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요 14:1-6)

첨부 1


한시인은 모든 종류의 마지막은 각각의 죽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어쩐지 우리에게 묘한 감상을 줍니다.

당신이 학교 교정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 수업을 했던 날을 한번 연상해 보십시오. 남자 분은 군대를 가기 위해 집을 떠나던 날 을 생각해 보고, 여자 분은 시집가기 전날 친정에서 보낸 마지막 날을 생각해 보십시오. 또는 사랑하는 이들의 임종을 지키던 그 순간을 연상해 보십시오.

북구라파의 성자(聖者)라고 일컬어지던 오 할레스비는 이렇게 충고 했습니다.

당신의 마지막이 아름답도록 기도하십시오.

 두 죽음

얼마 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두 인물이 세상을 떠났는데, 그 모 습이 상당히 대조적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89년 12월 14일에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소련의 핵물리학자인 안드레이 사하로프 박사였습니다. 이 사람은 수소 폭탄을 제조했지만, 핵의 가공할 만한 파괴력에서부터 인류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끼게 되어 핵무기 제한 운동과 세계 평화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그 결과 1975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고, 그 당시 소련의 수준으로는 상당한 재력을 갖게 되었 습니다. 그러나 그는 소련에서는 대단한 액수인 15만 3천 달러 를 암연구 기관에 증정하고 새로운 삶을 출발했습니다. 그의 죽음 에 조국 소련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은 깊은 애도를 표했습니다.

매스컴들은 앞을 다투어 그의 일생을 소개했고, 그에게 여러 가지 칭호를 붙여 주었습니다.

도덕의 나침반! 우리 시대의 양심! 진실한 목소리! 진정으로 유 일했던 자유인! 러시아의 성자!

그러나 사하로프 박사가 죽은 며칠 뒤인 성탄절에 죽은 루마니아의 대통령 니콜라이 차우세스크의 마지막은 상당히 대조적입니다. 동 구라파의 마지막 공산 독재자로서 6만 명의 무고한 시민들을 죽게 했던 그는, 비밀 재판 끝에 아내 엘레나와 함께 총살형을 당했 습니다. 돌연히 시체가 되어서 비참한 모습으로 우리 눈 앞에 비 쳐졌던 그의 얼굴을 우리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자칭 카 파르티아 산의 최고의 천재 혹은 하늘의 별이라고 했다고 합 니다.

그러나 그가 죽은 성탄절 아침, 내전이 채 끝나지 않았지만 그 도시에는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고 합니 다. 도시마다 기쁨으로 인산 인해(人山人海)를 이루기 시작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날 아침 방송에서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잔인한 범죄자가 죽었다, 적그리스도가 죽었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죽음은 얼마나 대조적인 모습입니까? 우리는 이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죽음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삶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 의 삶은 죽음을 준비하는 삶이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죽음과 영원한 미래에 대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의 삶은 불안과 절망일 수밖에 없습니다.

 풍성한 삶

본문은 돌연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그들의 곁을 떠나가셔야 한다는 사실을 예언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지금까지 그들의 삶을 인도 하셨고 그들의 정신적인 기둥이었던 주님이 떠나가신다는 말을 듣자 , 제자들은 깊은 근심에 사로잡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다시 메시지를 시작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14:1).

여기에서 근심이라는 단어는, 바람 때문에 방향을 잡지 못하고 요동하는 파도를 연상케 합니다. 지금 제자들은 방향 감각과 초 점을 상실하고 있습니ㅩ. 그들이 내일 일을 알지 못하고 밥 3瓚瓚瓚竄讚s讚F瓚읗贊쟎퓽3竄 주께서 예비하신 놀라운 처소가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천국은 분명한 하나의 처소인 것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 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2,3절).

 작년 『뉴스 위크』(News Week)지에 발표된 통계를 보면 미국인의 80퍼센트가 천국을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수년 전 어느 통계에 의하면, 한국인들은 겨우 30퍼센 트 미만이 아마도 천국이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대체로 우리는 천국을 믿는 신앙을 소위 기복 신앙이라고 일축 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식인일수록 그것을 유치한 신앙이라 고 쉽게 간주해 버립니다. 그러나 저는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우리나라 사람이 기복 신앙에 빠져버린 이유는 사실은 천국 신앙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물질적인 축복에만 너무 매달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내세를 믿는다면, 주께서 나를 위해서 죽음 저 건 너편에 예비하신 영광스러운 처소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 놀랍고 영원한 삶을 소망하며 살 것입니다. 우리에게 참으로 믿음 이 있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의 유치한 축복들에 그렇게 매달리며 발버둥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영광스럽고도 정의로운 영원 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할 때 현재의 삶은 좀더 의연하고, 좀더 자유롭고, 좀더 당당하게 변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최대의 저주는 내일이 없는 삶이라고 합니다. 시집가는 여인이 결혼 생활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이 예식장에 선다면, 그 결혼 의 자리는 얼마나 비참하고 슬픈 자리입니까? 그곳은 무덤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졸업하는 학생에게 진학이나 내일에 대한 꿈 이 없다면, 그의 졸업식장은 얼마나 쓸쓸하겠습니까? 단테의 『신곡』(神曲)에 보면, 지옥의 입구에는 일체의 희망을 버리라라는 푯말이 붙어 있다고 합니다.

 6.25 사변 때,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 한 군목이 참호 사이를 뛰어다니며 병사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가 한 병사에게 다가갔을 때의 일입니다.

형제여, 당신을 위해서 기도해 드리기를 원합니다. 무엇을 위해 서 기도할까요? 흑인 병사가 군목을 바라보며 대답했습니다.

『나에게 내일을 주십시오.』

우리에게 내일이 없다는 것은 최대의 저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 영원한 처소를 참으로 확신한다면, 오늘 현재 우리의 삶은 지 금보다 훨씬 당당하고 자유로울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진정한 승 리는 주께서 나를 위해 영원한 처소를 예비하셨다는 것을 참으 로 믿는 사람들에게 보장되어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영원한 처소에 이르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 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I am the way, t he truth, and the life).

이 말씀은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여섯번째 「나는-이다」( I am)라는 선언입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께 로 가는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의 길이라는 단어 앞에는 본래 정관사가 붙어 있는데 이것은 유일한 길, 그 길, 하나밖 에 없는 길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당시에 대단히 밝고 환한 큰 길을 말할 때 특별히 사용되었습니다.

길을 묘사하는 단어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 말에는 분명 치 않습니다만 오솔길, 골목길, 차도, 대로(大路), 고속도로 같은 것이 있고, 영어에는 path, alley, road, w ay, street, avenue, highway 등이 있습니다 . 하여간 헬라어의 이 길은 아주 크고 밝은 길을 묘사할 때 쓰여지던 단어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가는 밝은 길, 환한 길이십니 다. 그분은 아버지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 사이에 가로놓인 그 죄 악의 수렁을 뛰어넘는 유일한 길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따라 자기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 16:25).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다! 그분은 우리를 천국에 도달하게 하는 길이십니다. 그분이 없으면 우리는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사 53:6).

(우리는)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롬 3:12) .

이런 방황의 인생 여정 속에서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다! 우리 나그네 인생길에서 예수님이 친히 우리 길의 안내자가 되시고 또 길 자체가 되어 주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전에 제가 「새생활 세미나」를 인도할 때의 일입니다. 줄곧 류관 순 기념관에서 이 세미나 모임을 가졌는데, 어느 해 첫째 날이라 고 생각됩니다. 그날은 제가 조금 일찍 나서서, 광화문에서 내려 류관순 기념관까지 걸었습니다. 새생활 세미나 교본을 손에 들고 걸었는데, 어떤 분이 오더니 새생활 세미나에 가십니까? 하 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그렇다고 대답하니까 그 사람이 자기는 이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에서 왔는데, 류관순 기념관이 어디 에 있는지 모르겠노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잘 됐군요. 그 럼 같이 가시지요』 했습니다. 그 분과 같이 가면서 새생활 세미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저는 새생활 세미나에 3년째 계속 참석하고 있습니다』 했더니 좀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 니다. 드디어 류관순 기념관에 도착하여 강단으로 가면서 『제가 강사 이동원입니다. 끝나고 나서 또 만납시다』라고 했더니, 그 분은 깜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영원한 비전을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 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다! 그분이 없는 우리의 삶은 어둠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이 없이는 우리는 거짓의 아비인 사단에게 묶인 바 되어, 세상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의 길이십니다.

 예수님은 또한 진리이십니다.

나는 진리다!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천국도 진리의 나라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21장 마지막 구절에는 천국을 이렇게 묘사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 이라(27절).

일체의 죄악이나 오류가 천국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곳은 거 룩한 나라요, 진리의 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이 진 리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죄의 문제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거룩하게 하십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요 8:36).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얻고 진리를 추구하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한 소망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십니다.

 나는 생명이다! 그분이 없는 우리의 삶은 죽음일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 있어도 죽은 것입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

현대인의 권태! 살아도 재미가 없고 그 삶이 권태로울 수밖에 없 는 이유는 그 삶 속에 진정한 생명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 주께서 말씀하신 이 생명이라는 단어는 본래 질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그 생명은 시간 적으로 무한한 영원한 생명일 뿐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도 새로운 삶을 살게 하는 질적으로 새로운 생명입니다. 이 생명이 없으면 재물을 모아도, 명예를 쥐어도, 남들보다 무언가를 더 많이 갖 춰도, 삶은 끝없는 권태요 허무일 수밖에 없습니다. 솔로몬은 뭇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며, 원하는 모든 것을 자기 손에 쥐어 봤 습니다. 그러나 자기 인생의 석양에 서서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이런 고백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

 이러한 우리 인생을 향해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예수님은 바로 당신에게 이 풍성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

 테레사 수녀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한 여인이 찾아와 고 민을 털어놓으며 울부짖었습니다.

저의 삶은 너무 권태롭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겠어요 . 차라리 죽어 버리고 싶습니다.

테레사는 그 여인에게 이런 충고를 했답니다.

『그래요, 제가 살고 있는 인도에 오시면 진정한 삶을 드리겠습니 다. 죽기 전에 제가 있는 곳에 꼭 한번 와 보세요.』 그래서 그 여인은 인도로 갔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죽어 가는 사 람들, 질병으로 거동도 못하고 앓고 있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사람들….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거기에서 그 여인은 테레사 수녀와 같이 그들을 돕고 보살폈습니다. 온종일 다른 사람을 치료하는 일에 자기 삶을 쏟다 보니 삶의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나 중에 그 여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인도에 오시면 삶을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신 말씀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발견하 여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될 때, 우리의 삶은 새로운 기 쁨과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은 몸은 살아 있어도 실상은 죽은 것입니다 .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비로소 우리는 영원한 미래를 향한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주께서 나를 위해 이 엄청난 희생을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과거를 다 청산해 버리고, 새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천국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입니다. 예수께서는 친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요 10:28).

그 영생의 나라! 예수께서는 그 영원한 나라의 시민이 될 수 있 도록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내가 곧 생명이다! 우리를 위해 영원한 처소를 준비하신 그 주님이 바로 그 영원한 처소에 이르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언하십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본문의 메시지는 그 예수님이 지금 여기에서 도 우리의 길이요, 우리의 진리요, 우리의 생명이신 것을 말씀하 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영원한 처소에 이르게 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오늘 여기 내 삶에서도 그리스도 가 여전히 진리요, 나의 생명이심을 확실하게 믿는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로 올 자가 없느니라.

 당신은 왜 근심하십니까? 왜 방황하고 있습니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예수께서 나를 위해 영원한 처소를 준비하신 것과 예수님이 바로 그 영원한 처소에 이르게 하는 길 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잊지 말 것은, 그 예수님은 지금 여기에서도 내 삶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오, 주님! 주님이 없으면 저는 방황과 어두움 가운데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생명을 얻을 수도 없었습 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이 풍성한 삶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찬 양합니다. 이제 저는 더욱 새로운 하루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주 님과 함께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저의 길입니다. 주님은 저의 진리이십니다. 예수님은 저의 풍성한 생명이심을 믿습니다. 제 삶을 주 앞에 온전히 의탁하고 그 길을 걷기 원합니다.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 안에 거하며, 주님의 풍성한 생명을 늘 누리며 살 기 원합니다.

주님이 저와 함께하시오니 이젠 실망하지 않습니다. 슬퍼하지도 않 습니다. 주께서 저를 위해 준비하신 그 영원한 처소에 이를 때까 지, 주님은 저의 길, 저의 진리, 저의 생명이 되시기 때문입니 다. 새로운 나날들을 주님과 함께 힘차게 걷고 싶습니다. 사랑하 는 주님 앞에 저의 삶을 다 맡기오니 주여 인도하여 주시고 늘보화여 주소서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추천인 1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