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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에 기록된 기적-주의 두번째 기적 (요 04:4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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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행한 첫번째 기적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이고 두번째 기적은 어떤 왕의 신하의 아들이 사경을 헤매게 되었을 때 그를 고치신 일입니다. 예수님의 다른 모든 기적과는 달리 가나의 혼인 잔치 기적과 이 기적에만 첫째, 둘째 라는 순서가 매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첫번째 기적과 비교 하려는 성경 기자의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첫번째 표적과 두번째 표적은 유사성과 함께 대조성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두 표적의 유사성 ^ 첫째, 말씀의 역할이 강조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혼인 잔치석상에서 말하기를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 로 하라(요 2:5)고 했습니다. 하인들은 주께서 항아리에 물 을 채우라고 말씀하셨을 때 순종하였습니다. 본문에서도 왕의 신하 에게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50절)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말씀을 믿고 갔습니다.

 둘째, 하나님께 영광을 나타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요 2:11).

온 집안이 그를 믿으니라(53절).

 두 표적의 대조성

첫째,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는 질적 변화가 강조되었고 본문의 표 적에서는 거리를 초월한 사역이 강조되었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 한 것은 질적 변화인데 이로써 주께서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 자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시사하였습니다.

두번째 표적의 경우에는, 아버지가 예수께 달려와서 이렇게 말합니 다.

내려오셔서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37절).

그때 예수께서는 가나에 계셨고 신하의 아들은 가버나움의 집에 누 워 있었습니다. 지도를 보면 가버나움이 가나보다 휠씬 북쪽에 자 리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버나움이 가나보다 지대가 휠씬 낮기 때문에 내려오셔서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거리를 초월하여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 해서 기도할 때 그 사람과의 거리는 문제가 안 됩니다. 주님은 거리를 초월하여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첫번째 표적은 혼인 잔치가 열리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두번째 표적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병석에서 일어났 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정반대의 환경에 똑같이 찾아오셨습니다.

기쁨의 자리에도 함께 계시고 슬픔의 자리에도 함께 계셨습니다.

그분이 계시므로 기쁨은 배가 되었고 슬픔은 사라졌습니다. 그분은 갖가지 상황에 처해 있는 모든 인간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왕의 신하의 아들이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예수께서 말씀으 로 그를 고치셨습니다. 성경은 이 일을 기적이라 하지 않고 표적이라고 말합니다(54절). 표적은 교훈을 주기 위한 기적 입니다.

이 표적을 통한 주님의 교훈은 한 마디로 말해 믿음이 어떻게 형 성되는지 그 과정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왕의 신하의 모 습을 보기로 삼아 한 사람의 삶 가운데 어떻게 믿음을 생기게 하 시고 또 어떻게 그 믿음이 참된 믿음이 되게 하시는가를 보여 주 십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갖게 되는 경험과도 일치하 는 사건입니다.

 믿음의 형성 과정

왕의 신하가 어떻게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는지를 세 가지 단계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그는 직면한 고난 때문에 예수님 앞에 나옵니다.

고난이 예수님 앞에 나오게 하는 첫번째 이유가 되었습니다. 우리 가운데에도 고난이 없었더라면 결코 신앙을 갖지 않았을 사람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에 부딪쳐 하나님을 찾게 된 경우가 신앙의 동기로 많은 비율을 차지 합니다.

본문에서 살펴보고 있는 이 사람은 왕의 신하였습니다. 주전 4년 부터 주후 39년까지 갈릴리 지방을 통치하고 있던 사람은 헤롯 안디바스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로마 황제의 지배 아래 있기는 했지만 팔레스타인의 한 영토를 지배하고 있던 헤롯 안디바스 밑에 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던 신임받는 신하였을 것입니 다. 그는 당당한 사회적 신분을 가지고 있던 사람입니다. 높은 지위와 권력을 누리고 있던 사람입니다. 소위 특권 의식을 가진 특수층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자기가 가진 특권이나 부귀나 특별한 신분 때문에 신앙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쉽습니다.

 만약 이 사람의 아들이 질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그는 예수님을 찾 지 않았을 것이 확실합니다. 아직 예수님은 기적을 한 번 밖에 행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도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때 입니다. 또한 그분은 유대 사회에서 공인된 랍비 계열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회에서 당당한 신분을 가진 사람이 일개 젊은 예언자를 찾아와 무릎을 꿇고 자기의 사정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이 적게 가진 사람 앞에 머리를 숙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의 고난 때문에 예수님 앞에 나 왔습니다. 그렇다면 고난은 얼마나 훌륭한 전도자입니까? 스펄젼은 고난은 변장을 하고 찾아온 하나님의 천사이다라고까지 말했습 니다. 이 사람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 용한 의사는 다 찾아다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인간의 노력으로도 아들을 살릴 수 없다는 한계에 부딪쳤을 때 나사렛 예수가 최후의 희망이 된 것입 니다.

 고난이 닥칠 때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어떤 사람은 고난 앞에서 아주 강퍅해집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오히려 마음을 닫아 버립니다. 한편 고난으로 겸허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 고난을 통해서 자기가 피조물이라는 사실과 별 수 없는 인간임 을, 연약한 인간임을 인식하고 창조주 하나님의 도우심과 긍휼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고난은 기회입니다.

 왕의 신하는 고난을 기회로 사용했습니다. 그는 나사렛 예수께 마 지막 희망을 걸었습니다. 원문에 보면 왕의 신하의 아들이라는 구 절의 아들 앞에 정관사가 붙어 있는데, 어떤 학자는 추측하기 를 이 아들은 아마도 외아들이었을지 모른다고 합니다. 하나뿐인 아들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사람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지푸 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천로역정』의 저자인 존 번연은 인생의 캄캄한 심연(深淵)을 통 과하여 마지막 벼랑 앞에 섰을 때, 자기 삶의 처지를 이렇게 묘 사하였습니다.

만약 예수께서 칼을 들고 마중 나온다 할지라도 나는 그분의 발 아래 내 몸을 던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이 최후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칼을 들고 우리를 마중하실 리가 없습니다. 다만 고난의 극한 상황이 예수께 대한 절박한 신뢰를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물론 고난이 없을 때 예수님을 신뢰하고 믿는 사람은 더 복된 사 람입니다. 예수께서 이런 신앙을 더 귀한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삶, 인생의 절망의 깊이를 모르고 사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서 어떤 폭풍우를 준비하시는지도 모릅니다. 이 폭풍우는 은총입니다. 당신을 흔들어 깨우려는 하 나님의 사랑이 담긴 손길입니다. 그래서 C. S. 루이스는 고 난이란 하나님의 메가폰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고난을 통해서 큰 소리로 말씀하시기 시작합니다. 왕의 신하는 고난을 당 하여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둘째로, 그는 표적을 기다리는 믿음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기적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 인생의 폭풍우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진정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삶 의 궁지에 빠진다면 저절로 하나님을 찾게 될 것입니다. 맥아더 장군은 이런 말을 좋아했습니다.

포탄이 머리 위로 날고 있는 전쟁터의 참호 속에는 무신론자가 없다.

사람이 절박한 처지에 놓이면 하나님을 찾습니다. 이것은 참된 신 앙을 형성하는 단계로 꼭 필요합니다.

 기적을 기다리는 자체가 신앙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참된 신 앙을 갖게 되기까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신앙이 표적을 기다리는 기적 중심의 신앙이라면, 그것은 건강한 신앙이 아닙니다. 종종 기적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신앙은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흔히 표적을 기대할 때 사람들은 자기 문제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자기가 구하는 해답만을 추구합니 다. 결국 신앙이 자기 본위의 신앙으로 일그러질 가능성이 얼마든 지 많이 있습니다.

 47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 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저가 거의 죽게 되었 음이라.

그는 예수께서 자기 아들에게 안수하시면 틀림없이 나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가지 않고도 고칠 수 있는 분이 라는 사실을 알기에는 아직도 이 사람의 믿음이 부족하였습니다.

가버나움에서 가나까지의 거리는 약 80리가 됩니다. 이 거리를 초월해서 역사할 수 있는 예수님의 전능성을 그는 아직도 알지 못 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가 원하는 이기적인 욕망에 근거해서 표적과 표 징을 구하며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참된 신앙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믿어야 할 필요가 있 습니다. 신앙이란 내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사람의 상식과 선입관과 기대를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에게 시간과 공간은 별 문제가 아 닙니다. 우리는 자칫 잘못 생각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할 경우 가 있습니다. 인간의 한정된 사고 구조로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치 나아만이 요단강에 몸을 일 곱 번 씻으라(왕하 5:10)는 엘리사의 말씀을 무시하려 했던 것과 같습니다.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 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왕 하 5:11).

이것은 환자가 의사에게 처방을 지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없음을 깨달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 도 앞에 나와 그분을 주님으로 부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나의 주님으로 발견하는 순간 진정한 신앙이 비로소 형성될 수 있습니 다. 왕의 신하의 고집과 편견을 깨기 위해 예수께서는 다만 이렇 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50절).

 셋째로, 그는 말씀을 신뢰하는 신앙을 갖게 됩니다.

50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 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예수께서는 말씀만 하셨는데 이 사람은 한 순간에 그 말씀을 신뢰 했습니다. 무엇이 이 사람에게 이런 믿음을 갖도록 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아서 우리가 알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그는 살았다 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권위를 신뢰하고 집으로 갑니다. 확인 과 정 없이 말씀을 신뢰하게 된 것입니다. 기적을 안 보고도 믿을 수 있다면 이것은 더 귀한 신앙입니다. 기적보다 중요한 것은 말 씀입니다. 우리는 표적 없이도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아주 흥미 있는 변화는 이 사람이 주님의 말씀을 믿자마 자 여유를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48절)고 하신 이유는 신앙의 초점이 말씀에 대한 신뢰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왕의 신하는 정말 표적 없이도 주님의 말씀 을 믿었습니다. 가버나움에서 가나는 걸어서 네다섯 시간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그 날로 갈 수 있는 거리인데 이 사람은 다음날 종들을 만났습니다(52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었을 때 마 음이 평안해진 것입니다. 집으로 급히 달려가 확인해 보지 않고도 아이가 낳은 것을 믿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바르게 기도했는가는 기도한 뒤 우리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기도한 내용을 온전히 주께서 이루어 주 실 줄로 믿는다면 그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야 합니다. 마음에 여 유와 기쁨을 소유해야 합니다.

 표적은 언제나 예수님이 누구이신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우 리는 표적을 통해서도 예수님을 믿을 수 있지만 그보다는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줍니다. 말 씀으로 창조주이시고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히려 축복의 수로가 되는 고난에 직면했을 때 말씀을 의지하여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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