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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 이루었다 (요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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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목마르다는 말은 입에 침이 없다는 말이다. 아무리 목을 축이려해도 입에서 침이 안돈다는 것이다. 모든 진액이 다 빠져나갔기 때문에 침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입에서 계속 침이 흐른다. 그러나 노인이 되면 침이 없어진다. 진액이 말라져 가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려서 물과 진액이 다 밖으로 빠져나가서 머리쪽에는 물기가 다 말랐다는 말이다. 이것은 모든것이 다 고갈됐고 다 끝났다는 뜻이다. 한 은 십자가에 달린 죄인들에게 마지막으로 베푸는 호의이기도 또 조롱이기도 하다. 물을 주어야 하는데 물은 주지 않고 다시 신 것을 먹이는 것이기 때문에 없는 물기를 더 짜보려는 의도인 것이다. 꼭 짠 걸레를 다시 한번 비틀어 짜는 일이라 할수 있다.

이것은 조롱하고자 하는 마음에서이다. 예수님은 이것을 받으신 후에 다 이루었다 하시고 운명하셨다고 하다. 알콜을 마시고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알콜의 힘을 입어서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힘이 빠지면 다시 알콜을 먹게 된다. 이렇게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자기안에 있는 모든 진액이 빠져나가 버린다. 술은 칼로리는 있지만 영양분이 없기 때문에 몸을 자극해서 기운을 돋구기는 식초를 통해서 토해진 다음에야 예수께서는 다 이루었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 뒤에 자기 영혼을 내 놓으시더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내 놓고 남은 것은 그의 엉혼이었는데 마지막에 그것을 내 놓으시더라는 것이다. 예수자신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죽은 후에 천당ぜ 그는 자기도 이왕이면 예수를 믿어서 지옥에 가지 말아야 되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말은 꿩먹고 알먹자는 생각이다. 세상에서도 잘살고 죽어서도 잘되보자는 생각이다. 이것은 세상에서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꼬이는 방법이다.

예수님은 한 동안 그의 영혼을 붙잡고 있엇다. 육신은 십자가에 못박혔지만 그 영혼은 놓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귄나님으로부터 창조될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창조되었다. 하 나님 나라를 위한 목표를 가지고 창조되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야 되는 목적때문에 사람이 창조되었다.

그러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생명이 있어야 한다. 신성한 생명이, 즉 하나님의 생명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혐산주의가 왜 실패했나. 공산주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것이라는 소유개념이 없는 사람만 있다면 공산주의는 잘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영국은 왜 민주주의가 잘 되는가. 그곳은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 대문이다. 법이제든지 만들어진다. 그런데 만일 이것을 막는 원수가 있다면 이 씨를 없애려고 할 것이다. 배추밭이 망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배추를 다 없앨 것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는 자가 있다. 그가 이 신성한 생명을 방해한다. 그가 곧 뱀이라는 것이다. 옛뱀이고 사탄윱. 죄는 단순한 생각이나 관념이 아니다. 죄는 우리속에 거하는 선악과이다. 이 속에 미움도 있고 싸움도 있다.선악과가 없으면 미움이 생기지 않는다. 선악과가 왕성한 사람은 미움도 왕성하다. 죄의 근원은 선악과이다. 이 죄를 없애는 것이 곧도적질 못하게 하는 것, 술을 못마시게 하는 것, 싸우지 못하게 하는 일들에 열중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아주 말단에서 행해지는 일이다. 낙동강하류의 물이 시커먼데 그것의 원인이 있기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도덕적으로 문란프고 많은 노력을 해왔다. 특히 기독교는 이 죄의 문제에 대해 많은 노력를 해왔다.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폐수처리장과 같은 결과만 가져왔다. 어떤 경우에는 잘되는 것 같다가 어떤 경우에는 잘 않되었다. 기계가 한 시간만 안돌아가면 도로 시커먼 폐수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근원에서 여전히 폐수가 흘러 오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이 대속인데 이 대속이라는 개념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 바로가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양을 대신 죽이고 나온 것을 말한다. 그날 밤에 양이 죽은 댓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해방되었기 때문에 이것이 대속인 것이다. 무엇을 대신 주고 가져오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백화점에 갔을 때 물건을 갖고 싶으면 돈을 대신 주고 그 물건을 가져오는 것과 같다. 그러면 예수님이 내대신 지불되어진 양이란 말인가 이 말을 들을 때 우리는 그 실제가 없기 때문에 막막해진다. 내가 만일 지금 술집에 팔려간 여자라고 하면 남편이 돈을 가지고 와서 나대신 지불하고 나를 찾아가지 이 신성한 생명을 방해하는 것이 있는데 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네째는 뱀이 방해한 결과가 죄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행하신 일은 이 죄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사람자체가 바로 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려고 태어났기 때문에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나라를 이루지 못하면 헛일이다. 제재소는 나무가 많다. 모두 집을 짓기 위해서인데 집을 지지 못하고 쌓여 있으면 헛일이 된다. 집을 지을 때 가치가 있는 것이지 제재소에 쌓여 있는 것은 가치가 없다. 최종적으로 그 나무는 집이 될때 가치가 있어진다. 우리 인생도 하나님 나라를 건축하는 진액이 다 없어졌듯이 다 끝냈다는고 말하고 있다. 위의 네가지 문제를 다 이룬것을 말하고 있다. 십자가에 죽으므로 모든 것을 다 끝냈다는 것이다.

구약안에서 많은 사람들은 이 네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하나가 해결되면 다른 문제가 남고 또 한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가지고 있다. 그래서 해결이 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안되는 것이다. 내가 예수를 믿고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받고 성경에 있는 대로 다 확인을 해도 안된다. 뱀의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구약에서는 신약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죄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뱀의 문제가 노출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해결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또 옛날 처럼 죄문제를 해결하려고 오셨을까 구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기도를 열심히 하고 부흥회에 가서 회개를 열심히 해도 소용없다. 이것은 개가 토하고 다시 그것을 먹고 다시 토하는 것과 같다. 뱀이 숨어 있는 한....

표면에 나타나는 것은 죄이고 숨어 있는 것은 뱀이긷 중요한 것이 있는 데 그것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필요가 많으면 생산은 더욱 많아지게 된다. 합성세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 공장은 자연히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무엇을 없애기 위해서는 그것의 필요가 없어져야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 왜 아담이 사탄에게 속았던가 왜 아담은 선악과를 먹었던가 '하는 원인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아담이 하나님을 나타낼 자로 자기 자신을 알고 그 영광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줄을 알았다면 굳이 사탄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이 영광으로 보이지 않고 그 천사의 영광이 영광으로 보였다. 필요가 생겼다는 말이다. ' 나는 천사같이 될 수 없는가. 나는 날아 다닐 수 없을까 나는 안 죽을 수 있을까. '라는 필요가 생긴 것이다. 이 필요가 사탄에게 속게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안에서 그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영광을 발견하지 못하다면 우리는 절대로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회개해도 안되고 부흥시켜도 안되고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 와도 안된다. 죄문제를 해결하는데 전매특허를 가진 사람도 안된다. 그 속에 부러운 것이 있기 때문에, 필요가 있기 때문에 안된다는 것이다.

예수안에 있는 영광이 보여야 한다. 그의 죽음안에 있는 영광이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담의 죽음은 끝읏舅徨 자리이다. 영혼까지 내놓는 것이 사람의 자리이다. 영혼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영혼까지도 하나님의 것이다.내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 이루었다--(2/2)

기독교안에는 위험한 사상이 있는데 그것은 영혼불멸 사상이다. 다른 것은 다 죽지만 영혼만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사상이다. 얼마나 무서운 사상인지 모른다. 만일 영혼이 불멸한다면 하나님이 왜 필요하겠는가! 불멸하는 존재는 하나님밖에 없다. 이것은 이방인의 사상인데 이상하게 기독교인들이 이사상에 뿌리를 박고 있다. 애급 사람과 히브리 사람은 한 땅에서 살았다. 애급 사람은 영혼불멸의 사상을 가졌고 히브리 사람은 하나님 밖에 없었다. 애급 사람들은 나일강가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했는데 살았을때 풍요롭게 살기 때문에 死後의 세계에 대해서 연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영혼불멸의 사상의 기초가 되었다. 그래서 애급 사람들은 피라밋을 만들었던 것이다. 죽은 뒤에도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 가를 연구한 결과이다. 그런데 히브리 사람들은 그 안에서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노예이기 때문에 죽느냐, 사느냐가 항상 급한 문제였다. 이런 사태속에서는 내세가 걱정이 아니고 지금 사는 문제가 급했던 것이다. 지금 사는 것도 내 힘으로는 어렵기 때문에 이 현실에서 구해줄 이 로마로 건너와서 지금 세계문명을 지배하고 있다. 또 하나는 히브리사상이 또 하나의 종교를 이루어서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두개의 혈맥이 이 세계의 정신적인 혈통을 이어가고 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영혼이 불멸하다고 믿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다. 하나님이 계신데 내 영혼이 불멸하면 무엇하겠는가. 하나님이 내 영혼을 없앨 수 있는데 내가 붙잡고 있는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육신을 멸하는 자를 두려워 하지말고 육신과 함께 그 영혼을 멸하시는 이를 두려워하라! '라고 성경에서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영혼을 멸할 수 있지만 만일 영혼이 불멸하는 존재가 있다면 하나님도 어찌毬ご纛 숨을 불어 넣어서 사람이 된 존재이므로 그 숨을 도로 가져가 버리면 우리는 돌로 흙이 되어 버린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를 때 ' 숨이 코에 붙은 인생아! ' 라고 부르지 ' 영혼불멸 하는 인생아! ' 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아 홍수 때 코로 생명의 깊 이삭도 죽고 야곱도 죽었지만 하나님은 불멸하신 것이다. 성 경은 부활을 말할 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라는 말을 듣지 못하였느냐 라고 하고 있다. 이 말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따로 부활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한 분만 영원히 부활한다는 뜻이다. 너희가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다시 살리신 것이다. 흙속에 숨을 불어 넣으신 분이 다시 숨을 불어 넣으시더라는 것이다. 마이크를 한번 만든 사람은 그것이 부서지면 다시 만들 수 있듯이 아브람함이 없으면 아브라함을 만드셨던 분이 다시 아브라함을 다시 만들지 않으시겠는가.

예수님은 자기의 영혼까지 다 내 놓으셨다. 완전히 다 놓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살리신 것이다. 이것이扇 보면 이것을 영혼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영혼이 내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위해서 존재할 뿐이다. 이 영원한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면 우리는 사탄에게 속을 필요가 없다. 왜 속겠는가 우리가 태어난것이 세상의 영광을 얻기 위한 것도 아니고 먹고 살려고 할 필요가 없다. ' 나는 이런 사람 이다.'라고 고집할 필요가 없어진다 내가 하나님에게 쓰이는 재료가 되는 것이지 옳은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내가 아무리 옳아도 하나님이 쓰실 수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목수가 산에 가서 재목을 벨 때 그는 어떤 나무가 집을 짓는데 필요하가 있다. 그래서 내가 좋은 사람이다라고 해도 소용없다. 어떤 형제가 가정문제를 가지고 왔다. 그 형제가 하는 말이 자기는 양심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법률적으로나 잘못한 것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너는 그놈의 양심이 집안을 그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했다. 홋님이 계신다.

지성소 안에 가보자. 지성소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깜깜할 뿐이다. 전혀 빛이 없는 곳이 지성소인데 그 안에 하나님이 사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곳은 바람도 안불고 비도 들어오지 않는 곳이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곳이다. 이것은 평화를 말한다. 화평중에 거하는 하나님이시다. 나는 4년을 싸우고 나센苛쨈. 거기에는 하나님의 성격상 계실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 화평 '이라고 지었다.

하나님은 지성소안에 계시다. 예수께서 사탄의 일을 멸하실 때 우리안의 선악과를 멸하셨다. 그 선악과의 필요는 내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영원한 재료일대 필요한데 어차피 하나님의 집에 석가래가 되든지 들보가 되든지 기둥이 되든지 하려면 내 선한것과 악한 것이 소용없다. 하나님이 갖다 쓸 수 있는 부드러운 재목이 되어야 한다. 언제든지 ' 가라' 하면 가고 ' 오라 ' 하면 오는 것이 필요하다. '오라' 할때 이유를 물으면 하나님께 쓰일 수 없다. 죄를 해결하는 문제는 근원을 해결해야 한다. 사탄이 항상 속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데 그 사탄을 옹호하면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안속기 위해서는 내가 하나님의 집을 지을 재료인 것으로 알아야 한다. 예수님도 속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 돌들로 떡이 되게 하라'고 했을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 주며 가로되 내게 절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했을 때 '주 하나님에게만 경배하라 하였느니라'라고 했다.

'성전 꼭대기에 세우며 뛰어 내려 보이라 그러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도록 보호해 줄 것이다.' 그런데 주 하나님을 시험할 필요개ご纛 목적이 해방될 수밖에 없다. 그 동안 하나님의 목적이 내 목적때문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사탄에게 속은 내 목적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이 우리 생명 속에 갇혀서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해방이 되었다. 이럴때 그리스도가 나타난다고 말하게 된다. 묶어놓은 것이 풀려난 것이다. 향수병의 뚜껑을 열어놓은 순간 향기가 진동하듯이 뚜껑인 사탄을 열어버리면 속의 향기가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뚜껑을 여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 하나님! 언제든지 당신이 알아서 쓰십시요. 나는 내것이 아닙니다.' 라고 한다면 향수가 언제 다 없어지는지 모르게 없어지듯이 하나님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쓰신다는 것이다. 이 나았다. 이것은 향수병의 뚜껑을 열어놓았더니 향기가 날리더라는 것이다. 내가 잘되고 있는지 안되고 있는지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옛날 한 전도기관에 있을때의 일인데 우리들은 전도를 하고나서 반드시 수를 계산하곤 했다. 몇명 전도했는데 몇명이 믿게 됐다고 보痼 뚫리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 들은 모두 사랑하게 된다. 서로 즐거워 하게 된다. 경쟁하던 마음들이 서로 연합하여 집을 건축하는 사람이 된다. 전에는 부부간에도 자존심때문에 싸워야 했고 형제간에도 싸워야 했다. 지금은 모두 연합할 자로 보이게 되었 자기 영혼을 내놓는 자리에서 다 이루어진다. 예수님이 꼭 우리 죄를 위해서만 십자가를 졌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가 먼저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를 위해서 한 일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오히려 십자가를 진 것은 예수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내 편지르고 운명하시더라' 고 기록되어 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죄인으로 십자가를 졌기 때문에 죄의 고통을 표현한 것이다. 다시말해서 죄를 짊어진 구속자로써의 고통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요한은 '다 이루었다' 고 표현하고 있다. 그는 예수의 십자가를 보고 인생의 모든 문제가 다 이룬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고통당하는 것만 본 것이 아니고 다 이루어진 것을 보았다. 목이 마른 상태에서, 최악의 고통상태에서 어떻게 다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이것은 요한의 마음이다. 그의 죽으심안에서 그가 그렇게 인식된 것이다. 꼭 그날 사건을 통해서 알았다기 보다 그 뒤로 교회안에서의 삶을 통해서 깨달아진 것이다. 예수님이 인류의 모든 문제를 십자가에 지심으로 다 이룬것이 보였다는 것이다. 예수안에서 우리의 모든 문제는 다 끝이 났다. 이 일이 유대땅 어느 구석에서 일어난 것은 한국에서 전기를 모르고 있을때 에디슨이 전기를 발명한 것과 똑 같다하겠다. 에디슨이 전기를 발명할 때 한국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상상도 못했었다. 눈앞만 보고 있었기 때문에 전기가 발명되고 있는지 기차가 발명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는 세상 구석 구석 개발되고 있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의 사건을 알든지 모르든지 이미 유대땅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기처럼 계속해서 이 십자가 사건난 것 을 우리는 뿌리면 된다.

우리는 이 목적을 위해 태어났고 또 이 신성한 생명을 부여 받았다. 그런데 사탄에 속아서 이 신성한 생명이 해방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이 신성한 생명이 해방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우리까지 그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할렐루야! 한 사람이 발견한 것이 모든 사람에게 퍼지게 되었다.

세상에서는 한 사람이 만든 것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만들어야 하지만 그리스도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 이미 이루어졌던 것을, 창세전에 주었던 것을 사탄이 가리고 있었다. 이 사실만 안다면 우리는 창세전에 아버지께서 주신 영광이 바로 우리 영광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해방만 되면 된다. 우리는 단지 속아 있었님이 우리에게 ' 우리 형상을 따라 우리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라고 한 말이 생각날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새로 기름받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미 나에게 기름부었다는 사실이 생각나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 안에서 다 이루신 것이다. 그러므로 천하 인간에 구원받을 이름을 다른 인간에게 주신 일이 없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우리 안에서 달성될 것이다. 성취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염소를 가지고 제사를 드리느냐, 양을 가지고 제사를 드릴 것이냐 피로 해야 하느냐 뼈로 해야 하느냐 등의 문제가 없어진다. 안식일을 지켜야 하느냐, 안 지켜야 하느냐 할 필요도 없어진다. ' 다 이루었다 '하는 말만 확鄂求.

사람이 이 목적때문에 창조되었다는 것이 퍼지기를 원한다. 주님이 이루신 일을 전파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재료가 되는 것이지 옳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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