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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 (요 17: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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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부터 기독교 지도자들은 한국교회가 성경적인 삶을 나타내는데 있어 본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 원인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인정한 그 이유는,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어떤 헌신을 내가 하느냐 하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하나님이 얼마나 신속하게 그리고 만족하게 나를 도울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데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실제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신앙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기도” 생활에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내용보다 자신의 고통과 어려움을 호소하며 자신의 어려운 상황에서 하루속히 벗어나기를 원하는 내용으로 기도에 전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경험을 갖기 위하여 열심과 관심을 가지며 그러한 동기로 나타나는 시간의 투자와 물질의 투자를 믿음이며,헌신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변화된 삶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또한 새포도주는 새부대에 담아야 된다는 가르침이 주님의 가르침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변하지 않고 기도를 한다면 그 기도의 내용은 결코 하나님의 뜻과 함께 하는 기도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도는 결코 응답으로 경험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기도의 모델 가운데 가장 우리에게 본이 되는 기도는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예수님이 친히 하나님께 기도드린 내용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모두 세가지 내용을 구한 간구의 성격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1절에서 5절까지는 자신을 위한 기도였고, 6절에서 19절은 제자를 위한 기도며, 20절에서 26절은 온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부분에도 예수님의 기도에는 인간의 욕망이나 극적인 환경전환을 기대할 수 있는 어떤 근거도 주지 않고 있다는데 또 하나의 특징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기도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과 그것이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20절부터 나타나고 있는 교회를 위한 기도를 생각해 봄으로 우리의 신앙이 과연 성경적인 것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17:20-21절)
예수님이 교회를 위해 기도한 첫번째 내용은 세상이 자신을 믿는 교회를 통해 자신을 믿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형편과 우리의 아픔과 우리의 소원까지도 너무도 잘알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하나님에게 우리를 위해 기도하실때 우리의 인간적인 욕구를 인간들이 구할 때 마다 응답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과 교제속에 있어야 할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믿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증거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통해 예수님을 믿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관심은 세속적인 만족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늘을 사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 첫번째 간구가 모두가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였던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기도의 내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가 되고자 열망하는 기도가 우리의 기도속에 충만해야 할 것입니다. 서로 다른 형제와 자매가 하나된 삶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은 기도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 구체적인 영적인 순종이기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하나된 마음을 가졌다는 고백이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구하지만 주님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교회를 위해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과연 성경적인가 하는 질문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만약 나의 기도가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가 아니라면 우리는 우리의 기도의 내용을 새롭게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는 주님이 기도하시는 것과 같이 하나가 되기 원하는 기도로 충만하십니까

2. 하나님이 교회를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함(요17:22-23)
주님은 하나님께 기도하실 때 우리에 대해 놀라운 비밀을 밝혀 주십니다. 그것은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그 영광의 정체가 하나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세상이 아는 방법은 바로 교회가 하나됨의 비밀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됨의 생활을 사랑이라는 단어로 다시 설명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통해 세상이 하나님과 예수님과 교회의 비밀을 알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도 이러한 갈증으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에 이 세상의 구원에의 열망이 충만한지에 대해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는 해야 할 것을 잃어 버린지 오래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를 통해 오히려 고백하기를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믿을 수 있도록 나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몸부림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믿음안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신다는 생활적인 내용도 함께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했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기도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나를 혹은 우리를 통해 이 세상에 드러나기를 원하는 기도가 우리의 기도의 내용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그리스도가 증거되는 수단은 교회의 사랑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자신의 구세주와 인생의 주인으로 고백한 우리가 하나됨의 구체적인 사랑을 나눌때 이 세상은 충격과 의문을 갖게 되며 그 비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최근들어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에 대해 외면하고 있습니다. 결코 그들은 예수님을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비난의 내용을 들어보면 그것은 교회를 향한 분노였습니다. 다시말해 주님과 세상을 연결시켜 주는 능력과 의무를 가지고 있는 교회가 오히려 주님과 세상을 막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으로 변질되었다는 말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잘못을 변명해서는 않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참된 기도의 생활로 변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의 기도가 기독교인들의 욕망을 성취시켜 주는 도깨비 방망이로 보여져서는 않될 것입니다. 세상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우리의 기도라면 이제 우리는 우리의 기도에 대해 한번 쯤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청소년기에 성가를 할 때 아주 감동적인 찬양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 프란시스코의 평화를 위한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이 기도를 친구들에게 소개했을 때 신앙이 없는 친구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기도문에 대해 커다란 위로와 관심을 갖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내가 지금 하나님앞에 드리는 기도를 세상 사람들이 듣는다면 과연 그 기도속에서 하나님을 뵐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진정으로 여러분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까

3.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17:24-26)
예수님이 교회를 위한 기도의 마지막 부분은 다시 영광이라는 축복된 말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영광을 보게 해 달라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순종함으로 우리에게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은 곧 주님의 영광이며 우리의 영광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이 절대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십자가의 대속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십자가의 예수님을 우리는 믿으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삶은 고통과 수치가 아니라 영광된 삶이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된 삶이 교회의 삶이 되기를 바란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세상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교회는 이 영광된 삶을 포기하지 않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십자가의 영광보다는 세상의 욕심에 유혹당해 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부족함이며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스스로 변명하는데도 익숙해 졌습니다. 만약 우리가 십자가의 영광을 위한 기도의 삶이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의 생활이 그렇게 쉽게 세상적인 것들에게 침몰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기도하십니까
여러분은 기도없이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다고 믿습니까
우리의 죄된 성품은 결코 이 세상의 유혹과 핍박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안에 계신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여러분의 신앙은 오히려 예수님의 십자가의 영광을 막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기도는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멈출 수 없는 것이 기도이며 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기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영적인 호흡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가장 능력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권인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런 기도의 모임을 권면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도의 생활에 여러분을 초청하기 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삶을 고민하며 갈등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기도할 시간인 것입니다. 이제는 때가 찼음으로 우리는 더 이상 망설여서는 않될 것입니다. 이 시간을 빌어 여러분에게 구체적으로 제안합니다. 돌아오는 금요일부터는 찬양예배가 끝난후 매주 9:20부터 10:30분 까지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원하시는 분들은 이 기도시간에 하나가 되어 주님의 기도를 배워가며 경험하는 시간을 갖기 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말씀만큼 기도를 경험하는 또 하나의 영적인 풍요로움을 축복받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가 여러분의 기도가 되기를 원하며 이런 기도의 삶을 회복하기 원하시는 형제자매들의 결단속에 주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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