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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르다와 마리아 (눅 10: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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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명의 제자들이 성공의 기쁨에 넘쳐 전도 여행으로부터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그들의 기쁨을 순화시켜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하여 오히려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권고하셨습니다.(10:1-24)
그리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서 영광스런 선택을 함으로서 성도의 걸음을 걸어가야 할 것을 말씀하셨고(25-37), 오늘도 역시 보다 더 좋은 편을 택하여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38-42)

오늘 말씀은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입니다.마르다와 마리아는 둘 다 예수님을 사랑하였고, 둘 다 개심하였고, 또 둘 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자매들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본래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나사로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습니다.(요11:5)
우리 주님께서 이들의 집을 자주 가시는 곳으로 선정하신 것은 그들이 유난히 친절한 가족이었음을 입증해 줍니다. 주님은 자주 이 집에 들려서 쉬시기도 하시고, 음식도 잡수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이 즐겨 찾는 가정, 주님이 즐겨 선택하여 찾는 집은 진실로 복이 있는 가정입니다. 이렇게 들릴 때, 이 자매들이 예수님을 대하는데서 오늘 말씀이 비롯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마르다는 선한 것에 대하여 열망이 전혀 없고, 일개 신앙이 없는 자로 매도하는 것을 봅니다만, 아주 잘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르다는 가장 존중할 만한 진실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이 오시자 극진히 대접하고자 했습니다. 마르다는 “부인 혹은 여주인”의 뜻으로 마리아와 남자 형제 나사로의 세 식구인 가정에서는 주인인 것이 분명합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당신의 모습을 나타내셨을 때, 삼남매의 여주인으로서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어떻게 대접을 하며, 편하게 모실까 생각할 것입니다. 귀한 주님이 무엇을 잘 잡수실까 염려도 되고 또 예수님의 피곤한 기색을 눈치채고 주님을 위해 최대한 부지런하게 음식 준비를 한 것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이를 본 주님은 보다 더 좋은 편을 택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성경은 이 자매들의 신앙을 들어서 우리들의 신앙이 보다 더 좋은 편을 택하여 하도록 주시는 말씀입니다.
38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니“ 했습니다.
갈릴리 부근에서 제자들과 사역하시던 예수님의 일행이(17:11) 이제는 예루살렘을 올라가기 위해 길을 갈 때에 한 촌에 들였습니다. 여기가 예루살렘에서

3.5km 떨어진 베다니(요11:1)입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을 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면 이 집에 들리셨습니다.
이 집은 마르다와 그 동생 마리아와 그리고 나사로 삼남매가 부모 없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 집을 예수님은 사랑하셨고, 이들도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요11:3,5,36)

예수님의 일행이 한 촌(村)에 들어가시게 되었습니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세상에는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이들이 있는가 하면 마르다처럼 남을 대접하기를 잘 하고, 길손을 모셔들여 환대하는 경우를 봅니다.

저 구약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장막 문에 앉았다가 맞은 편에 나타난 사람 셋을 보고 달려가 몸을 땅에 굽히고, 그냥 지나가지 마시고 발을 씻고 나무 그늘 아래 쉬시면 내가 떡을 가져오리다 하고 달려가 떡을 만들고, 송아지를 잡아 요리를 해서 극진히 길손을 대접한 것을 봅니다.(창18;1-15) 이렇게 했을 때, 히브리서 13:1절에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이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열왕기하 4장(4:8-37, 8:1-6)에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을 때에 거기 귀한 여인이 엘리사를 강권하여 음식을 먹게 하고 또, 엘리사도 이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여인은 자기 남편에게 이야기하여 엘리사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 의자, 촛대를 진설하여 공부도 하고 식사도 하고 쉬도록 한 것을 봅니다.
또, 신약에 사도행전 16장(16:11-15)에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 루디아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는 세례 받고 구원의 은혜가 감사해서 당시 바울을 위시해서 디모데, 바나바, 실라, 마가 등 많은 선교사들이 있었을 터인데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했습니다.

본문에 마르다는 예수님의 일행이 이 촌(村) 베다니에 들어가시니 마르다라 이름하는 여자가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을 자기 집으로 영접을 했습니다. 반갑게 예수님의 일행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었습니다. 이 마리아라 하는 동생은 예수님이 자기 집에 들어오시자 주의 발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주님의 입으로 나오는 주옥같은 말씀을 주의 발아래서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를 가리켜 “발아래 여인”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녀는 그리스도의 발아래 앉아 말씀을 경청했고 그 발아래 엎드려 죽은 오라버니를 위해 구했고,(요11:32) 그 발아래 앉아 주께 기름을 부었습니다.(요12:3) 하여튼, 예수님이 자기 집에 들어오셨을 때, 꼼짝도 않고 주님의 발아래서 주님의 말씀만을 경청했습니다.
한편, 언니 마르다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일행이 들이닥치니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마르다는 위로 오라버니가 있지만 남자이고 밑으로 동생이 있는데 나이 어린 여동생 마리아입니다. 그러니 자연히 집에 손님이 온다거나, 가정에 무슨 일이 생기면 식사를 준비한다던가, 가정의 일들을 담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이름의 뜻이 “부인 혹은 여주인”하는 마르다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겠습니다.
마르다는 손님이 오시자 방도 치우고 쓸고, 닦고, 또 음식을 작만 하고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이 반찬,저 반찬을 준비하고, 지지고 굽고 볶고 삼고, 여러 가지 반찬을 준비하느라 손이 모자랍니다. 부엌에 나와서 그릇을 닦고, 불을 넣고, 파라도 좀 다듬어 주고, 마늘이라도 까고, 뒷밭에 가서 무우라도 좀 뽑아 와야 할텐데 마리아는 방안에 가만히 앉아서 말씀만 듣고 있으니 속도 상하고! 바빠서 죽겠는데 눈치도 없이 발아래 딱 앉아서 말씀만 듣는 동생도 그렇고, 그런 동생을 데리고 이야기만 하는 예수님도 내 사정을 모른다 싶어서 인지 일하다 일손을 놓고 아마 방문을 펄쩍 열고는 예수님께 나아가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동생이야 철이 없다손 치더라도 예수님은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 좀 안해 보셨습니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저를 명하사”즉 마리아더러 “나가서 언니 좀 도와 주라 하소서”하라고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의 대답이 41-42절 말씀입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하셨습니다. 이 때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행해 가는 도중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 가 십자가를 지고 인류를 구속하시러 죽으러 올라가는 길입니다. 이 때는 예수님 편으로 보아서는 좀 조용히 쉬시고 내적 투쟁에서 여유를 가지시고 명상할 시간입니다. 이 때야 말로 예수님께서 이것 잡수고, 저것 잡수고 육신적으로 많은 것을 잡수시고 싶지가 않은 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바래심은 한 영혼이라도 말씀을 들어 확신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4:1-34)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 성에서 죄 많은 여인을 구원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동네에 먹을 것을 구하려 갔다가 돌아와서 예수님과 이 여인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먹을 것을 구해서 예수님께 “랍비여 잡수소서” 했을 때, 예수님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요4:32) 하셨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서로 말하기를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또 말씀하시기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해하며 그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라시는 것은 먹는 문제보다 한 영혼 가르치거나 깨닫게 해서 구원받는 것을 먹는 것보다 더 중요시하셨고, 이것이 나의 양식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반찬을 많이 준비하려고 마음이 분주한 것보다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42)하셨습니다.

마르다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것이 좋은 듯 하나 어떤 면에서는 자기를 과시하고 음식을 많이 해서 자기를 나타내려는 심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자기 중심적으로 음식을 준비하고 자기 중심적으로 말을 합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맞추려 하지 예수님께 맞추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르다의 문제는 자기 중심적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to do 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마르다의 못한 점입니다.
그리스도를 모셨지만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기쁘게 하기보다 자기가 음식을 준비하고 열심히 일하므로 자기 만족, 내지는 다른 사람에게 자기를 들어내고자 하는 자기 영광을 얻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많이 드시지 않고 입에 맞는 것 하나만으로도 족하다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먼저 들어야 예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고, 무엇을 원하시는지 그 속을 알 수 있습니다. 마르다는 말씀을 듣지 않고 하니까 괜한 것, 쓸데없는 것을 많이 하고 분주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속도 모르고 예수님이 원하는 것도 모르고, 모르니까 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먼저 예수님의 발아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았고, 예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자기의 귀한 향유를 부었습니다. 예수님의 장례 준비를 하고 기쁘게 거액의 향유를 주께 드릴 수 있었습니다.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을 수 있었습니다.
이를 알지 못한 마르다는 불평도 하고 원망도 합니다. 그때도 마르다는 여전히 일을 하고 마리아는 향유를 주님께 부었습니다.(요12:2-3) 마르다는 신앙이 자라지 않고 그 때도 일만 하고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내가 무엇을 할 것이냐(to do)였으나, 마리아는 말씀을 듣고 내가 어떻게 될 것이냐(to be)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우리가 주님 앞에 신앙생활을 할 때, 내가 무엇을 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함 보다 내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될 것이냐에 힘을 기울여야겠습니다.
교회 안에서 일할 때, 이것저것 맡아서 분주하게 함보다 한가지라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마음에 맞도록 충성해야 하겠습니다.

초대 한국 교회에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복음을 전할 때,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선교사들이 이 마을 저 마을에 가서 “예수 믿으면 구원 줍니다” 했습니다.
당시 돈 9원이 큰돈입니다. 초대 선교사들이 교회만 나오면 구호 물자를 많이 나누어주었습니다. 일찍 예수를 믿고 선교사들의 설교나 말을 알아들은 사람은 예수님을 믿으면 영혼이 구원받는 것으로 알아들었으나, 그렇지를 못한 동민들은 예수 믿으면 9원 준다니까 돈을 주는 줄 알았습니다. 옛날에는 동장을 <구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구장이 예수를 믿으면 9원을 준다니까 아들,딸, 며느리,손자,아버지,어머니, 살림 난 아들네까지 다 데리고 교회를 갔는데 전부 18명이나 갔습니다. 9원씩 18명이니까 합하면 162원으로 소 한 마리를 살 수 있는 돈이 되었습니다. 이 구장이 9원을 받겠다고 맨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날 선교사님이 설교하기 위해 강단에 올라가서 성경을 펴는데 그날 따라 누가복음 9장에 있는 말씀을 설교하게 되어서 “누가 구장”하니까 이 동네에는 누가 구장이냐고 묻는 줄로 알고 “예, 제가 구장입니다. 돈 줄려고요 다 받으면 9원씩 계산해서 18명이니까 162원입니다.” 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먼저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못 들으면 이런 실수를 합니다. 말씀을 못 들으면 무식한 열심으로 주님을 더욱 괴롭힙니다. 본문에 마르다는 말씀을 듣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으므로 좀 못했고,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했으므로 빼앗기지 않고 올바른 신앙으로 자라 주님을 기쁘게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 출석을 하면 내가 교회 무슨 일,무슨 일을 해야 하겠다 보다 먼저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을 우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일 낮이나, 밤이나, 수요 예배에 참석하여 말씀을 듣는 일에 힘을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 구약 사무엘상 15장의 말씀 중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나옵니다.
사울이 스스로 작게 여길 때에 하나님은 그를 들어 이스라엘의 머리가 되게 하시고, 그 머리에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왕이 되어 전쟁에 나간 후에는 사방에 있는 모든 대적 모압이나, 암몬이나, 에돔이나, 소바의 왕들이나, 불레셋을 이기었고 향하는 곳마다 승리를 했습니다.(삼상14:47)
그 때, 하나님이 사무엘을 사울 왕에게 보내어 말씀을 합니다.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을 내가 추억한다”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당신의 자녀들이 출애굽 하여 광야 40년을 헤맬 때, 아말렉에게 대단히 애를 겪었습니다. 아말렉이 대적하고 죽이고 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하나님이 아말렉을 이제 사울을 들어서 진멸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고 하셨습니다.(15:2-3)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고 원(願)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을 나가 승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말렉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모든 백성을 진멸했습니다.
그러나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양과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만 진멸하였습니다.(15:9)
그 때,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를 다시 보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러 갔습니다. 사울은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돌이켜 길갈로 갔는데 길갈에 이르러 사무엘과 사울이 만나고 있을 때, 사울의 영문에서 양의 울음소리와 소의 울음소리가 들여왔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사무엘은 “지금 내 귀에 들여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가 어찜이니이까” 하고 묻자 사울이 대답하기를 “이는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고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15:15)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가장 좋은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15;21) 했습니다. 이 대답을 들은 사무엘이 입을 열어 말하기를 “어찌하여 왕은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는 것을 행하였나이까”(15:19) 하였습니다. 사무엘은 계속하여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과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수양으로 제사를 드리는 기름보다 더 낫다고 했습니다.(15:22)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므로 하나님이 사울 왕 세운 것을 후회하시고(15:11)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못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15:23) 사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고 40년간 왕좌를 누리고 가는 곳곳마다 전쟁에 승리를 했으나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므로 하나님은 그를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시고 그를 버리셨습니다. 그의 왕좌를 거두셨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말렉을 쳐서 소유하나 남기지 말고 진멸하고 남녀와 소아와 젖먹이까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남겨 두다가 버림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여, 우리는 먼저 주의 말씀을 마리아처럼 잘 듣고 다음에 그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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