게 만들었고 우리가 예수의 삶과 같은 위대한 삶에 참여할 수 있도 록 만들었다. 우리도 예수처럼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 위대한 일을 하면서 자신을 만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예수는 이제 우리 속에서 그 러한 삶을 계속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그 위대한 삶에 참여하기 시 작하였다.우리 자신이 예수와 같은 존재임을 기억하고 그처럼 살아가 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선 우리를 예수처럼 자유할 수 있다. 미움으로부터, 불안으로부터 죄와 악으로부터, 모든 결핍으로부터.. 우리는 예수를 모방하여 행동 한다.예수는 한번도 실수한 적이 없지만 우리는 실수와 죄악을 반복한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절대로 낙심하지 않는다. 언제나 다시 일어나서 예수의 길을 계속 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의 능력과 삶 이 차츰 우리의 삶을 장악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예수처럼 기 쁘고 평안하며 자유롭다.

 자유가 무엇인가 죄악과 병 그리고 가난으로부터 자유해서 돈이나 많이 벌고 유명해지고 행복한 돼지처럼 되는 것인가 헛된 욕심으로부 터도 자유해야 한다. 차리리 그 부귀영화의 근원을 사랑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참 자유를 경험한다.

그리고 참 사람으로 살아가고 부활로 이어진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살았던 방법이다. 이러한 삶은 바울처럼 예수를 모방해 자기 속의 은 사를 불일듯 일으켜야 가능한다.

 미국의 가장 거부였던 존 록펠러(1839-1937)는 예수를 믿은 뒤에 수 없이 많은 돈을 자선 사업에 기부하였다. 그와 그의 아들은 자선사업 과 선교 사업을 위해서 사업의 일선에서 물러섰다. 그는 시카고 대학 을 세우고 4억1천만불 이상을 기부하였다. 그 대학에서는 미국의 위대 한 인물들이 쏟아져 나왔다.시카고 대학 동쪽에 그를 기념하는 교회당 이 세워져 있다.위대한 이 교회당은 이 대학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여 기에서 졸업식이 거행된다.

 오늘날 록펠러재단은 미국에서 가장 큰 자선 사업 기관이 되었다. 미 국 전역에 수많은 자선 기관들이 그의 이름을 기념한다.맨하탄 123가 에는 어마어마한 강변 교회당이 있다.록펠러가 세운 이 건물은 미국의 대표적인 교회당이다. 이 나라의 가장 위대한 설교자들이 이끌어 온 이 교회당에는 70여개의 종들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한다.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신자들은 록펠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참 사람 예수 는 록펠러 속에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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