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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재림의 시기 (마 24:3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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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3장이나 누가복음 21장,마태복음 24장과 25장에는 마지막 종말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그래서 이 부분을 소계시록이라고 부릅니다.요한계시록과 같이 길고 자세하지는 않지만 종말에 관한 소계시록입니다.이 시간에는 마태복음 24장 마지막 부분을 살펴보면서 주님의 재림의 시기가 과연 언제일까,성경은 이것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본문을 보면 노아의 때,집 주인의 비유,두 종의 비유 이러한 내용을 통해서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에 관해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1.그 날과 그 때는
마태복음 24장 36절에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했습니다.아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그날은 생각지 않는 때에 옵니다.밤에 도적과 같이 옵니다.또 번개와 같이 임한다고 했습니다.그런데 그날은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는 말씀은 우리를 굉장히 당황하게 만듭니다.왜냐하면 우리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예수님도 신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데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모른다고 한다면 그것이 말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아들되신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분입니다.스스로 오신 분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이 땅에 구원사역을 위해서 보내심을 받은 분이시고 또 앞으로도 아버지 하나님의 일을 대행해서 심판을 집행하실 그런 주님이십니다.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일을 대행하기 위해서 오시기 때문에 그 날과 때에 대한 그 모든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 속에 결정되어져 있습니다.둘째로 기억할 것은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대속사역을 할 때에 예수님은 대속사역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신성을 사용하지 않고 예수님 스스로 신성을 제한하셨습니다.자발적으로 자기 자신을 낮추셨고 또한 자발적으로 아버지 하나님에게 순종을 했습니다.예수님이 지상생활을 하실 때에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셨음에도 불구하고 잡수시지 아니하면 시장하셨고,하루종일 일을 하면 저녁에 피곤해서 주무셔야만 했습니다.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이해하시기 때문입니다.우리와 같은 자리에 임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2.노아의 때와 같이
본문 37절 말씀을 보면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했습니다.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좀더 알게 하기 위해서 노아의 때를 모형과 그림자로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노아의 때가 어떠했습니까 첫째로 그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하나님께서는 노아로 하여금 120년 후에 홍수심판이 있을 것을 예고케 했고 그로 하여금 예비하도록 했습니다.120년이라는 시간 여유를 주었습니다.그러나 그들은 무관심했습니다.둘째로 그들은 불경건했습니다.본문에 보니까 “먹고 마시고”라고 했습니다.먹고 마시는 것밖에는 모릅니다.경건의 삶은 항상 위를 바라보는 삶인데 위를 바라 보지 않고 밑만 바라보았습니다.셋째로 쾌락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본문에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라고 했습니다.물론 결혼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결혼해야 합니다.자녀들도 결혼시키셔야 합니다.여기서 얘기하는 것은 그것밖에 몰랐다는 것입니다.우리가 자녀들 결혼시키는 것 밖에 모르면 노아시대와 똑같습니다.쾌락주의에 완전히 빠져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본문에 보니까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고 앞으로 되어질 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이 두 가지의 비유는 똑같은 일에 종사를 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영적인 상태에 따라 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데려감을 당하지만 또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아마도 본문의 비유에서 한 사람은 항상 영적으로 위를 바라보는 삶을 살았지만 또 한 사람은 시집가고 장가가는 쾌락주의에 빠지고 영적인 생활에 무관심하고 불경건한 생활을 한 사람이기 때문에 결국 버려둠을 당했을 것입니다.경건한 자와 한 가족이거나 함께 있다고 안전한 것이 아닙니다.문제는 각 개인의 영적인 상태입니다.여기서 데려감을 당한다는 말은 휴거를 뜻하는 말은 아닙니다.이것은 영접을 뜻하는 말입니다.마치 추수 때에 주인이 종들을 보내서 알곡들은 다 모아 한 알이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창고에 모아들이고,쭉정이와 가라지는 다 모아서 불에 넣어 재로 만들어 버리듯이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3.깨어 있는 것과 깨어 있지 않는 것은
본문 42절에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했습니다.우리는 그날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깨어 있으라는 말은 인간의 유한성을 먼저 깨닫고 우리 하는 의무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예수님이 곧 오시니까 모든 것을 다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내일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각자에게 맡겨진 책임과 의무에 충실하는 것입니다.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또 해야 할 것은 경건생활입니다.물론 경건생활만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경건생활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사람이 살았느냐 죽었느냐는 것은 호흡이 있느냐 없느냐를 보면 압니다.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저나 여러분에게 영적인 호흡인 기도가 있느냐 없느냐,그래서 성령의 바람이 들어갔다 나갔다 하느냐 안하느냐를 보면 압니다.우리는 환경에 관계없이 경건생활을 계속해야 됩니다.열심히 기도생활을 해야 합니다.그 뿐만 아니라 시대의 징조에 대해서 저와 여러분은 항상 주목해야 합니다.영적으로 예민해야 합니다.그러면서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와 반대로 깨어 있지 않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48절을 보면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라고 했습니다.예수님 금방 안온다,앞으로 천년 후,이천년 후 먼 훗날 오실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바로 깨어 있지 않은 사람의 자세입니다.또 그 다음의 자세는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로 더불이 먹고 마시게 되면”이라고 했습니다.동무들을 때립니다.잔인한 것을 뜻합니다.깨어 있지 않은 사람의 특징은 주의하지 않고 주목하지 않습니다.여러 가지 징조가 나타나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데도 거기에 주목하지 않습니다.또한 술친구들도 더불어 먹고 마신다는 것은 방탕하다는 것입니다.그것이 바로 깨어있지 않는,다시말하면 세속의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그런 사람들에게 나타날 결과가 무엇입니까 51절에 보면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라는 말씀입니다.악한 종의 운명이 외식하는 자의 운명과 꼭같이 벌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또한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저들이 지옥에 가서 슬피 울며 이를 갈고 있는 것입니다.이를 가는 것은 그 고통이 너무너무 심하기 때문입니다.그리고 억울해서,분하고 원통해서 이를 가는 것입니다.성도 여러분,우리 가운데는 단 한 사람도 슬피 울며 이를 가는 분이 없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재림 날짜에 대한 추측은 무익합니다.그러므로 재림의 날짜의 대해서 추측하지 마세요.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유익이 없기 때문에,그리고 그것을 알면 영적인 교만에 빠지기 때문에 우리 개인의 종말이든지,이 세상의 종말인 재림의 날짜에 대해서 우리가 알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의 할바는 다만 재림이 있다는 것을 믿고 준비하며 깨어 있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우리는 첫째로 종말론적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을 가지고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라도 정말 후회없는 그런 하루하루를 살면서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하는 그런 신앙의 자세를 가지고 살자는 것입니다.둘째로 세상의 일에 너무 몰두해서 영적인 일에 너무 무관심하지 않도록 합시다.셋째로 그리스도의 재림이 더디다고 게을러서도 안됩니다.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사모하면서 날마다 그 날이 나의 마지막 종말이라는 자세를 가지고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면서 늘 위를 바라보고 사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림의 날짜를 가르쳐 주지는 않았지만 여러 가지 징조를 통해서 재림이 가까워져 가는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그날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준비하는 지혜로운 종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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