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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의 십자가 나도 지고 (눅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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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는 유난히도 대형사고가 많이 일어났던 해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대구에서는 가스가 폭발하여 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더니 서울에서는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어 우리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아픔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일들이 천재가 아닌 인재였기 때문에 우리는 아픔과 함께 수치를 함께 받아야만 했습니다. 88 올림픽이 열렸을 때 우리는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때문에 외국에서 이민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 교포들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올해 잇따라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을 통하여 우리와 해외의 교포들이 얼마나 많은 수치를 당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즈음 또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노 전대통령의 수천억에 달하는 비자금 사건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냈던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자금을 세상의 잡범과 사기꾼과 같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조성하고 또 그것을 이용하여 정치를 소명감과 애국심을 가지고 정당하게 실력으로 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정치적인 야망과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권력과 물질의 힘으로 하여 정치를 유린하였다는 것은 좀처럼 용서하기 어려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온 우리들에게 아픔을 준것이 아니라 분노를 가져다 주었으며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수치를 온 국민들에게 안겨 주었습니다. 이번에 검찰과 정부는 이일을 정치적인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하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철저한 조사를 통하여 숨김없이 그의 허물과 과오를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당한 재판을 통하여 그 죄에 합당한 벌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와같은 부끄러운일들이 끊이지 아니하고 계속되게 될 것입니다. 지난번 전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와 처벌이 미미하고 정치적으로 끝났기 때문에 그때로 이 부끄러운 정치 행태가 끝이나지 못하고 이번까지 이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다음의 대통령과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정치적인 권력을 이용하여 불의를 행하며 치부하는 일을 꿈도 꾸지 못하도록 이번에 호한 처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를 또 다른 차원에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과연 우리중에 누가 저를 향하여 돌을 던질 수 있는가하는 차원에서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저를 향하여 분노하고 흥분하여 돌을 던지려고 하는 우리들을 향하여 '너희중에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실런지도 모릅니다.

노 전태통령을 향하여 돌을 던지는 사람중에는 그로부터 돈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가 받은 몇십억의 돈은 대선 때 통용되는 수천억에 비하면 별것이 아니며 또 아무런 조건과 부담이 없이 그 돈을 받았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정말 반듯하고 깨끗한 사람은 냉면 한그릇도 남이 사줄 때 그 이유를 생각해 보고 대접을 받는데 수십억의 돈을 아무런 조건없이 받았다는 자체가 벌써 잘못된 일이요 지도자로서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분 뿐만 아닙니다. 그와 저를 비판하는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니 저들을 비판하지 말고 그냥 넘어가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렇게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비판을 함께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며 우리도 우리 자신을 반성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와같이 저만아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 자신과 세상을 망치면서 살아가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여러분은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 이유와 원인을 원죄에서 찾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욕심을 따라 선악과를 따 먹은데서 부터 우리와 세상은 잘못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인간의 마음과 생각은 죄된 욕심으로 가득차게 되었고 그 죄된 욕심의 지배를 받아 자신과 세상을 파멸시키며 살아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한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용하신 방법은 십자가입니다. 여기에는 깊은 하나님의 뜻이 있으십니다. 십자가는 자기를 희생하는 헌신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욕심을 위하여 선악과를 따는 것과 정반대되는 정신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두가지 유형의 삶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선악과 유형의 삶과 십자가 유형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십자가 유형의 삶을 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를 지러 가실 때 사랑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일어나라 함께 가자'라고 말씀을 하셨고,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라고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어떤 유형의 삶을 살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삶의 유형은 선악과 유형이십니까 아니면 십자가 유형이십니까

우리는 우리의 삶을 끊임없이 십자가 유형의 삶으로 바꾸어 가기 위하여 노력하여야만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성공과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 우리와 세상을 축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자신의 삶을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원하시는대로 십자가 유형의 삶으로 바꾸시려면 다음의 십자가를 지실 수 있어야만 합니다.

첫째, 물질에 대한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몇주전 영적 지도자라는 제목으로 계속해서 말씀을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여러가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는데 참 안타까운 일은 좋은 지도자를 만나는 축복을 아직 받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가 망하지 않고 이렇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로 다스리는 좋은 지도자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바로 다스리는 영적인 지도자가 되려면 먼저 자신의 삶을 다스릴 수 있어야만 합니다. 자신의 삶을 다스리려면 제일 먼저 물질을 다스릴 수 있어야만 합니다. 물질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없고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없는 사람은 절대로 세상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물질을 다스리기를 원하신다면 물질에 대한 절제가 있어야만 합니다. 하고 싶은것을 다하고 쓰고 싶은 것을 다쓰며 그것을 통해서 삶의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물질을 다스리는 사람이 될 수 없고 물질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물질에 대한 절제만으로 물질을 다스리는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절제하여 여유있게 된 물질을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아무리 절제하여도 바로 쓰지 못하면 그 역시 물질을 다스리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아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로 쓸 줄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물질을 바로 쓸 줄 아는 사람이 되려면 반듯이 실천하여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직한 십일조 생활을 하는 것과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밭의 네 귀퉁이를 남겨두는 생활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교회의 이삭줍기 운동입니다.

십일조 생활을 하고 이삭줍기 운동에 참여한다고 사람이 다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아직 십일조 생활을 못하시는 분이라고 하면 최소한 이번 노 전대통령의 일에 대해서만큼은 입을 다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참으로 어울리지 않고 우스운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를 떼고 밭의 네 귀퉁이를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면서 산다는 것은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는것과 같이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십자가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을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쓸 줄 아는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는 십자가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정말 이 나라와 민족을 축복하는 근사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어려서부터 십일조와 이삭줍기를 훈련시키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시간에 대한 십자가입니다.

물질을 바로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간을 바로 쓰는 일이 또한 중요합니다. 물질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시간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더 중요한 일입니다. 시간을 사람들은 금이요 돈이라 하지만 시간은 생명입니다. 시간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을 의미함으로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교인중에 이번에 중국 연변에 있는 과학기술대학의 교수로 가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서울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치신 분이고 그의 부인도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로 약국을 경영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 세상의 귀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그 가난하고 어려운 땅에 선교사의 사명을 가지고 떠나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가댁이 아직도 예수를 믿지 않으시는 가정이신데 장인 어른이 이해를 잘 못하셔서 반대를 하셨다고 합니다.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인 어른을 납득 시키기 위하여 주일날 교회에서 저에게 들은 설교 말씀을 들려 드렸다고 합니다. 제가 전에 오병이어에 대한 설교를 하면서 사람에게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오천명분을 혼자 소유하여 먹는 사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기의 것을 나누어 오천명을 먹이려고 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는 전자를 잘 사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후자를 잘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는 말씀도 드렸었습니다. 아마도 이 말씀이 우리 이박사님에게 도전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 이야기를 장인 어른에게 전해드리면서 자신은 오천명분을 혼자 먹는 사람이 아니라 오천명을 먹이는 사람이 되고 싶으며 연변에 가려고 하는 뜻도 바로 거기에 있다고 말씀을 드렸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와같이 귀한 뜻을 가지고 자신의 온 생을 바치는 사람이 우리 동안 교회 교인중에 나왔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사실은 작년에 이미 우리 동안교회의 청년하나가 그곳에 직원으로 가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도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던 우수한 청년인데 졸업하자마자 그곳으로 가서 자신의 삶을 헌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주일 1부 예배가 끝난 후 청년 하나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우리 교회의 장로님 딸로서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올해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마치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생각하기를 박사를 공부하기전 최소한 일년이라도 하나님께 봉사를 하여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에 연변과학기술대학에서 초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에가서 봉사하고 와서 박사 공부를 하려고 한다면 저에게 추천서를 써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일이 우리 동안교회에서 연속되는 일이 저는 얼마나 자랑스럽고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물질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시간 다시 말해서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려고 한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이고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와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이 세상에 어떻게 요즘처럼 흉하고 추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이와같은 삶을 우리도 부러워하며 꿈꾸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악과 유형의 삶과 십자가 유형의 삶을 한 번 비교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악과 유형의 삶에는 만족이 없습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그리고 기쁨이 없습니다. 노 전대통령이 수천억원의 돈을 비축했지만 그랬다고 그가 하루 밥을 네끼를 먹었겠습니까 ㅋ옷을 두벌씩 껴입고 다니기를 했겠습니까 그곳에 만족과 배부름이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했겠습니까 그리고 지금 이것이 무슨 망신입니까 국내는 물론이요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더 나아가 역사에 그 수치와 망신이 기록되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십자가 유형의 삶에는 만족과 배부름이 있습니다. 평안이 있습니다. 기쁨과 보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광이 있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선악과 유형의 삶을 원죄처럼 지니고 태어납니다. 십자가 유형의 삶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삶을 그러한 유형으로 바꾸기 위하여 우리의 최선을 다하여야만 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표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교회를 건축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교회 건축은 교회의 제일가는 사명은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의 건축도 교회의 중요한 일중에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일에도 우리의 최선을 다하여야만 합니다. 그것이 비록 십자가를 지는 것과 같이 힘이 들고 어려워도 기쁜 마음으로 그 십자가를 지려고 해야 할 것입니다.

4년전 우리 동안교회의 청빙을 받았을 때 어떤 분이 저에게 동안 교회에 가지 말라고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동안 교회는 앞으로 교회를 건축해야만 하는 교회인데 그게 보통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니 가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런 정신을 가지고는 좋은 목회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교회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그 교회가 교회를 건축할 것인가 아닌가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고 목회자로서 교회를 한 번 건축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얼마나 복된 일인가를 생각하고 부임하였습니다.

우리 교회는 건축헌금 목표를 50억으로 정하고 헌금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 약 37억 정도가 작정되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도 부담이 되고 물론 교인들에게도 부담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요즘 어떤 교인들이 장로님들에게 전화를하여 다시 또 헌금을 하라고 작정하면 안된다고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좀 섭섭했습니다.

여러분 좀 심한 말 같으나 교회를 건축하는 일이 그렇게 힘들고 부담이 되시거든 교회를 건축한 교회로 가세요. 우리 이웃에도 그런 교회가 있지 않습니까 이미 다 건축이 끝난 교회에 가면 교회 건축헌금에 대한 부담이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려고 하는 마음으로 즐거히 그 부담을 지며 헌신하는 어리석은 사람들과 함께 이 교회를 건축하겠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대하여 편지를 하면서 너희의 믿음의 제물과 봉사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기뻐하고 기뻐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관제란 제물위에 포도주를 쏟아 붓는 제사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자신을 관제로 드리겠다는 말은 자신의 피를 쏟아 붓겠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그와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였습니다. 때문에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버렸습니다. 그리고 기쁘게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자신의 온 삶을 하나님께 헌신하였습니다. 저는 찬송가중에 '성자의 귀한 몸 날 위하여'하는 찬송이 좋습니다. 그 가사중에 '주님의 십자가 나도 지고'하는 가사 참 좋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외면하고 조금이라도 힘들고 부담되는 일은 하려하지 않고 자신에게 유익한 것만을 찾아 살려고 하는 때 물질과 시간에 대한 십자가를 지고 주를 섬기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신과 나라를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자신의 온 삶을 기쁘게 하나님께 헌신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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