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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생 예수 (요 13: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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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오늘의 교회 모습이 옛날과 많이 변했고 또 계속 변해가고 있다고 말 하고 있습니다. 교리나 신조가 달라지고 예배의 형식도 적지 않게 달라진 것이 사실입니다. 이 모든 변화는 각박한 현대의 시대적 요청에 대한 적응 이며 해결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할 수도 없고 또 변해서는 안될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며 그의 인격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언제나 변하지 않으며 그의 행하신 행동은 영원한 인류의 사표가 됩니다. 사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선생으로 활약하신 것 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을 지칭한 70여 군데의 말 가운데서 60여회는 랍비, 즉 선생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선생으로서의 예수님의 교훈이 많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변하지 않고 예수님은 우리의 선생이시요, 모든 교사들의 본이 됨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3절에서 30절가지의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가운데서 우리 는 선생으로서의 예수님의 특징을 발견하게 되고 또한 많은 것을 배우게 됩 니다.

 1. 우리는 교사로서의 예수님의 열심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통과하시게 되었다고 했습니다.사마리아는 유대인들 에게 있어서 환영하지 않은 지역입니다. 그러기에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지나지 않고 요단강 동편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었습니다. 또 한 유대 사람과 사마리아 사람 가운데는 옛날부터 민족 감정이 대립되어 있 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사람들이 가장 환영하지 않은 지역을 찾아 가셨습니다.

그 때의 상황도 여러가지로 불리한 때였습니다. 제자들은 시장하여 먹을 것 을 사로 성내로 들어갔었고 그래서 예수님 혼자였으며 먼 여행길에 몹시 피 곤하셨습니다. 이러한 때에 예수님은 여러 사람이 아니라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앞에 놓고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의 경우에도 무시하지 않고 가르치는 일을 쉬지 않으셨습 니다. 거기다가 그 한 사람의 대상자도 예수에게 대해서 민족 감정을 가지 고 있는 사람이며 또한 과거와 현재의 그의 생활이 몹시 추악한 생활을 하 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영원한 선생인 예수님은 그 한 사람을 상대로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위대한 교훈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한 사람에게서 위대한 가능성이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교사 의 가져야 할 것은 사람의 과거와 현재보다도 그의 장래를 볼 줄 알아야 하 는 점입니다. 아흔 아홉 마리 우리 안에 있는 양보다 한 마리 잃어버린 양 을 찾는 열정이 예수님께 있었습니다.

 2. 우리는 교사로서의 예수님의 기지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때 그때에 따라 재치있게 나타내는 슬기가 있었습니다. 교육은 열심만으 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는 세상의 악한 스승들이 더 열심을 가 지고 사람을 미혹합니다. 학생에게 교사가 무엇인가를 해주기 전에 학생으 로 하여금 교사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슬기있는 교수

법이며 이것이 오늘날의 새로운 교수법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교육 방법은 정말 새 교육법을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화제로 시작하여 가르치셨 습니다. 여기 사마리아 여인에게 있어서 최대의 관심사는 우물이었습니다.

 매일같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야 하는 건조한 지대에 사는 사마리아 여인들 에게 있어서 우물은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관심거리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우물에 관하여 말씀하심으로 대화를 시작하셨고 일상적인 대화에서 시작하여 영생의 문제까지 나아갔습니다.

 학생이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시작하여 새롭고 영원한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예수님이 교수법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화제로부터 시작하여 마침내 사마리아 여인으로 하여금 자기가 무서운 죄인임을 깨닫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과의 대화에서 먼저 의심을 품도록 했습니다. 어째서 유 대인 남자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건넬까의심을 품게 하는 것은 교육의 시발점입니다.

 다음으로 무엇인가 기대를 품도록 했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 을 주겠다." 교육은 희망을 주는 일이며 의욕을 불러 일으키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여인을 개종시키는 방법으로는 다섯 남편이 있다는 것을 책망하 지 아니하고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강제로 남의 마음 문을 열 수는 없습 니다.

 지혜로운 선생은 학생이 스스로 마음 문을 열도록 합니다. 책망은 교육에 있어서 현명한 방법이 아닙니다.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스스로 자 신을 새롭게 하도록 하는 자주적이며 주체적인 인간이 도디록 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교사의 기지가 필요합니다.

 3. 우리는 교사로서의 예수님의 지식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가르치는 교훈의 내용을 잘알고 있습니다. 선생은 모르는 것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알고 있는 것만 가르치는 것이 선생입니다. 모른 것도 체면 때문에 우물우물 아는 체하는 것은 성실한 선생의 태도가 아닙니 다. 그러기에 선생된 자는 항상 스스로의 진보와 향상을 위해 더욱 노력하 고 배워야 합니다.

 이렇게 가르치는 내용만 잘알 뿐 아니라 가르치는 대상인 학생에 대해서도 잘아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사마리아 여인의 사람 됨됨이와 그 여인의 과거를 잘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교훈은 성공을 거둔 것 입니다. 이 여인은 후에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리에 들어가서 외친 첫마디 말이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학 생을 잘알아야 교육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학생과의 상담이나 심 장은 필요한 요건이 됩니다.

 교수 내용과 학생을 잘알 뿐 아니라 가르치는 교수 방법을 예수님은 잘 알 고 있었습니다. 여기보면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설교를 하지 않고 먼 저 질문을 하셨습니다. "물을 좀 달라." "네 남편을 데리고 오라." 이렇게 질문을 통해서 그녀가 생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남의 말만 듣는 것으로는 효과적인 교육이 되지 않습니다. 듣고 스스로 생각하도록 해야 합니다.

 심리학자들의 통계에 의하면 말을 듣는 것으로는 10%만 배우며 눈으로 보 는 것은 35%-50%를 배우며 말하게 함으로써 50% 이상을 배우게 되며 직접 행동하고 경험케 함으로 배우는 것이 75%이상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구태의 연하게 가장 쉬운 방법만 되풀이하지 말고 예수님처럼 가장 효과적인 교수 법을 채용할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가르치는 교훈의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피곤한 가운데 심혈을 기울여 이 여인을 가르치는 데에는 뚜렷한 목적이 있 었습니다. 한 마디 말에도 의미와 목적이 있었습니다. 목적없는 교육이란 있을 수 없으며 설사 그런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교육이 아니며 시 간의 낭비에 불과합니다.

 맹목적인 교사는 진정한 선생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남편을 다섯 명씩이나 바꿔치기 해도 마음에 만족을 얻지 못하고 늘 갈급한 가운데 있는 이 여인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결핍을 깨닫고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의 근원을 찾아와서 처음에는 "내가 보니 선지자로서이다"고 말한 이 여인으로 마침내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신앙 고백을 할 수 있도 록 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교사로서의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의 열쇠가 됩니다. 예수님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람이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보다 더 큰 사랑을 소유했는데 곧 "원수까지 사랑" 한 사랑입니다. 이와같은 사랑을 가 지고 예수님은 사람들을 대했고 교훈하셨습니다. 바로 이 사마리아 여인같 은 사람까지도 주님은 지극한 사랑을 가지고 가르치셨습니다.

 교사는 선악간에 모든 학생을 사랑해야 합니다. 심리적,사회적, 경제적으 로 밑바닥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사랑해야 합니다. 교사들에게 있어서 편애 란 금물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사랑한 것은 이 여인이 어떤 사 람이 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겉모양이 아니라" 온 천하 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사람의 목숨의 존귀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예수게서 이 여인을 향해 "내가 그리스도"라고 계시한 것은 이 기사의 클라이막스가 됩니다. 교사의 궁극적 사명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가르치는 데 있습니다. 칭찬듣는 교사, 인기가 있는 교사가 되는 것만 가지 고는 불완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커다란 사명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나 이 여이은 마침내 물동이를 내버려 두고 나가서 다른 사 람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하여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교회학교 교사의 가장 위대한 사명입니다. 학생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를 만나게 하고 그로 하여금 예수님이 그의 그리스도임을 고백하게 하는 즉 사람의 영혼을 구하는 일입니다.

 이 천사도 부러워하는 사명이 교사들의 양 어깨에 메워져 있습니다. 사람 의 생명을 구하는 이 일을 위해서 우리의 시간과 재능과 물질과 정성을 바 칠만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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