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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들의 권세 (요 05: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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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자신이 지금 행복하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만일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했다면, 무슨 근거로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했을까

2.성경을 읽으면 읽을 수록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길 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3.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이 행복해지는 모든 권세를 아들에게 물려주셨다. 그래서 실제로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지만 가능하다.

4.하나님은 아들에게 굉장한 권세를 주셨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자녀는 구원받은 성도도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5.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외아들이시지만 구원받은 우리들은 양자를 삼아 주셨다. 그렇다면 메시야이신 예수의 권세와 양자인 우리의 권세는 다른 것인가 실제로 양자라고 하는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시고 보여주신 일을 못하고 있다. 왜일까 하나님께서 차별을 하시기 때문일까6.말씀을 통하여 메시야께서는 어떻게 아버지의 권세를 누리셨는지를 살펴보면 모든 궁금증은 해결될 것이다.

I.아버지의 모든 권세가 주어졌다(19-21).
A.아버지이 하시는 대로 행동하셨다.

1.21절 말씀에 “아들은 오직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따라서 하신다고 하였다. 무슨 일을 하던지 “아버지의 방법”을 따르신다고 하였다.

2.지금 우리가사는 이 세상은 아버지가 아들의 비위를 맞춰주며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공부못하는 아들의 성적을 돈으로 고치려다가 망신당하는 아버지들이 얼마나 많은가

3.이 말씀은 우리가 깊이 묵상하고 명심해야할 말씀이다. 과연 우리들은 얼마나 “아버지”의 일을 본받고 있는가

4.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아들에게 본을 보이는 아버지가 과연있느냐”의 문제다. 있다면 그 수는 얼마나 될까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5.우리는 되는대로 살아가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흉내 내다가는 큰일날 사람들도 더러 있다.6.근래에 습관적으로 술에 취하면 어머니를 폭행하던 아버지를 나이어린 학생이 야구방망이로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이런 아버지를 본받아서 무엇이 되겠는가

7.그러나 믿는 우리의 아버지는 영적인 아버지여야 한다. 오직 하나님아버지 뿐이시다. 그 하나님 아버지를 얼마나 본받아 왔는가
1)과연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행동을 “보았는가” 본받으려면 보는 눈이 열려야 한다. 보지 않고서 어떻게 본받겠는가 보는 방법이 문제다. 그 방법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이 문제가 제일 급한 일이다.
2)때로는 기도를 통하여, 때로는 말씀을 통하여, 때로는 설교를 듣다가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게될 수도 있다.
3)그렇다면 지극히 일부분이나마, 그 본것에 대하여 “실천”을 한 경험이 있는가

8.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권세를 누라시게된 첫째 비결은 바로 아버지의 일을 보고 본 그대로 행동하셨다는 점이다.

B.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1.어느 아버지이든 자식을 사랑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 악한 부모도 더러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경우는 아들을 사랑한다.

2.더군다나 아버지의 하시는 일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그대로 실천하는 자녀를 둔 부모라면 얼마나 자녀가 사랑스럽겠는가

3.하나님은 친히 하시는 모든 일들을 전부 아들에게 알려주셨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의 능력 범위 안에서 어떤 일이든 할수가 있었다.

4.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있다면 마땅히 예수님처럼 아버지를 모셔야 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 한다.

5.하나님은 기적을 행하는 일뿐만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권세까지도 주셨다. 그리고 심판하는 권세까지도 주셨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II.아들에게 생명의 권세가 주어졌다(24-26).
A.아들을 통해서만 생명이 주어진다.

1.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 생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주어지도록 아들에게 권세를 위임하셨다.

2.양자인 우리에게는 이런 권세가 없는가 우리에게도 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권세와는 다르다. 우리에게 주신 권세는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전도”의 권세다.

3.“전도”를 통하지 않고는 예수를 만날수가 없다. 이 전도를 누가 하는가 전도는 오직 구원받은 성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물론 하나님은 특별한 경우에 아주 특이한 방법으로 영혼을 직접 인도하시기도 하지만 그에게 말씀을 깨달아 믿음을 고백하도록 하는 일은 모두 성도에게 맡기셨다.

4.하나님은 오직 아들을 통해서만 생명을 얻도록 하셨는데, 그 방법은 오직 “복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복음”이외의 다른 방법은 도무지 없다.

5.고난당하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 아버지에게 있는 생명의 권한을 아들에게도 주셨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생명을 주시는 것이다.6.참된 전도의 능력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순종할 때 가능하다.

B.영혼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자.

1.구원의 역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혼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권세를 주셨다.

2.그러나 전도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왜 일까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것과 같은 순종이 우리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도가 안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3.그리스도에게 온전한 순종의 과정을 거치지는 않았어도 많은 사람을 전도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교인을 확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4.한 때 유행병처럼 번졌던 “총동원주일”의 문제점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엄청나게 많은 돈을 투자했지만 열매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그들도 얼마후에는 모두 원상태로 되돌아가고 말았으니...

5.그리스도에게 순종하자.

III.아들에게 심판의 권세가 주어졌다(27-29).
A.아버지가 맡기셨다.

1.일을 하시되 아들을 통해 모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권세를 아들에게 위임하셨다.

2.뿐만아니라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을 모두 깨워 일으키는 권세도 주셨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승리의 부활이었지만 인간들의 부활은 심판의 부활이다.

3.지금 이 땅에서는 믿는자나 믿지않는자나 조금도 다를바가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주께서 잠자는 우리들을 큰소리로 깨우셨을 때, 우리는 각자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아야 한다.

4.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 왔다면 우리에게도 악인들을 심판하는 권세가 주어질 것이다. 그래서 각인의 행위대로 주님은 심판하신다.

5.주님은 이 모든 심판에서 그 기준은 “아버지의 뜻(30)”이라고 하셨다. 자신의 감정에 따라 하는 불규칙적인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심판이라는 사실이다.

b.내 생각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따르자.

1.그리스도에게 주어진 모든 권세는 자신이 자의로 획득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우리들과의 차이점이다.

2.신자라고 자처하는 우리들의 상태는 어떤가 여전히 내고집 내방식대로다. 세례를 받았어도 그렇고, 직분을 받았어도 그렇다. 심지어는 주의종이라는 사람들 중에도 그렇다.

결론

1.아들이신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오직 아버지께서 하시는 그대로 “따라서” 하셨다. 자신이 임의로 하거나 자기 고집대로 하지 않았다.

2.그랬더니 아버지께서는 모든 권세를 아들에게 위임하셨다.

3.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양자다. 그렇다면 우리도 마땅히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권세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4.하지만 우리 중에 그리스도의 권세를 받은 자는 거의 없다. 무엇 때문일까
이유는 단 한가지, 내고집을 못버리기 때문이다.

5.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배운 그대로 정확히 하셨지만 우리는 아예 배울 생각도 않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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