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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은 왜 죽으셨나? (마 27: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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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력으로는 오늘이 종려주일입니다. 그리고 이주산은 고난주간이 됩니다. 저는 이 아침, 예수님은 왜 죽으셨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 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왜 죽으셨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아마 구원받 은 성도들은 '그는 내 죄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혹은 그는 '인 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럴것입니다. 그 러나 성서를 기록한 기자들은, 예수님이 죽으신 일을, 그 당시에 상황에 따라 그 과정을 상세히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되신 일은 그가 당하신 고난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 리가 그의 십자가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과, 그가 '한사람으로' 고난을 당하셨다는 것은 구별하여 생각해야 될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 아침 그가 당하신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죽지 아니하셔야 할 분이신데 그는 사람들에 의하여 죽 임(살해)을 당하셨습니다. 당신이 십자가에 처형될 것을 아시고 겟세마 네 동상에서 기도하실 때에, '나는 십자가를 질 자신이 있다. 나는 아 무것도 걱정이 안된다.'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라고 하시면서 몹시 괴로와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여, 할만 하시거든 이 전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간 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될 수만 있으면, 고난의 십자가를 모면하게 해달 라고 간청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님의 십자가가 얼마나 어렵 고 고통스러운 것이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그 십 자가를 쉽게,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선듯 짊어진 것이 결코 아니였습니 다.

복음서에는 예수를 죽인 자들이 누구이며, 또 그들은 어떤 이유와 동 기로 그러한 일을 저질렀는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죽인 죄를 폭로하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바로 오늘의 내 죄도 생각나게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십자가형이란, 가장 무서운 죄 인을 처형하는 가장 지독한 사형방법이였습니다. 죄수는 우선 옷을 다 벗기움으로서 사람들 앞에 공개적인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 서 그는 등을 땅으로 향해 눕혀지고 손은 나무기둥에 못으로 박혀 고정 되며, 그런 연후에 십자가는 고추세워져서 땅에 파놓은 구덩이속에 수직 으로 세워집니다. 죄수는 이 십자가에 매달여 강한 육체적 고통, 그리 고 사람들의 비웃음, 또 낮의 열기와 밤의 냉기를 당하면서 천천히 죽어 갑니다. 사람을 아주 천천히 죽이는 지독하고 잔인한 사형방법인 것입 니다.

또 죄수들은 십자가에 처형되기 전에, 심한 매를 맞고, 무거운 십자가 를 짊어지고, 처형장까지 나가면, 그 때에 많은 고통과 비난과 온갖 모 욕을 다 당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자색옷을 입히고, 가시면류관을 씌우고, 갈대홀을 그 오른손에 들리우고, 눈을 가리고 그에게 침을 뱉 고, 얼굴을 때리면서, '때린 사람이 누군지 알아 맞춰 보라고' 그랬습니 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때 그런 고난과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그 러니까 이 십자가란, 사람을 최대한도로 고통스럽게 하고, 최대한으로 모욕하는 아주 잔인한 처형방법입니다.(그래서 나중에는 이것이 너무 비 인간적이고 야만적인 것이라고 해서 그 제도를 폐지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필이면, 그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셨으며, 그렇게 죽 으셨는가 할 때에 우리는 이것을 그냥 넘겨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 면 그를 이렇게 죽게한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들이였습니까 첫째로 우리는 그 당시에 '로마총독'이였던 본디오 빌라도를 들지 않 을 수 없습니다. 빌라도라는 사람은, 그 당시에 로마 황제가 보낸 유다 의 총독이였습니다. 총독인 그에게는 사형언도를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그렇게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우유부단하고 비겁하고 무책임할 수가 없습니다. 빌라도는 예 수님이 사형을 당할만한 죄가 전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 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문제에 대해서 관여하지 아니하려고 애를 많 이 썼습니다. 예수는 갈릴리 사람이기때문에 헤록황의 사법관할에 있다 는 걸 알고, 일단 헤롯에게 보내고 발뺌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형을 선고하지 않고 빌라도에게 다시 돌려 보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미봉책으로 이 사람을 '때려서 놓아 주겠다.'(눅 23:16)고 제 안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군중들이 절대 받아 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빌라도는 고심하다가, 유대인의 명절에는 죄수 하나를 특별 사면해서 석방시켜주는 전례가 있으니 '예수를 놓아주는 것이 어떻겠느 냐'고 했습니다. 그때 군중은 살인강도인 '바라바를 내여주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하는 수 없이, 군중앞에서 손을 씻고 '이 사람의 죄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다.' (마 27:24)고 선언하고 나서 결국,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내여주고 말았습니다.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려 줄 수도 있는 막강한 권세를 가진 총독이 '물로 손을 씻고', '나는 무죄하다' 하면서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여주는 행위, 그 얼마나 야비하고 비겁하고 무책임한 처사입니 까 그러기 때문에 2천년 기독교 역사의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일제히 본디오 빌라도 그 사람에 의하여 '예수님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 혀 죽으셨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당시에 상황에서 총독 빌라도의 입장을 이해할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책임을 면할 수는 없습니다. 이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할 때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박을 권세도 있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요 19:10)하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는 그 막강한 권세를 가지고 무 엇을 하였습니까 그는 그 마음속에 울리는 그의 양심의 소리를 어떻게 들었겠습니까 '당신이 이사람을 놓아 주면, 당신은 로마황제에게 반역한 것이요! 이사람은 자기를 왕이라 하지 않았소! 우리에게는 가이사밖에 왕이 누 구란 말이요.'(요 19:12)하고 유대인들은 소리 질렀습니다. 총독 빌라 도는 이야기를 듣고 심히 난처해 하였습니다. 법대로 하면 무죄석방해 야 했지만, 빌라도는 진실고 원칙을 외면하고 결국 예수님이 죽는 것을 묵인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빌라도는 그때에 심히 비겁하고 무책 임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에게는 이러한 비겁함과 무책임함이 없었습니까 '나는 2천년전 그때,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고, 나는 총독도 아니고, 나 는 예수를 죽이라고 외친 군중도 아니였으니, 나는 예수를 죽게한 책임 은 없다!' 그럴 수 있을까요 그러나 여러분! '나에게도' 예수를 다시 못박은 책임이 있습니다. 인간의 비겁과 무책임이 예수님을 죽였습니 다. 우리 마음에 정의를 외면한 비겁함, 얽히고 설킨 이해관계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변명, 마땅히 책임질 자가 손을 씻는 무책임... 그런 처사가 죄없으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많이 보아 왔습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 에 못박혀 죽으셨다.'고, 고발하는 것은, 인간의 비겁함과 진리를 외면 한 무책임성을 고발하는, '나자신의' 대한 질책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히브리에서는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각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 6:6)고 했습니다.

예수 죽인 장본인 빌라도, 그사람을 생각할 때에 지금 내 마음속에는 '빌라도'가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빌라도가 지금 내 마음에고 들어 와 앉아 있으면 우리는 다시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있는 것이 되 는 것입니다.

둘째로 지적할 수 있는 사람은 대제사장인 가야바입니다. 그는 유대 인 공의회 의장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 전체가 마땅히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유대인들 앞에서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너희 가 저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여 살인한 사 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행 3:14) 베드로는 유대인들이 생명의 주, 예수를 죽였다고 지적하고 규탄했습니다. 대제 사장과 또 유대군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한 이유는 한마디로 '시 기와 질투' 때문이였습니다. '이는 저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줄 앎이러라!' 관계자들은 그걸 다 알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시기, 질투는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살인강도는 살려주고, 하나님의 아들은 '십자가에 못각아 죽여라!'하고 고함을 지르고 난동을 부렸습니다. 총독 빌라도도 이 압력에 그만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질 투심은 인간의 가장 천박한 악덕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교만에서 나옵 니다. 예로부터 교만은, 하나님을 항상 대적했습니다. 교만한 천사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땅에 떨어진 것이 '사탄'이 되였다고 하지 않았습니 다. 종교인들의 교만, 그것은 때로 시기와 질투로 나타나서 결국 예수 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가야바는 교만과 시기와 질투의 표상입니다. '시가와 질투'가 그를 죽게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종교적인 독선과 교만이 없었습니까 그럿은 죄이며, 또 한 그런 죄는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 을 보이는 행위입니다.'(히 6:6) 예수님은 단 한번 십자가에 못박히시 는 것으로 족합니다. 그는 그것으로서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시고, 하나님의 구원목적을 달성하셨습니다. 그런데 무 엇이 부족하여, 우리는 '다시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까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우리 인간의 교만과 시기, 질 투가 그동안 예수님을 도대체 몇번이나 다시 십자가에 못박았으며, 그를 아프게 하고 욕되게 하였습니까 교만, 시기, 질투는 그를 자시 십자가 에 못박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과 행동은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 째도 겸손이라야 합니다. 이 그리스도인들의 미덕인 겸손의 마음을 잊 어 버리면 금방 시기심, 질투심, 미움, 파괴, 살인이 생기며, 이로서 우 리는 다시금 그리스도를 못박고, 현저히 그를 죽이게 하는 것이 됩니다.

그를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죄를 범하지 않으려먼 언제나 겸손해야 하 고, 시기나 질투를 버려야 합니다.

셋째로 지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인물은 가롯유다입니다. 그는 무엇 을 한 사람입니까 가롯유다는 그 마음속에 일어나는 탐욕때문에 주님 을 배신한 사람입니다. 그는 스승을 은 30에 판 사람입니다. 성경을 보면 열두제자들의 이름이 열거될 때, 가롯유다는 맨 마지막에 있고, 예 외없이 '가롯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마 10:4)고 설명이 붙어서 따라 다닙니다. 그러니까 이 유다는 예수를 팔아 먹은 배신자의 불명예와 수 치를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만찬을 잡수실 때에 모든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은 이 렇게 공개적으로 이야기 하셨습니다.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뻔 하였느니라.'(막 14:11) '차라 리 나지 아니하면 좋을뻔 했다고' 주님이 말한 그사람! 여러분 우리는 그같은 사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그런 사람들이 실제로 세상세 는 많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꼭 있어야 할 사람' '있어도 그만, 없어 도 그만인 사람' '있으면 안될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 가롯유다 는 '있으면 않될 사람이 아닙니까' '차라리 나지 않으면 제게 좋을뻔 했다.' 그랬습니다. 도대체 인자하신 예수님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던 가롯유다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은 항상 이런 사람들 때문데 다시 십자 가에 못박히십니다.

가롯유다, 그 사람은 인간의 탐욕을 나타내는 인물입니다. 그는 제사 장에게 가서 '내가 예수를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겠느냐'라고 그 값을 흥정했습니다. 그는 은 30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보통 노예 한사 람을 놓아 주는데 드는 비용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노예 한사람의 몸 값으로 팔려진 셈입니다. 인간이 탐심의 눈이 어두워지면 그렇게 됩니 다. 그런데 여러분 가롯유다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한없 는 탐욕, 그것은 이성을 잃게 하고, 판단력을 잃게 하고 인간성마저 잃 게 하여 은 30때문에 감히 스승을 팔고, 구세주를 팔고, 하나님을 팔고 맙니자. 탐심은 지독한 죄입니다. 겨우 은 30에 사람의 생명을 흥정하 며, 눈이 멀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하는 죄가, 인간의 탐심입니 다.

그런데 이것은 가롯유다만 그렇게 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오늘날 허 다히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되겠습니까 예수님은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 셨고, 또 사도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물질의 이익을 지나치게 추구하다가 깊은 부패속에 빠져 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아모스 선지는 그 당시에 부패한 사회를 직시하면서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한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는 판다.' (2:6)고 규탄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상이 그러하다면, 오늘에 도 여전히 이시대는 '예수를 다시금 십자가에 못박고' 인간의 탐욕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를 계속해서 욕보이고 괴롭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시간 빌라도의 비겁함, 대제사장의 시기심, 가롯유다의 탐욕 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시게 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지나간 옛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우리 인간들의 비겁과 시기와 탐욕은 다시금, 또 다시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그의 가슴 을 아프게 하는 결과를 낳게 한다는 것 깨닫습니다. 그는 바로 보든 인 간의 죄때문에 죽으셨고, 죄악된 인간이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 였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보는대로 비겁, 시기, 탐옥은 그를 죽게하 는 무서운 죄악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의문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래 서 인간의 죄악 때문에 무참히 살해를 당하셨는가 그것으로 모든 이야 기는 끝나고 말았는가 하나님은 그렇게 허약하신 분이시며, 허무하신 분이신가 그러고 과연 인간들이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수가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인간들의 비겁 성, 시기심, 그리고 탐욕으로 인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지만...그러나, 그 는 '자발적'으로, '의도적'으로 십자가를 향하여 나가셨습니다. 예수님 께서는 공적인 사역의 시초로부터, 그 목표를 위하여 당신을 바치셨습니 다. 그 일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반드시 하셔야 할 일이였습니다.

그래서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애로 되기를 원하나이다!'고 기 도하시고 십자가를 향해 스스로 나가셨습니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이 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요 10:17-18)고 하였습니다.

그 배후에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 여 내여주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저지른 죄, 비 겁, 무책임, 시기, 교만, 탐욕같은 것 때문에 죽임을 당하신 것이기 보 다는, 사실은 이 모든 것을 능가하고 초원하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크 고 놀라우신 사랑때문에 그는 죽으셨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주님의 죽으심을 인간적인 차원과 하나님의 차원에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인 간의 차원에서 보면 빌라도나 가야바나 가롯유다에 의하여 그는 십자가 에 달리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것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합니 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본다면,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를 보내 셨고,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내여 주시여, 우리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버 리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을 깨닫습니 다.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는 인간의 죄가 빚어 낸 무서운 비극이며, 또 한 하나님의 사랑이 이루신 무한한 은혜인 것입니다.

누가 예수님을 죽였는가 이런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이러한 두가지 대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지독한 죄악 중에서도 당신 께서 이루시려는 구원의 목표를 그의 무한하신 사랑으로 달성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부터 시작되는 고난주간을 어떻게 지내시겠습니 까 십자가를 바라보고, 내 죄를 깨닫고 회개합시다! 비겁, 무책임, 시기, 교만, 그리고 한없는 탐욕을 버립시다. 그럿이 예수님을 죽게한 죄악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와 사랑을 감사하고 찬양합시 다. 그 은혜와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는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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