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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을 만난 사람-바울 (행 2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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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가운데서 오늘은 바울을 놓고 우리 모두가 함께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특별히 이번에 예수를 갓 믿으신 분이나 또 아직 예수를 믿지 않으시지만 이 자리에 나와 계시는 분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순간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은혜 주시기를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극적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을 말할 때 바울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가 어떻게 예수를 믿었는가하는 것은 세번이나 성경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철저한 유대교 신자였습니다. 유대교의 신앙으로 완전무결하게 무장한 유대교 청년이었습니다. 30대 청년으로 유대교를 위해서는 생명이라도 바칠 각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유대교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가 올 것이라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는 찬란한 왕자입니다. 이스라엘을 로마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영웅입니다. 그 메시야가 오기를 철저히 기다리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유대교에 몸을 담았던 바울은 그 당시에 나사렛 출신인 목수 한 사람을 놓고 이 사람이 메시야다 하고 떠드는 기독교를 볼 때 울분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되었길래 천한 동네 나사렛에서 태어나고 교육도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30이 되도록 목수일만 하던 젊은 청년 하나를 메시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 어떻게 그가 십자가에 죽었는데 삼일만에 살아날 수 있느냐 하고 그는 자기 나름대로의 의분을 안고 자기 가슴에서 분함을 참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도가 지나쳐서 예수를 믿고 전하는 스데반을 쳐죽이는 주모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아서 예루살렘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닥치는 대로 끌어다가 감옥에다가 넣고 그 다음에 채찍질하며 그들을 핍박했습니다. 그 정도 했으면 될텐데 약간 미친 증세가 나타난 것이 사실입니다.
예루살렘에서 120마일이나 떨어진 다메섹 동네까지 도망가서 있는 신자들을 잡아서 끌어오기 위해서 그는 특별한 권한을 부여받아 그는 부하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약 일주일을 걸어서 가야하는 길입니다. 그 무더운 사막길을 걸어서 그는 다메섹까지 가는 도중입니다. 거의 그 마을에 도착할 시간이 가까운 어느날 12시쯤 갑자기 하늘에서 강한 빛이 바울을 둘려 비추며 에워쌌습니다. 강한 빛에 에워싸인 그는 사정없이 땅바닥에 거꾸러졌습니다. 정신을 잃을 정도입니다. 한참 멍하고 있다가 눈을 떠서 보니 자기 앞에 어떤 분이 서 계셨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주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물었습니다. 그는 그에게 놀라운 대답을 들었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니라”
얼마 동안 바울이 그 대답을 들은 후 정신 잃은 사람처럼 땅바닥에 얼굴을 대고 떨었는지 모릅니다. 나는 지금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죽이기 위해 가는 길이요, 결국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는 것은 금방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영광스럽게 부활한 예수님을 그가 앞에 뵙는 순간 오늘날까지 그가 무장하고 있던 사상, 철학, 신앙, 지식 등이 한 순간에 썩은 고목이 쓰러지듯이 와르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한참 얼굴을 땅바닥에 대고 있던 그가 “주여,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대답합니다.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거기서 네가 어떻게 해야할 것을 네게 가르쳐 주마.”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빛도 사라지고 예수님도 사라졌습니다. 너무나 강한 빛에 그의 눈이 노출이 되었기 때문에 맹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도 안보입니다. 캄캄합니다.
옆에 같이 가던 동행자들이 바울의 팔을 끌고 다메섹으로 갔습니다. 다메섹에 들어가서 골방에서 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그는 눈물 흘리며 가슴을 치고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모함을 탄식했습니다. 예수, 나사렛 예수, 그가 참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모르고 미친 개처럼 날뛰었던 자신이 얼마나 부끄럽고 후회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삼일 동안 잠도 자지 않고 회개했습니다.
드디어 아나니아라는 선지자가 왔을 때 그에게 세례를 받고 크리스챤이 되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령충만함을 주시고 그 눈에 비늘을 다 벗기시고 시력을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 바울이 기독교 역사상 유래 없는 선교사요, 신학자요, 성경 중에 13권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해 놓은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세계 교회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오늘날 서양에서 자녀를 낳으면 제일 많이 붙여주는 이름이 폴입니다. 바울이라는 뜻입니다. 얼마나 많은 남자애들이, 또 어른들이 폴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자랑스럽게 살고 있는지요. 세상에서 바울처럼 영광을 받은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바울처럼 극적으로 예수를 믿은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바울은 원래 다소라고 하는 대도시 출신입니다. 대학교가 있고요, 운동장이 있고요, 체육관이 있고 박물관이 있는 아주 큰 도시였습니다. 그 도시에서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자랐던 자기 자신을 퍽 큰 긍지로 삼고 있었던 것이 바울이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세상 처신에 대단히 밝은 사람이어서 그 당시로서는 하늘의 별따기와 다름없는 로마 시민권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얻었는지는 모르지만 부모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자녀로 태어나는 바울은 로마 시민으로 태어났습니다. 혈통은 유대인이요, 법적으로는 로마 시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로마 시민권 때문에 선교사로 일할 때에도 바울은 대단히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감옥에 잡혀갔을 때에는 로마 시민권 때문에 살아난 일이 한 두번이 아니고,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할 때는 로마 시민권 때문에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재판이 잘못 되었을 때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항소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그는 황제 앞에 섰습니다. 나중에 두 번째 수감되었을 때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만 죽을 때도 사람 대우를 받고 죽었습니다.
로마 시민에게는 칼로 목을 베는 것이 전부입니다. 깨끗하게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에 비하여 베드로는 로마 시민권이 없는 유대 식민지 사람이기 때문에 똑같이 예수 때문에 죽었지만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바울은 유대교에서 철저하게 가말리엘이라고 하는 위대한 스승 밑에서 배워서 철저하게 유대교로 무장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스데반이라고 하는 사람이 좀 과격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떠들고 다니니까 그걸 못 봐 가지고 그를 끌어다가 돌멩이로 쳐죽이는 데 주모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런 무모한 사람. 어떤 면에서는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는 완강한 사람인데 그가 예수 믿고 변화 받아 기가 막히게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구원받고 지금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요,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것입니다.
자, 바울이 예수 믿게 된 이 과정들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것이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진리입니다. 오늘 처음 나오신 분들이나, 이제 갓 믿으신 분들이나 오래 교회생활을 하신 분들이나 예외없이 두 가지 진리를 바울로부터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첫째로,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은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구원받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바울은 도덕적으로 난잡한 생활을 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의 생활은 깨끗했지만 기독교를 핍박하는 무서운 죄를 범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스데반과 같은 신실한 사람을 돌로 쳐죽이는 살인죄를 범했습니다. 무죄한 남녀를 감옥에다 집어넣고 채찍질한 무서운 죄를 범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고백한 말이 맞아요. 디모데전서 1:13에 자기를 놓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그는 이렇게 고백하고 나중에 결론적으로 말하기를 죄인 중에 두목이었다고 했습니다. 죄인 중에 괴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바울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이 볼 때 바울은 너무나 무서운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봐도 저 사람은 예수 안 믿을 거야. 세상 사람이 다 믿어도 바울은 못 믿어. 저런 사람이 어떻게 예수 믿겠나. 그렇죠. 우리가 볼 때에도 그 사람은 예수를 믿지 못할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바울을 그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종종 사람의 추측이나 상상을 뛰어넘는 일을 하십니다. 특별히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서 그런 일을 잘하십니다. 인간 사회에서도 용납할 수 없다는 흉악범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심으로 우리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십니다.
과거 우리 사회에서 초 일류급 흉악범이라고 기록되었고 우리 뇌리에서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을 열 여섯이나 죽인 김대두라는 사람이나, 금당 사건의 주범 박철웅이라는 사람이나 일가족을 도끼로 살해한 고재봉이라는 사람, 이미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그들이 얼마나 극악무도한 사람이었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세상을 떠난 지금에도 그들이 남겨놓은 희한한 흔적이 있습니다.
사형수로 복역하는 동안 목이 타는 사람이 찬물을 들이키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꿀꺽꿀꺽 들이마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사랑에 감격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했습니다. 눈물로 철저하게 회개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감옥 안에서 수백 명을 전도해서 예수 믿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드디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 자기들 때문에 숨진 사람들에게 사죄하고 예수님이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셨음을 고백하고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인간으로 보면 도대체 이해가 안가요.
지옥을 가도 제일 밑바닥에 가야 할 그런 것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느냐고요. 우리가 생각하면 어이가 없어요. 왜 하나님이 그런 식으로 하시나. 그런데 보세요. 사람들은 흔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기보다 악한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거부반응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자기 같은 사람이라야 구원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거꾸로 뒤집어 놓습니다. 오히려 구원 얻을 수 있다는 사람은 옆으로 밀어 제치고 “나 같은 놈이 어떻게 구원받느냐, 나 같은 놈이 어떻게 예수를 믿어 하늘 나라에 갈 수 있느냐” 하는 사람들을 끌어다가 하나님이 구원시키십니다. 예수님이 계실 동안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21:31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이로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 바리새인들보다 너희 서기관들보다도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리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과 똑같이 주님은 일하십니다. 그 당시 랍비와 바리새인들은 안 믿었어요. 그런데 세리와 창기들은 믿었습니다. 세상에서 사람 취급 안하는 세리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았어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과 같은 살인자를 하나님이 구원시킵니다.
바울과 같이 기독교를 핍박하는 자를 하나님이 구원시키십니다. 사람들이 볼 때 저 사람은 도무지 가능성이 없다고 낙인이 찍힌 사람이 예수 믿고 변화되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분입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몹시 핍박하는 식구들을 부정정적으로 보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오히려 빨리 구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예수 믿는 것 좋지. 빨리 교회에 가” 하면서 엿가락 늘어지듯 늘어지는 사람이 더 어려워요. 차라리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집안이 요란하고 너 죽고 나 죽자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빨리 믿어요.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형제 자매들 가운데서 한 가지 꼭 기억하세요. 하나님은 여러분이 얼마나 악하냐를 묻지 않으세요. 하나님에게는 살인한 사람이나 남을 미워한 사람이나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얼마나 악하냐를 따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도 무궁무진한 사랑으로 누구든지 포용하기를 원합니다. 인간이 포용하지 못한 사람을 하나님이 포용합니다. 사람이 용서하지 못한 사람 하나님이 용서합니다. 사람이 무시하고 복음 전하지 않은 사람을 하나님이 바울처럼 직접 찾아가셔서 예수 믿게 하십니다.
그 놀라운 하나님이 지금 이 자리에 계십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은 그 누구의 죄라도 깨끗하게 씻어주고 새옷을 입혀줄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주님 그렇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아무리 악한 죄인이라도 하나님은 구원하십니다. 믿습니까
바울을 보고 우리는 이것을 배웁니다.
또 하나 두 번째로 하나님이 구원하시려고 할 때는 인간은 거부하지 못한다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하려고 마음먹고 구원하려고 하실 때 인간은 절대 거부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바울은 예수를 믿으려고 하는 생각을 조금도 갖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 믿으라는 사람을 만났다면 아마 그냥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예수 믿는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다메섹 도상에서 그를 거꾸러뜨리시고 강제로 끌어들였습니다. 바울은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자의로 믿었나요 아니요! 타의로 믿었습니다. 믿고 싶어 믿었나요 아니요! 믿게 해서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구원해서 그의 자녀로 삼으실 때 바울이 거절할 수 있었습니까 그렇게 완벽한 유대신앙으로, 그렇게 완벽한 헬라철학으로 무장한 바울이었지만 하나님이 그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려 할 때 노우-하고 거부할 수 있었습니까 거부하지 못했어요.
길바닥에 거꾸러졌고 “주여, 뉘시나이까” 하고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하고 완전히 주의 손에 붙들린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원하지도 않는 사람을 강제로 예수 믿게 할 능력을 가리켜 절대적인 주권이라고 합니다. 로마서 9:15에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롬 9:15)
불쌍히 여기고 싶은 자를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강팍하게 내버려 둘 자를 강팍하게 내버려 두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이 마음대로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가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마음대로 하시는 분입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내가 저 사람을 구원해야 하겠다 하시면 강권을 써서라도 구원하십니다. 실패하는 법이 없어요. 그러나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가만히 내버려둡니다. 왜 그러시는지 몰라요. 그러나 왜 하나님 그렇게 하십니까 하고 인간이 불평할 수가 없습니다. 그분은 조물주요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어찌 감히 토기가 토기장이를 보고 네가 어찌 감히 나를 이렇게 할 수 있느냐 항변할 수 없다고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자기 마음대로 하는 일에 대하여 조건을 달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건을 달려고 애를 씁니다마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하나님이라는 분을 너무나 모르기 때문에 건방지게 달려드는 것이죠. 독재자가 제맘대로 해도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똑같은 인간이라도 제맘대로 할만한 권리를 가진 인간들에게 당연히 그렇게 하는 거지하며 양보를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자기 마음대로 하는데 대해서는 배가 아파 못 참는 것이 죄인들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맘대로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마음대로 어떤 사람을 구원하려고 하시면 강권으로 그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거절할 수 있습니까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생각하기를 “예수 믿는 것이 내 자유의지를 믿는 거이지 누가 믿으라고 해서 믿고 믿지 말라고 해서 안 믿나. 내가 결정하는 문제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나를 아무리 믿으라고 해도 내가 안 믿으려면 안 믿는다 이렇게 자기 자신이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속지 마세요.
자, 여러분, 이런 하나님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옥한흠이라는 사람을 찾아오셔서 “야, 내가 너를 구원하고 싶은데 너 생각이 어떠니” 여러분, 이렇게 의논하는 하나님입니까 그래서 내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을 하는 하나님인가요 만일 내가 “하나님, 나 싫어요. 내가 왜 믿어요.”하면 “그래 그러면 할 수 없지 뭐.” 여러분, 그렇게 하고 뒤로 물러가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나님은 무능한 하나님입니다.
사람의 의견에 따라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는 뼈 없는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그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믿고 싶어요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세요. 성경에 보면 나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계획을 세웠다고 했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나라는 존재가 의미를 갖기도 전에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겠다는 계획을 세워 놓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계획대로 일하십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자기가 세워놓은 계획을 하나님이 포기하실까요 천만에요. 사람이 거부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자기 계획을 그만 두실까요 천만에요. 창조 전부터 세워 놓은 계획을 인간의 거부반응에 걸려서 실천하지 못한다고 하면 그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요. 바울을 구원하시기로 창세 전부터 계획하고 기다리셨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기다리시다가 그를 거꾸러뜨리셨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작정하신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이여, 나는 싫어요! 고래고래 고함칠 수 있었습니까 도망갈 수 있었나요 천만에요. 그러므로 구원하려 하실 때 아무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절대은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가끔 우리 교회 안에서도 보면 안 믿겠다는 사람을 하나님이 강제로 꺾어 가지고 들어오는 사람을 봅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사람이 건강이 한번 꺾이니까 세상에 제일 약한 사람이 되더군요. 마찬가지지요. 누구나 다 그렇게 강인하고 자신이 넘치고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보이는 사람일수록 꺾일 때 보면 제일 약한 사람으로 꺾이는 것을 봅니다. 병상에 찾아가서 “선생님, 기도해 드릴까요” “예. 기도 좀 해주십시오.” 얼마나 약해졌는지, 얼마나 고분고분해졌는지요. 하나님이 한번 꺾으면 사정없어요. 누가 감히 달아납니까 어떤 사람 만가지 일이 잘되니까 그렇게 으시대다가 하나님이 한번 재산 싹 날리니까 완전히 잿더미 위에서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꺾이는 것을 저는 여러 번 보았습니다.
누가 거부할 수 있습니까 그분들이 후에 예수 믿고 나서 “하나님, 나를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눈물 흘리는 것도 저는 보았습니다. 나중에 병 다시 고침 받고 하나님 앞에 “주여, 무서운 병을 통해서 나를 구원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하고 그때야말로 눈을 뜨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요. 누구든지 하나님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하나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 오래 다니신 분들은 이미 한번인가 두번인가 들으셨을 거예요. 십년 전 이야긴데 여러분, 몬트리얼에서 올림픽을 할 당시에 제가 그곳에 있었는데 오후 늦게 다시 토론토로 내려오기 위해서 일곱 시간 정도 차를 몰아야 하니까 아주 서둘러서 뛰어오는데 어떤 집사 부부가 저를 꼭 붙들었습니다. 저와 같이 간 장로님과 함께 붙들렸습니다.
왜 붙드느냐 하면 제가 목사라는 것을 자기가 알고는 자기가 살고 있는 몬트리얼에 목사라는 사람이 온 이상 자기는 거저 보내는 법이 없대요. 반드시 대접하고 보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녁을 꼭 먹고 가라는 것입니다. 밤새도록 운전을 하더라도 저녁을 먹고 가라는 것입니다. 할 수 없이 그 성의가 고마워서 중국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굉장히 호화롭게 상을 차리는 동안 우리는 그분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남자는 이 재승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재승이라는 사람은 서울 법대를 나오고 한국은행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한국은행에 근무할 때 같이 그 은행에 근무하고 있는 아주 인물이 좋은 여자와 눈이 맞아 서로 오고가고 하다가 연애를 하고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는데 이 여자는 굉장히 신앙이 좋았습니다. 철저하게 신앙으로 훈련받으며 자란 아름다운 크리스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재승씨는 예수를 안 믿었습니다. 결혼을 하자고 하니까 여자가 목사님하고 상의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에게 여자가 상의를 했더니 예수 믿고 세례 받기 전에는 절대 주례 안 해준다고 했습니다.
천지가 새카맣게 변했습니다. 여자가 와서 남자에게 “당신 예수 믿기 전에는 절대 나하고 결혼 못해.” 하니까 남자가 처음에는 우락부락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고는 여자 얻기 위해서는 무슨 일은 못하랴 했습니다. 그래서 여자를 따라 그 교회에 나가 학습 받고 세례 받고 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아주 만인들이 축복하는데 결혼식을 했습니다. 결혼해서 사는 동안 처음에는 행복하더니 나중에는 찌그락빠그락 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얼마나 신앙이 좋은지 주일이 되면 아침부터 저녁가지 교회에 나가 봉사를 하고 집에 안 들어옵니다. 그리고 월급을 갖다 주면 꼭 십일조라고 떼어 가지고 바칩니다. 울화통이 터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인은 “당신 결혼할 때 예수 믿기로 하고 결혼하지 않았소.” 하고 따지면 “내가 그것 좋아서 그랬나. 결혼하려고 그랬지.” 이렇게 해서 계속 싸우는 것입니다. 가정에 계속 어려움이 있습니다. 불화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부인이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남편 정말 구원시켜 주시옵소서. 다메섹 도상의 바울처럼 콱 꺾어주세요.” 매일마다 남편을 위해 그렇게 기도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카나다로 이민을 왔습니다. 제가 만났을 때 이민 온지 삼년이 되었습니다. 이민해 와서 조그만 그로세리를 열었습니다. 조그만 식품점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불티나게 잘되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남편은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자기는 방에서 장부를 정리하고 있는데 쾅하는 총소리가 났습니다. 부인이 달려가 보니까 백인 한 사람이 뛰어 들어와 무턱대고 남편을 쏴버린 것입니다. 남편이 가슴에 피를 쏟으며 쓰러져 있었습니다. 의사들은 처음에 희망이 없다고 했습니다.
부인이 너무나 너무나 기가 막혀서 하나님 앞에 이렇게 매달렸다고 합니다. “주여, 영혼을 데려가는 것은 좋지만 구원을 해야 될 거 아닙니까 구원을. 사람을 데려 가더라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도록 뭐 어떻게 준비를 시켜야 할 거 아닙니까!” 이래가지고 안 믿는 사람인 줄 뻔히 아는데 예배당에 따라다닌다고 다 믿나요. 부인이 볼 때는 안 믿는 것이 너무나 뻔한데 하나님이 이렇게 데려가면 어떻게 합니까 하고 방성통곡을 하고 하나님에게 매달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어요.
의사들도 기적이라고 했어요. 환자가 의식이 돌아오더니 의식이 돌아오면서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수개월의 병상생활을 보내면서 부인이 날마다 남편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영혼 구원해 주옵소서.”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아내를 보면서 남편의 마음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부인의 손을 붙잡고 자기가 얼마나 완악했던 사람인가를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부인의 손을 잡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강제로 꺾은 것입니다. 부인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다메섹 언덕에서 확 꺾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시간에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남편이 속옷을 걷어올리더니 총에 맞은 자국을 보여줘요. 그리고는 아직도 총탄이 뒤에 박혀 있대요. 뽑을 수가 없대요. 그러나 부인의 말, “우리 남편 너무 너무 변했어요. 내가 따라가려고 하면 숨이 헉헉 막힐 지경이에요. 얼마나 교회에 열심이요, 얼마나 은혜를 사모하고, 얼마나 성경을 보려고 하는지 몬트리얼에서 토론토까지 그렇게 먼길이지만 부흥회 한다고 하면 막 뛰어내려 오고 헌금하자고 하면 포켓트에 있는 것 싹 털어 가지고 하고 이 정도로 사람이 바뀌어 버렸어요.”
그래서 제가 그 간증을 들으면서 아멘-하나님은 그렇게 할 수 있지. 아무리 거역하고 거부해도 하나님은 하나님이 구원하려고 할 때는 사람이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왜 그렇게 합니까 하나님이 그 영혼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왜 그렇게 강제로 하나요 만세 전에 하나님이 그를 자기 자녀를 삼으려고 계획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계획을 바꾸어야지 하나님이 계획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버립니다. 그러나 구원받고 난 뒤에는 억지로라도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믿습니까 할렐루야!
얼마나 감사한지요.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이 바울이나 어떤 사람처럼 억지로 끌려와 예수 믿지는 않았을지라도 여러분, 한 가지는 알아두세요. 내가 믿고 싶어서 믿으려고 일어섰는데 내가 예수 믿으려고 결단해서 믿었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한 가지 알아두세요. 여러분이 마음 속에 그렇게 생각하고 예수 믿으려고 하기까지 여러분의 마음 속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철저하게 준비해 주신 분이 계십니다. 하나님입니다. 마음이 열리게 하시고 예수를 믿게 하시고 자기의 자유의지로 쉽게 받아들이도록 뒤에서 기초작업을 철저하게 해주신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구원 얻은 뒤에 내가 했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전부 다 하나님이 하셨어요. 나를 구원하시는 일에는 하나님이 100% 다하셨지 내가 손 내밀어 거들어 드린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은혜의 종교라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구원받은 것을 생각하면 꿈만 같아요. 너무 감격스러워. 내가 구원받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해드린 것이 없어요. 내가 하나님 앞에 구원받을 만한 어떤 자격도 없는데 하나부터 열 가지 하나님이 다 일하셔서 나로 하여금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복을 주신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감사해요.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잘 웁니다.
우리 교회 나애심씨 보면 특송할 때마다 울죠.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청승이다 할 거예요.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이 보면 얼마나 은혜가 감격스러우면 저럴까 다같이 울어요. 나도 울어요. 예수 믿는 사람들 교회 오면 잘 운다고 하지만 죄 때문에 우는 것 아니에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특별히 죄를 많이 짓나봐 항상 우니 말이야. 그러나 죄 때문에 우는 거 아니에요. 사실 따지고 보면. 나 같은 놈을 하나님이 원하셔서 자녀 삼아주시고 구원해 주신 것 생각하면 이거 뭐 감격해서 안 울 수가 없어요. 그래서 노예를 매매하며 가장 악한 일을 일삼던 존 뉴톤 같은 사람도 예수 믿고 변화된 다음에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날마다 찬송했는데 그가 한 유명한 말이 하나있죠. “천국에 가면 반드시 세번 놀란다.” 참 재미있는 말입니다. 첫 번째는 왜 놀라느냐 천국에 꼭 들어와 있어야 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놀란다. 옥목사 같은 사람이죠. 천국에 가면 분명히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깜짝 놀란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 말 예를 든 거예요. 내가 왜 안들어가요. 들어가지. 괜히 오해하지 마세요. 두 번째는 왜 놀라느냐 절대 천국에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고 했습니다. 바울과 같은 사람, 고재봉과 같은 사람. 정말 들어가면 나도 놀랄 거예요.
참 인간의 생각으로는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천사들의 옹위를 받아 하나님을 찬송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깜짝 놀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놀래는 것은 노예 상인이었던 존 뉴톤이 천국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놀랠 것이다. 그러니 이 말이 무슨 뜻이냐 천국에 가면 한 사람도 내 스스로, 내 힘으로 구원받았다 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저 하나에서 열까지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셔서 받은 것뿐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귀한 진리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실 때 인간은 거부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이 말한 대로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아멘-나를 구원하여 주신 은혜, 너무너무 좋아요. 오늘 이 자리에 주님이 와 계십니다. 여러분이 마음으로는 믿고 싶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이 여러분을 믿게 하려고 끌어들일 때에는 거부하지 못합니다. 왜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너무 사랑하십니다.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그 보배로운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자기 생명 아끼지 않고 희생 분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그 예수님이 이 자리에서 아직도 믿지 아니하는 형제자매를 구원하기 원하고, 아직도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예수님을 바울처럼 철저하게 자복하고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묻지 않는 분들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 사람이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하나님 나라에 보낼 수 있는 풍성한 은혜. 그 은혜를 가지고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 주님 이 자리에 계십니다. 놀라우신 사랑, 놀라우신 은혜. 우리 감사해야 되겠고 아직도 예수 믿지 않으시는 분들 이 시간 주님이 내미는 피묻은 손을 거절하지 마세요. 여러분을 부르는 그 음성, 사랑이 넘치는 그 따뜻한 음성을 귀를 막고 여러분이 돌아서지 마세요. 부름에 응답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앞으로 남은 여생 승리의 생활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같이 머리 숙이십시다.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놀라운 사랑의 아버지시여. 바울과 같은 살인자요, 포행자요, 핍박자도 우리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구원하시는 모습을 볼 때에 얼마나 감사한지요. 아버지 하나님, 여기 나와 있는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받을 만한 조건이 하나 없는데 창세 전부터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려고 계획하시고 나를 강제로라도 예수 믿게 하셔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저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축복을 나에게 안겨주심을 생각할 때에 너무나 너무나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은혜 감격해 우리의 남은 여생 주님의 영광 위해 살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들 마음 속에 뜨거운 감격을 주시옵소서. 그리고 다시 이 시간 기도 드립니다. 아직도 예수를 믿지 않고 이 자리에 나와 있는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그들을 몹시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들을 내버려두시기 않기 위하여 식구들의 손에 끌려 형제들의 손에 끌려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주님이 이제 그들을 구원하려고 하시는데 하나님 이 형제들 마음을 열고 바울처럼 무릎꿇고 주님 앞에 굴복하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하늘의 축복을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 나의 구주라고 고백할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이 그들을 완전히 변화시켜 바울처럼 남은 여생 아름답게 쓰임 받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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