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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길(道)되신 예수 (요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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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수 많은 길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 많은 길을 오고 갑니다.
길한번 잘 못 들면 인생 전체의 방향이 바뀔 수 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의 길 한번 잘못 들어 평생을 우울하게 사는 사람이 있고,어떤 사람은 정치의 길 잘못 들어 높은 권좌에서 쫓겨남을 당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장삿길 잘 못 들어 재산전부를 날리고 파산지경에 이른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학문의 길을 잘못 선택하여 평생을 후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가는 길을 의식하며 가고 있을까그저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늘도 무의미하게 자신의 길을 반복하며 걷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왜 이 길을 가고 있는가> 또는 <내가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를 물으며 살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사람이나 되겠습니까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실존주의 철학에서는 일상성(日尙性) 속에 깊이 매몰되어 자신을 잃어버린채 무의식, 무목적으로 실존을 망각한채 살고 있는 것이 현대인들이라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분명히 인생은 어딘 가를 향해 가고 있는 존재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 어딘 가가 어디인지를 모른채 가고 있을 뿐!...누구나 정지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살았다 하는 것이, 곧 움직이는 것을 말하고, 움직인다는 것은 어디론가 향해 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분명히 어디론가 가고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지만,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그것을 죽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죽음을 향해 한발자욱,한발 자욱씩 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무식한 말이요, 무책임한 말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인생이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라면, 너무나 무의미하고, 너무나 허무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가만있어도 때가 되면 찾아오는법!...죽음을 향해 간다고 하기 까지는 너무나 무책임한 말이란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숨을 쉬고 살았다고 하는 것은 어디론 가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살았다는 말입니다. 단지 그 가는 길이 어디인지 모르고 가는 인생이될 때, 살았으나, 실상은 죽은 생활과 다를 바가 없을뿐입니다.

1.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길(道)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보다 6개월 먼저 온 세례요한은 이 길을 예비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시기 전 약 600년 전에 이사야는 예언하기를 주의길을 평탄케 하라고 했습니다. 산마다 낮아지며, 골짜기마다 메워져 평지가 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두고 하는 말이 그는 <길을 성취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 사람들을 일컬어 <도를 쫑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길을 가는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와 함께 길을 가는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혼자서 가는 길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는 길이요, 예수님과 더불어 가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란 다름아닌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을 아직도 신학적으로, 또는 교리적으로만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기에 저들의 생활에는 예수가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별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길을 누구와 함께 가느냐 고 할 때,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은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길을 누구와 함께 가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길을 재물과 함께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평생 눈을 뜨면 돈! 돈! 하면서, 돈 없으면 인생이 끝난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모든 가치의 평가를 돈으로 내립니다. 결국 이렇게 살다 가는 인생은 돈과 함께 끝날 것입니다.
여러분! 신문지상에서 흔히 읽을 수 있는 것은 누가 자살을 했다...하는 것을 보면 결국 물질 때문에, 돈 때문에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들입니다. 돈과 함께 인생길을 가다가 돈이 자기를 떠나 버렸을 때, 인생도 끝장이 난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길을 오직 권력과 명예와 함께 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한평생 정치줄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리고,한평생 이름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감투라 감투는 다 받아 쓰려고 합니다. 어울리지도 않고, 분수에 맞지도 않지만, 큰 감투일수록 맡지도 않은 감투를 쓰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합니다.
그러다 결국 감투와 함께 세상 사람들로 부터 손가락질 받으며 인생을 마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평생을 육체적 관능의 쾌락추구와 함께 이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이가 어지간에 들어서도 그 분야에 대하여서는 열을 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특히 정력에 좋다는 것은 무엇이던지 먹으려고 온통 관심이 그런 쪽으로만 기우려져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결국 그 육체와함께 추한 말년을 맞게 되는 것을 종종 봅니다.

이렇게 지금 내가 누구와 함께 가고 있는가 하는 것에 따라 그의 인생의 종착지도 달라 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히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갈 때, 진리의 길로, 생명의 길로 인도함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2. 그러면 우리에게서 이제 문제가 무엇입니까
길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과연 내가 함께 가고 있느냐 입니다.
내가 가는 길에 주님이 동행하고 있느냐 입니다.
지금, 나의 머물고 있는 인생의 간이역들 속에 주님이 함께 하고 있느냐 입니다. 우리는 이 물음을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 예수님의 부모들이 예수와 함께 동행하는 줄 알고 하루길을 내려온 후에 예수가 없는 것을 발견했든 것 처럼, 오늘 우리들이 바로 그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누가 물어도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와 함께 길을 가고있지 않다면 그것을 어찌 예수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의 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예수를 따른다고 하는 것 처럼 웃기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자기가 만들어 놓은 예수!... 자기의 성격과 자기의 비위에 마추어 만들어 놓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간 길은 결코 내가 지금 가고있는 그런 길은 아니었는데, 나는 지금 그 길을 예수와 함께 간다고 착각하고 있는 경우들은 없지 않는지냉철하게 자신을 한번쯤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이것은 기독교인들에게만 질문되어지는 문제는 아니다. 모든 종교인들에게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요즘 신문지상에 보니, 불교도들도 팔만대장경 판본을 머리에 이고 절간을 돌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들도 하는 말이 누구누구 할 것 없이 스님이나, 보살이나, 우리 불자들 모두가 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돌아 서야 하겠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에게도 같은 내용입니다. 과연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그가 가르쳐 주신 길대로, 그리고 그가 간 길을 우리가 가고 있는가...스스로 자신을 검토해 보고 주님이 가신길을 우리도 그와 함께 가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그가 우리의 보여주고 가르쳐 준 길이 어떤 길입니까역설의 길입니다. 누구든지 살고저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사는 길입니다.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면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 그런 길입니다.
원수가 주리면 먹이고, 왼뺨을 치면 오른뺨을 내 되고, 오리를 가자하면 10리를 가고,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까지 내어 주어야 하는 그런 길입니다.
그래서 이 길을 노예의 도덕이라고 하여 니이체는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 길은 무산대중을 착취하기 위한 아편이라고 하여 막스과 레닌은 계급투쟁을 위한 폭력을 주장했습니다.

참으로 이 길은 어려운 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쫑으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십자가>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이것은 단순한 생활고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가는 길에서 당하는 괴로움과 희생과 고통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 그 하나 때문에 참고, 지고, 손해보는, 그런 것을 의미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이렇게 주님이 가신 길을 걷는 자들에게는 신비한 일이 일어납니다. 즉,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결국 지는 것 같으나, 이기게 하고, 손해를 보는 것 같으나 몇 100배로 갚아주시고, 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나 생명의 길로 인도 해 주십니다. 저는 이것을 6.25 를 통해서 몸소 체험해 보았습니다. 주님과 함께 걷는길은 험하고 괴로워도, 마음의 참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주님과 함께 걸어야 할 길을 육체의 정욕대로 걷는 길에는 왜 그런지 마음의 평안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눈물의 골짜기에서 도리어 샘솟듯 솟아나고걱정과 근심스러운 환경에서 오히려 감사와 찬송이 터져 나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인생의 막다른 죽음의 골짜기에서 방황하던 사람들이 도리어 새 힘을 얻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찬양하는 것을 우리는 얼마든지 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과 함께 가는 길에서 만 영혼의 만족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걸어온 나의 인생길을 되돌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삶의 여정에서 주 없이 살아온 순간들이 얼마나 되는지 반성해 보고, 이제 부터라도, 남은 인생길에서 길되신 주님과 여정을 동행하는 성도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제아무리 화려했던 삶의 순간들이라 해도, 주와 함께 걸은 길이 아니라고 하면, 모두 세월과 함께 검부러기 처럼 날아가 버릴 것 들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길되신 주님과 함께 인생길을 가는 모든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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