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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굿간의 아기 예수 (눅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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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성탄절을 맞이하시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들의 자녀들과 그리고 하시는 모든 일들 위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특별히 오늘 아기 세례를 받은 어린이들과 가정 위에 한없는 기쁨과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부터 2000여년 전 유대 땅 베들레헴이란 동네에서 일어난 성탄 사건은 단지 기억만 하고 넘어갈 과거의 사건만으로 머물러 있을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기에, 우리에게, 나에게 다시 재현되어야 할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역사를 새롭게 하기 위하여,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역사속에, 이 역사의 한 복판으로 침투하여 들어오신 너무나도 놀라운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성탄사건은 단순히 기억만 하고 말 사건으로 머물러 있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고백의 사건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단지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억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고백적인 사건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존재와 삶의 의미와 생의 목적과 깊숙이 관련되어 있는 성탄사건임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탄사건은 영원히 나에게 오늘의 사건이며, 나의 삶에서 언제나 재현되어야 하는 은혜와 축복의 사건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성탄사건은 영원히 오늘의 인류와 세계의 사건이며, 이 역사와 세계 속에서 언제나 재현시켜야 할 사건입니다. 이런 면에서 크리스마스 메시지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탄생한 그 사건이 또다시 나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으며, 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묻게 하며, 새롭게 결단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계와 역사 속에서 무엇이 일어나기를 원하고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 것인가를 원하는 일입니다.

오늘 0시 성탄절 자정예배를 통해서 이미 말씀을 드린바 있습니다만, 복음서에 나타난 성탄에 관한 이야기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보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자정 예배시에 마태복음에 나타난 성탄 사건을 통하여 '최고의 경배'란 제목으로 성탄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만, 이 시간에는 누가복음에 나타난 성탄사건을 통하여 '마굿간의 아기 예수'란 제목으로 성탄의 의미를 밝혀보기를 원합니다.
누가복음에 보도된 성탄 이야기는 목자들이 아기 예수를 방문하여 경배를 하고, 천군 천사들이 찬양을 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는 사람이 머무는 곳에 누울 자리가 없어서, 마굿간 말구유에 누었다고 보도를 해주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가 마굿간에서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는 여관에 들어갈 방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합니다. 아기 예수와 그의 부모들이 여관에 들어갈 방이 없었기 때문에, 갓난 아기 예수가 마굿간의 구유에 눕게 되었다는 것은 그 시대가 얼마나 마음들이 강퍅했었는가를 그리고 얼마나 이기적이었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의 방은 그들 자신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아기 예수를 맞이할 공간이 없었음을 말해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자신들의 이기와 욕심, 아집과 고집으로 막이 쳐져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새로운 것이 거부되고 배척이 된 것입니다.

아기 예수가 사람들이 사는 집의 방에서 태어날 수가 없어서 짐승이 먹고 자고 기거하는 곳에서 탄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 이야기의 또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것으로 가득 채워 있은 자들, 무엇을 소유하여 그것을 가지고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누리는 사람들, 기득권을 가지고 으시되는 사람들, 교만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아기 예수를 맞이할 특권이 주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겸허한 사람들만이, 즉 마음이 비워있는 자들만이 아기 예수를 맞이할 수 있는 특권을, 즉 은혜를 받을 자들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에 보도하고 있는 성탄 사건은 그 당시의 사회상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당시 가난한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안에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성 밖에서, 변두리 외각지대에 쫓겨나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사회상황과 경제적인 어려운 상황을 말해줍니다. 마태복음의 성탄사건이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말해 준다고 하면, 누가복음은 바로 그 당시 어려운 경제적인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토록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시대에 탄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찬양하는 세계, 준비되어 있는 태평성대에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배척하고 거부하는 역사의 한복판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미 태어나실 때부터 고독과 아픔과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이 역사의 한복판으로 뛰어드신 것입니다. 이미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아무도 그를 영접하지 않는 세계 속으로, 거부와 배척만이 있는 이 역사의 한복판으로 뛰어드신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은 이미 아픈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갈라지고 깨어지고 전쟁과 어두움이 있는 이 역사 속에 새생명으로 탄생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은 이런 모습으로 마굿간에 탄생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그분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서 여기에 모였습니다. 마굿간에서 탄생하신 갓난 아기 예수님을 부둥켜안고, 우린 기뻐할 수만 없을 것 같습니다. 기쁘다고 덩실덩실 춤만을 출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추운 겨울에 마굿간에 탄생하신 예수님을 부둥켜안고 오히려 우리들은 눈물을 흘려야 옳은 일이 아닌가 감히 생각해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굿간의 아기 예수를 부둥켜안고 울어야 한다면, 그 울음의 의미가 무엇이 겠습니까 여기에서 성탄의 의미를 찾는다면, 그 성탄의 의미는 무엇이겠습 니까 그것은 아직도 버려져 있는 우리의 이웃들, 우리들의 따뜻한 돌봄이 필요한 가난한,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울음과 연민의 정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마굿간의 아기 예수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더불어 사는 삶'을 살게 권유합니다. 또한 마굿간의 아기 예수님은 `돌보며 사는 삶'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 `이웃을 돌보며 사는 삶'이 성탄의 의미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의 주위에는 더불어 살아야할 이웃들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돌보아야 할 이웃들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돌보아야할 이웃들이 아직도 너무 많습니다. 마굿간의 아기 예수님은 우리들이 돌보아야 하고, 사랑을 베풀어야할 우리들의 이웃들입니다. 버려지고 가난하고 배척받고 있는 이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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