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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덩이를 파는 형제들 (창 37: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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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릴 때 친구들과 함께 덫을 놓기 위하여 구덩이를 파 본 경험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특별히 저희 나이보다 많은 형들은 산에서 산풀을 베고, 어린아이들은 소를 먹이고 있던 경우입니다.
평소시에 저희보다 나이가 많은 형들을 향하여 불평이 많았던 저희들은, 야산 길목에 큰 구덩이를 팝니다. 여럿이 함께 파면 곧 커다란 구덩이가 생기게 됩니다. 그 위에 흙을 덮고, 약간을 풀잎으로 덮어놓습니다. 해가 서산에 이를 때면 지게에다 마른 산풀을 한 짐씩 짊어진 형들이 산 내리막길을 향하여 줄을 지어 내려 옵니다. 우리가 파 놓은 구덩이는 산 내리막길, 좁은 통로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 구덩이 위를 밟아야 합니다.
앞에 달리던 짐진 형이 그 구덩이 함정에 발이 빠지면, 곧 짐과 함께 넘어지게 되고 앞에 한 사람이 넘어지면, 그 뒤에 붙어서 따라 내려오던 뒷 사람이 계속해서 연쇄 반응으로 넘어지게 됩니다.
이 때 우리는 먼 곳에서 모르는 체 하고 소에게 풀을 먹이는 척 하고 서로 웃고 즐기게 됩니다.
물론 형들이 나중에는 그것을 알게 됩니다. 그 때 우리 어린 팀들은 대동단결해서 평소시에 형들이 우리를 따돌리고, 기분 나쁘게 한 화풀이를 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 아무도 형들에게 매를 맞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집단적인 시위 행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함정을 파는 일은 옛날 촌에서 산돼지나, 노루같은 짐승을 잡는 방법으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산돼지(멧돼지)나 노루가 잘 다니는 길목에 깊은 함정을 파 놓고, 그 놈들이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랫동안 눈이 계속 내려 산을 덮을 때면 산짐승들이 먹이를 찾아 야산으로 내려오는 경우에 이런 일을 자주하게 됩니다. 정말 원시적 사냥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오는 주어진 성경 본문에 구덩이 함정을 이용하여 동생을 죽이려고 하는 형제들을 보게 됩니다. 저들은 다름 아닌 야곱의 여러 아들들이었습니다.
오늘 주어진 본문에 구덩이라고 하는 말이 반복되고 있음을 봅니다(37:20, 22, 24, 28). 여기 나타난 구덩이는 반석을 파서 물이나, 다른 물건을 저장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입구는 좁고, 안은 넓어 일단 한 번 들어가면 밖에 도움이 없이는 제 힘으로는 나올 수 없었습니다. 사막지역인 팔레스틴에는 이런 구덩이를 흔하게 볼 수 있고, 특히 도단 부근에 많았다고 합니다.

I. 이 구덩이는 꿈꾸는 자 요셉을 죽이려고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37장 18절로 20절에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형들이 동생 요셉을 없이하기 위한 함정의 구덩이였습니다.
요셉이 누구입니까
그는 야곱이 노년에 얻은 아들로서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을 받던자였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 보다 그를 깊이 사랑했다(37:3)고 하였습니다. 여기 나타난 사랑은 점진적으로 더하여 가는 사랑()을 가리킵니다. 요셉을 향한 그 아버지의 깊은 사랑은 요셉에게 채색옷을 지어 입힘으로 나타났습니다(37:3).
거기에다 요셉은 자기 형들의 여러가지 과실을 아비 야곱(이스라엘)에게 자주 고하였습니다(37:2).
이 일로 인하여 평소시에 그의 형들은 요셉을 향하여 미워하고, 언사가 불평하고, 안색들이 좋지 못했습니다(37:4).
거기에다 요셉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은 풍년의 꿈이었고, 요셉이 승리하는 꿈이었습니다. 요셉과 그의 형제들이 밭에 나가 곡식단을 묶는데 요셉의 단은 일어서고, 형님들의 단은 요셉단을 둘러서서 절하고 있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또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은 광명의 꿈이고, 또 요셉 자신이 승리하는 꿈이었습니다. 그 꿈은 해와 달과 열 한 별들이 요셉을 둘러서서 절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이 두 가지 꿈을 형들에게 알리고 또 아비 야곱에게도 알려주었습니다. 요셉은 이 꿈 때문에 형들에게 더 큰 미움과 타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꾼 꿈의 내용은 바로 형들이 요셉에게 절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꿈은 대단한 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하여 장차 야곱의 가족을 죽음의 흉년에서 구원할 계시성의 꿈이었습니다(창45:).
그러던 어느날 그 아비 야곱이 요셉으로 하여금 세겜에 가서 양치고 있는 형들에게 심부름을 보냈습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형들이 양치는 여부를 알아 오라고 부탁하였습니다(37:12-14). 그래서 아비 야곱의 부탁을 받은 요셉은 형들이 양치고 있는 곳까지 오던 중이었습니다. 그는 세겜에서 형들이 양을 몰고 옮긴 도단 가까이 이르고 있었습니다(37:14, 17-18). 이때 멀리서 나타난 요셉을 보았던 형들은 그를 죽이기로 꾀하고, 구덩이에 던지자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형 르우벤이 죽이지는 말고, 그냥 산채로 구덩이에 던지자고 하였습니다(37:21).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렀을 때 형들은 ① 요셉의 채색옷을 벗겼습니다. ② 그리고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 구덩이는 빈 구덩이라 그 안에 물이 없었습니다. ③ 그리고 형들은 둘러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저들은 짐승이 아닌 사람을 해치려고 구덩이를 이용하였습니다. 그것도 남이 아닌 자기의 형제를 죽이려고 함께 꾀하고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있던 동생 요셉을 죽이려고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꿈을 꾼 요셉, 하나님께로부터 꿈을 받은 야곱 가문의 소망을 받은 요셉을 죽이려고 그를 구덩이에 던져 버렸습니다. 참으로 무섭고 떨리는 비정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십자가에 던지던 유대인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의 사랑을 받고, 은총의 채색옷을 입고 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려고 구덩이 함정을 파는 이 세상 박해자들의 모습입니다.

II. 이 함정은 요셉 형들의 마음의 구덩이를 팠음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첫째, 미움의 구덩이를 팠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미워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버지 야곱이 가지고 온 편애의 결과도 됩니다. 아버지가 자기들 보다 동생 요셉을 더 사랑하고, 깊이 사랑할 뿐 아니라, 채색옷까지 지어 입힌 것을 보고 저들의 마음이 틀어져버린 결과였습니다.
거기에다가 요셉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꿈 때문에 그를 향한 형들의 미움은 더하여지게 된 것입니다. 그 형제들의 마음 속에는 미움의 구덩이가 점점 깊어지고,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형제를 미워하는 미움은 살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1서 3장 15절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한 자니 살인한 자는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시기의 구덩이를 팠습니다.
요셉이 꾼 꿈 이야기를 들은 형들은 시기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시기(χιρ)는 끓어오르는 분한 감정의 외적 표현으로서 얼굴이 붉어지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바로 가인에게 있었던 것으로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했던(창4:5). 사실과 같은 것입니다. 시기는 남이 잘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길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타인과 자기를 비교하는 비교의식, 자기 우월의식, 자기 교만의식 때문에 일어납니다. 이렇게 형들의 시기라고 하는 구덩이는 크고 깊어서 동생 요셉을 죽이려고 함께 꾀함에 이르렀습니다.

셋째, 악의 구덩이를 팠습니다.
도단에 있는 형들 앞에 요셉의 모습이 나타났을 때 저들이 말하기를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37:9). 자 우리가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은 동생 요셉을 향하여 악의를 품었습니다. 저들은 함께 오라고했습니다. 죽이기를 꾀했습니다. 그 구덩이는 참으로 깊고 깊었습니다. 동생이 그들 앞에 도착하자마자 여지없이 그에게 달려들어 채색옷을 벗기고,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져 넣어 버렸습니다.

넷째, 거짓과 불효의 구덩이를 팠습니다.
저들은 함께 꾀하기를 아비에게 가서는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고 하자고 하였습니다(37:20). 저들은 실지로 수염소를 죽여 그 피를 요셉의 채색옷에 묻히고, 아비에게 이르기를 이것이 요셉의 옷이 아닙니까 보소서(37:32) 라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 아버지 야곱은 자식들의 거짓말에 속아 그의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악한 짐승에게 찢겨 죽은 줄 알고, 자기 옷을 찢고 오래도록 울면서 슬픔의 날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37:33-34).
이 얼마나 사악한 거짓인가 그리고 이 얼마나 무서운 불효인가 참으로 캄캄한 마음의 구덩이를 팠던 자들이 아닌가

다섯째, 황금의 구덩이를 팠습니다.
나중에 저들은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내어 미디안 상인들에게 은 이십개를 받고, 그를 상품처럼 팔아 버렸습니다(37:28). 은 20개란 20세겔을 가리킵니다. 사실 당시 성인 노예는 30세겔에 거래되었습니다(출21:32). 그런데 요셉이 은 20개에 팔린 것은 그가 17세의 소년으로, 미성년자였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래서 선민 이스라엘의 애굽 역사가 시작되는 문이 열리고 맙니다.
동생을 돈에 팔아 버렸습니다. 도생을 상품처럼 팔아 버렸습니다. 저들은 저들의 마음에 황금의 구덩이를 파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의 형제들은 구덩이를 팠습니다. 그 구덩이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채색옷을 입은 동생 요셉을 죽이려고 한 함정이었습니다. 꿈을 꾸고, 꿈을 가지고, 꿈을 자랑하던 요셉을 죽여 없애 버리려고 하던 무서운 함정이었습니다.
이것은 저들의 마음에 미움의 구덩이, 시기의 구덩이, 악의 구덩이, 거짓과 불효의 구덩이, 황금의 구덩이를 팠던 결과입니다.
참으로 저들은 절망의 구덩이를 팠습니다. 불효의 구덩이를 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야곱 가문의 비극이었습니다. 이것은 자멸의 무덤을 파는 격이 되고 만 것입니다.
성경중에 악하고 게으른 종은 주인에게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땅을 파고 묻어 두었습니다. 그는 앞을 보지 않았습니다. 장사하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비생산적이고, 비창조적이고, 비미래적인 구덩이를 팠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있던 것도 빼앗아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깥 어두운 곳에 던져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결국 슬피 울고 이를 갈면서 망하고 말았습니다.
독일 나치주의자들은 유대인을 죽이는 구덩이를 수없이 팠습니다. 그 결과 역사앞에 천벌을 받았습니다. 저 2차 대전 말기에 일본 사람들은 한국에 기독교 지도자들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은 방법으로 다 죽이기 위하여 전국 방방 곳곳에 구덩이를 팠습니다. 그러나 그 구덩이에 기독 신자들이 생매장을 당하기전에 하나님은 일본을 심판했습니다.
이북의 사람들은 한때 땅굴을 팠습니다. 그래서 남침의 계획을 수립한 일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들이었습니다.
더욱이 사람의 마음에 구덩이를 팔 때 그는 참으로 무서운 일들을 저지르고 맙니다. 사람의 마음에 시기와 미움과 악의와 거짓과 탐욕의 구덩이를 팠을 때 그는 스스로 그 구덩이에 자기가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먼 애굽으로 먼저 보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요셉은 형들이 팠던 어느 구덩이에 빠져 죽어버릴런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코 요셉은 형들의 구덩이에 빠져 죽을 자는 아닙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먼저 애굽으로 그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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