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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지막 재앙의 때 (계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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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5장은 드디어 마지막 재앙의 때가 도래했음을 보 여 줍니다. 요한계시록의 전체 구조에서 역사를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는 사실을 전에 설명 했습니다.

일곱 인봉과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마 지막 단계의 심판이 일곱번째 인봉이고 그 안에 일곱 나팔의 심판이 포함된다고 했습니다. 또 일곱번째 나팔에 일곱 대접의 심판이 들어갑니다. 다시 말하면,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의 내용이 모두 일곱번째 인봉 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 므로 마지막 재앙이라는 것은 일곱번째 나팔이 불어지면서 동 시에 진행되는 일곱 대접의 심판 내용 전체를 다 포함하는 것 입니다.

자, 그러면 일곱번째 나팔은 언제 불어집니까? 요한계시록 11장 15절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 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세 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로 변하는 결정적 단계의 심판 내 용을 형성하는 것이 바로 일곱번째 나팔 속에 포함된 일곱 대 접의 심판입니다. 본문은 바로 이 마지막 재앙의 때가 시작되 었음을 선포하는 내용입니다.

 본문인 15장 1절을 보십시오.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째 천사가 일 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 으로 마치리로다.

이 마지막 재앙으로 끝입니다. 그 다음에는 더 이상 재앙이 없습니다. 15장은 그 마지막 재앙이 시작된다는 선언이고, 그 실제 내용은 16장 1절부터 시작됩니다. 16장 1절은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 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로 되어 있고, 2절부터 첫째, 둘째 하면서 하나님의 진노의 대접이 쏟아져서 하나님을 반역한 이 역사를 심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물론 이 심판은 일곱번째 대접 심판으로 끝 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일곱번째 대접이 쏟아지기 직전에 여섯번째 대접이 쏟아지는 장 면에서 무슨 사건이 일어납니까?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 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12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 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14절).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 으더라(16절).

여섯번째 대접이 쏟아질 때 인류 역사의 최후의 전쟁이 일어납 니다. 흔히 이것을 가리켜 「아마겟돈 전쟁」이라 부릅니다.

그런 다음 일곱번째 대접이 쏟아지고 역사를 향한 하나님의 심 판은 막을 내립니다.

이제 본문인 요한계시록 15장의 위치를 정리해 봅시다. 심판 의 전체 기간을 보통 7년으로 말하는데, 그 기간은 전 삼 년 반과 후 삼 년 반으로 나눕니다. 본격적인 심판은 후 삼 년 반을 가리킵니다. 이 기간을 나타내는 표현으로는 삼 년 반 외에 세 때 반, 사십이 개월, 천이백육십 일 등이 있습 니다. 이 기간을 문자적으로 접근하든 상징적으로 접근하든 심 판의 사실 자체는 번복되지 않습니다. 역사는 바로 이 마지막 재앙의 때를 향해서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그 마 지막 재앙의 때의 성격을 세 가지로 규정합니다.

 심판의 때 이 마지막 재앙은 곧 심판입니다. 이 때는 요한계시록 6장 10절이 응답되는 때입니다. 6장 10절에 들어 있는 인류의 탄원을 보십시오.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 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伸寃)하여 주지 아니하시 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이 말씀의 배경이 바로 앞 절에 나옵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 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9절) 복음 전하다가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며 부르짖는 소리가 10절 의 내용입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왜 죽어야 합니까? 전도자 들이 세상에서는 왜 냉대를 받아야 합니까? 주(主)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왜 억울하고 불공평한 대접을 받습니 까? 의로운 사람이 핍박을 받고 불의한 사람이 득세하는 이 불공평한 역사는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합니까? 어느 때에 우리 들의 피를 신원하며, 어느 때에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시겠습 니까? 드디어 그 때가 왔습니다. 이 마지막 재앙의 때는 바로 최후 의 심판의 시작인 것입니다. 이 마지막 심판의 때가 지난 후, 하나님의 백성들이 천국의 유리 바닷가에서 하나님을 향해서 부 르는 찬양의 내용을 보십시오. 그들이 방금 통과한 심판의 성 격을 알 수 있습니다. 3,4절입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 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이 찬양의 내용 중에 거듭 강조되는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3절 후반부와 4절 후반부에 나타나는 주님의 의로우심이라는 단어입니다. 한때 하나님의 의(義)가 가리워져 하나님이 침 묵을 지키실 때, 우리는 역사 속에서 언제나 불공평만 보게 됩니다. 히틀러가 무참하게 600만의 유태인을 학살할 때 하 나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내가 죽음의 고통에 직면해 있을 때 하나님 당신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하나님의 의는 때때로 숨겨진 듯합니다. 그러나 본문 4절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마침내 하나님의 의가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만국이 와서 여호 와 하나님께 경배를 드릴 것입니다. 의롭다는 단어 외에 이 심판의 성격을 규정하는 단어로는 전능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마지막 심판은 전능 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에 의한 의로운 심판입니다. 하나님만이 마지막 심판자가 될 것입니다. 그 때 모든 것은 공평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 때까지는 인간이 내리는 그 어떤 판단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하나님의 의가 온전히 나타 나는 그때까지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 판단을 유보하고 살아야 할지 모릅니다. 이 사실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대단히 중 요한 빛을 던집니다. 고린도전서 4장 5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주께서 오셔서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개개인들과 역사 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때까지는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하고 그 들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고전 4:3).

다른 사람의 판단을 받는다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닙 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내 삶의 방향이 흔들리지는 않는 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나도 나의 진정한 판단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주님만이 나를 올바로 판단하실 것입니다.

4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主) 시니라.

바울의 이 고백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내가 느끼기에는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의 로운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니란 말입니다. 내가 모르는 내 약 점과 허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만이 진 정한 판단자라고 고백합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 모든 역 사를 공평하게 판단하실 마지막 심판의 때의 도래를 알리고 있 습니다.

 연단의 때 이 재앙의 때는 심판의 때일 뿐만 아니라 연단의 때이기도 합 니다. 본문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 두 개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고 나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과 아주 흡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바 로의 추격을 받아서 홍해를 앞에 두고 꼼짝없이 죽게 되었습니 다. 그 때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켜 주셔서 홍해를 여십니 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무사히 홍해를 건넙니다. 그 다음 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주의 백성을 박해하던 애굽의 군대들이 홍해를 건너려 할 때, 물은 닫히고 그들은 다 거기서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극적으로 그 홍해를 통과 하고 나서 바다 저 건너편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신들을 구원하시고 악인들을 심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최초의 찬양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노래입니다.

지금 이 재앙의 때도 예전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하나님을 대 적하던 모든 것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속에서 보호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 다를 건넌 후 찬양할 것입니다. 역사의 마지막에 등장할 이 바다는 홍해 정도의 바다가 아닙니다. 2절에 보면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홍해가 아니라 유리 바다입니다. 바다를 이미 건너서 바닷가에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옛날처럼 모세의 노래를 부릅니다. 또한 어린양의 노 래도 부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도 우셔서 일으키신 기적을 통해서 구원을 경험했지만, 오늘 이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경험하는 구원은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어린양으로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고 환난 속에서 보호를 받고 드디어 살았다니 얼마나 기쁩니까? 이것은 엄청난 기쁨의 사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 나라에 가서 영원한 찬양을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어린양의 노래입 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삶의 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역사의 마지막 심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지키신 그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주님을 영원히 찬양하는 나라, 그 나라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런데 여기 유리 바다를 어떻게 묘사하는지 보십시오. 2절입 니다.

또 내가 보니.

마지막 심판을 통과하고 나면 이런 것이 있다 하면서 일단 환 상으로 먼저 보여 주는 것입니다. 마치 영화의 예고편처럼 말 입니다.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그냥 유리 바다가 아니라 불이 섞여 있는 유리 바다입니다.

이 불은 바로 심판을 상징할 것입니다. 즉,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이 심판을 통과한 후에 하나님을 영 원히 찬양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 승리를 위하여 다가올 심판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본문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마지막 환난의 때는 마지막 연단의 때가 될 것입니다.

환난의 때를 이겨 내야 할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어떻게 묘사 했는지 봅시다. 본문 2절을 보십시오.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

짐승은 적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숫자는 666, 적그리스도의 표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적그리스도의 표를 가지고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 지고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흔적이란 어떤 신 분증 같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으로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가리킵니다. 세상이 점점 불신앙적으로 변해 가는 이 환 난의 때에 당신은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교 회에 출석하면서도 불평 불만을 쏟아 내며 마치 적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처럼 살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교회도 출석하지만 실제 로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삽니다. 바울이 디도서에서 말 한 것처럼 입술로는 하나님을 시인하지만 행위로는 하나님을 부 인하는 자들, 이들이 바로 실천적 무신론자들입니다. 역사의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더욱 그리스도인답게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 지고 사는 우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성 프란시스가 그렇게 사모하고 기도했던 주님의 흔적, 사랑의 흔적을 가지고 사는 자들 말입니다.

이 불 섞인 유리 바다를 지난 후, 다시 말하면 환난의 때를 지난 후,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시대의 모든 우상을 극복하고 마침내 승리한 자로 저 유리 바다 건너편에 서서 승리의 하나 님을 영원히 찬양할 것입니다. 당신은 최후의 승리와 찬양의 축제에 합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역사의 마지막 고난의 때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연단의 때, 훈련의 때입 니다. 고난을 직면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생의 진정한 근 거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불신앙의 사람들은 고난이 오면 자기 의 편리를 위해서 쉽게 하나님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 사 람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 러나 신앙의 사람은 고난의 때에 더욱 하나님을 신뢰할 것이고 하나님을 향한 찬양을 배울 것입니다. 이것이 고난의 신비입니 다.

무교회주의자이긴 했지만 유명한 종교인이었던 우찌무라 간조는 환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어느 날 나에게 사상이 말라 버렸다. 나에게는 부를 노래가 없고 할 말이 없어졌다. 그때 누가 와서 무정한 것으로 내 마음을 찔렀다. 나는 몹시 고통을 느꼈다. 나는 비명을 질렀 다. 그런데 보라, 그가 남긴 상처에서 사상의 샘이 흘러나온 다. 내 신앙의 눈이 열리고 찬미의 노래가 내 입에 다시 돌 아왔다. 그때 나는 내 아픈 상처를 만지면서 말했다.「무정하 고도 친절한 원수여, 너는 나에게 새로운 노래를 주었노라.」 우리는 고통의 상처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믿음의 노래 를 배웁니다. 고통은 결코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에게서 멀어 지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고난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더욱 하나님 앞으로 이끌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고난 속에서 더욱 하나님을 향한 구원의 찬양과 승리의 노래를 배울 것입니다. 마지막 환난을 지나 저 영혼의 바닷가에서 세세토록 하나님을 찬양하는 승리한 무리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 무리 속에 당신이 끼어 있을까요?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서도 최후의 승리자로 하나님 앞에 세워지기 위하여 주께서 허용하시는 역 사의 마지막 고난을 이길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이런 의미 에서 이 마지막 재앙의 때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연단의 때입니다.

 진노의 때 마지막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훈련의 때이고 구원의 때이 지만, 하나님을 거절한 사람들에게는 진노의 때가 될 것입니 다. 그것이 5절부터 8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이제 드디어 일곱 대접을 한 대접씩 쏟으면서 이 지구상에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행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행동을 취하십니다.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 며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 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네 생물 중에 하 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 곱을 그 일곱 천사에게 주니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 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마지막 구절을 주목하십시오. 이 심판이 끝나기까지는 하나님이 거하는 성전에 아무도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이 마지막 재 앙의 때는 하나님의 진노의 시간입니다. 주님과의 교제의 시간 혹은 중보의 시간은 다 지나갔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 시는 은혜의 때는 다 지나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진노 만이 이 지구상에 쏟아질 따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살 고 있는 때는 아직 은혜의 때입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그러나 사람들이 언제나 회개할 수 있고 언제나 주님 앞에 돌 아올 수 있고 언제나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회개가 통하지 않는 시대가 옵니다. 그때는 역사에 대한 하나님 의 마지막 심판이 집행될 따름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때를 바라본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두려 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시편 77편 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 긍휼을 막 으셨는가 하였나이다.

하나님이 노하시는 때를 긍휼을 막으시는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주님이 지금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 성들이 두려워한 것처럼 하나님의 긍휼이 멈춰질 때, 그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있을 뿐입니다. 시편 69편 1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열납하시는 때에 나는 주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

여기서 열납하시는 때에라는 것은 구원의 시간입니다. 하나 님이 받으실 수 있는 때에 기도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입 니까? 지금은 은혜의 시간이기 때문에 중보의 기도가 가능합니 다. 언제든지 하늘의 성전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 암아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의 이웃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마지막 재앙의 때에 하나님은 은혜의 성전을 닫으십니다. 그때는 더 이상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 므로 그때가 오기 전에 우리의 이웃들을 위해서 중보 기도를 하고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 마지막 재앙의 시각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저는 그때가 언제인지 정확히는 모릅니다. 92년 10월일지 그 이후 언제 일지…. 그러나 오늘 우리들이 경험하고 있는 어려운 정치 경 제적 상황들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그래서 이것이 마지막의 시 작이라면, 당신은 그 때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여 기서 준비란 라면을 많이 사다 놓고 기타 생필품을 준비해 놓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악해져서 신앙을 지키는 그리스도 인들이 말할 수 없는 핍박을 경험하게 될 때,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주님만은 부인하지 않고 이 환난의 시대에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마지막 승리자가 되기 위하여 순교라도 할 각오가 되어 있는 것, 그것이 준비의 의미입니다.

이 기도를 드리십시다.

오, 하나님, 우리로 이 어두운 세상에서 깨어 역사의 마지 막 날을 준비하게 하셔서, 천국의 유리 바다에 설 때에 우 리가 승리한 자로서 주님 앞에 찬양하며 설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도처에서 우리는 역사의 마지막 징조들을 보고 있습니다. 분명히 이 어두운 시대는 호전될 것 같지 않습니다. 주여, 우리로 이 어두운 역사의 저녁에 눈을 떠서 그리스도의 표적을 분별할 수 있게 하옵소서. 그리고 주 께서 우리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道)를 지키며 이 환 난의 때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주 앞에 서는 날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도록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답게 남은 날들을 살아가는 주 의 백성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 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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