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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잔치집과 같은 교회 (눅 14: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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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절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 교회생활을 잔치집과 같아야 합니다. 잔치집에 인상쓰며 괴로운 얼굴로 참석하 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잔치집에는 풍성한 음식이 있습니다. 초청한 주인의 따뜻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축하해야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결혼식이나, 회갑연이나, 돌잔 치나, 승진이나, 또는 집들이 같은 큰 기념될 일이 있으면 우리는 잔치를 벌이고 손님을 초대합니다. 잔치집은 조용하면 잔치집이 아닙니다. 진치집에는 웃음이 있고 소란하고 스끌벅쩍해야 잔치의 맛이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도 잔치집과 같아야 합니다. 축제의 분이기가 되어야 합니다. 세 상에서 한주간 동안 찌들고 상처받은 마음과 걱정과 근심을 다 털어 버리고 하 나님이 베설하신 잔치에 참여하여 같은 기쁨을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의미에서 오늘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은 잔치와 축제의 기쁨을 만끽하시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본문말씀의 배경 14장 1절에 보면 어느날 예수님께서는 바리세인의 한 두령집에 초청을 받아 가셨 는데 모두들 상좌를 안기를 좋아하는 것을 보시고 상석보다는 오히려 말석에 앉 을 것을 말씀하시면서 주인을 보고는 잔치를 배설 하려거든 차라리 가난한 사 람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을 청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 말씀에 감 동을 받은 한 사람이 본문 15절에 말하기를 "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고 고백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15절의 말씀에 대한 주 님의 비유라고 하겠습니다.

 2. 큰 잔치를 벌이는 어떤 사람은 곧 하나님이심을 말해 주십니다.

유대인들은 이 잔치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5절에 "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 고 했습니다.

이 잔치는 궁국적으로는 천국의 혼인잔치를 말합니다.천국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잔치는 꼭 천국의 잔치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 잔치는 이땅에 서도 베풀어 지는 잔치입니다. 이 잔치는 이띵에서 천국을 맛보는 교회를 통하여 우리는 이 잔치에 참여할 수 가 있는 것입니다.

이 잔치는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러한 잔치가 아닙니다. 우리의 육신을 즐 겁게하는 푸짐한 음식과 노래와 춤이 나오는 그러한 잔치가 아닙니다. 이 잔치는 바로 신령한 잔치인 것입니다. 이 잔치는 염려와 근심과 걱정속에 수고하고 무거 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늘의 기쁨과 평강과 하나님이 주시 는 복을 맛보며 소망가운데 살아라고 우리하나님께서 베푸신 위로의 잔치인 것입 니다. 믿습니까 ( 롬 14:17)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 잔치는 먹고 마시는 잔치라기 보다는 성령안에서 구속의 은총을 누리는 진 정한 축제인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도 festive한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개혁주의 예배의 특장 가 운데 하나가 바로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현재에 축하하는 축제적 행위인 것 입니다. 우리는 이 예배를 통하여 구속의 기쁨을 몸소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구속 받은 백성들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영광과 찬양을 드리는 기쁨의 에배가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천국의 기쁨을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에 참여하고 돌아가는 성도들의 얼굴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환한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가렇기 위해서는 교회는 날마다 축제의 장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3. 이 잔치의 성격을 봅니다(21-23).

우리가 잔치라고 한면 잔치를 배설하는 사람이 크게 축하받을 일이 있어야 자잔치를 벌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는 잔치를 벌일 만한 이유가 없습니 다. 이 잔치는 주인을 위한 잔치가 아니라 전적으로 손님을 위한 잔치인 것입니 다. 우리는 본문을 보면서 주님께서는 비유를 베푸시면서 의도적으로 초청의 대상이 상석에 앉을 그러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 들과 저는 자들임을 은근히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13절에 나타 나 있습니다.

( 눅 14:13)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 을 청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베푸신 잔치에 의인들만 참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소망이 없습니다.

왜해냐하면 우리는 의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육간에 건강한 사람만 초청한다면 우리는 소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이 없으면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영 적인 불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보형의 은총을 의 지하며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영적인 장애자들인 것입 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잔치는 누구를 위한 잔치인줄 아십니까 스스로의 의에 대하여 실패하고, 마귀 사탄의 공격으로 육체적이나 사업에 실패 한 죄인들을 위한 잔치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11절 이하에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이 탕자는 아버지의 제산 을 허랑방탕하고 거지가 되어서 되지치기를 하는 가련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자 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아버지를 그리워 하다가 결단을 내려서 아버지의 집으로 가게됩니다. 가면서 아들의 자격이 없으니' 품꾼으로 라도 서주십시요' 라고 말 해야지 하면서 다짐합니다. 아버지를 만나서 그말을 합니다. 그러아 아버지는 말하기를 아들의 말은 상관없이 종들에게 잔치를 베풀도록 종들에게 말합니다.

이 아버지가 베푼 잔치는 금의환향하여 돌아온 아들을 위한 잔치가 안닙니다.

허랑방탕하고 실패한 아들을 위한 잔치 인 것입니다.

이것이 축제의 본질인 것입니다. 성공한 자들 위한 것이 아니라 실패한 자 를 위한 잔치입니다. 청함을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불러서 아 들로 맞아 주시는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감격에 찬 예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축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4. 먼저 청함을 받은자들의 불참(18-20) 사람이 초청에 사양하는 것은 대게 두가지 경우 입니다. 하나는 자신을 부정 하는 겸손의 사양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기를 긍정하는 교만의 사양입니다. 초 대한 사람을 별로 달갑지 않게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 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양은 다 후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하나님의 잔치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대게다 보면 자신의 일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초청한 사람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첫번째 사람은 자기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보아야겠다고 사양했습니다. 이 사람은 새로 구입한 땅을 보러가는 것이 더 흥미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농부에게 있어서 밭은 대단히 소중합니다. 그는 밭을 사므로 해서 그 마음이 뿌 듯하였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신령한 기쁨에 대해서는 아랑곳 없는 사람입니다 그냐 물절적인 기쁨만 추구합니다. 세상이나 사업에 더 관심있어 합니다. 돈 버는 것에 더 관심있어 합니다.

그는영적인 가치보다 물질적인 것에 더 관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사업에 미친사람입니다. 돈 독이 많이 든 사람입니다.

물론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사업이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까짓 돈은 아무것도 아니 다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엇에다 더 중요한 가치를 두느냐 에 있습니다. 세상의 사업이란 인생의 목적이 아니고 인생의 목적을 이루는 수단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업때문 에 잔치에 참여하는 것을 거절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 다. 목적과 수단을 구분못하는 잘못인 것입니다.

 두번째, 핑계는 나는 소 다섯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같으면 새 자동차를 사서 시운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날은 얼마든 지 있습니다. 우선 무슨일이 중요한가를 착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청와대 에서 불렀다면, 아니면 방송국에서 인터부하기 위해서 초청했다면 열일 제쳐두고 갔을 것입니다. 일은 우리가 죽을때 까지 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게으른 자를 오히려 책망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육신의 일보다는 영적인 일입니다.



세번째 핑계는 나는 장가들었으니 가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이것은 세상적인 쾌 락 때문에 잔치에 불참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물론 결혼이란 하나님이 무미 건조한 광야 세상에서 합법적인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잔치에 참여못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결국 개인적인 욕망 때문에 천국 잔치를 거절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큰불행입니다.

세상에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는 격언도 있지만 하나님의 초청에는 그 어떤 핑계도 있을 수 없습니다.

 5. 주인의 반응 1) 노했습니다(21) 2) 대신 다른 사람들을 청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과거에는 동일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청함을 받을 수 없는 불청객들이 아 니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구원의 축제의 자리로 우리를 인도하 여 구원의 감격을 누리게 하지 아니했습니까 그럼으로 불청객의 선배된 우리 가 아직까지 세상의 둣 골목을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야합니다.

(1)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가야 합니다.

(2) 다음은 길과 산울가로 가라고 했습니다. 혼자서 인생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은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낭패와 실망한 고독한 사람들을 불러와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강권하여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강권-아낭카손-강한 설득력을 말합니다. 듣는 이로 하여금 감동될 정도로 설득력을 가지고 전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채우라고 했습니다.채우는데는 우리가 채울 것이 있고 하나님이 채울 것이 있습니다.우리는 기도로 채워야 합니다. 사람으로채워야 합니 다. 사랑과 봉사로 채워야 합니다. 열심으로 채워야 합니다.그러면 하나님은 먼저 은혜로 채워주시고 다음은 성령으로 채워주십니다. 또 축복으로 채워주십니다. 채 우되 흔들어 채워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디를 채워야 합니까 주님은 말씀했습니다. 내 집을채우라고 하셨습니다. 곧 하나님의 집을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년에는 우리가 채웁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마음에는 기쁨 과 평안으로 채위지고 가정에는 행복과 믿음으로 채워지고 교회는 성도들과 은혜로 채워 져서 날마다 잔치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결론 교회는 축제의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구원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불러소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높이는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잃은 양을 찾은 기쁨에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 눅 15:7)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 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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