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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폭풍 속의 그리스도 (마 08: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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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무시는 그리스도
24-25.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예수께서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 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에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는 베드로의 조그마한 어선으로 호수를 건너는 도중 풍랑이 일어났다. 거센 물결로 배가 덮이게 되었는데도 예수님은 계속 주무시고 계셨고 폭풍 속에서도 주님은 깨지 않으셨다.
바다의 놀은 큰 지진으로 바다가 밑바닥부터 움직였다는 뜻으로 거센 풍랑이 일어 수면에 거세게 요동치는 모습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갈릴리 바다는 수면보다 206미터나 낮은 데다가 주위에는 그와 반대로 높은 산들로 에워 쌓여 있기 때문에 이런 풍랑이 갑자기 일어나고 또 갑자기 진정되는 등 기상 변동이 심한 곳이다.
이처럼 인간은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시달리고 악의 바다에 떠 있는 교회라는 배도 풍랑을 만날 때가 있다. 우리 성도들도 배와 같다. 세상에 떠 있다. 세상의 풍랑에 휩싸일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죽은 심령으로 풍랑 중에서 잔 요나와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맑은 양심에서 주무셨다. 요나의 승선은 죽음을 가져왔고 예수님은 구원을 가져왔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머리 둘 곳이 없으셨는데 풍랑중 배의 고물에 머리를 두시고 주무셨다. 이처럼 일정한 거처가 없었던 예수님은 도처에 편안한 거처를 가지신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을 마음에 모신 자도 또한 풍랑이 높은 세상의 어디에서도 평안할 수있는 은혜를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폭풍 가운데서도 의연하게 주무시는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 성도들도 험한 시험 풍랑 속에서도 의연한 삶을 살아가기를 축원한다.

휴식을 취하시는 그리스도와는 대조적으로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제자들이 두려워했다는 말의 직역은 '비겁함' 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이 이런 풍랑으로 시달리게 그냥 내버려 두실리가 없었으므로 이 풍랑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런 기회를 통하여서 당시 제자들의 믿음이 얼마나 보잘것이 없었는가하는점을 직접 확인케 하셨다.
성도는 두려워하는 비겁한 신앙을 버리고 세상의 모든 풍랑 속에서도 초연하게 주무시는 예수님을 본받아야 한다.

2. 꾸짖으시는 그리스도
26-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바람과 바다를 꾸짓으신데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제자들 중에는 바다에 익숙한 제자가 몇 사람 있었다.어부가 바다에서 목수에 불과한 예수께 도움을 요청했다는 데 작은 믿음이라도 볼 수가 있지만 그것은 순간적으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는 얄팍한 신앙 상태를 보여주는데 불과한 것이다.

풍랑 중에 주무시는 예수님과 무서워하여 당황하면서 예수님을 깨우는 제자들 간에는 큰 차이가 보인다.
신앙의 평정이 깨어질 때 반드시 공포가 따른다.
인간은 흔히 공포증으로 죄를 짓게 되는데 공포 그 자체가 신앙의 낙오에 대한 증거일 수는 없지만 마음의 평정을 깨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게 할 정도로 불안해 할 때에는 확실히 잘못된 것이다.
성도들도 그리스도 앞에 도움을 요청할 때가 있다.
우리가 온전한 확신과 믿음 위에 서서 도움을 요청할 때는 응답을 받지만 여전히 두려움 가운데 있으면서 위기를 모면하려는 방책만으로 도움을 요청할 때는 책망을 받는다
성도들은 확고한 믿음 위에 서서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하며 간구한 것은 반드시 받은 줄로 믿어야 한다.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기 때문이다.
히브리서에는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하였다.

두려워하는 것과 믿음이 적은 것은 동의어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믿음이 부족할 때 무서워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믿음이 아주 없는 자는 무지의 담력을 가진다.
또 믿음이 온전한 자는 온전한 담력을 가진다.
오히려 믿음이 부족할 때 무서움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실재로 문제는 밖에서 오는 풍랑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믿음이 없는 두려움의 풍랑이다.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령한 능력을 확신하며 당황하지 않고 조용히 도움을 요청했다면 이들의 믿음에 대한 증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당황과 경악 속에 주님께 구원을 요청해 믿음의 부족을 책망 받았다. 그러나 예수님의 책망은 신앙을 바로 세워 주고 믿음을 더욱 굳세게 하여주는 촉진제이다

3.폭풍을 다스리시는 그리스도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 사람들이 기이히여겨 가로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이는 예수님의 기이하고도 권위적인 행동이다.
주님의 이러한 권위는 만물을 지배하시는 조물주의 권위이시다.
바로 혼돈 상태에 있던 천지를 향해 "빛이 있어라"하신 그 권위이시다.
그리스도는 바다에게 평화를 명하셨다.
그리스도는 인격이 없는 자연에까지 말씀의 능력을 발휘하시는 분이시다.
폭풍을 꾸짖으시는 사건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자연에까지 다스리시는 능력을 가지셨음을 알 수가 있다.
곧 그리스도는 만물의 주인이시다.
우리는 폭풍을 꾸짖으시고 다스리시는 그리스도를 따르면서도 세상을 향해 담대하지 못할 때가 너무나도 많다.
그리스도의 권세는 온 세상을 다스리신다.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을 이기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성도 또한 세상을 향해 강하고 담대하게 대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이러한 권세를 우리에게 부여하셨으며 또 우리가 그와 같이 살기를 원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단 한번의 명령으로 바람과 바다는 순종하였다. 두려움과 무서움으로 겁에 질려 있는 제자들은 이런 예수님의 이적을 보고 기이하게 여겼다.
고기잡이를 하면서 심한 폭풍을 여러번 겪었지만 사람의 명령으로 풍랑이 잔잔해지는 것은 처음 보았던 것이다.
예수님이 단순한 사람에 불과하다면 이 기적은 절대로 설명되어질 수가 없다.
큰 풍랑 끝에 고요가 찾아왔다.예수님의 한 번의 명령이 성난 자연을 평정시키셨다.
예수님의 말씀은 성도의 고민과 번민하는 심령에 고요히 평화와 안식을 회복 하여주신다

폭풍을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는 바람과 바다의 겸허함을 보면서 이땅 위의 인간들의 불순종과 과오들을 돌이켜 보아야 한다.
이 이적과 제자들의 기이함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이 입증된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위에 오시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을 위해 전 생애를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우리는 무엇을 해 드리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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