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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깊은 샘물을 찾아서 (요 04: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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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를 순례할 때 빠지지 않고 꼭 들르는 곳이 있는데, 그곳은 바로야곱의 우물입니다. 이곳은 옛날 사마리아의 수가 성에 있던 우물터인데, 지금은 그 자리에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 우물가에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신 드라마틱한 내용은 영적으로 목말라하는 현대인들에게 주는 교훈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육신적으로는 가는 곳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이 풍부하지만 영적인굶주림 때문에 깊은 갈증을 느끼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생각하면서본문이 주시는 귀한 교훈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생명의 샘터로 초대하시는 예수님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려면 반드시 사마리아를 거쳐야 됩니다. 사마리아인은 기원전 722년에 남유다가 앗수르군에게 점령당한 후, 남유다로 이주해온 이방인과 이스라엘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으로서, 유대인들은 그들을 업신여기고 사마리아 땅을 밟으려고 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의 수가 성에 있는 야곱의 우물가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가지셨기 때문에 목도마르고 피곤하셨습니다. 그 때 한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러 우물가로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먼저 말을 거셨습니다. 격의 없는 질문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깜짝 놀라면서 "당신은 유대인이면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나 있는 도덕적으로도 타락한 여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도덕적, 문화적인 장벽과민족적인 편견을 뛰어넘어서 그 여인의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녀를 정죄하지 아니하시고 그녀와 대화를 나누신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도덕적으로 타락했지만 그녀에게도 하나님의 형상이있고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을 예수님께서 아시고 그녀에게 생수를 마시라고 권고하신 것입니다.

웨슬레 신학에[선재의 은총] 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이미 성령으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일수 있는 가능성을 주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문화적 장벽을 초월하여 부도덕하고 세속적인 세상에말씀이 육신이 되어 (incarnation) 오셔서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소외당한 사람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본문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인도의 영적 지도자였던 마하트마 간디는 힌두교도임에도 불구하고한번은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진리야말로 인도인들의 계급차별 의식과 타락한 문명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고자 예배당을 찾아갔습니다. 무명 옷을 두르고 피부색이 검은간디가 교회문 앞에서 간디는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기독교인이 될 뻔

했던 간디는 '진리는 좋으나, 교회가 잘못되었구나.'라고 한탄하고 다시는 교회에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일화는 인간의 편견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이 바로 증거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세속 사회 속으로 바르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현대고등학교 교장 선생님께서 한번은 저를 만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학교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서로 언쟁을 하다가도 창문을열고 광림교회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마음에 위로가 되고 서로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용기와 소망을 갖게 됩니다."

캄캄한 밤중에 불빛을 더 확실히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십자가는 죄로 말미암아 어둡고 혼탁한 세속의 한가운데서 바라볼 때에 더욱 빛을 발하게 되는것입니다.

우리는 타락한 세속사회 속에서, 우리를 정죄하지 아니하시고 미리생명의 샘터에서 우리를 찾으시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귀를 기울여야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서 민방위교육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교육이 끝난후에도 예배당을 쉽게 떠나지 못하고 종탑 위의 십자가를 한참 올려다보고는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기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모습 속에서 십자가의 진리를 찾아 목말라하는 현대인의 고뇌를 발견했습니다.

야곱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기다리고 계시던 예수님께서 선재의 은총으로 여러분을 찾으시고 여러분의 갈증을 아시고 생수를 선물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도 여러분 곁에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믿으시고 이선물을 받을 때만 참된 삶의 의미를 찾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기를 바랍니다.

2.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해결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예수님"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내게 주었으리라"(요4:10)는 말씀을 들을 때에사마리아 여인은 착각을 했습니다. 그녀는 지극히 물질적인 생각을 하면서 "물 길을 그릇도 없고..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네가 거듭나야 된다"(요3:3) 라고 말씀하셨을 때 니고데모가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요3:4) 라고 물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여인은 영생의 샘물을마시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왜 대낮에 우물가를 찾아왔을까요우물가는 부인들이 모여서 얘기를 주고받는 정보의 센타이며 대화의광장입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되는 이여인은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물을 길을 수가 없었습니다. 창녀 취급을 받아 소외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들이 물을 길러 오지 않는 대낮에 혼자 물동이를 이고우물가로 찾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예수님께서 그곳에 앉아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이 여인에 대하여 모든 것을 알고계셨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수치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우리 조상들은 이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라고 하면서 엉뚱한 말로 돌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내 수치도, 죄 범한 것도, 내 마음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현대이은 자신의 수치가 드러날까 두려워 진실된 자아의 핵심을 드러내지 못하고 언제나 목마른 상태에서 교회와 종교의 주변만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인간의 관계성의 파괴 때문에 다섯 번씩이나 결혼을 하고 값싼 성적만족을 얻으려 했지만 파괴된 자존심을 가지고 소외당한 채 값싼 생을살아가는 사마리아 여인의 모습이 바로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창3:9) 고 물으실 때에 동산나무 사이로 도망가면서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3:10) 라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기가 부끄러워서 피해 다니는 아담과 같은 현대인입니다.

오늘 때로는 "그리심 산에서 예배하오리까, 예루살렘에서 예배하오리까" "감리교가 좋습니까, 장로교가 좋습니까" "예지론입니까,예정론입니까"하며 핵심적인 내 마음의 중심은 털어놓지 아니하고 언제나주변만 빙빙 도는 현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는 지금 목말라 있어, 생수를 마셔야 돼."라고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다아시고 해결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번에 제가 미국에 갔을 때, 평양에 다녀온 목사님께 들은 얘기입니다. 그 목사님께서 주일예배를 드리려고 새로 세운 예배당에 가고 싶다고 말했더니 북한 사람이 말하기를 마침 그 주일은 관광객들이 많지않기 때문에 기독교 사업이 없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예배라는 말은그들의 통치자에게나 사용하는 말이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기독교 사업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자기들의 정치적인 체제나 사상을 옹호하는 데 이용하려고 하는 피상적이고 천박한 생각을 하고 있는 그들과 무슨 대화가되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진실성이 바탕이 되어 있을 때에 대화가 가능한 것입니다. 기독교마저 선전의 도구로 삼으려고 하는 그들을 생각할 때에 불쌍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깊은 무의식층에 잠겨 있는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표면적이고 외식적인 것에 집착할 때에 우리는 술과 마약에 빠지기 쉽습니다.미국에서는 마약 복용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미국 청소년들의 60% 이상이 마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정의 파괴나마음의 깊은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해서 오는 불안과 사회 경쟁에서 이겨낼 자신감이나 신앙의 대상을 잃어버린 데서 오는 초조함 때문에 마약을 복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자인 칼 융은 "신화를 잃어버리고 꿈을 잃어버린 현대인을 의식층에 속해 있는 것만 다루고 깊은 무의식층의 욕구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 무의식층의 욕구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 무의식층의 욕구가폭발하게 되면 갖가지 곁길을 나가게 딘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의식층과 무의식층의 욕구가 함께 충족될 때에 온전해집니다.
그러나 현대 문명은 눈에 보이는 것,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만이 의식 세계의 전부인 양 생각하고 깊은 무의식층의 욕구 충족을 외면하고있기 때문에 현대인들이 마약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마저도 지극히 피상적인 것에 머물러 있어서 현대인들은 깊은 생수를 공

급받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말하기를 인간은 북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북의 진동 소리가 인간의 무의식층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삶의 참된 의미, 삶의 만족, 마음의 평화와 기쁨도 없이, 우리는 깊은 내면적인 욕구를 잃어버린 채 분주히 뛰어다니기만 하면서 종교의가장자리만 스치고 지나가고 있지는 않은가 스스로 반성하고 목마른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준비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될 것입니다.

3.변화의 체험으로 증거하게 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죄를 용서받고 자아를 발견하여새롭게 태어난 사마리아 여인은 너무 기뻐서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사람들에게 뛰어가서 "내가 메시야를 만났소. 당신들도 예수님을 만나보시오"라고 말할 때에, 동네 사람들이 이 창녀의 얘기를 듣고 메시야를 만났고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진지하게 영적으로 예배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수를 마실 수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과 만나서 예수님 앞에서 내 마음속의 모든 욕구를 털어 내놓을 때에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키시고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는 예수님,변화의 체험을 남에게 증거하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하와이에서 우리 교회의 예배 실황을 텔레비젼으로 방영하다가 자금난으로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신문을 통해 그 소식을 읽은 어느 교인이 익명으로 10만 불을 낼 터이니 방송을 계속하라고 했습니다. 이민사회에서 10만 불이란 대단한 액수입니다. 목사님들은 그가 혹시 방송을 통해서 자기의 사사로운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이단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이름도 모르고 어디 사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목사님은 그의 진실성을 믿고서 그 돈을 받아 텔레비젼 방송을 계속했습니다.

이번에 제가 하와이에 갔을 때에 저를 초대한 분이 있었는데, 그분은우리 교회에서 집사 직분을 받은 한 집사님 내외분이었습니다. 바로그들이 10만불을 낸 것입니다.그는 교포들로 하여금 광림교회의 예배실황을 다 보게 해야 할텐데 텔레비젼 방영이 중단된다는 말을 듣고너무 안타까워 기도하는 중에 10만불을 작정해서 헌금한 것이었습니다.

그 분은 "제가 사업으로 얻은 돈을 바쳐서 복음이 증거되는 것이 너무 기쁩니다. 제가 3년 전에 하와이에 올 때에는 아무것도 없이 기도하면서 시작했지만 하나님의 사업에 먼저 투자하고 제가 변화 받은 체험을 증거했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축복해 주셨싸브니다. 목사님, 지금 여기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저와 같이 계십니다.
저는 날마다 체험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지금 그는 수천억 원을 거래하는 큰 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깊은생수를 마신 감격을 전하기 위해서 애쓰는 한 집사님을 보며 저는 기쁘고 돌아왔습니다.

우리를 깊은 샘터로 초대하시는 예수님! 목마르지 아니하도록 권고하시는 예수님!

저희 아버님이 경기도 연하리에 닫혔던 예배당 문을 열고 목회를 하실 때에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이 자랑하시던 것이 꼭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뒷동산에 있는 샘터였습니다.제가 갈때마다 아버님은 그 샘물을 자랑하셨습니다.

제가 몇 해 전에 가보니까 옛날 모습은 간데 없고 교회터는 밭이 되어 있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아버님이 자랑하시던 샘터에 큰 물탱크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동네 사람들은 그 샘물을 받아서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없는 빈터에 서서 '하나님 , 감사합니다. 저 샘물을마시는 것처럼, 기갈에 싸인 저 백성들로 하여금 영원한 생수를 마시게 하시옵소서."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목마르지 아니하는 깊은 생수를 그리스도 안에서 마시고 삶의 감격과보람을 느끼며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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